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망(社會福祉網)이 놓치고 있는 고독사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사람사는 세상은 훈훈해야 하는데, 우리의 소득수준은 높아, '선진국 대열에 들어 섰다'고 들 하지만, 어느때 부턴가 '풍요속의 빈곤' 이란 말처럼,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는 구심점인 인정이 메말라 보트라져서, 오랫동안 이웃하며 10년을 넘게 살았어도, 누군지조차 모르고 사는, 겨울 칼 바람보다 더 매서운 야박한 세상이 되었다. 가난보다 더 혹독한 것이 인정이 메말라버린 사회다. 그래서 사회와의 고립이나 무관심이 부른 고독사가, 후미진 음지 곳곳에서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고독사의 위기에 있는 5명 중 1명은, 복지급여 비수급자라 한다. 사회적 약자에대한 우리 관심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을, 사회공동체인 우리도, 지자체도,감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이웃 사랑의 촉'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1인 가구 즉 나홀로 세대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코로나로 인한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더불어 사는 상생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심하고 꼼꼼하게 복지정책을 펴고 있다고 해도, 그 정책이 생명을 살리는, 살아 있는 공동체를 위한 정책이 되지 못하면, 공동체 활성화 대응책은, 한낱 메아리없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지난 달 9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아파트에서, 고교 교사 이모(5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세상을 떠난 지 5일 만이었다. 서대문구 남가좌동 빌라에서 사망한 송모(74)씨는, 숨진 지 2주가 흐른 지난 달 15일에야 수습됐다. 같은 달 23일 강서구 화곡동 다세대주택에서 발견된, 30대 남성 A씨의 시신은 백골 상태였다. 이달 3일에도 노원구 상계동 빌라에서 김모(52)씨의 죽음이 뒤늦게 발견되었다.
이처럼 30대 청년, 50대 중년, 70대 노인을 막론하고, 일주일이 멀다 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 고독사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고인이 혼자 살아왔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숨진 채 한동안 방치됐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반적 고독사에 해당한다. 서울시의 경우, 사망한 지 3일(72시간) 이후 발견되면 고독사로 분류된다고 한다. 위에서 본 네 사건 유형의 죽음이, 통상적인 고독사와 구분되는 특징은, 이들 모두가 사회복지망에 편입되어, 복지급여를 받는 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고독사'가 경제적 곤란을 겪는 이들 중에, 사회적으로 고립 내지 단절되어버린, 소수의 죽음이라는 추론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지자체의 관리밖에 있는 '비수급자'였기에, 이들의 외로운 임종은 수급자보다 더 늦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독사의 근본문제를 새롭게 접근하여, 심도있는 시각으로 현재의 복지 체계의 판을 새로 짜야된다는 신호탄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저소득층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복지정책으로는, 지금의 공존 사회의 개념과는 현격한 거리가 있는, 나홀로 세대의 급증,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영역에, 코로나의 장기적인 유행에 따른, 사회적 교류의 위축 등이 맞물려, 고독사 관리의 사각지대가, 전방위적으로 급격히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소득 수준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사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복지 정책으로 개편하고, 이웃공동체의 활성화로, 사회적 고립을 효과적으로 예방할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된다고 본다.
한 사회나 국가의 기본단위인 가족공동체의 구심체였던 부모, 형제 삼촌, 고모, 이모도 없는, 나홀로 사는 세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이러한 공백을 메울수 있는 끈끈한 인간관계를 대신할만한, 상생의 개념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인구의 감소는, 심각정도가 아니라 인구절벽에 가깝다. 신혼가정이 두 자녀를 낳는다면,해마다 80만명의 신생아가 출산하게 되는데, 현재 겨우 30여만명이 출산되고, 여기에 해외 입양률도 세계 첫번째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국회에서는, 낙태법을 합법화시켜 저출산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일찌기 고대 그리이스의 대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라고 갈파하였다. 통칭 '스파르타식 군대'라고 할 만큼, 고대 스파르타제국은 실질강건하였었지만, 평화가 오자 지배층계급이 자녀낳기도 싫어할만큼 나태해져서, 마침내 스파르타제국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가장 현명한 방책은, 정책입안자들이나 젊은이들이, 곧 다가올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시대적 소명을 깊이 인식하고 대비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달 이래 서울에서 고독사한 것으로 확인된 비수급자들은, 하나같이 주변과의 관계가 단절돼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가족이나 지인과의 왕래가 드물었고, 이웃들은 이들의 존재조차 잘 인식하지 못했다. 송씨는 빌라 10여 채가 늘어선 주택가에서 살았지만, 친하게 지내는 이웃이 없었다. 옆집 주민은, "우리가 여기서 5년 넘게 살았는데, 인사하고 지낸 지도 얼마 안 됐다"며, "평소엔 일절 말을 안 하는 사람이다 보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이씨의 경우 숨진 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살았지만, 옆집에 사는 주민이나 8년째 근무 중인 경비원조차, 이씨의 얼굴을 제대로 봤거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고 했다.
복지망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지자체도, 이들의 위기 상황을 감지하지 못했다. 관할 주민센터와 구청에 따르면, 이들 대부분은, 복지급여 수급자가 아닌 것은 물론이고, 고독사 위험군 관리 대상도 아니었다. 한 구청 관계자는, "비수급자라도 주민센터를 방문하면, 사회복지사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거의 없는 건 사실"이라며, "비수급자는 관리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금 우리 기독교와 기독인들은, 코로나와 고독사의 처절한 현실앞에서, 마치 성전 미문앞에 주저앉아 있는 앉은뱅이처럼, 붙잡는 손,
내미는 손, 일으키는 손, 기도해야 할 손이, 혹여 이전처럼 방관자의 손처럼, 마냥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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