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생명(生命)
【종그니칼럼】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이웃인가?

성경에서 주님은, 때론 소금에 대해서 때론 촛불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셨다.촛불은 자신의 몸을 태워서 어둠을 밝힌다. 소금 또한 자신을 녹여 모든 음식에 스며들어서, 입맛을 잃어버린 우리네 입맛을 살려 낸다.  자신의 삶의 한 부분을 녹여 내서, 어두운 삶을 살아 가고 있는 인생의 여정 길을 밝혀 주고, 살 맛을 잃은 이들에게는,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서, 살 맛을 내는 소금같은 삶이 될수 있다면,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는 칠흙처럼 어두운 인생 길에, 자신을 불살라 어둠을 밝히는, 촛불 같은 삶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오늘 삶이 끝난대도 좋겠다. 

또한 살 맛을 잃어버린 오늘의 세대에게, 살 맛을 내는 소금이 될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라도 내 자신을 몽땅 녹여서, 진정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당신은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 가고 있는가? 당신은 이 땅에 있음으로 인해, 우리를 아는 모든 이에게, 작은 촛불처럼, 어두웠던 맘이 환하게 밝혀질 수만 있다면, 그리고 살맛을 잃기 쉬운 오늘의 세대에게, 살 맛을 내는 소금같은 삶을 살수만 있다면, 당신은 여기에 내 삶을 던질 수 있겠는가?

여러분은 인도가 낳은 마더 테레사 수녀 (Mother Teresa Bojahiu, 1910~1997, Macedonia-India)를 기억하실 것이다. 그녀가 이땅에서 활동하던 어느 날, 홀로 사는 어느 노인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곳은 집이라기 보다, 헛간 처럼 아주 형편없는 그런 곳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안은 온통 먼지 투성이에다 이불이나 옷가지들은, 모두 온갖 때에 찌들어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숨쉬고 살수 없는 그런 비위생적인 곳에서, 노인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이러한 환경에 익숙한 듯, 말없이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병색이 완연한 노인은, 누운채로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테레사 수녀는 능숙한 솜씨로 온갖 때로 찌들어 있는 방 바닥을 쓸어내고, 먼지를 털어냈다. 옷가지는 빨아 널고, 더러운 곳들은 물걸레로 깨끗이 닦아내고, 소독까지 모두 마쳤다. 그렇게 청소를 하다가 방구석에서 먼지에 쌓여있는, 조그만 등(燈) 하나를 발견했는데, 아주 낡은 등이었다.  

"이 등은 뭐죠?" 노인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손님이 오면 켜는 등이라오." 테레사는 등을 닦으면서 노인에게 다시 물었다. "등불을 켤 일이 없었겠네요?" "몇 년 동안 한 번도 켜지 않았소, 죽어 가는 늙은이를 누가 찾아 오겠소." 

노인은 가족도 없이, 또 찾아 오는 사람도 없이, 그렇게 외롭게 살아왔던 것이다. 그동안 노인은 먹을 것이 없는 배고픔보다  사람의 정이 더 그리웠던 것이다. 이윽고 테레사가 입을 열었다. "제가 자주 올께요. 그럼 나를 위해 등불을 켜주시겠어요?"

"오시기만 한다면 켜고 말고요." 그 이후, 테레사는 자주 그 노인의 집을 찾았다.  자신이 가지 못할 때는 동료 수녀를 대신 보냈다. 그래서 이 노인의 방엔 거의 매일 사랑의  등불이 켜져 있었다. 살 맛을 잃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그의 심령속에, 사랑의 등불을 켜주고, 살 맛을 심어 주었다. 그후 노인은 더 이상 쓸쓸하지 않았다. 늘 찾아와 집안 일도 해주고, 이야기도 해주는 테레사 수녀와 동료 수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 후, 노인은 편안히 하나님 품에 안겼다. 노인은 죽으면서, 마침 곁에 있던 어떤 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테레사 수녀에게 전해주시구려, 테레사 수녀는 꺼져가는 내 인생에 등불을 켜준 사람이라고..."

