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 맞닿은 경지는 하나.
창세기에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는, 아담은 "하나님이 짝지어 준 저 여자가 먹으라해서 먹었다" 하고, 이브는 뱀이 꾀어서 먹었다."고 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짐승으로 까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다. 공동묘지를 가보라.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인간답지 못한 이를 말할 때, 곧잘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라고 평한다. 야생 동물 중에 가장 사나운 짐승으로 소문난 '하이에나' 라는 짐승은, 천부적으로 턱뼈와 이빨이 아주 강해서, 한번 물었다 하면 절대 놓지 않고, 아주 뼈를 으스려 버리는 납기로 유명한 짐승이다. 물론 나는 하이에나를 tv로만 보았을 뿐, 아직 한번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백수의 왕 사자도 하이에나의 이런 사나운 기질을 잘 알고 있어, 항상 거리를 둔다고 한다. 이처럼 사납기로 유명한 하이에나도 가족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데, 위계질서가 분명하단다. 무리의 수장인 암컷 하이에나가 낳은 새끼와, 무리의 암컷들이 낳은 새끼들을 돌보는 대리모들이 있어서, 같이 놀아주며 돌본다고 한다. 이처럼 기질이 사나운 하이에나와 같은 야생 짐승도, 어린 새끼들을 각자 주어진 위계에따라 새끼들을 최선을 다하여 양육하는데, 하물며 모든 피조물들의 영장이라 일컷는 인간이, 자기가 마땅히 부양하여야 할 어린 자녀나 가족을, 유기 또는 학대하여 필경은 죽이고 마는, 실로 짐승만도 못한 믿기 어려운, 참혹하고 처참한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힘없는 어린 아이나, 이제 갓태어난 고귀한 생명을 내팽개치거나, 마치 쓰레기 버리듯 양심의 가책도 없이,그런 비행을 일상처럼 저지르는 참상들을 보고 들을 때, 온 몸에 맥이 풀릴 만큼 자괴감과 무력감을 갖게 됨과 동시에, 전율을 느끼며 내 손을 만져도 보고, 내 가슴을 쓰러내릴 때도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엔, 이제 몸이 상전이 되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과 함께 지내 온지도, 어언 27년이 된다. 그 숱한 세월 동안, 실로 견디기 어려운 우여곡절을 격으며, 인생 종착역에 다다른 노인들을, 지근 거리에서 섬겨오다가, 어느덧 내 인생도 이제 80의 저문해가 되었다. 30성상이 가까운 세월동안 이들과 함께 지내오면서, 이제 내 몸둥이도 저들을 닮아, 말을 듣지 않아 걷기 조차 힘들 때가 많아지고 있다. 요양원은 노인들이 모여사는 작은 사회다. 이 작은 공동체안에도 생명이 살아 숨쉬는 사회이므로, 매일같이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제는 할아버지 한분이, 어제는 할머니 한분이 소천하셨다.
이에 비해 요양원 밖의 우리의 일상 사회에서는, 사회구성 자체가 복잡하여, 거의 매일이다시피 온갖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 나고 있다. 마치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하고서, 즐거운 소식은 가뭄에 콩나듯하고, 똑 같은 하늘 아래에서, 천륜과 인륜을 거스린 천인공노할 만행들이, 마치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다. 사건은 지난 해 3월 9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지난 3월 23일 검찰의 공소장에는, 아동학대 살해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계모 A씨가, 의붓 아들 B군을 학대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A씨는 지난해 3월 9일 계모인 자신의 돈을 훔쳤다는 이유로, B군의 종아리를 드럼 채로 십여차례 정도 때리면서 시작된 학대는, 당시 임신 상태였던 A씨는 한 달 뒤 유산을 했고, 유산을 하게 된 원인이 바로 너 때문이라는 이유를 붙여, 이때부터 모든 원망을 B군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B군이 평소 무언가를 시켜도 잘 듣지 않는데다, 행동도 산만하다고 느낀 A씨가, 그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로 유산을했다고 단정했다는 것이다. 친부 C씨도 B군의 행동을 고자질하는 아내와 부부싸움이 잦아지자, 가정불화의 원인이 아들이라고 생각해, 점차 아들과도 멀어져, 친부도 자식의 학대에 가담했다.
검찰은 B군을 양육하던 중에 쌓인 A씨의 불만이, 유산을 계기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는 감정'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미워하는 감정이 자신을 지배하게 되면, 미움의 종이 된다.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셨고,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하였다. 자식을 학대하는데 부모가 한통속이 되어, 보호받아야 할 어린 아이를 날마다 학대하여, 마침내 생명을 앗아버린 이 천벌을 받을 인간들이, 독버섯처럼 도처에서 가정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미움이 커지면서 점차 살의를 품게 되면서, 아예 죽이기로 작정하고, 독기를 품은 계모는, 방에서 1시간여 동안 무릅을 꿇게 하는 체벌은, 날이 갈수록 점차 늘어나서, 어느 때 부턴가는, 하루 5시간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한 달에 한 두번에 하던 학대 횟수도, 지난해 11월 부터는 무려 7차례로 가파르게 증가 했다. 이처럼 악은 악을 불러 온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 밭을 말씀의 보습으로 시시때때로 갈아엎지 아니하면, 우리의 마음밭엔 남을 찌르는 가시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게 된다.
