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내부자운동(Insider Movement)

혼합주의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슬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혼합주의는 크게 “크리슬람운동”과 “내부자운동” 두 가지가 있다. 지난번에 이어서 두 번째 혼합주의운동에 대해 살펴보겠다.

2. 내부자운동

‘내부자운동’은 이방종교 집단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회개척의 새로운 패러다임 중 하나로 국내외 선교계의 뜨거운 이슈로 다뤄지고 있다. 내부자운동은 이슬람・불교・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적 그룹의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그대로 머무른 상태에서 예수를 따르고 복음을 전하는 운동으로 주로 이슬람권에서 상황화 된 선교전략으로 시행되고 있다. 내부자운동은 랄프 윈터(Ralph Winter)와 존 트라비스(John Travis), 케빈 히긴스(Kevin Higgins) 등에 의해 주창되어온 것으로 전방개척선교(Mission Frontier)전략의 한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영적전쟁터의 최전방에서 개척선교를 해야 하는 무슬림선교에 효과적인 ‘맞춤선교전략’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부자운동은 현재의 이슬람 신앙형태를 버리지 않은 채 예수를 믿고자 하는 운동이다. 그래서 내부자운동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서로 다른 신학과 세계관을 포용하는 종교혼합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다. 나아가 내부자운동가들(내부자운동을 주장하거나 실천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로 필자가 만듦)은 무슬림들이 받아드리기 힘든 신학적 교리나 성경의 용어는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행위는 아무리 전도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라 할지라도 성경적이지도 않고 선교학적으로도 맞지 않다. 내부자운동은 분명히 종교혼합주의운동이다. 내부자운동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대표적 이슬람 전문가는 조슈아 링겔(Joshua Lingel)이다. 그가 쓴 「크리슬람, 성경적 관점에서 본 내부자 운동」이 내부자운동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성경적 관점에서 내부자운동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는데, 이 책을 주도한 링겔은 현재 내부자운동을 반대하는 단체인 ‘i² Ministries’(i²는 Islam Institute)의 창립자 및 대표로 있다.

성경은 인위적으로 가감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

내부자운동가들이 저지른 가장 큰 범죄행위는 무슬림 선교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성경을 의도적으로 오역(誤譯)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수정 보완할 수 있는 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눅 16:17)고 함으로 성경말씀의 한 획이라도 삭제되거나 임의로 수정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며,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벧후 1:20),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고 경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부자운동에서는 성경을 수정하여 번역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 가르침의 어떤 부분을 무슬림들의 선입견에 맞추어 적응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내부자운동은 무슬림들로 하여금 ‘삼위일체 하나님’ 대신 ‘알라’로, ‘아버지 하나님’ 대신 ‘주님’으로, ‘하나님의 아들’ 대신 ‘메시아’로 바꿔 번역하여 읽게 하고 주일날 교회 대신 금요일 모스크에서 이슬람식으로 예배하도록 한다. 이런 번역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무슬림 관용구 번역본’이라고 하고,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슬림 맞춤형 번역본’이라고 한다.

내부자운동가들은 성경의 용어를 바꾼 이유를 무슬림들에게 선교의 접촉점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슬람 상황에서 공개적인 기독교로의 개종은 죽음 또는 그에 버금가는 핍박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한다. 내부자운동의 권위자인 케빈 히긴스(Kevin Higgins) 목사는 성경적 내부자운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예수운동의 특징들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곧 내부자운동이 성경적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이 예수운동의 특징을 여섯 가지로 분류했는데, 기도하는 것, 사도들의 가르치는 것과 교제하는 것, 떡을 떼며 기도하는 것, 성전과 집에서 모이기에 힘쓰는 것, 지도자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 관계 중심의 제자도 등이다.

하지만 히긴스는 사도행전의 예수운동(그의 용어를 따라서)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초대교회의 예수운동은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을 믿고 증거 하는 운동이었다. 예수운동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의 구주가 되심을 선포하는 운동이었다. 그런데 내부자운동은 어떤가?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이슬람식으로 교묘하게 바꿈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성자 하나님)을 부인하게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무슬림들에게 메시아로 바꿔 부르게 함으로 기독교의 근본을 수정해버리는 반 기독교적 이단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기독교의 신조(信條)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인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마 16:16)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것을 이슬람식으로 바꿔버리고, 바꿔진 신조를 믿는 자들을 내부자적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해주는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외적 표징이 ‘세례’이다. 그런데 세례를 받기 전에 반드시 믿고 고백해야할 것이 사도신경이다. 사도신경은 삼위일체의 제2위의 하나님이신 성자(하나님의 아들)의 구속사역을 자세하게 고백하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요 반드시 믿어야할 신조이다. 이 믿음과 고백이 없으면 절대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다.

