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전도의 힘

​내가 2013년, 그러니까 만 10년 전에, '바보로 오신 예수'라는 책 5권을, 씨리즈로 펴낸 적이 있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볼때, 예수님처럼 ''바보'로 사신 분은 없다.  육신의 소욕에 밝은 영악스런 인간들이, 내가 손해보며 헌신하고 희생하며 져주려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아마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내가 어렸을 때 선친께서는, 내게 시키신 일과 행동이 당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때, 내게 하신 말씀이, "쯔쯔 그래가지고 네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겠냐."는 꾸지람을 하셨다.  부모가 자녀를 교육시키는 이유 첫째가, "앞가림을 제대로 하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러나 "정의(正義)란 각자에게 주어야할 것을 그에게 주는 것"이라면, 먼저 '올 바름'부터 가르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것이 양심(良心)을 회복하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경찰수사 본부장에 임명되었다가, 하루만에 낙마한 정순신 변호사는, 자식에 대한 참 교육인 인성 교육이 아니라, 일등교육을 시키려다, 그 욕심이 그를 몰락시킨 것이다. 과유불급이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며칠 전 문득 현 검찰총장이 한 '사자성어'가 생각 난다. "천망회회 소이불루 (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크고도 넓어서, 성긴듯 하지만 놓치는 법이 없다." 

당시 그는, 서울大 法大 출신의 법조인의 눈에는, 강자의 논리대로 안하무인 이었을 것이다. "종두득두(種荳得荳).   콩 심은데 콩 난다."라는 말처럼, 과연 아들이 아비의 오만을 넘어 설수 있을까?  그런데 이와 반대로, 누군가가 그에게 ‘바보’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  정순신씨 그땐 똑똑했겠지요. 그러나 그 것이 헛 똑똑의 부메랑이 되어, 지금 돌아 왔다. 이것이 바로 '사필귀정'인 것이다. 자존심 많이 구겨졌겠지만, 자업자득인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평생 바보라는 소리만 듣고 살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으며, 약육강식처럼 이기주의가 팽배한 허욕의 안목으로 보면, 참 바보 같고  어리숙한 삶이, 되려 만인 귀감의 삶이었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 있다.이야기가 이쯤 이르게 되면, 혹 '세인트 프란치스코'나, '마가 테레사'를 떠올릴수도 있겠으나, 바로 그분이 장로이자 의사였던 '장기려박사'다.

그는 일생동안 집 한채 없이, 가난 한 사람들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자신이  행한 모든 사랑을 하나님께 돌리고,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  좀비처럼 검소하고 겸손한 삶을 살다 가신, 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다.  “제가 밤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그때 집으로 가세요.” 이처럼 장기려 박사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막막해 하고 있을 때, 이를 눈치채고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환자에게는 닭 두 마리 값을 내 주시오.” 병이 나으려면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하는 환자에게, 장기려박사가 써준 처방전이 그랬다. 서울대 의대 교수, 부산대 의대 , 그리고 부산 복음병원 원장을 지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에게는 방 한 칸도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주었기 때문이다. 1947년,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 과장으로 부임할 때, 일요일 에는 일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부임했고, 환자를 수술 할 때는 항상 기도 하고 시작했다.           

월남 후인 1951년 5월부터,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 병원을 설립하고, 피난민들과 전쟁 부상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기 시작 했는데, 그것이 복음병원의 시작이었다.  그는 1968년 당시 100원 하는 담뱃 값만도 못한 월 보험료 60원에, 뜻있는 사람들과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 을 설립하여, 1989년 모든 국민에게 의료보험이 확대될 때까지, 20만명의 영세민 조합원에게 의료 혜택을해 주었다. 국가보다 10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의료보험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그를 이렇게 불렀다. ​바보... 그는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모든이를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철저히 청지기의 삶을 살았고 겸손하게 살았다. 그는 평생 가난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했고, 집 한 채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의술로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고, 뇌경색으로 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무의촌 진료를 다녔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한사코 싫어했고, 자신이 칭송 받는 것도 싫어하였고, 오직 하나님을 높이듯 가난하고 병든이들을 섬기기기를 좋아했다. 그는 언제나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이웃과 나누며, 가난을 하늘의 복으로 알고 살았다. 아내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은, 육체나 환경을 초월한 영혼과의 '영원한 사랑'이었다. 1950년 12월, 평양의대병원 2층 수술실에서, 그가 밤을 새워 부상 당한 국군 장병들을 수술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폭탄이 병원 3층에 떨어졌다.  국군들은 지체없이 철수해야 했다. 그 바람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일평 생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에게 재혼을 권했지만, 그는 언제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한 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다.나는 한 여인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잠시 그저 혼자 살겠다!" 그가 부인을 그리워하며 1990년에 쓴 망향편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에어내는 듯 시리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리가 없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 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미국에서 북한을 많이 도운 그의 제자가, 북한당국과 합의하여 중국에서 장기려 부부 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다.그러나 그는 기어코 그 기회를 사양 하였다. 그런 특권을 누리면 다른 이산가족의 슬픔이 더 커진다 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결국 빛바랜 사진을 보면서,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만나지 못하고,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1시 45분, 85세를 일기로 주님 곁으로 가셨다.

