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Change! Or Slow Death
혁명적으로 변화하라! 그렇지 않으면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뉴트로 전략, 핵 처치>의 저자 소강석 목사는 이 책의 서론에서 한국교회의 부흥기는 1990년대까지라고 선언한다. 부흥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선언이다.
맞다! 당시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영컨설팅을 했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삼성을 비롯한 한국의 대기업들은 IMF를 겪으면서 조직축소(Downsizing)와 구조조정(Restructuring)을 통한 경영혁신에 올인했다. 당시 한국의 대기업들은 GE, 도요다 등과 같은 글로벌기업의 경영혁신에 발맞추어 새천년의 시대가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를 예측하고 대응했다. 그리하여 글로벌생산시스템, 글로벌경영시스템, 글로벌업무방식과 글로벌업무매너 등을 도입했다. 필자는 당시 대기업을 대상으로 글로벌기업문화를 전파하는 컨설팅에 종사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부흥의 시대에 도취하여 시대변화를 읽지 못하고 다가올 미래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분석하는 이 책의 저자 소강석 목사는 당시 한국교회의 잘못을 몇 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첫째, 한국교회가 시대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대는 소비자의 편익과 경험, 브랜드 인간화, 초연결 가치 중심으로 변화되고 있기에 교회도 목회자 중심에서 교인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교회, 고유의 브랜드적 신앙과 성도 간에 영적인 초연결의 유기적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전통적이고 제도적인 수준에 머무르자 그런 교회에 식상한 젊은이들과 지식인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진정한 은혜와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교인들과 교회에 반감을 품었던 사람 중에 내부고발자가 생겨났고, 이를 기반으로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고무되고,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이 나타났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런 흐름을 인지하는 감성의 부족과 참여/연대성이 결부된 모습으로 대응할 뿐이었다. 과거에는 안티 크리스천의 공격이 특정 개인과 교회를 향한 개별적, 일시적이었으나, 현재는 확증 편향성과 선택적 지각으로 나타나면서 무차별적으로 교회를 공격하는 쏠림현상을 보인다고 했다.
특별히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한국청년의 피랍사건을 계기로 이런 현상은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그 시기는 평양대부흥 100주년 기념집회 직후였으며, 그때 한국교회는 위기관리 시스템을 작동하여 기민히 대응해야 했지만, 책임 주체가 없어 대처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사회는 교회와 목회자를 향한 집단적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로 “개독교, 먹사, 똥경 등” 입에 담기에도 부끄러운 빈정거림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결국 당시에 일어난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선택적 지각과 확증 편향성으로 응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비토 프레임(veto frame)을 형성하게 되었고,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해 무조건 비난, 공격, 거부가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예리한 분석이다.
둘째, 한국교회가 사람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서바이벌의 즉 타이거 스타일의 삶을 살았고, 성도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으며, 교회 건축에도 헌신하고 충성했다고 평가하는 저자는 당시를 강아지 유형의 스타일 즉 의리와 신의를 지키는 공동체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고양이 유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고양이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이고 외부적 영향에 대해서 완벽하게 거부를 하는 동물입니다. 이들은 “집단보다 개체가 중요해.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어. 외로움은 싫지만 얽매이고 싶지도 않아. 절대로 길들여지고 싶지 않아. 무조건 주도적이고 싶어. 언제나 No하고 싶어.”라고 표현합니다. 현대인은 자기중심의 감성, 확증 편향성과 선택적 지각에 빠져 삽니다. 그러므로 고양이 형 성도들은 유혹하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설교도 억압과 가르침보다는 설교 속에 유혹이 있는 유혹의 설교를 해야 합니다.”
셋째, 한국교회가 목회 환경이나 목회생태계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은 사회 환경의 변화와 함께 점점 반기독교 세력의 이론적 배경인 네오막시즘(문화막시즘)이 유입되면서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소형교회와 대형교회 간의 생태계적 선순환이 깨지고 한국교회에 전체적으로 정체와 감소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개척교회가 잘되어야 중형교회가 성장하고, 그 결과는 대형교회와 메가처치의 등장으로 이어진다는 생태순환 고리가 깨어진 것이다. 이는 사회의 변화로 인해 개척교회가 줄어들고 미자립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이다. 즉 생태순환 고리가 깨어진 것은 메가처치나 중대형교회가 개척교회를 지원하여 자립시키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들은 아직도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오직 성장만을 추구했고 지금도 추구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교회 위기는 “모든 교회는 하나이고 서로 연결된 생명공동체”라는 진리를 간과한 개교회주의가 만연한 탓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목회생태계의 원리를 파악하고 문제점을 지적한 저자의 분석은 참으로 탁월하다. 이는 저자의 목회 경험과 투철한 시대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전라도 화순 골짜기에서부터 가락시장 골목에 이어, 당시에는 분당의 끝자락이었던 오리역과 죽전까지의 목회 여정이 오늘의 새에덴교회를 이루게 한 것이다.
