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가축의 생명권
국내 정치와 더불어 나라의 국력을 넗히는 외교는, 그 비중이 국가의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 정치에 버금갈만큼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우리나라는 천혜의 지하 자원이 미미 하다. 때문에 대외 무역에 의한 의존도가 아주 높을수 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동남아시아의, 2억 7천만 인구의 인도네시아를 주목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 예를들어 자동차의 핵심인 배터리 수입원을, 중국에서 인도네시아등 다각도로 모색하는 것이 바로 다자외교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벌써 일년이 넘도록 무역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심각하다. 인도네시아 조코위 대통령은, “국민 지지율이 80%에 이르지만, 그는 3선 제한에 대해, "권력지향의 무리수는 안 둘 것”이라며 초연하다. 금년 9월로 한국과 수교 50주년을 맞는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 ‘인구도 가장 많고, 또한 천혜의 지하자원이 풍부한 부강한 나라다. 종교는 이슬람 앞에 '세속'이란 단어를 붙여, '세속 이슬람’ 국가라 불릴만큼, 이슬람 종교가 중동국처럼 국가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또 중국과 미국 모두와 가깝게 지내려는, 아주 용의주도한 다자외교의 전형적인 실사구시의 국가다.
그런면에서 지금 한국의 윤석열정권의 미일 편향주의와는 완전히 결이 다르다.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현재 동남아 국가연합(아세안) 순회 의장국 역할을 맡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눈에 띄게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40년간 인도네시아를 연구해 온 신윤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내린 외교진단이다. 지금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관계는, 동남아에서는 베트남에 이어 두번째로 꼽히는 관계로 발전했다. 한·미 혹은 한·일관계가 가파르게 밀접하다 보면, 국내외적으로 여러가지 파열음의 외교문제들이 야기될 수 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는 작금 우리나라 와는 달리 미중 강대국 중 그 어느 나라에도 치우치지 않아서, 혹여 어떤 굴곡을 야기할 만한 요인이 거의 없다.
경제적으로도 한국의 산업 자본과 인도네시아의 노동력이, 톱니바퀴처럼 맞아 떨어지는, 소위 경제학에서 말하는 '커피와 설탕'처럼 상호 보완적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서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나쁘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대 아세안 전략에서, 역대 한국정부의 인도네시아의 비중은, 큰 나라를 중요하게 취급하는 소위 ‘4강 외교’ 라는 틀을, 아세안에도 적용해, 인구와 경제면에서 덩치가 큰 인도네시아를 중요하게 여겼다. 역대 우리 정부의 아세안 정책은 간판만 바꿔 단 수준이다. MB시절의 '자원외교'든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이든, 동남아를 외교나 정치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자원이자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을 얻을수 있는 나라로만 보아 왔다.”
그럼 앞으로 대 아세안 정책이 어땋게 달라져야 하는가? “외교를 강대국 위주로만 사고(思考)하게 되면, 마치 "법은 강자의 논리"라고 정의 되듯, 자연히 강대국의 논리에 휘말리기 십상이므로, 우리는 실사구시의 실리외교로 가야 한다. 어떤 나라를 특별 대우하는 게 아니라, 아세안을 비롯 모두를 실리외교로 나아가야 된다고 본다.
작금 현재의 윤석렬정권 처럼, 다자 외교가 아닌 눈에 뻔히 드러나는 편향적 친미일 외교는, 지극히 근시안이다. 정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큰 시장을 찾아가는게 외교의 속성이라 할지라도, 경제는 모든 이념을 초월하여 실리외교를 펼쳐야함에도, 친미일에만 치우치게 되면,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해서, 여기에대한 발상의 전환과 능소능대가 없어 너무 피동적이다. 우리는 지난 날 일제로부터 해방의 자유를 얻었음에도, 일제보다 더 무서운 이념의 장벽을 넘지 못하여, 지금까지 좌우진영으로 쪼개진 단장(斷腸)의 빼앗긴 세월이 얼마인가? 민족분단 국토분단이 어쩔수 없는 불가항력이라 마냥 너스레를 떨 입들이 있는가! 물론 대한민국의 회생은 유엔군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역사의 무대에서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자유대한을 구가하고 있지 아니한가?