더불어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어 주고, 살맛을 잃은 자에게 살맛을 내는 소금이 되어 주는 것! 이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삶이 또 있을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봄날에 파릇 파릇 돋아나는 새싹과 같다. 한 겨울의 살 얼음을 견뎌내고, 아직 차가운 동토의 땅에서 생명의 싹을 틔우는 대자연의 신비를 보라! 새 생명의 싹을 틔우는 봄을 기다리지 않는 이가 있을까?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같은 하늘아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행복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과 상관 없는 나만의 행복이란 없다. 이 세상의 원리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과 권력을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의 눈동자는 상대방의 약점 등 공격할 만한 빌미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지금도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삼킬자를 찾고 있다. 그러나 천국의 원리는 이 세상의 원리와는 다르다. 이기가 아니라 이타(利他)로, 강한 자가 자기보다 약한 자를 도우며 사는 세상이다.  약점을 들추어 내어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약점을 담당하며 가리어 주는 것이다. 

천국이 어디 있는가? 바로 우리의 삶 우리 마음속에 있다. 창세기에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하여, 대낮에 벌거벗고 잤다. 이를 본 함은 아버지의 이 추태를 온 식구에게 고자질 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감추었다. 상대의 약점을 나의 허물로 알고 섬기는 것이, 바로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며, 동시에 내가 속한 공동체를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예를 들어 미국에 이민 간 교포 아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의 명문 대학입시 필기 시험에서 전체 수석합격을 하였다. 그러나 면접시간에 면접을 하고 난 이후에, 그는 그 명문대학에 입학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유는 그 학생이 중고등학교 6년 동안 다른 사람을 도와준 경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면접 때 "대입시 준비하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주임교수는 

"우리 학교는 학생과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서, 주지 못하는 그런 공부는 해서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이다. 남을 살리는 삶!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쓰여져야 할 학문이, 그 학문을 담은 그릇이 깨끗치 못해서, 그 학문이 오염되었다면, 그 학문은 길가에 버려진 맛을 잃은 소금처럼 무가치한 것이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살 맛을 잃은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어저야할 학문이, 권력과 재력이, 정작 그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 그러한 학문과 권력과 재력은, 되려 독이 되는 것이다.  이웃을 위하여 사랑을 나누어 줄 줄 모르는 사람이, 공부를 잘해서 중요한 요직에 앉게 된다면, 그가 속한 단체는 일제처럼, 히틀러처럼, 레닌이나 스탈린처럼, 인류의 재앙이 될 뿐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격동의 어려움을 격고 있으면서도, 이를 뼛속 깊이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돈을 벌어서 혹은 학문을 열심히 닦아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이에 대한 분명한 목적 의식이 없다면, 먼저 내게 부족한 소양부터 길러야할 것이다. 가치가 없는 삶은, 보람이 없다는 아주 엄혹한 질책이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에 있다.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면 내가 행복하고, 내가 행복하면 다른 이도 행복해 진다. 우리 모두의 행복이 바로 나의 행복임을 깨닫고, 우리의 이웃을 행복하게 하도록 노력하자!

그러면 그 훈훈한 행복의 향기가 내게로 들어와, 나도 그 향기에 젖게 될 것이다. 사랑이 있기에 기다림이 있고, 그 기다림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인생이지만, 보다 더 값지고, 보다 더 아름다운 인생 길에 설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보람된 인생이 아니겠는가! 나로 인해 작은 초불처럼 주위가 환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된 인생일까! 어느 곳, 어떤 자리에 있든지 등불처럼 소금처럼 세상을 환하게 또는 맛갈나게 해주는 그런 삶을 살다갔으면 참으로 좋겠다.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사랑때문이다.  종그니가.

【종그니칼럼】 생명(生命)

종종 임종을 앞두고 있는 이를 지켜 보노라면, 시간의 흐름에따라 점차 의식(정신)이 희미해 진다. 설혹 살아 숨쉬고 있어도, 응당 의식이 깨어 있어야 '살아 있다.'고 할 것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을 잃지 않으면 산다."는 말은 어떻한 상황에도 '곧은 정신'을 놓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사람이 살면서 어떠한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와도, 바른 가치관 인생관에대한 정신이나 소신을 잃어버리면 안된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엔 치매환자가 80%이상이다. 몸이 멀쩡해도 사물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몽롱하다면, 바로 이것이 치매다. 길인지 길이 아닌지, 똥인지 된장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비록 몸은 살아 움직이고 있지만,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의 생명'즉 의식은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나라 통수권자로의 인식, 부모로서의 인식, 자녀로서의 인식, 선생과 학생으로서의 의식, 국가에 대한 국민으로서의 의식, 등이다.  그러므로 꼭 치매가 와야만 사물의 분별력을 잃은게 아니라, 이기(利己)즉 물욕이나 권력등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자칫 인간으로서의 인격이나 본분은 사라지고, 오로지 육체적 본능의 욕구로만 사는, 인면수심의 짐승이 된다.  요즘 이런 현상들을 많이 목도하게 된다. 원래 인간(人間)이란 단어가 말하듯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상호 친밀한 유대관계를 말한다. 이것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고, 육체의 본능만을 따라 사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짐승일 뿐이다.