앞서 우리는 이슬람에서 자신들의 신변을 보호하고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로 위장하기 위한 ‘타끼야’(taqiyya)교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종교의 특성 중 하나가 고도의 윤리성인데,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하는 것은 종교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행위이다. 그래서 이슬람의 윤리성을 비판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도 ‘선교적 목적’이라는 명분하에 위장된 교리를 가르치고 심지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대로 번역하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이미 종교의 정체성과 정당성을 잃어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회심’은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심’(conversion)의 의미는 무엇일까? 먼저, 회심의 신학적인 의미를 존 칼빈은 「기독교 강요」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하나님께 대한 ‘회심’을 전체적으로 ‘회개’란 말로 이해하며, 믿음이 이 회심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회개의 실제 뜻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향하며, 우리의 이전의 마음을 벗어버리고 새 마음을 입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회개는 우리의 생활을 참으로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순수하게 또 진실하게 두려워하기 때문에 전향하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는 옛 사람과 육의 죽임(mortification)과 성령의 살림(vivification)으로써 구성된다.

칼빈에 따르면 옛 사람(old man)과 육(flesh)은 원래적 본성의 부패를 의미하는 것으로 회심되기 이전의 사람의 영적・육적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를 믿고 ‘회심했다’는 의미는 옛 사람과 육체의 삶을 죽이고(청산하고) 성령 안에서 다시 사는 것(재창조)이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이라고 했다(고후 5:17). 그는 또한 회심한 사람을 가리켜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라고 했다(골 3:9-10). 그러므로 이방인(이교도)이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했다면 당연히 옛 사람의 성품과 믿음과 세계관을 청산하고(죽이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어 삶의 방향이 하나님께로 전향(conversion)되어야한다.

다음으로, 문화학적인 의미에서 회심의 핵심은 세계관의 변화(worldview innovation)이다. 복음은 결국 변형된 삶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이전의 삶을 조금 수정하도록 권유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삶(重生)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세계관을 비롯하여 문화의 모든 차원이 변하는 것을 뜻한다. 이 변형은 근본적(fundamental)이고 물리적생물학적심리적사회적영적인 것을 망라한 총체적인 변형(wholistic innovation)이다. 폴 히버트(Paul Hiebert)는 문화학적인 의미에서의 회심과 세계관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행위의 변화가 19세기 선교 운동의 초점이었고, 믿음의 변화가 20세기 운동의 초점이었다면, 21세기에는 세계관의 변화가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진정한 회심은 마음만의 변화(change)가 아니라 삶의 실제적인 전향(conversion)이어야 한다. 회심은 마음뿐만 아니라 행위의 변화가 동반되어야한다. 사도행전 2장 14절 이하는 오순절 날 성령충만했던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향하여 설교한 내용이다.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이 주제였고 그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베드로의 설교를 듣던 많은 사람들 중에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37절)라고 물었다. 이에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38절)고 했는데, 곧 진정한 회심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그들 중 삼천 명 정도의 큰 무리가 세례를 받아 최초의 교회를 이루었다(41절). 당시 그들은 유대교 사회 안에서의 그리스인들이었다. 마치 이슬람국가 안의 기독교인들과 같은 처지였다. 그러나 그때의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내부자처럼’ 유대교 회당에서 예배드리거나 할례와 율법을 준수하거나 유대인처럼 살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들로 시작된 초대교회 성도들은 유대교 혹은 이방종교로부터 그리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 흩어졌으며, 박해를 받았으며, 심지어 죽기(순교)까지 했다. 그렇다면 초기 성도들은 내부자운동의 지혜(?)를 얻지 못해서 그런 박해를 감수했단 말인가? 그들도 내부자운동의 관점에서 보자면 얼마든지 할례 받고, 율법 지키면서 예수 믿으면 된다는 식으로 유대율법주의를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이 복음을 폄하하고 율법(할례 등)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성도들을 혼란하게 했던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서신(갈 1:6-12)을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함으로 복음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을 ‘다른 복음’으로 규정하고 이것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또한 고린도교회를 향해서도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라고 하면서 다른 예수를 전파하는 다른 복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했다(고후 11:4).

사도행전 7장은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였던 스데반의 설교와 장엄한 순교의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스데반이 순교했을 때 그는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소리쳤다(행 7:56).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장렬하게 순교한 스데반을 하늘의 성부와 성자가 맞이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이런 스데반의 곁에서 담대하게 말하게 하셨고, 하늘의 장면을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셨고, 순교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행 6:10). 스데반의 순교는 이와 같이 성삼위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고 그런 스데반을 성삼위 하나님께서 받아주신 것이다. 만일 그가 내부자운동처럼 유대인처럼 살고, 유대인처럼 말하고, 유대인처럼 율법과 의식을 지키고, 유대인 회당에서 유대식 제사를 지내고, 유대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일개 마리아의 아들로 고백했다면 왜 죽였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내부자운동은 스데반의 순교를 헛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스데반처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박해를 받았던 많은 믿음의 선진들의 모습에 대해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고 기록하고 있다(히 11:35-38). 이들이 당시의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내부자운동을 했다면 왜 이런 고난을 자처했겠는가?