금년 아세안 순회 의장국인 인도네시아가, 미얀마 문제 등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는 기본적으로 나라가 너무 크고 내정(內政)을 중시해서, 아세안 외교에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조코위 대통령이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것은, 그의 모든 시야는 국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혹여 미얀마 문제를 해결하고자 올인할 정도의 박애적 민주주의자도 아니다. 헌법에 정한대로 2선까지 했기때문에, 내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조코위 대통령이, 혹 개헌을 시도할까? 단언컨대 그런 무리수는 두지 않을 것이다. 조코위 대통령의 지지율이 80%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좋으니까, 일부 정치인들이 이를 두고 여러말들이 있을 뿐이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가? 조코위 대통령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범상한 ‘보통 사람’이다. 예를 들어 어느 동네에 문제가 생기면, 그곳에서 며칠 밤을 새우고, 현장에 주민들과 앉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어느 지방 장관도 아닌 일국의 대통령이, 아무나 할수 있는 몸짓인가? 물난리가 난 곳에선, 자기가 직접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타고 났다고할 만큼 정치감각과 국가의 위기에 대한 대처 능력이 투혼적이어서, 일반 국민의 정서에 부합한다. 지난해 말 혼외성관계를 금지하는 등 이슬람 색채가 강한 형법 개정안이 통과돼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이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도덕률을 제시한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통칭 '세속 이슬람' 국가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이슬람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지금 인도네시아 정치는, 우리처럼 ‘민주당이다.' '국민의힘이다.’ 식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이슬람이냐" 로 분석하는 게 좀 더 맞다. 어디서나 이슬람의 근본주의 세력은 시끄러워서 눈에 띠는데, 정치인들이 이들의 표를 얻기 위해 이용하는 하나의 제스추어다. 때문에 조금 지나면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미·중 갈등 속에서의 인도네시아의 외교 전략은 어떤가? “조코위 대통령이 잘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중국과 미국 모두와 가깝게 지내며, 국익이 되는 뭔가를 얻어 내는 것이다. 이건 인도네시아가 가진 지정학적 장점이다. 수카르노 시절부터 내려온 비동맹 외교는, 인도네시아 정치인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전통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내코가 석자다. 누구 편만 들어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강대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에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친미 혹은 반미, 친일 반중 반러 등 일방으로 쏠리는게 아니라, "실용주의 노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이제이(以夷制夷)전법이다. 이는 설혹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바뀌지 앓아야 하는 불문률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충고를 듣지만, 오직 지혜로운 자 만이 충고의 축복을 누린다.
【종그니칼럼】 가축의 생명권
인간을 비롯하여, 이땅에서 생존하는 모든 창조의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 사랑을, 'Agape사랑'이라 고 한다. 피조의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이 다함없는 사랑으로, 온 인류와 모든 만물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요양원 뒤 터밭에 봄부터 지금까지, 고추, 무우, 상추, 대파! 도라지, 토마토, 들깨, 그리고 유실수로 아로니아, 대추, 매실, 자두, 등을 가꾸고 있다.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김을 매 주고, 이 것들의 자라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재미가 너무 경이롭고 신기하다.