엇그제 설 연휴기간이었던 지난 1월 20일, 강원도 고성군의 어느 눈 덮인 대나무 숲에서,아직 탯줄도 떼지 않은 아기가, 편의점 비닐봉지에 쌓인 채 발견되었다. 아이의 생모는 20대로 친구들과 강릉으로 왔다가, 아기를 출산한 뒤, 이 아기의 생사여탈권을 쥔 엄마가, 냉혹하게도 눈덮인 산야에 버린 것이다. 지난 달 부터 지금까지 폭설과 함께 영하 20도의 한파가 계속되어,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은 지난 20일, "강원도 고성군 어느 둘레길 근처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어딘지 모르겠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 되었다. 신고자는 서울에서 고성을 찾은 관광객이었다. 그는 "아기가(처음엔) 정말 크게 울었는데, 점점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고 말했다.  출동한 경찰은 일대를 샅샅이 수색한 끝에, 인적이 드문 둘레 길 에서도 30m 이상 더 들어간 대밭 숲 속에서, 마침내 아기를 찾아 냈다.

당시 아기의 체온은 34도로, 저체온증으로 아주 위험천만한 상태였다. 경찰로부터 아기를 건네받은 구급대원은, 따뜻한 식염수 팩을 핫팩 삼아 아기의 몸에 대고, 아기를 꼭 끌어안아 체온을 유지했다. 현장에서 아이를 찾아내 꺼져가는 생명을 살려 낸 구급 대원들은, "탯줄 상태로 봤을 때, 태어난 지 3~4일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고, 해가 지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아기가 발견된 건 기적이었다"고 말했다. 신고자들은 "아기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땅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단다. 사실 어린 아기와 아무 연고도 없는 그들은 "목에 감고 있던 목도리를 모두 풀어 아기를 감싸주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아기를 구조한 다음 날인 21일 오후 3시경, 경기 안산시의 한 주택에서 친모 A씨를 검거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예전 남자 친구 사이에서 낳은 아기로, 처음부터 키울 마음이 없었다"고 진술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열달 동안 자신의 몸속에서 키운 아이를, 어떻게 그렇게 모질게 유기할수 있을까?  그럼 처음부터 키울 맘이 없었으면, 왜 열달 동안이나 임신을 하고  있었을까?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 극으로 치달은 인간의 마음이다. 자기 몸안의 생명도, 이처럼 헌신짝 버리듯 하는 세상에서 지금 우리는 살고 있다.  살이 떨릴만큼 무서운 세상이다.

살아 있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의사표시도 못하고, 아무 방어능력도 없는, 자기 몸으로 낳은 어린아이를, 차거운 눈더미 속에  버릴만큼, 씻을수 없는 죄를 숨기고, 홀가분하게 살겠다는 착각,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뚤어진 생각인가! 이것은 하늘이 내게 준 생명을 이토록 무책임하게, 오로지 살리고 죽이는 것이, 내 손안에 있다는 생명경시의 이기적 사고(思考)다. 그러기에 아이 즉 인간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는 것은, 이들에게는 헛된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낳았으니 내 소유이고, 죽이고 살리는 것 또한 내 손안에 있다고 하는, 이러한 이기적인 사고가, 혹여 오늘 우리의  모습들은 아닌지 두렵다. 이러한 인면수심 (人面獸心)속에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인면수심은, 뉘앙스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다 있다.  그래서 우리의 육성은 날마다 죽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나는 주 안에서 날마다 죽노라!" 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육성이나 죄성이 죽어야, 비로소 내 영혼의 깊은 소리를 들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갈파하였다. 경찰은, 영아 유기와 살인미수 혐의로, A씨를 조사 중이라고 한다. 여러가지 사정이나 피치못할 사유로, 도저히 육아할수 없는 경우에는, 보건복지부 산하에, 이를 주관할수 있는 기관을 두어,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예방할수 있는 폭넓은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싶다. 내가 섬기고 있는 요양원 경내에는 길 고양이들이 있다. 그중 내가 '나비'라고 이름지은 암 고양이가, 지난 해 가을부터 새끼를 낳았는데, 첫 임신에서는 다섯마리를 낳아 3마리는 죽고 두마리가 자랐고, 두번째는 여섯마리를 낳아 모두 아홉마리인데, 아니 벌써 어미가 또 임신을 했다. 