넷째, 한국교회가 교회의 트렌드 변화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국교회의 트렌드 변화는 교단 중심적 전통교회가 커뮤니티교회(개교회주의)를 거쳐 변형교회와 탈 교회 현상으로 나타났고, 한국교회도 카페 교회, 도서관 교회 등 이머징 교회로 변화하는 트렌트 변화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문화사적 대변혁은 구조사들이 모여 마침내 1~2세기 만에 맞을 수 있는 역사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코로나가 문화사적 대혁명을 더 앞당겨 버렸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한국교회는 “정지나 퇴보”를 했는데, 최윤식 박사의 말대로 “잔치하다가 싸움하고 분열하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저자의 심정을 들어보자!
“코로나가 왔을 때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부총회장이었습니다. 그때 총회와 한국교회 지도부에 자율방역을 제안했습니다. 정부가 예배에 간섭하지 못하게 선제적으로 자율방역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칼빈의 쿼런틴 시스템에서 자율방역을 착안하였습니다. 그리고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중세 때 교황 클레멘스 6세는 무조건 교회로 모이라고 했지만, 칼빈은 쿼런틴 시스템을 도입해서 자율방역을 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가톨릭은 침체기를 맞고 개신교는 전성기를 맞게 된 것입니다.”
코로나 시기에 가장 열심히 그리고 애타게 움직였던 저자의 심정이다. 그래서 자자는 “코로나로 인해서 가장 피해를 본 곳이 한국교회”라고 주장한다. 특히 ‘한국교회 방향 2024’에서 말한 대로 코로나를 통해서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즉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았고, 또한 홀로서기가 가능한 성도들이 많아졌으며, 성도들은 모이지 못하니까 한동안 외롭다가 오히려 혼자가 편하게 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한국교회 트렌드 2024’에 나타난 “혼자가 편한 교인들은 완전히 극단적 개인주의 삶을 산다.”는 분석에 동의한다. 그 부분을 같이 읽어보자.
“교회에 나오지 않고 혼자 성경 읽고 기도하고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서 설교 들으며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 OTT크리스천이 있습니다. OTT는 'Over The Top' 즉 'Top(셋톱박스)을 넘어'라는 뜻입니다. 셋톱박스라는 하나의 플랫폼에만 종속되지 않고 PC,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콘솔 게임기, 스마트 TV 등 다수의 플랫폼으로 서비스합니다. 그러므로 OTT크리스천은 초개인화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OTT크리스천”- 'Top(셋톱박스)을 넘어'라는 낯선 단어를 저자는 송길영 작가의 표현을 빌러 ‘핵개인화 되어 간다’라고 소개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핵가족에서 핵개인화 시대가 된다는 것이다. “핵개인화”는 혼자 있어도 결코 외롭지 않은 사람, 자기 독립, 자기 결정권, 자기 애호로 자기를 쪼개고 분리하고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교인들도 자기 애호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즉 “OTT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과 분석이 이해되고 수긍이 되는가? 그러면 저자의 책을 구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이런 지적과 분석이 이해되고 수긍이 안되는가? 그러면 반드시, 꼭 이 책을 구해서 읽어야 할 것 같다.
저자는 코로나 때의 경험을 이야기 한다. “코로나 때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예배 때마다 라이브 톡을 하고 화상 줌에 보이는 사람들의 이름을 거명하며 기도했습니다. 송구영신예배는 8번에 걸쳐 예배했습니다. 그 결과 감동하고 감격해서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교회에 와서 줄을 서서 기도를 받았습니다. 고액의 헌신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때가 재정적으로도 가장 풍요했고, 가장 강력한 영적 역설적 부족공동체, 영적 역설적 슈퍼 처치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코로나 때는 성도들이 완전히 감동하였지만, 지금은 교인들이 목회가 힘이 듭니다. 코로나 후유증이 핵개인이라는 새로운 괴물 인간을 만들어 냈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신앙을 성장시킨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 위기의 인식과 전파는 누구의 몫인가? 목회자와 중직자들의 몫이 아니겠는가? 이어서 저자는 “핵개인의 특징”을 세부적으로 이야기 한다.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목회자와 중직자들은 이 부분을 반그시 읽어서 자기 교회에 적용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뉴트로 전략의 해법”을 “핵크리스천, 핵처치”라는 말로 정리하고 설명한다. “핵크리스천의 정의와 특징”은 무엇인가? 저자의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저자는 “핵개인의 시대”에도 목회자는 옥시토시 하트를 가지고 생명력으로 승부를 걸면 된다고 주장한다. 예배와 설교는 정형화를 벗어나고 핵개인의 트렌드를 덮어버리고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극화적인 설교, 생명이 넘치는 설교, 남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는 감정뿐만 아니라 용기를 갖도록 하는 옥시토신 하트를 가져야 한다. 목회자의 사즉생의 결단은 성도들이 감동한다. 핵크리스천이 감동하면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협력 가족을 이루고 동친 그룹을 이루고 부족공동체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새에덴교회 사역의 몇 사례를 제시하면서, 핵크리스천, 핵처치를 이루기 위한 핵파워 목회의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한다. 결론적으로 다가오는 핵개인의 시대에 핵크리스천을 만들어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서로 융합하고 협력 가족을 이루며 동친 그룹을 이루어 위대한 핵처치를 만들면 된다는 전략을 제시한다. 소강석 목사의 신간 <뉴트로 전략, 핵 처치>는 한국교회가 핵처치가 되면 우리 시대와 사회를 변화시키고 이끌어갈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았다.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