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이웃인가?

나는 호반(湖泮)의 도시로 이름난 春川(봄내)의 박사마을에서, 그것도 의암호수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현암리에서,  어느덧 십사년 째 살고 있다.  이는 고달팠던 지난날에 대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배려이지 싶다. 이곳을 박사 마을이라고도 하는데, 버금 이백명에 가까운 박사가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국무총리 장관등 국가원수 외, 모두 배출된 마을로도 유명하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 '박사마을' 이란 명성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전후, 당시 이곳 춘성군 서면 지역 주민들의 교육 열은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그 당시 이곳은 아주 쇠락한 낙후지역으로, 의암호 바로 건너편이 춘천이지만, 그때엔 다리도 없어 배를 타고 춘천을 오갔으니, 그 당시 이곳 주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다가 춘성군이 춘천시에 편입되면서, 신매대교가 들어서게 되자, 자연 배터는 사라지고, 조금씩 서면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올 때만해도, 아주 낙후된 시골이었다.

그러던게 내가 이사오던 해에, 하수종말 처리시설이 들어서고, 상수도가 들어 오고, 의암호수를 에워싸고 있는 뚝방이, 자전거 도로내지 산책코스가 되고, 요양원 바로 옆에 파크 골프장이 들어서고, 인도가 생기고, 요양원 바로 앞에 글림핑장이 들어서는 등, 수수만년 동안 잠자던 마을이, 지금 한창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의암호수 한 가운데에는, 상중도 하중도 그리고 레고랜드로 유명해진  중도가, 내가 살고 있는 요양원 바로 눈앞에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의암 땜이 건설되면서 오늘의 의암호수가 있게 되었겠지만, 수년 전에 설치해서 춘천의 명물이 된 3.75km거리의 케이불카를 타고, 의암호수를 가로질러 삼악산 정상에 오르는 약 17분간은, 의암호수를 품고 있는 춘천시가지가, 한꺼번에 내 품에 안기는 그런 황홀감에 젖어든다.   내가 아는 이들이 찾아 오면, 춘천의 명물로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곳이 바로 이 케이불카 코스다.    내가 지인들의 안내자로, 케이불카를 타고 삼악산을 오르내린 것이, 아마도 열번 정도는 되지 싶다.  

이와는 달리 "소문난 잔치 먹을게 없다."는 말처럼, 수년동안 강원도가 아니 전국이 떠들썩 할만큼 요란하던, 의암호 중도에 세운 '레고랜드'는, 그 소문과 춘천시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언제부턴가 강원도의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전직 강원도 지사가 졸속으로 만들어 낸 부패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의암호수는 먼 태고때부터 소양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로, 두 강물이 합류하면서 섬들을 만들어, 옛날 석기시대로부터 청동기 문명과 철기문명에 이르기까지, 수수만년동안 우리 조상들의 삶의 애환이 켭켭이 쌓여 있는, 너무도 소중한 우리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역사의 유적들을, 마치 짐승이 보석을 알지 못하듯이, 소위 의암호를 관광의 명소로 개발한다는 위인들이, 이 소중한 조상이 남긴 유산들을, 마치 쓰레기 취급하듯 포크레인으로 완전히 뭉개버리고, 프라스틱 놀이 기구들로 채워진 것이다. 이는 마치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유럽 중세말기에 양의 털로 만드는 모직물 공업이 발달하자, 중세시대의 구심점을 이루었던 장원들이, 양을 기르는 목장으로 바뀌면서, "양이 사람(소작인)을 몰아 내는" 기이한 사회가 만들어 졌던 것처럼, 한치앞도 모르는 위인들이 자행한 어리석음인 것이다.