비록 동물일지라도, 생명은 한없이 신비롭고 존엄한 것인데, 이 혹독한 겨울 날, 어떻게 자기 몸안에서 태어난 핏덩이 같은 어린 생명을, 눈밭에 버릴수가 있을까? 아홉마리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면,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다.  이로 보건대 때론 짐승만도 못한 것이 인간이지 싶다. 칼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은 인간의 손이다. 그러나 그 손은 마음을 따른다. 많은 사람이 충고를 받지만, 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그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 사회라는 호수가 맑아야,물고기가 건강하다. 사회라는 호수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여! 두손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이전투구 쌈박질 그만들 하시고, 마음의 호수부터 맑히시라!  종그니가

【종그니칼럼】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이웃인가?

우리는 지금 미국과 러시아가 아니라, 미국의 자유주의체제와 중국의 전체주의체제와의 치열한 패권전쟁하에 있다. 오만한 중국인은 우리 대한민국 국토가 녹두알갱이처럼 네모나고 아주 작다하여, 녹두국(綠豆國)이라고 비하해서 부른다. 그러나 청양고추는 작지만 아주 맵다. 저들이 아직 매운 맛을 몰라서, 열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을 한다. 땅 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많다고 대국이 아니다. 저들은 우리의 것들이 속으론 넘 부럽고 탐이나서 우리 것이라면 무조건 복사하고, 짝퉁을 만들고, '상호(商號') 짝퉁까지 만든다. 그래서 중국은 짝퉁국가다.  그것으로도 성이 덜차서, "우리의 것이 지들(중국) 것과 조금만 유사하다 싶으면, 모두 지들 것?"이라고 우긴다. 그 치기가 너무 좀스럽다. 그럼 "손흥민도 중국인이라 우길건가? 

흔히 중국을 인구로 보나, 땅 크기로 보나, 세계에서 가장 크다해서, '대국'이라 부르는데, 하는 짓은 너무 치졸하다. 이를 비하해서 일본인을 '왜구'라 하듯이, 오죽하면 '중국인'을 '때국 놈'이라고 부를까. 올 2022년 5월, 새롭게 출범하는 새 정부는, 수 많은 외교적 난제들을 안고 있다. 이 난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대다수 우리 국민이 중국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 없이는, 어떤 외교도 탄력과 끈기있게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느 일간지는, 한국의 능동적 외교활동을 가늠 할수 있는 일환으로,  '민심으로 읽은 새 정부의 외교 과제'를 내놓았다. "한국 전통 음식인 김치와 중국의 절임채소인 파오차이."가 그것이다.  중국이 2020년, 파오차이 제조법을 국제 표준화기구 에 등록하면서,  "김치의 원조는 파오차이"라는 억지 주장을 제기했다. 한국 전통음식인 김치와, 중국의 절임채소 음식인 파오차이를,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등록하면서, 파오차이가 김치의 원조에 해당하는 음식이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당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중국이 김치 산업의 6개 국제 표준을 제정했다”고 보도하여, 이 논란을 부추겼다. 엄연한 식(食)문화의 왜곡인 것이다. 파오차이가 김치의 원조라 한다면, 그럼 손흥민도, 삼성도 다 너희 중국 것이냐?”. 

