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한국 이슬람의 역사
한국 이슬람 학자들은 아랍 무슬림들이 한반도와 접촉한 최초의 시기는 기록상 9세기 중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이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7세기 중엽부터 이미 아랍페르시아 계 무슬림들이 중국대륙과 접촉해왔고 그들의 활동영역이 9세기경에는 남방해로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의 한반도에까지 확장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이슬람의 활동은 순전히 상업(무역)상의 목적이었을 뿐 종교적인 영향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을 시사해주는 구체적인 유적이나 기록이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이슬람이 공식적으로 전해진 때는 한국전쟁 당시, 1950년 10월에 유엔 평화유지군(United Nations Peacekeeping Force)의 일원으로 참전한 터키 군(軍)의 군 이맘(imam 이슬람 성직자) 압둘 가프르카라 이스마일 오굴루(Abdul Gafurkara Ismail Oglu)에 의해서 전래되었다. 그는 전쟁 중에서도 한국인에게 이슬람을 전파하여 김진규와 김유도 등 최초의 한국 무슬림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김진규와 김유도는 1955년 9월 15일 ‘한국이슬람교협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에 김진규를 추대하고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이슬람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협회는 1955년 10월 터키 군 당국의 지원을 받아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에 야전용 천막 3동을 설치해 이를 임시사원과 사무실로 사용했으며, 매주 압둘 가프르카라 이맘을 초청해 강연회를 여는 등 이슬람의 이해와 확산에 노력하였다.
초창기 한국 무슬림들의 이러한 활동은 1956년 압둘 가프르카라의 뒤를 이어 20대의 젊은 이맘 주베이르 코치(Zubeyr Koch)가 여단 사령부 군 이맘으로 부임해오면서 더욱 활기를 띠었다. 의욕에 찬 주베이르 코치와 한국 무슬림들은 포교활동을 가속화하는 한편, 터키 여단 사령부의 지원으로 이문동에 임시사원을 마련하였다. 대형 콘센트 막사로 만든 이 사원은 한국 이슬람 근대사에 최초의 임시 이슬람사원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 무슬림들은 1960년대에 들어와 조직적인 국내 포교활동에 참여하는 한편, 각 이슬람국가들과의 유대강화에도 적극성을 보이게 된다. 당시 한국이슬람교협회 회장인 김진규는 1959년 11월부터 약 1년간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등의 이슬람 국가를 순방하며 한국 이슬람의 실정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했다. 특히 그는 이 기간에 메카의 카아바 신전을 순례하기도 했다.
1961년 12월에 ‘한국이슬람협회’가 문공부가 인정하는 사회단체로 설립되었고, 1963년 1월에는 이문동에 있던 임시사원을 상도동으로 이전했다. 1963년 11월에는 말레이시아 수상 압둘 라흐만(Abdul Rahman)으로부터 사원 건립기금으로 말레이화 33,000불이 지원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슬람협회’는 1964년 10월부터 서울 상도 2동에 사원 건립용 부지를 확보하고 착공에 들어갔으나, 전쟁 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현금 자산가치의 하락과 대규모 공사계획에 따른 후속 지원금 미확보 및 누적된 부채로 인해 한국 최초의 사원건립의 꿈이 무산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협회는 더욱 가중된 재정난으로 주요 업무가 마비되고 의욕을 상실한 무슬림들이 하나 둘씩 협회를 떠나 새로운 이슬람 단체들을 조직하였다. 군소 이슬람 단체로 분열되어 침체기를 맞고 있던 한국 이슬람은 그 후 수차례의 통합을 시도한 끝에 1964년 6월 ‘한국이슬람교중앙연합회’를 발족시켰고(회장 서정길, 사무총장 이화식), 이 연합회가 오늘날 한국 유일의 이슬람 조직체로 발전한 ‘한국이슬람교중앙회’의 전신이다. 연합회는 1966년 4월에 서울 용산구 원효로의 건물 2층에 임시사원과 사무실을 마련하고 포교활동을 재개하는 한편, 해외 이슬람 단체들과의 유대강화에도 힘썼다.
1967년 3월에는 한국이슬람교협회를 재정비하여 ‘재단법인 한국이슬람교’를 설립하여 한국 정부에 설립인가를 받았다. 이를 기념하여 쿠웨이트 종교성은 사원건립기금으로 미화 1만 4,000불을 기부하였다. 한국 무슬림들의 성원건립 소망은 1970년 9월 박정희 대통령이 용산구 한남동 소재 시유지 1,500평을 중앙사원 건립용 부지로 지원함으로써 더욱 구체화되었다. 1970년 12월 부지가 확보되자 중앙사원 건립을 위한 모금 사절단이 수차례 이슬람 각국에 파견되었으며, 이슬람 각국도 이에 적극 호응해 모금액은 미화 40만 달러에 달했다. 마침내 1976년 5월 21일 사원 개원식이 거행됨으로써 한국 역사상 최초로 돔으로 된 이슬람 건축물(mosque)이 이태원 언덕 꼭대기에 세워졌다. 그해 10월에는 서정길 회장이 사임하고 윤두영이 이맘 겸 회장으로 취임했다.