수수만년을 살아온 우리 조상 선사시대인들의 유물들을 잘 살려, 이곳을 살아 있는 우리역사의 유적지로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역사를 발굴하고 살려내는 일이 대한민국의 얼과 민족을 흥왕시키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수수만년에 걸쳐 우리 조상들이 켜켜이 남긴, 소중한 삶의 생생한 유적들을, 철저하게 훼파하여 당초 매장되었던 장소조차 흔적도 없이 깔아 뭉개버리고, 그 유물들을 마치 허접쓰레기 버리듯, 하천에 널부러져 있는 돌멩이처럼, 여기 저기에 방치해버렸다. 그 유물들이 원래의 자리에 그에 맞는 유물들과 어우러져 있어야, 옛선인들의 숨결이 살아나는 법인데, 마구잽이로 훼손하고 여니 하천의 돌무더기처럼 버렸으니, 뭐든지 무식하면 용감하다.이는 마치 악화가 양화을 구축하듯, 프라스틱이 수수만년에 걸친 만족의 얼이 깃들어 있는, 억만금을 주고도 다시 구할수 없는,  소중한 민족의 유산을, 역사인식이 전혀 없는 정상모리배들에 의해, 회복  불능의 상태로 여지없이 짙밟혀, 역사의 무대에서 지워 버렸다.

이 의암호수를 중심으로 십여년전부터, 역사의 유적지로 만들자는 의견과, 레고랜드로 개발하자는 의견이 맞서더니, 종내는 개발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부실개발과 부실경영으로, 천문학적인 빚더미 위에 있어 세인들로 부터 외면 당하는 자칫 천덕구리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입장료가 너무 비싸 지근거리에 있는 나도,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이젠 찾아 오는 관광객들도 거의 발을 끊은 상태다.  왜 이렇게 레고랜드가 계륵신세가 되고 말았을까? 옛말에 "중이 염불에는 관심없고, 젯밥에만 눈이 꽂혀 있다." 는 말처럼 돈을 풀어 개발할 때는 아구떼들처럼 달라 붙더니, 먹잇감이 말라버린 요즘은 강건너 불보듯하고 있다. 서면에서 중도를 거쳐, 춘천역으로 가는 다리 건설도,지금까지 설(說)만 무성할뿐, 감감 무소식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굴까? 아마 자녀를 길러 내고 있는 이땅의 어머니들 일 것이다.       초라한 빈촌 마을에서, 오늘의 박사마을이란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 바로 어머니들이었다.     옛말에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처럼, 어머니란 이름은 이세상 그 어떤 위인보다 강하다. 그럼 어머니 다음으로 힘이 센 사람은 누굴까? 지위가 높은 사람? 엄청난 부자? 아니다.    세상에서 어머니 다음으로 강한 사람은,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바로 인덕(人德)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했던가! 아무리 권력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은 사람을 능가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심이 바로 천심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잘되기를, 이렇게 성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설혹 그가 좌절을 맛보았다 해도, 그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주위에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은이가 알고 보면, 이땅에서 가장 강한 사람인 것이다. 맹자(孟子)'는 이렇게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아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심이 천심"이란 말이 있지만, 권력자가 백성들의 마음을 잠시 도적질할수는 있다. 그래서 많은 독재자들이 혹세무민한 예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므로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마치 탈렌트나 정치인들처럼, 세인들의 인기영합에만 몰입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인간에게는 언제나 두길이 있다. 하나는 반드시 가야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절대 가서는 안되는 길이다.  어찌 이뿐이랴! 베드로는 불학무식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으로 혼으로 만났기에,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진수를 깨달아, 2000년 교회의 반석이 되었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얻게되면, 자연 도와주는 사람이 많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득도다조(得道多助)"라고 한다.  즉, 인생의 참 길을 깨닫는 사람은, 말씀을 깨달은 사람이요,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사람이 가야할 길과 가서는 안될 길을 아는 사람이므로, 인생이 가야할 길을 찾은 사람은, 저절로 도와 주는 사람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가 아무리 부패하고 썩고 문드러졌어도, 진리의 길은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부패하고 썩은 내가 진동을해도, 여기에 물들지 않고, 남을 배려하고 사람의 길에서 일탈하지 않으면, 그가 잘 되기를 응원해 주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여기서 "도(道)"란 사람의 '바른 마음 자세'이다. "사람이 가야 할 길(道)을 깨달았다."는 것은, 심산유곡에 가서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사소한 삶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마땅히 가야할 길, 즉 마음의 길을 얻었다(得道)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지도자가 '도'를 얻었다는 것은, '민심'을 얻었다는 뜻이고, 기업가가 '도'를 얻었다는 것은, '고객의 마음'을 얻었다는 뜻이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게되는 것이다.  이같은 마음이 언제나 어둔 나를 바로 주장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종그니칼럼】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이웃인가?

