서론 : 이슬람과 역사 개관

리폼드 투데이 창간을 축하드리며 신학논단에 필자로 초대해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개혁주의 관점에서 이슬람의 신앙체계와 세계관을 이슬람의 정경인 꾸란(Quran)에 근거하여 고찰하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슬람”(Islam)을 아라비아 반도에서 기원한 종교들 중의 하나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슬람은 단순히 종교단체가 아니라 종교와 정치를 합한 종정합일(宗政合一)의 공동체이다. 이는 이슬람 용어로 움마(umma)라고 하는데,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공동체와 비슷한 신정정치 체제(theocratic system)이다. 종교와 정치가 합일된 공동체로서 신(알라)의 대리자(칼리파)가 이슬람 율법(샤리아)으로 통치하는 신정공동체를 가리켜 이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슬람의 최종 목표는 이 세상에 이슬람 국가(Islamic State)를 세우는 것으로, 신(알라)을 부정하거나 이슬람의 번성을 가로막는 자들은 누구든지 지하드(투쟁)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무슬림들(이슬람 신자들)은 세계 어디에 거주하든 현지 국가의 법보다는 이슬람법(샤리아)을 우선적으로 지키며, 이를 방해하는 개인이나 단체(국가)는 지하드의 대상으로 삼아 폭력과 테러를 자행한다. 이슬람에서는 지하드를 하다가 순교하면 천국에 직행한다고 꾸란에 적시되어 지하드를 미화하고 조장하고 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Muhammad)가 태어나기 전부터 아라비아 지역에는 부족 중심의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수시로 부족들 간에 싸움이 일어났기 때문에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수호신(守護神)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유목민들이었던 관계로 그들의 신들을 한 곳에 모실 필요가 있어 지리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웠던 메카에 360여개의 부족들이 각각 자신들의 신들을 한 곳에 모셔 놓는 큰 신전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카아바(Kaaba) 신전이다. 이것은 일종의 “신들의 집합장소”인 셈인데 이슬람에서는 이 신전을 이브라함(아브라함)과 이스마일(이스마엘)이 건축했다고 주장하는 제일의 성지이다.

아라비아 부족들의 360여개의 신들 중에도 서열이 있었는데 그중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던 지고신(至高神)은 알라(Allah)였다. 알라신은 당시 메카 지역을 장악했던 꾸라이쉬 부족이 믿었던 부족의 신으로서, ‘달의 신’(月神)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구약 사사기 8장에 보면 기드온의 군대가 미디안의 왕들과 그 잔당들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미디안 사람들이 부적으로 달고 다녔던 것들 중 하나가 ‘초승달 장식’(crescent ornaments/NASB)이었는데(삿 8:21, 26), 이는 아라비아 지역에 달의 신(알라)을 믿는 부족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아라비아 지역의 종교적 상황에서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570년 4월 22일 메카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본명은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이븐 압둘 무탈립 이븐 하심’(Muhammad ibn Abdullah ibn Abdul Muttalib ibn Hashim)이다. ‘무함마드’는 그의 이름이고, ‘압둘라’는 아버지의 이름이고, ‘압둘 무탈립’은 그를 잠시 길러준 할아버지 이름이고, ‘하심’은 가문의 이름이며, ‘이븐’(ibn)은 아랍어로 아들이란 뜻이다. 따라서 무함마드의 본명을 보면 그의 가문을 알 수가 있다.

무함마드는 알라신을 섬기던 꾸라이쉬 부족 하심 가문에서 유복자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압둘라는 가난한 대상(隊商 caravan)으로 무함마드가 복중(服中)에 있을 때 귀가하던 중 메디나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어머니 아미나가 홀로 무함마드를 출산했다.

무함마드가 6살이 되었을 때 그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할아버지 압둘 무탈립이 그를 양육했다. 그러나 다시 2년 후 그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카아바 신전의 관리인이었던 그의 삼촌 아부 탈립이 그를 양육했다. 아부 탈립은 가난한 대상(隊商)이었기 때문에 무함마드를 학교에 보낼 수가 없어서 자연히 무함마드는 글을 배우지 못한 문맹자(文盲者)가 되었다. 무함마드는 꾸란에서 스스로를 ‘무학자’(ummi)로 인정하고 있다(Q 7:157).

