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행복 바이러스를 통해 이웃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
“지금, 파파게노 효과를 일으켜야 할 때입니다”
정부가 4단계 방역을 2주 더 연장했습니다. 예배 회복이 신기루처럼 보이다가 다시 멀어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걸으며 모두 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부가 예배를 간섭하는 일은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전염병 창궐이라는 특수적 상황만 아니라면 한국교회가 예배를 축소하고 온라인예배로 전환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한국교회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합니다. 예배의 존엄성을 지킴과 동시에 방역에도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이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방역을 잘 하면서 현장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작년에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한국교회가 선제적으로 자율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부가 예배를 간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가보지 않고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기에 결단을 미루는 상황에서 예배의 주도권을 정부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한국교회가 방역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선제적으로 자율방역을 하며 정부의 예배제재를 최소화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앞으로는 한국교회 연합기관이 하나되어 그 어떤 바이러스가 와도 자체적으로 철저한 방역 매뉴얼을 지키면서 안전하게 예배드리는 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그랬지요. 중세 사제들은 흑사병이 창궐할 때 공간의 권위를 지키며 믿음의 힘으로 이겨보자고 했지만 오히려 성당이 감염의 온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그때 칼빈은 제네바에서 ‘쿼런틴’(quarantine) 즉, 격리 시스템을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창의적 상상력인 하이 콘셉트와 감성적 공감 능력인 하이 터치의 새 길을 모색한 것입니다. 오히려 칼빈은 구빈원을 만들어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며 정부 관리들에게 손을 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감염에 노출이 많은 분들은 교회로 모이지 말고 성직자들이 조심스럽게 찾아가 심방하고 예배를 드려주도록 했습니다. 당시 제네바 시민들이 볼 때 전염병을 대처하는 칼빈의 모습이 중세 사제들과 너무 비교가 되니까 칼빈을 응원하고 박수를 쳐 준 것입니다. 그래서 흑사병 이후에 중세 가톨릭은 몰락하고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를 보더라도 흑사병이 결코 예배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가톨릭처럼 무조건 모이라고 해서 이기자는 말이 아닙니다.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을 하였던 성직자들이 솔선수범하여 방역의 모범을 보이면서도 예배의 본질과 정체성을 지켰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개혁주의의 전통을 따라 방역을 철저히 하면서도 예배를 지켜가야 합니다. 정부가 예배를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떻게든지 우리는 코로나를 이겨낼 것입니다. 방역에도 애를 쓰고 기도를 함으로써 코로나는 아웃이 되거나 감기수준으로 약화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코로나가 종식되면 우리가 정말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예배와 교회 운영에만 몰두했지 교회 이미지나 브랜드는 신경 쓰지 않았지 않습니까? 제가 늘 강조하는 바이지만 아무리 제품이 좋아도 회사의 이미지나 브랜드가 나쁘다면 현대인은 그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우리가 유일무이한 주님의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교회로 오지 않으면 교회의 미래는 없는 거지요. 이제 우리는 우리만의 이너워십이나 카르텔을 벗어나서 행복 바이러스, 파파게노 효과를 이웃에게 퍼뜨려야 합니다.
파파게노 효과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파파게노'라는 인물에게서 유래가 된 말입니다. 주인공 파파게노는 연인인 파파게나가 죽자 같이 자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나타나 파파게노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자 파파게노는 자살 하지 않고 다시 힘을 내 남은 삶을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흔히 파파게노 효과는 베르테르 효과와 대비해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유명한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이 자살하면 동조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은 베르테르 효과인데, 이와 대비되어 파파게노 효과는 절망과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 행복한 삶으로 인도합니다.
이제 조금만 참으면 코로나는 쇠약해져 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누군가로 부터 위로를 받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때, 한국교회가 위로 바이러스,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파파게노 효과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헤어졌던 성도들, 또 코로나 이전부터 떠났던 사람들이 위로를 받기위하여 교회로 돌아오도록 교회는 지금부터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사진은 새에덴교회가 코로나 19 선제방역을 위하여 설치한 메디컬처치와 지역상권을 살리기 위한 소비운동인 선한소통상품권 사용 모습.
【쿼런틴】칼빈은 메디칼처치의 선구자
14세기 흑사병에 종교집회 강행으로 가톨릭 몰락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가톨릭의 지도자들이 전염병 확산에 치명적인 실수를 하였다. 대규모의 종교집회를 개최한 것이다. 가톨릭은 하나님의 회초리에 대한 전염병을 신앙으로 이겨야 한다며 대규모 종교집회를 열었다. 흑사병은 공기로 전파되고, 타액으로 전파되는 전염병인데, 이런 의학적 사실을 몰랐던 가톨릭 사제들은 좁은 성당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이게 했다.
다름 아닌 중세 가톨릭교회가 수많은 신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확산의 수퍼 전파자가 된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세간에 비방거리가 되었고, 그만큼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결국 흑사병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잘못된 대응은 가톨릭의 몰락과 종교개혁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16세기 칼빈이 살았던 도시들과 스위스 지역에 흑사병이 모두 다섯 차례나 휩쓸고 지나갔다. 특히 1542년 가을에는 흑사병이 스위스 전체와 특히 제네바를 강타해서, 제네바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망하고 말았다.
칼빈이 제정한 “제네바 교회의 목회규정”에서 이미 이러한 질병에 대한 대처방법을 제시한 바 있었다. 일단 감염된 환자들을 시 외곽지역의 병원에 격리수용(쿼런틴)하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격리병원이 오히려 감염환자를 증폭시키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칼빈은 매우 주도 면밀하게 환자들을 돌보는 목양사역에 앞장을 섰다. 시의회에서는 다른 목회자들에게 환자들을 돌보아 달라고 요청했고, 병자를 직접 만나서 위문하는 열정적인 목회의 결과는 죽음이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환자들을 돌보다가 전염병에 감염되어서 죽음을 당하였다. 그 어떤 목회자보다도 먼저, 칼빈이 앞장서서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제네바 목회자들 대부분은 환자를 돌보는 일에 자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시의회는 목회자들을 비판하면서, 모든 목회자들로 하여금 환자 심방과 위로에 나서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흑사병의 참상은 1544년까지도 지속되었다. 칼빈은 다른 목회자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격리병원을 방문하여 환자들을 돌보았다. 흑사병에 대처하여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칼빈의 목회적 돌봄 사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그는 메디칼처치의 선구자였다.
지금 한국교회는 목사들이 환자를 돌봐야하는 상황은 아니다. 의료진들이 대신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들을 격려하고 도와야 한다. 교회가 방역에 앞장 서야한다. "예배드리다가 코로나 걸려 죽으면 순교"라는 어느 목사의 말은 "흑사병은 사탄의 공격이므로 성지순례를 가야한다"고 해서 수천만 명이 죽었던 중세교황의 말이나 같은 것이다. 그게 바로 사탄의 소리가 아닐까?
구한말 동학도들이 가슴에 부적 한 장을 붙이고 조총을 든 일본군과 죽창을 들고 싸웠다. 총알이 가슴에 붙인 부적을 피해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부 전투에서만 3만 명의 동학도가 조총에 맞아 죽었다. 그 전투에서 일본군은 단 두 명만 사망했다. 이게 전봉준 등 몰락한 사대부의 혹세무민이 만든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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