한국 이슬람은 서울 중앙사원 건립을 계기로 안정된 포교기반을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더욱이 1970년대 초반부터 불어온 중동 이슬람국가의 건설 붐은 국내 이슬람 포교를 더욱 활성화 시켰다. 수많은 인력이 아랍-이슬람 국가로 진출함에 따라 이들에 대한 현지 문화교육과 이슬람 교육이 중앙사원에서 실시되었다. 그 결과 당시 약 3,700명이던 무슬림 수가 거의 배로 증가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중동 이슬람국가들의 종교를 통한 유대관계도 한층 강화되었다.
1979년부터 시작된 제2차 세계석유파동을 맞아 1980년 5월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원유수입을 조건으로 한국 이슬람대학 설립을 허락하여 경기도 용인에 13만평에 달하는 대학부지가 확보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한국이슬람중앙회 산하에는 1977년 9월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학생회’가 조직되어 학생층을 대상으로 한 포교활동이 시작되었다.
특히 1976년 서울 중앙사원 개원을 계기로 한국에서의 이슬람은 지방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1976년 말에는 부산지역에, 1978년 4월에는 경기도 광주 역동에, 1986년 4월에는 경기도 안양에 기독교 교회를 매입해 이를 이슬람사원으로 개조하는 일이 발생했으며, 이어 1986년 11월에는 전주지역에, 그리고 울산과 제주에도 임시 예배처가 설치되어 지역 포교활동이 진행되었다. 특히 1982년 6월에는 중앙사원 이슬람 센터에 ‘무슬림 정육점’을 개설하여 ‘할랄’ 정육을 공급하게 되었다.
한국 이슬람은 1990년대에 들어서 포교활동을 이슬람 교육 및 연구 활동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오랫동안 이슬람권 국가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소장 무슬림 학자들로 구성된 ‘이슬람문화연구소’는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바로 잡고 정확한 이슬람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수시로 강연회 개최 및 이슬람 서적 출판에 주력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발전하던 한국 이슬람 내부에 심각한 내분사태가 발생했다. 1987년 기존의 한국이슬람중앙회를 탈퇴하여 새로운 이슬람 단체를 만들고 강남구 삼성동에 새 사원을 마련하였다. 이 사건은 재단이사장 부인이 이교(異敎)라는 것과 재단기금 사용에 불만을 품고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1987년 8월 이슬람교단 내부 현안 문제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재단이사회는 긴급 이사회를 열고 박정남을 사무총장으로 선임하여 내분을 수습했다.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되지 못한 한국 이슬람은 꾸준한 성장을 계속해 오던 중 1990년대에 들어와 새로운 분위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외국 근로자들 대부분이 이슬람국가 출신이어서 이들을 포함한 국내에서의 무슬림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그 여파로 2000년 10월에 경기도 파주사원을, 2002년 6월에 제주 선교센터와 같은 해 11월에는 경기도 안산 선교센터를 개원했다. 2004년 5월에 경기도 김포에 교회건물을 매입하여 센터로 만들었고, 2005년 3월에 전남 광주 선교센터를, 2005년 7월에 서울 거여와 마천에 선교센터를 개원했다. 2005년 11월에는 경기도 포천에 선교센터를 개원했고, 2006년 4월에는 충남 대전에 선교센터를 개원했으며, 2008년 4월에는 광주광역시에 이슬람 선교센터를 신축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에는 문제없는 곳이 없는 것처럼, 2007년 용인시가 이슬람대학 부지를 휴양림으로 수용하고 그 비용으로 140여억 원을 지급했는데, 이 금액을 목적사업 외에다 투자함으로써 한국 이슬람의 치명적인 부패사건으로 비화되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조직되고 청년회가 발족되는 등 진정, 고발 사건 등으로 임원들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이슬람교 前 재단이사장 박정남은 “한국 이슬람 60년”에서 이슬람의 미래발전에 대한 소회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다: “한국은 종교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는 나라이다. 불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1,600여 년, 기독교는 약 100여 년이 넘었다. 정부의 집계에 의하면, 교단 수만도 약 250~260개가 된다고 한다. 이와 같이 다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에서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 속에서 첫째로, 무슬림이 되는 길도 어렵고, 또한 지도하기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우선 지도자의 부족이다. 그러므로 교육을 통하여 무슬림 지도자의 양성과 기존 무슬림들에게 어렵고 난해하며 이질적인 이슬람적 사고를 이해시키기 위해 올바른 한국 문화와 풍속, 이슬람 문화와 풍속의 유사점을 선교방법에도 활용하는 것이다. 둘째로 가장 힘든 것은, 무슬림은 금요일에 합동예배를 보아야 하는데, 이날 한국에서는 모두가 직장에서 일해야 하는 날인 것도 선교는 물론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또한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학교 교과서나 매스컴과 각종 출판물에서도 왜곡되거나 잘못된 설명으로 말미암아 이해를 잘 못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학교 교육이나 교육을 통하여 이슬람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인구수가 날로 증가하고, 또한 이슬람 국가를 다녀온 사람들의 수가 날로 증가하고 있어,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이 꼭 학교 교육만이 아니라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속에서의 이슬람의 발전과 장래 비전은 긍정적이고 효과적인 선교활동이 이루어지리라고 본다. 셋째로, 재정 자립이다. 지금까지는 이슬람 국가들의 도움으로 발전하고 지탱하여 왔지만, 이제는 스스로 자립하는 길을 찾아 나서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무슬림 형제들의 자기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끝으로, 이제 이 땅에 이슬람이 전래 된지도 60년을 맞이하게 되면서, 보다 더 발전을 기하기 위해서는 젊은 학생들의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교육과 역사적 사명감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꼭 제언하고 싶다.”