18세기 이래 중국의 지배 하에 들어온 신강 지역은, 몽고, 러시아,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등을 포함하여 모두 13개의 종족이 살고, 주변 8개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다. 막스 레닌으로 시작 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은, 처음 굶주린 레바이단처럼, 온 나라를 집어 삼키더니, 1990년대 초 공산주의의 산실이었던 소련제국이, 갑자기 역사의 무대뒤로 안개처럼 사라지고,  그 공백에 중앙 아시아의 신생 이슬람 국가들이 나오고, 신강 지역의 위구르족들 사이에서, 분리주의 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이를 호재로 여긴 중국 공산정부가, 이곳에 한족(漢族) 이주정책을 편 결과, 2000년 이후엔 이곳 漢族의 인구가 40%를 넘게 되자, 위구르족과 한족 사이의 민족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하더니, 종내는 2009년 위구르가 중국에 대하여,중국인 이주 정책에 격렬한 반대운동이 일어나, 무려 200명 (대부분 한족)이 사망하는 참사가 생겼다. 2010년대 이후 신강의 분리주의 운동 은, 식칼테러, 폭탄테러, 비행기 탈취 시도,차량폭주 등등 무장폭동들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처럼 신강의 분리주의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지속되자, 중국정부는 위그르족의 신체정보를 반 강제적으로 채집하기 시작했다. 인권감시단 (Human Rights Watch) 의 보고에 따르면, 2017년 12월 현재 중국의 신강 지역에서는, 12세부터 65세 사이 모든 인구의 유전자(DNA) 정보와, 홍채인식(iris scans)정보 및 혈액형을 채취하고있다. 그 목적은 신강 지방 반체제 인사의 통제를 위해서였다. 일본정부에 의한 재일교포의 지문 채취 보다 몇 배나 가혹한, 소수인종 감시 및 차별 사례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정부정책에 대한 중국내부의 비판은 거의 없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변명할 여지없이 인간 고유의 신성불가침의 권리인 신체의 자유를 빼앗는 국가 폭력의 명백한 사례다. 중국정부는 호구제를 통해서, 지역적 인구비율을 강압적으로 조정하며, 인구조절을 위해 여성의 신체까지 감시 관리하고 있다. 정부시책에 반대하는 '표현의 자유' 마저 강압하고, 반체제 인사들의 감시를 위해, 강압적으로 위그르족의 신체정보를 채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정부가, 공공연하게 일상적으로 행사하는 "국가의 폭력"은, 바로 "사회주의"란 이름의 집체주의(collectivist) 정치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국 공산정권은, 공산주의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개개인 인권의 희생을 당연시한다. 1950년대 이후 중국에서 개인의 인권 주장은 퇴폐적인 부르주아적인 자유주의로 매도되었다. 실제로 중국이나 북한에서의 자유주의는 이기주의내지 개인주의와 동일한 개념으로 통용된다.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는 사회공동체에 절대 반하는 오로지 개인적 이기심으로 치부된다. 오늘의 중국은 이렇게 가혹하고 혹독한 개인적 인권존중을 근본적으로 말살내지 희생을 짓밟고 굴러가는 육중한 저거너트와 같다. *(Jugger-naut: 인도 힌두교의 Krishna신으로 사람을 희생의 제물로 바친다. 이를 중국식으로 말하면 개인으로는 불가항력적인 공산주의 국가조직을 말한다.)