채소도 가축도 자연의 생태에 맡기고 그 수확을 거두면 되는 것을, 최소 공간에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내기위해, 생명 있는 가축들을, 마치 공장에서 소비재를 생산하듯, 먹거리용 상품으로 최단기간내에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소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해서는 안되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는, 아주 이기적이고 잔인한 인면 수심의 경제동물들만이 할수 있는, 창조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이다. 조물주의 섭리와 대자연의 질서를 알고, 인간 영역의 한계를 알아야 하는데, 자연의 섭리나 생태계의 질서는 안중에도 없이, '이커노믹 애니멀'이 된 인간들은, 목전의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잔인해져 있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다함없는 사랑이 비집고 들어 갈 여백인들 있겠는가? 먹이 사슬에 의한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서식하는 사나운 육식동물도 배가 부르면, 다시 허기를 느낄때까지 사냥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배가 부른데도 욕심의 창고는 끝이 없다.아무리 식용으로 쓸 가축이라해도, 뛰놀 수 있는 공간과, 최소한의 생명권은 주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얼마 전, tv에 방영된 우리나라 축산이나 양돈 양계등에 있어서, 나의 상상을 초월한 너무도 가혹하고 잔인한 실상을 보고,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니 내가 이렇게 잔인한 인간들로 더불어 살고 있는 자체가, 너무도 부끄러웠다. 닭을 쇠창살로 촘촘히 가두어 놓고, 먹이에 항생제를 넣어 20일 정도 키우면, 삼계탕용 상품이 된단다. 또 40일정도 되면 육계가 된단다. 닭의 수명이 줄잡아 12년인데 말이다. 양돈은 어떤가? 돼지 새끼를 낳는 종돈은 1년 6개월 동안 새끼를 세번 낳고 도살장으로 팔린단다. 돼지의 자연 수명이 15년인데, 일반 식용돼지는 6개월이면 식용으로 도살된단다. 돼지우리는 뛰놀 공간도 없다. 눕지도 못하고 6개월간 서 있다가 도살장으로 간다. 한우도 젓소도 모두 대동소이하다. 특히 젓소는 우유짜는 기계를 아예 젓통에 박아 놓았다.
이뿐 아니다. 돼지열병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축들 수백마리가, 모두 한꺼번에 포크레인으로 파놓은 구덩이에, 산채로 생매장된다.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런 잔인한 도살행위가 정당화 될수 있는가? 나는 구덩이에 산채로 잔혹하게 매장되어질 때, 죽음앞에 두려움에 떠는 가축들의 최후순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이런 잔혹한 일을 다반사로 할수 있을까!
예전에 우리 부모들은 가축을 이렇게 기르지 않았다. 닭들을 뜰에 놓아 길렀고 소도 넓은 외양간에서 그리고 넓다란 들녘에서 맘껏 풀을 먹도록 길렀었다. 작금 가축들의 양육실상이 이러하니, 소나 돼지 양계에 없던 전염병도 횡행하지 않겠는가! 바로 이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사료에 항생제를 반드시 투여 한단다. 요즘 등산하는 이들의 말에 의하면 산에 멧돼지들이 눈에 띠지 않을만큼 사라졌다고 한다. 물론 돼지열병에도 희생이 되었겠지만, 돼지열병으로 멧돼지들까지 포수들에 의해 애매하게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도 유독 개에대해서는 반려동물이라하여, 반려견 호텔도 생기고, 반려견 장례식장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뭔가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프리카 각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예전 우리네 처럼 닭,돼지, 소 등 가축들을 대부분 들녁에 방목한다고 한다. 인간들이 필요에의해 도살할 때까지, 생존권을 보장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모든 사물을 경제 가치에만 비중을 두다보면, 인간이 아닌 인간의 탈을 쓴 경제동물이 되고 만다. 어찌보면 아프리카인들이 비록 경제적으로는 아주 어렵게 살고 있지만, 자연과 동물을 바라보는 안목은 우리보다 훨씬 더 열린 문명인들이 아닐까 싶다. 현대인을 언필칭 문명인이라 칭하지만, 공생해야 할 동물들을, 오로지 식용 상품의 경제가치로만 판단하는 우리들의 이 야만적인 행태는, 하루라도 빨리 사라져야 할 현대인의 과제다. 대자연의 순리적 순환과, 대자연의 섭리를 인정할 때,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도, 언제가는 반드시 회복되어야, 대자연의 모든 생태계도 더불어 회복되리라고 본다. 육신의 눈이 먼 것 보다, 마음의 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나는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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