나랏 일도 아무리 상대가 버거워도 정도로 정치를 하여야, 국민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은 자명하다. 이것이 첨엔 미약할지라도 물이 바위를 뚫듯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지대하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사랑과 미움' 두 마음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라 하더라도, 끊임없는 하나님 말씀의 조명이 없으면,우리 영혼은 그대로 죄에 병들게 된다. 그래서 B군의 계모는 비록 교회에 다니고는 있었지만, 교회라는 마당만 밟고 다녔기때문에,인면수심(人面獸心)이 되어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 사랑이 이닌 증오가 그의 마음을 온전히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땅에는 자기의 범죄를 합리화하는, 양의 탈을 쓴 후안무치한 위선자들이 너무 많다. 사회가 점차 회생하기 어려울 만큼, 깊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징조다.
B군이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21년 3월부터 집중력을 높이는데 좋다며, 강제로 시킨 성경책 필사는, 계모의 또 다른 가혹행위였다. 지난해 9월 부터는,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성경을 노트에 옮겨 적게했지만, 시간 안에 끝내지 않으면, 방에서 나오지 못하고 사실상 감금되었다. 5시간 동안 벽을 보고 무릎을 꿇린 채, 성경 필사를 하게 한 날도 있었다. A씨는 알루미늄 봉이나 플라스틱 옷걸이로 B군의 온 몸을 때렸고, "무릎 꿇고 앉아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며 "너는 평생 방에서 못 나오게 해줄 것이다" 고 폭언을 퍼부었다. B군이 견디다 못해 방 밖으로 나오면, 다시 방에 가두면서 옷으로 눈을 가리고,커튼 끈으로 의자에 손발을 묶어 버렸다. B군은 사망 이틀 전부터 16시간 동안이나, 묶여 있었다. 그 사이 A씨는 방 밖에서 CCTV와 유사한 '홈캠'으로 B군을 움직이지 못하게 감시했다고 한다.
1년간 반복적으로 학대를 당하는 과정에서, 10살 때인 2021년 12월 38㎏이던 B군의 몸무게는, 지난 2월 7일 사망 당일 29.5㎏으로 줄었다. 또래들의 평균치보다 키는 5㎝가 더 큰데도, 몸무게는 평균보다 15㎏이나 적었다. B군이 숨지기 10여 일 전부터, 입술과 입 안에까지 마치 화상을 입은 듯이 괴사현상이 생겼지만, 그들은 B군을 방치상태에 두어, 병원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누적된 학대에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B군은, 통증으로 잠들지 못한 채 신음하다가, 생애 마지막 순간 삶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계모의 팔을 붙잡았다. 사망 당일 오후 1시쯤 안방 침대에 누워 있던 계모의 팔을 붙잡으며, 잘못했다고 사과한 것이다. 그러나 A씨는 양손으로 B군의 가슴을 매몰차게 밀쳤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뒤로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 B군은, 이후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엄마의 탈을 쓴 악마! 나라에 엄청난 대미지를 가져오고도,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고 자화자찬하거 나, 아예 얼굴에 철판을 깐 정치모리배들이 판을 치는, 막가파들의 세상이다. 그대의 헛된 야욕을 억제하라! 죄와 검은 죽음의 사자가 그대를 사로 잡을 것이다.
【종그니칼럼】 맞닿은 경지는 하나
하루는 子路가 孔子에게 "사람이 죽으면 어찌됩니까?" 공자의 대답, "살아서의 일도 모르는데 죽어서의 일을 어찌 알랴!" 공자가 73세에 생을 마감하며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인생의 궁극 문제 를 알수만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다.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고서야 사후(死後)를 돌아본 말이다. 그는 인생육십을 耳順 (듣는 귀가 순해짐.)이라 했고, 칠십에 이르러서야,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하여도 당위에 어그러짐이 없었다. (從心所欲 不諭구)라 했다. 이로 보면 대 자연의 섭리나 인간궁극의 경지는 서로 맞 닿아 있지 싶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등산가 엄홍길을 통하여, 나는 인간의 한계점까지 이른, 산 사나이의 진면목을 보았다. 엄홍길은 항상 목에 걸고 다니는 목걸이가 있었다고 한다. 네팔에서 구입한 터키 산호석이다. 그런데 이러한 목걸이는 엄대장뿐만 아니라, 산을 오르다 보면, 네팔 현지인들이나 포터, 혹은 셀파들 역시 산호석 목걸이나 반지를 하고 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그 높고 깊은 고산지대에서 어떻게 산호석 목걸이나 반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쩜 이렇게 많을까? 뿐만 아니라 그곳엔 깊은 산속에서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도 있다. 이것은 히말라야가 지질학적으로 아득한 먼 옛날에는 바다였기 때문이다. 아득한 먼 옛날에는 바다 였는데 지금 이렇게 세계의 지붕이 되었다?