중국의 실제 현실은 이리도 가혹한데, 지금 한국엔 언제부턴가 뜬금없이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는 "친중주의"는, 과연 무슨 독소를 머금고 있는 것일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는 말처럼 한국의  친중파들은, 미국 사회의 어둠엔 쌍라이트를 켜고 현미경을 들이 댄다. 미국의 잘못에 대해선 면도날 같은 예리함으로 비판의 메스를 가하면서, 중국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인권유린과 국가폭력에 대해서는 눈을 감거나, 되려 쿨(잘난척)한 너스레를 떤다. 심지어는 중국 공산당에 합리성까지 부여하며, 중국의 현체제를 적극 옹호하기도 한다. 작금 대한민국에서 이처럼 미국에 대해서는 쇠자를, 중국에 대해서는 고무 줄자를 들이대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중국 공산주의의 철통같은 체제에 매료되어, 개인의 모든 자유의 소중함을 망각한 까닭일까? 인류사에서 자유주의(liberalism)는 국가권력을 제약하는 소위 천부적인권이며, 모든 반독재타도의 산실이다. 자유주의가 없는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까? 북한은 소위 인민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른다. 

그럼 중국이나 북한은 과연 인민민주주의 국가인가?
그러한 체제들은 다만 다수결에 의한 다수지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의 예를 들자면, 지난 날 유신 체제때,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던 체제와같다. 자유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근본가치이다. 사회민주주의가 있고 난 후에, 자유민주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터위에 사회민주주의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가치를 살려내는 양자 이론의 결합을 통해서만, 대한민국의 헌법은, 인류의 보편가치와 절차적 합리성을 갖출 수 있다. 99프로의 국민이 원해도, 1프로의 소수집단을 제거하거나 추방할 수 없는 제도,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바로 그 제도를 헌법학자들은,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혹은 헌법적 민주주의(constitutional democracy)라 말한다. 

1919년, 손문을 비롯한 5.4운동 당시 중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개인주의' (individual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의 기치를 들고, 신 중국 건설을 외쳤다. 이후 모택동을 시작으로 중국공산당의 공산주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는 부르조와지의 타락한 가치관이자,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중국파괴 음모에서 비롯되었다고 비판하였다. 이는 지난 날 서구열강들의 식민지배 침탈에 놀라,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격이다. 이렇게 개인의 자유를 유기한 결과, 오늘 날 중국 개개인들은, 초법적인 공산주의국가권력 앞에, 인민의 존재가치인 인민의 자유 민주적 주권과, 기본권은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 잠시 살펴 본 사건들은, 모두 "자유"가 사라진 "중국식 인민사회민주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공산주의 현실에서 인민민주주의란, 실제로 '인민에의한 무산 계급의 독재'와 같은 말이다. '무산계급의 독재' 참 허울 좋은 넉두리다. 그들은 입만 열면, "공산주의가 꽃피면 국가는 고사(枯死)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 공산주의는 더욱 강력한 철통같은 전제국가가 되고 있다.

현대인류의 신체구조는 아득히 먼 구석기인들의 신체구조와 전혀 다르지 않다. 또한 구석기때에도 강자의 논리대로 공동체를 이루었을 것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을 이룬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와, 지금 중국의 철권통치는, 진시황의 만리장성(萬里長城)과, 지금 중국의 변방정책등은, 수천년이 지난 문명한 시대에도 전혀 다르지 않는 붕어빵이다. 소동파는 고려사신에게 역사서를 주지 말라 했다. 소동파의 의도대로 변방의 지식인들은, 아편처럼 경(經)의 세계에 빠져, “소중화”를 부르짖었다. 중국의 역사서를 읽지 않는 관념철학자들처럼, 대한민국의 친중파들은, 중국의 현실에는 아예 눈을 감고,되려 중국을 찬양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또 다시 중국이란 이념에 빠져 중국의 역사현실에 눈을 감아버리는, 어리석은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반미 친중"의 이중잣대를 폐기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의 관점에서, 중국의 실상과 중국역사의 적나라한 민낯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무엇보다 냉철한 중국비판이 필요할 때다. 홍콩, 대만만이 아니고, 한국, 일본, 나아가 구미의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오늘의 중국을 혹독하게 비판하에야 할 때다.  중국의 현대사는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숭고하지도 않다. 중국과의 공존을 위해, 더 더욱 중국 공산당의 어두운 역사를 깊이 탐구하여야 한다. 지난 70여년의 세월동안 중국 사람들이 직접 겪었던, 현대 중국의 “슬픈 역사”를 바로 알고, 우리 또한 수천년 동안 격었던 슬픈 역사를 되짚어, 다시는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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