무함마드는 삼촌의 집안일을 돌보고 사막에서 목동으로 일하며 성장하다가 12세 때부터는 삼촌을 따라 가끔 시리아로 대상 무역에 따라다니면서 성장했다. 그는 25세가 되던 595년에 자신보다 15세 연상인 40세의 과부 카디자와 결혼을 했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와 결혼할 당시 네 번의 이혼 경력이 있었던 여인으로 많은 낙타들을 거느리며 대상 무역을 하는 부자였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부자 미망인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일할 필요도 없었고,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메카에서 3마일 정도 떨어진 히라산의 동굴에 들어가 종교적인 문제에 전념하며 명상을 할 수가 있었다. 특히 무함마드는 평소에 자기 부족의 이교신앙, 특히 다신숭배(多神崇拜)에 대해서 심한 갈등이 있었다. 그에게는 적어도 “신은 하나만 있어야하지 않은가?”라는 유일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무함마드가 기독교를 부정했던 것도 사실 삼위일체를 다신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슬람에 의하면, 610년 어느 날 무함마드는 동굴에서 금식하며 명상에 잠겼을 때 알라의 천사장 지브릴(가브리엘)이 그에게 와서 첫 번째 계시를 주면서 “암송하라”고 두 번 반복적으로 명령했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이슬람의 정경인 꾸란의 시초가 된 것이다. 무함마드는 이 계시를 통해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유일신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가 이 계시를 받을 때 초승달이 뜰 때였다고 해서 달의 신을 믿는 이슬람의 표징이 ‘초승달’ 문양인 것이다.

무함마드가 자신이 받은 알라의 계시(유일신)를 사람들에게 주장하자 그의 부족들은 무함마드를 정신이상자로 몰아 몇 번의 회유 끝에 결국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622년에 부족들의 살해위협을 피하여 메디나(Medina)로 야반도주를 했다. 이슬람에서는 이 사건을 히즈라(Hijra)라고 하는데, 무함마드는 자신을 따르던 메카인들과 메디나 현지인들을 규합하여 정치와 종교를 아우르는 이슬람 공동체를 창시하게 된다. 따라서 622년은 이슬람의 원년(元年)이요 기원이며, 이때부터 이슬람력이 시작된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알라 유일신의 이슬람 공동체를 만들어 세력을 키워나갔는데, 그의 최종의 목표는 아리비아의 심장인 메카를 정복하여 카아바 신전에 있는 360여개의 신상들을 파괴하고 모든 아라비아 부족들을 알라만을 섬기는 ‘이슬람’으로 통일시키는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그의 야망대로 630년에 메카를 무혈정복하였고, 메카를 정복한 무함마드는 카아바 신전 안에 있던 부족 신들의 형상을 파괴하면서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없다. 알라는 위대하다(Allahu Akbar)”고 외쳤다. 그 후 그는 메디나에서 지내는 동안 사막에서 이슬람의 개척과 크고 작은 전쟁의 후유증으로 그의 건강(열병과 폐렴)은 갈수록 악화되어 632년 6월 8일(이슬람력 11년 3월 13일), 62세의 일기로 사망하여 메디나에 장사되었다.

※ 본 이슬람 신학논단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됩니다.

1. 서론: 이슬람과 역사 개관

2. 이슬람의 교리와 샤리아법

3. 기독교와 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종교인가?

4. 야훼(여호와)와 알라

5. 성경과 꾸란

6. 예수와 무함마드

7. 이슬람의 구원관

8. 이슬람의 내세관

9. 이슬람의 종파(수니파, 시아파, 수피파)

10.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크리슬람과 내부자운동

필자 : 고광석 목사(광주서광교회)
필자 : 고광석 목사(광주서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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