선교의 열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 베풂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던 자들에게 베드로가 요구했던 것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행 2:38)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세례는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와 연합(접붙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외적인 표징이기 때문이요 우리는 세례 받음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증언하기 때문이었다. 베드로의 요구는 마태복음 28장 18절-20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대위임령(The Great Commission)에 대한 순종함이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대위임령에 의하면 선교의 궁극적인 열매는 ‘세례’를 베풀어 교회를 세우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례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으로, 곧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라고 지정하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도 성삼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역사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내부자운동가들이 이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고, 제2위의 하나님이신 성자(하나님의 아들)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지 못하면서 누구의 이름으로, 그리고 어떻게 세례를 베풀겠다는 것인지! 혹시 이 문제를 넘어가기 위해 세례의 필요성까지 부인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스도인’(Christian)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분의 지체가 될 때 비로소 주어지는 거룩한 호칭이기 때문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 6:3-5);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 3:21).

내부자운동가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 되심(聖子)’을 부인하고(혹 다른 용어로 대체하고) 어떻게 세례를 베푸는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단절되어 모스크에서 ‘샤하다’를 하는 무슬림-크리스천(내부자)들에게 세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지?” 하는 것이다.

이동주 박사는 제24회 기독교학술원 영성포럼(주제: 이슬람 대책과 한국교회)의 “이슬람의 세계관: 내부자운동의 번역 성경과 상황화 신학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내부자운동 선교방법론은 현대 종교다원주의와 상황화 신학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적 거대 체구인 WCC와 로마 가톨릭이 점차 반개종주의적으로 기울어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런 내부자운동가들의 잘못된 태도는 사도적이고 성경적인 복음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반개종주의적인 종교통합체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는 내부자운동 신자들은 결국 무슬림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C1∼C6 스펙트럼(Spectrum)

C1-C6 스펙트럼은 내부자운동의 선두 주자인 존 트라비스(John Travis)에 의해 개발된 무슬림 세계에서 발견되는 그리스도중심 공동체(Christ-Centered Communities)의 유형을 비교 대조하는 것이다. 스펙트럼의 6가지 유형은 언어, 문화, 예배형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릴 때의 자유함 정도, 종교적 신분에 따라 구분된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함으로 복음의 핵심요소는 모든 그룹이 같다고 전제한다.

C1: ‘외부자의 언어를 사용하는 전통적 교회’로 무슬림 땅 안에서 발견되는 전통적 교회들(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등)이 있다.

C2: ‘내부자(아랍어)의 언어를 사용하는 전통적 교회’로 언어를 제외하고는 C1과 동일한 교회로서, 종교적 단어들은 비 이슬람 용어를 사용한다.

C3: ‘내부자 언어와 종교적으로 중립적 내부자 양식을 사용하는 상황화 된 그리스도 공동체’로 이슬람 적 요소(신앙과 교리)는 걸러지고 순수한 문화적 양식만을 사용하는데, 이들은 대부분 무슬림 배경의 신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이다.

C4: ‘내부자 언어와 성경적으로 수용가능한 문화적 양식과 이슬람 양식을 사용하는 그 리스도 공동체’로 C3와 비슷하지만 성경적으로 수용 가능한 양식과 실행이 포함된다(예, 손들고 기도하기, 라마단(금식월) 지키기, 허가되지 않은 음식(하람 식품) 피하기, 이슬람 용어와 의상 사용하기 등).

C5: ‘예수를 믿는 무슬림(메시아닉 무슬림)’으로 법적・사회적으로 이슬람 공동체 안에 머문다. 이들은 이슬람의 종교의식(육신오행)도 지킨다. 그러나 개별적으로는 무슬림 공동체로부터 쫓겨날 수도 있지만, 마을 전체가 그리스도를 믿는 곳에는 메시아닉 모스크(Messianic Mosque)가 세워진다.

C6: ‘소규모 그리스도 중심 공동체로 비밀 지하단체의 그리스도인들’로서 이들은 주로 라디오, 전도지, 해외 체류기간 중 전도됨, 또는 스스로 성경을 읽고 그리스도인으로 개종된 자들이다. 이들은 발각될 시 추방, 투옥, 살해 등의 위험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비밀리에 예배하고 다른 무슬림들에게 비밀리에 전도활동을 하면서 외적으로는 무슬림의 신분으로 살고 있다.

트라비스가 정리한 이 스펙트럼에 대해 어느 유형까지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뜨겁다.

※ 본 이슬람 신학논단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연재됩니다.

1. 서론: 이슬람과 역사 개관

2. 이슬람의 교리와 샤리아법

3. 기독교와 이슬람은 뿌리가 같은 종교인가?

4. 여호와(야훼)와 알라

5. 성경과 꾸란

6. 예수와 무함마드

7. 이슬람의 구원관

8. 이슬람의 내세관

9. 이슬람의 종파(수니파, 시아파, 수피파)

10.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크리슬람

11. 이슬람 혼합주의 운동: 내부자운동

12. 한국이슬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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