맨틀 위에 떠 있는 지각은 크게 16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맨틀의 대류운동으로 갈라지고 이동하고, 그러다가 다시 합쳐지고, 이러기를 반복하면서 16개의 판들이 이동한단다. 이렇게 판들이 이동하다가 하나로 합쳐지면, 그때 초 대륙이 되는 것이다. 지구 역사상 과거에 '로렌샤,' '곤드와나,' '판게아'의 초대륙이 있었다고 한다. 지질학에 의하면, 지금 지구는, 2억 5천만년 전의 '판게아 대륙이 다시 쪼개져 흩어진 상태'라고 한다. 허지만 판은 계속 움직이고 있기에, 대서양은 계속 넓어지고 있는데, 태평양은 점점 좁아지고 있단다. 그리고 떨어져 나간 인도 대륙은, 이미 오래전에 다시금 아시아 대륙과 충돌하였는데, 그 충돌했던 곳의 바다가 솟아오른 것이 지금의 히말라야산맥이라 는거다. 히말라야는 지금도 계속 조금씩 솟아 오르고 있다. 이렇게 바다였던 곳이 육지가 되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말조차 무색하다. 그래서 히말라야에는 산호석 등 바다 화석이 많은 것이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에서 소금과 산호석을 얻다니! 관광객들에게 화석을 관광상품으로 팔만큼 히말라야에는 바다 화석이 흔하다.그러고 보면 옛말에 '연목구어(緣木求魚)'란 말 또한 무색하다.
엄대장은 히말라야가 한때는 바다였다는 것이 참 재미있으면서도 오묘하다 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거기서 세상 이치를 깨닫고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삶도 그렇겠지요. 혹여 내가 거지처럼 인생의 맨 믿바닥을 헤매며 살고 있다해도,나의 꿈이 이루어 지지 못하고, 설혹 힘든 삶을 살고 있다 해도, 그 꿈이 사그라지지 않는 한, 10년 후, 아님 20년 후에라도 꿈은 이루어 질수 있을 것이다. 설혹 그가 이생에 못 이루면, 그 후손을 통해서라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바다 속에 들어 있던 히말라야 산봉우리 처럼 말이다." 물론 궁극을 향하여 주어진 내 삶을 성실히 노력하고, 조물주가 주신 인간 원초의 형상을 잃지 않고 대자연 처럼 맑고 고운 삶을 살아야 겠지요.
산사나이 엄홍길은 군생활을 해병이 아닌 해군에서 하였단다. 해군에서도 수중폭파대(UDT)에 있었단다. 그래서 엄홍길은 깊은 바다 속에 들어가 오래 잠수를 하는데 익숙했다. 해군에서의 이 경험이, 바로 바다 속이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고요함, 적막함, 물의 압력과 호흡 곤란 등이 바로 그 것이다. 어찌보면 깊은 바다와 높은 산은 맥이 같다고 느꼈기에, 그가 쓴 책의 제목도, "모든 경지는 서로 맞 닿아 있다" 라고 한 것이리라.
그렇다. 누구나 히말라야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깨달음의 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작 강원 점봉산이나 지리산, 그리고 유럽의 지붕인 알프스 산맥의 융 프라우(4157m) 를, 2019년 5월 유럽여행 때,인근 뮈렌마을(1647m) 에서 바라본 것 말고는, 산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지만,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속으로 들어가 그 장엄한 히말라야를 몸으로 체득할 때, 그 경외로움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히말라야가 주는 어떤 영성의 빛이나, 영감같은 것을 상상의 내래를 펴고 떠올려 본다. 이는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가 주는 대자연의 경이로운 영성일 것이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 사나이 말고는 전연미답의 최고봉을 오른다는 것은, 온 맘으로 대자연과 혼연 하나가 되지 않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예를들어 2004. 6. 18일 밤, 8750m 초모랑마를 정복하고 하산하던 박무택에게서, 베이스갬프로 긴급전화가 왔다. 박무택과 같이 하산하던 장민은 실종되고, 자신도 동상으로 더이상 하산이 불가하다는 전화였다. 백준호가 이 소식을 듣고, 마지막 죽음을 박무택과 함께 할 양으로 밤새도록 올라 새벽 6시경에, 죽음 직전의 박무택과 해후하였다. 베이스캠프로 백준호가 "박무택을 찾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박무택과 산 정상 살 얼음 속에서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였다.
이 산사나이의 진순무구한 우정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나는 박무택의 외로운 죽음을 홀로 둘수 없었기에, 밤새도록 산을 올라 친구와 마지막을 함께한, 백준호의 지고지순한 우정을,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그러하다! 모든 경지는 서로 맞 닿아 있는 것이다. 볼을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이 글을 쓴다.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