그때 한국의 언론은 ‘한국의 슈바이처’ 또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했다.그는 어두운 밤과 같은 그 시대에 밝은 빛을 비추며, 병든 사람들을 섬기면서, 겸손하고 가난하고 따뜻하게 사신 분이었다. 그가 죽기전에 남긴 유언은, "내가 죽고 나거든 나의 비문에는, '주를 섬기면서 살다간 사람'이라고 새겨 달라"고 했다.  장기려 박사처럼 바보로 사는 삶, 많은 사람이 장기려 박사님을 존경하고 칭찬하지만, 과연 그 뉘라서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가 미워해야 할 사람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원수는 맞은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종그니가
 

 

【종그니칼럼】전도의 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전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전도지 한장! 그것은 인간의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한 인간의 생애를 바꾸고 결정짓는 힘이 있다. 여기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나까지도 포함된 생생한 경험담이기도 하다. 지금은 소천하신지 오래되셨지만, 생전에 대구에서 목회하시던 이중오 목사님이 문득 생각이 난다. 서울에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석유사업과 주유소를 경영하다가, (박정희 정권때),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잘 나가던 사업이 한 순간에 부도가 나서, 졸지에 두 자녀와 네 식구가, 길바닥 집시인생이 되고 말았다. 그후 대구로 내려왔으나, 재기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생존의 기로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하게 되자, 온 식구가 집단 자살을 할 양으로, 여인숙을 물색 하던 중에, 노방전도를 나온 미국 바렛트선교사로부터 건네 받은 전도지에, "자살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죄악이다."라는 멧세지가 그의 눈에 크게 클로즈업해 들어왔다. 온 가족이 집단자살을 기도했던 그가 죽으면 삶의 고통이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고, 또한 자기뿐만아니라 아내와 자녀들 까지도, 제2의 죽음인 지옥을 맞게된다는, 단 한장의 전도지를 통하여 절대절명의 순간에, 신앙에 눈을 뜨는 큰 울림을 받았던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그는, 헤마로 이마를 맞은듯한 큰 충격을 받고, 즉시 전도지를 들고 교회로 달려가, 바렛트 선교사를 통하여, 생사의 기로에서 극적으로 주님을 만남으로, 그의 이후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 져, 그가 단 한번도 가본 적이없는 전연미답의 세계인, 신앙에 눈이 열리게 되자, 새로운 인생으로 다시 거듭 나, 그는 '주의 종'이 되었다 . 그는 부도난 인생에서 중생을 체험한 후, 똑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아쉽게도 그 분은, 내가 평신도로 있을때, 몇번 만난적은 있었지만, 내가 종의 길을 걷기도 전에, 하나님이 그 생명을 부르셨다.

이제 나는 지금 죽음의 문턱, 즉 생사의 기로에 이른 어르신들을 돌보면서, 계절과는 관계없는 인생의 가을과 겨울을, 달포마다 아니 매일마다 부딛치면서, 나를 주의 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온 맘으로 감사를  드리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나도 어렸을때, 박찬원 선생님을 따라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대 신학자 아우구스 티누스 에 대해 이야기를 종종 들었을 때는, 마치 새로운 영역의 영적세계를 보는 듯햐여, "나도 제2의 아우구스티누스가 될꺼야!" 했었지만, 그게 바로 초라한 오늘의 내 모습이다.