중국의 이같은 문화 왜곡 시도는, 온라인상에서 반중(反中)감정을 눈덩이처럼 키우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김치를 중국음식 '파오차이'로 번역한 문화체육관광부 훈령 제427호를, 바로 잡아달라고, 지난 11일 관계부처에 요청했다. 중국발 ‘억지 원조(元祖)’ 주장의 볼모가 된 것은, 비단 김치 뿐만이 아니다. 2020년 말 중국의 게임업체 페이퍼 게임즈가 출시한, ‘샤이닝 니키’에서 한복을 입은 캐릭터를 선보였는데, SNS를 중심으로 중국 내 일각에서, “한복의 원조는 중국”이라는 주장이 퍼져 논란이 일었다. 또 지난해 4월엔 중국의 한 배우가 “모든 무술의 기원은 중국이다. 태권도 역시 중국 발차기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했다. 뿐만아니라 중국 게임업체가 출시한 게임, "샤이닝니키의 캐릭터", 이 캐릭터는 한복을 입고 있었는데, 중국 내 일각에선, 한복의 원조가 중국이라는 억지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중국의 계속된 문화 왜곡에, 시종일관 저자세 대응으로 일관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 의견도 다수를 차지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중국에 왜 한마디 성명도 없는 것인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서 인가?” 동국정방의 고구려와 발해역사 왜곡까지도? 이처럼 중국의 역사와 문화 왜곡에 대한 분노 못지 않게, 정부의 태도에 대한 불만 또한, 온라인상에서 크게 표출되고있는 것은, 금년 5월이면 새롭게 출범 할 새 정부가, 기존의 대중(對中) 접근법을, 근본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방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와같은 우리나라 문화의 왜곡 시도는, 중국 문화 자체에 대한 반감으로 까지 이어졌다. 강원도 춘천시와 홍천군 일대, 120만㎡(약 36만 3000평) 부지에 건설 예정이었던, 한·중 문화타운 조성 사업이, 여론의 거센 반발로, 지난해 백지화 되었다. 한·중 문화타운 논란은, 지난해 한·중 관계와 관련한 언론 보도 중, 온라인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한·중 문화타운 건설을 반대하는 댓글은, 다소 감정적인 경우도 많았다. “나라를 아예 중국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작정했네”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 “한·중 문화타운을 통해, 한국이 중국 문화를 고급스럽게 만들어, 세계에 자랑하고자 그랬다잖아?. 그래서 강원 최문순지사는,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정체를 모르겠다”는 등, 최 지사에 대한 비판 여론도 비등했었다.

문재인 현 정부의 대 중국 외교를, ‘굴종외교’로 보는 우려도 크다.  지난해 1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온라인 상의 반중 정서는, 한·중 외교 문제에 대한,적극적인 의견 피력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중국 국가주석 간 통화내용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겸 외교부장의, 한·미 동맹에 대한 견제 발언이, 국민들로부터 많은 반감을 자아냈기 때문이다. 한·중 정상 간 통화와 관련해서는,  문대통령이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중국의 편을 든다는, 중국경사론(中國傾斜論)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아주컸었다.

또 “중국은 한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속셈을 이렇게 대놓고 있는데 반하여, 대한민국은 마냥 손 놓고 있는게 안타깝다” 는 등, 한국이 중국에 휘둘리고 있다는 비판 의견도 많았었다. 문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향후 30년의 발전 청사진을 함께 구상하기로 뜻을 모으는 등, 한·중 양국이 이처럼 긴밀히 밀착하는데 대한, 비판 댓글 또한 많았다. “30년을 왜 우리가 저들과 함께 해야 해? 중국이 우리를 파트너라고 생각이나 해? 우리를 지들 발 밑에 두고 있잖아?”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왕이 위원이, 지난해 6월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편향된 장단에 휩쓸리지 말라”는 경고는, 한·미 동맹을 견제한 언중유골(言中有骨 )로 보고, 온라인에서는 아주 격앙된 반응들이 많았었다. 관련 기사를 분석해보니, 중국의 외교 간섭을 비판하는 내용이 36건, 중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의견 또한 36건이었다. “우리나라를 아직도 자기들 속국인 줄 아나? 어따대고 이래라 저래라야! 사드 보복하고 한 한령 내릴 땐 언제고?, 이젠 내정간섭까지 하느냐? 건방지게!” 또 한국의 대중(對中) 저 자세 외교를 비판하는 주요 댓글로는,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평소에 굴종적인 외교에대한 결과가 아닌가! 당당하고 강력하게 대응하여야 한다”고 했다.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즐비한 민주당이나, 정부가 중국에 대하여 취하는 자세를 보면, 못내 씁씁하다. 일본 정부가 거슬리는 한마디를 하면, 좀비떼처럼 달려들면서도, 중국 공산당국이 우리 정부와 국민을, 공공연하게 무시하고 압박을해도, 청와대나 백가쟁명의 민주당 국회의원들 그 누구도, 말한마디 못하고 있는 모양새들을 보고 있노라면, 비분강개해진다. 중공에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현 정부와 민주당은, 이이제이(夷以制夷)도, 지피지기(知彼知己)할 지혜도 보이지 않아서다. 그러한 사고(思考)로는, 대한민국호를 바로 이끌어 갈 국량이나 그릇이 크게 미치지 못하게 보여서다. 대中외교든 대美외교든 당당해야, 以夷制夷(이이제이)도 할 수 있기때문이다.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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