현재 한국 내의 이슬람 인구는 한국인과 외국인 합쳐서 약 25만 명이고, 비공식적으로 40만 명을 헤아리고 있다. 지속적인 무슬림 유학생 및 근로자들의 유입과 한국인 무슬림들의 증가로 향후 15년 안에 무슬림 인구 100만 명 시대가 도래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내에 이태원의 한국이슬람 중앙사원을 비롯하여 부산, 광주(경기), 전주, 안양, 부평, 안산, 파주, 포천, 광주(전남), 대구, 김포, 창원, 대전, 제주 등에 사원이 있고 그 외 다수의 이슬람 선교센터가 있다.
이슬람의 이런 빠른 확장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가장 큰 원인은 중소기업의 일자리 부족(주로 3D 업종)으로 인한 외국노동자들의 유입이 결과적으로 유럽과 같이 무슬림들의 합법적인 유입통로가 되었고, 중국을 제외한 외국인 유학생들 중 상당수가 ‘이슬람회의기구’(OIC) 소속 국가에서 온 무슬림들이며, 경제지상주의에 매몰된 정부와 정치권이 중동자금(oil dollar)을 유치하기 위해 친 이슬람 정책을 취함으로 유럽과 같이 무슬림들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공중파 방송들을 포함한 매스컴들이 이슬람을 종교적 접근이 아니라 문화•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함으로 이슬람을 미화하는 부분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Islam)이란 용어는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묶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단순히 종교로만 보면 안 되고 정치적 실체로 보아야한다. 비근한 예로 이슬람은 샤리아(Sharia)라고 하는 자체 율법을 준수한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본토인들과 섞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집단을 이루며 살면서 현지법보다 샤리아법을 준수한다. 이것이 오늘날 유럽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특히 ‘아랍 연맹’(Arab League)은 2080년까지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바 있다. 이를 위한 세부적인 계획으로 우선 유럽의 이슬람화를 위해 영국을 전진기지로 삼았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이슬람화를 위해 한국을 전진기지로 삼고, 그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2020년까지 한국 이슬람화를 위한 전략을 세워 놓았다. 이슬람이 이런 계획을 세우게 된 동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서울에 왔던 이슬람 지도자들이 한국의 발전상을 통해 한국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했고, 특히 서울 곳곳에 세워진 교회의 십자가를 보고 “한국에 외국 종교(기독교)가 이렇게 번성하는 것을 보니 이슬람도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2005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중동 이슬람지도자 선교대회’에서 한국을 2020년까지 이슬람국가로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구체화했다. 물론 이들의 계획은 말 그대로 ‘계획’(plan)이었고, 2021년 현재 그들의 계획이 성취되지는 안했지만, 중요한 것은 한국이 이슬람의 적극적인 포교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정부와 한국교회가 경각심을 갖고 대처해야한다는 것이다.
다만, 한국교회는 “이슬람”은 경계의 대상이지만 “무슬림”은 복음화의 대상임을 알고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무슬림 선교전략을 세워 합력해야할 것이다.
※ 본 이슬람 신학논단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됩니다.
1. 서론: 이슬람과 역사 개관
2. 이슬람의 교리와 샤리아법
3. 기독교와 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종교인가?
4. 여호와(야훼)와 알라
5. 성경과 꾸란
6. 예수와 무함마드
7. 이슬람의 구원관
8. 이슬람의 내세관
9. 이슬람의 종파(수니파, 시아파, 수피파)
10.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크리슬람
11.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내부자운동
12. 한국 이슬람의 역사
13. 무슬림과의 결혼, 괜찮은가?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