여기 한 어린 소년을 소개 하고자 한다. 나는 공맹안증(孔孟顔曾) 의 유학으로 점철된 아버님 슬하에서 자랐었지만, 이 소년은 아버지가 목사이셨다. 그런데 전도에 있어서는 초등생 아들이 아빠  목사님보다 한수 위였다. "아빠, 밖에 나가서 전도지를 나눠 줄 시간이 되었어요." 
아빠 대답은: "오늘은 매우 춥고 비가 내리고 있으니 오늘은 쉬고 내일 전도하자." "하지만 아빠, 안 춥고 비 안 오는 날보다 춥고 비오는 날에 더 전도해야 돼요." 그러나 아빠 목사님은, "얘야, 이런 날씨에는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를 않을 거야." 아이가 말했다. "아빠, 그럼 저 혼자 가도 돼요? 제발요!"  "그래, 그럼 오늘은 너 혼자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전도지가 여기 있다," 그리고 이 꼬맹이는 전도지를 가지고, 빗속으로 나갔다. 이 11살 소년은, 길거리에서 그가 눈에 띤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읍내의 모든 거리를 걸었다. 늦가을 빗속 길을 추위도 잊은채 두 시간 동안 걷고, 마지막 남은 전도지를 손에 든 그는, 모퉁이 길에 멈춰 서서, 전도지를 건네 줄 사람을 찾아 보았지만, 춥고 비내리는 길위에 이젠 완전히 인적이 끊겼다. 

그러자 소년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집앞으로 갔다, 현관문의 벨을 여러 번  누르고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문앞으로 가서 벨을 눌렀다.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소년은 주먹으로 문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소년은 문이 여릴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이 지난 후 마침내 문이 천천히 열렸다. 이 어린 소년은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긴 것이다. 그때 그 집에서 한 중년여인이 아주 어둔 표정으로 나와서 물었다. "얘야 , 왜 그렇게 현관문을 계속해서 요란하게 두드렸나? 지금 내가 네게 도와줄 일이 있으면 말해 보거라! 그래 내가 무엇을 도와줄까?"소년은 빛나는 눈 방울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화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 사실은 하나님이 아주머니를 너무 사랑하셔서 여기 이 전도지 드리라고 해서 가져 왔어요." 그리고 그 소년은 그녀에게 전도지를 주었다. 그녀는 "그래 아주 고맙구나, 너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 주일 아침 목사님은 막 단에 오르시고 예배가 시작되었을 때 이렇게 물으셨다. "여러분 중에 혹 간증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 때 조심스럽게, 교회의 맨 뒷줄에서, 한 부인이 일어섰다. 그 여인이 말을 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눈엔 빛이 났다. "저는 이 교회에 와 본 적이 없어서 아무도 모릅니다. 제 남편은 얼마 전에 저를 혼자 남겨두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 유난히 춥고 비오는 날이었는데, 그 날 저는 남편은 죽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죽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의자와 밧줄을 찾아 집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밧줄의 한쪽 끝을 지붕의 서까래에 묶고, 의자 위로 올라가서 밧줄의 다른 쪽 끝을 내 목에 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의자에 서서 몸을 던지려고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깐 기다리면 아마 가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점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더 커지고, 너무 시끄러워서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누구일까...?

저는 제 목에서 밧줄을 풀고 문으로 갔습니다. 벨은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계속해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제가 문을 열었을 때, 저는 제 눈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 눈 앞엔 지금까지 제가 본 것 중 가장 빛난 천사 같은 아이였습니다. 그 소년은 미소를 짓고 있었어요, 난 그 소년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어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내 마음을 되살리게 했어요! 그 소년이 "아주머니, 하나님께서 당신을 정말 사랑하신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라고 말했어요. "어린 천사가 추위와 비 사이로 사라졌을 때, 나는 문을 닫고, 전도지의 모든 단어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 그리고 다락방으로 가서 의자와 밧줄을 치웠습니다. 

보시다시피. 이제 저는 하나님의 구원받은 딸이 되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 소년이 떠날 때, 그가 이 교회로 향하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저는 자살직전에 때 맞추어 제게 찾아 온, 하나님의 작은 천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자 왔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아주 결정적인 때에 와서, 영원한 불더미에서 나를 구해주었고, 지옥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얻게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자살직전에서 다시 살게 된 간증에, 교회의 온 성도들이 모두 울었다. 목사님은 설교단에서 작은 천사가 앉아 있는 앞쪽의 첫번째 벤치로 내려와서, 그의 아들을 품에 안고 걷잡을 수 없는 감격으로 울고  또 울었다. "마음이 밝으면 불꺼진 방에도 빛나는 하늘이 있고, 마음이 어두우면 환한 대낮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서린다."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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