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리와 삶의 관계. 교리의 목적과 삶의 원인과 목적이 같다면 두 요소의 등치나 연결이 가능하다. 교리와 삶은 원인과 목적이 같지 않다. 교리의 원인은 신적 계시(구속주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믿음 고백으로 교회의 주를 고백하며 전파하며 교회를 세움이다. 삶의 원인은 부모(혹은 창조주 하나님)에 있으며 질서와 풍요를 이루는 인생이다. 삶은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할까? 그렇다. 그러나 모든 삶이 거룩해야 할까? 그것은 그렇지 않다. 모든 삶이 아니라 선택된 삶, 그리스도인에게 거룩이 요구된다. 교리는 그 선택된 백성의 거룩의 근원을 다루는 것이며, 거룩한 생활을 위한 규범이 아니다. 교리를 작성한 목적, 정통 신학이 형성된 목적은 교회 안에 있는 이단을 척결시키기 위한 것이다. 종교개혁에서 형성된 신앙고백서(confession)은 자기 믿음 공동체의 규범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다. 거룩한 삶을 위에서 교리 문장을 작성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일반계시 공간에서 활동한다. 교리는 특별계시의 내용을 규범화한 것이다. 교리와 삶이 연결될 때에는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관계 설정을 정확하게 구성시켜야 한다. 그러한 이해가 부족하게 되면 특별계시는 일반계시 안에서 사라지며, 일반계시는 특별계시 안에서 특별계시가 된다.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명료하게 이해해야 한다.

교리는 믿음의 주를 합당하게 고백하여 교회를 세우고, 거짓 교리, 이단 교리를 파악하고 교리를 거룩케하는 믿음 고백 문장이다. 교리는 삶의 거룩이 아니라 교회의 거룩을 위한 문서이다. 즉 목사가 설교에서 입에 담아야 할 문장이고, 성도가 설교하는 목사를 분별할 수 있는 문장이다. 목사는 특별계시에 대한 명료한 이해를 교리에 근거해서 설교하며 가르치고, 일반계시에 대한 제시는 윤리에서 드러나며 상대적으로 가르쳐야 된다.

장로파 목사는 장로파 교리를, 침례파 목사는 침례파 교리를, 감리파 목사는 감리파 교리를, 오순절주의 목사는 오순절주의를, 성결교 목사는 성결교 교리를... 그러면 되지 않을까? 장로파 목사가 회중파 교리를 열심히 탐독하면서 장로파를 가르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장로파 목사가 잉글랜드 국교회(성공회) 사제의 글을 열심히 탐독하면서 장로파 교회를 이룰 수 있을까? 장로파 교회가 최고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장로파 목사가 장로파 교리에 좀 더 집중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까지 한국 장로파에서 최고라고 뽑는 신학자 중에서 장로파 사역자가 몇 명일까? 자기 정체성이 없는 인격은 결국 자기 정체성을 상실하게 될 것인데, 더 위험한 것은 형식과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서, 자기 그룹에 다른 정체성을 이식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장로회, Presbyterian에 합당한 신자와 사역자가 되어 보자. 그리고 장로교가 자기에게 맞지않다면 자기에게 합당한 교파로 옮기면 된다. 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도 장로파 체계가 합당하다면 장로파로 옮기면 될 것이다. 그런데 교회 역사에서 장로파로 돌아오는 종파는 많지 않았고, 장로파에서 다른 종파로 나가는 경우는 많다. 그 이유는 또 무엇일까? 미국 장로파에서는 동성애자 성직자까지 수용하고 있고(한국 장로파에도 주장하는 사역자가 있음), 미국 회중파에서는 간판에 유니테리언이라고 표방하는 성향도 있다. 과연 장로파는 무엇일까?

2. 장로교의 표준문서(standard text)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다. 장로교의 규범적 문서(Rules text)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이다. 장로파이지만 신앙고백서가 다른 장로파가 있기도 하다. 즉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다른 문서 체계로 전향한 교파도 있다. 그리고 동일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여도 다른 문장일 수도 있다. 자기 교파의 표준문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런데 장로교 신학자들이 네덜란드 개혁파 문서, 다른 지역의 개혁파 문서와 동등하게 비교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네덜란드 개혁파가 형제 교단이기 때문에 그들의 표준문서를 바른 규범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만, 장로파 신학을 세울 때에 먼저 자기 규범 문서에 근거해서 신학을 세우는 것이 정당한 자세일 것이다. 장로교 신앙고백서는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나중에 형성된 문서이다. 장로교의 표준문서를 높이 세우는 신학자, 목사,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뒤에 있는 문서 사보이 선언(Savoy Declaration, 1658년), 2차 런던신앙고백서(1669년) 중에서 유지되고 있는 문서는 후자이다. 선언과 신앙고백서는 문서의 규범이 같지 않다.

종교개혁 후기에 형성된 문서에 대한 번역에서 오해를 갖게 한다. Formula Consensus Ecclesiarum Helveticarum(1675년)을 ‘일치신조’라고 번역하는데 오해의 소지가 상당하다. Formula Consensus는 조사 보고서 형식이고, 문서 안에서 제시된 “Canon, 26 항”에서 Canon은 의뢰를 받은 것에 대해서 배격할 요소를 규정한 것이고, 그 문서에서 의뢰받은 사상에 대해서 26가지를 배격한다는 것이다. “일치신조”라고 번역하게 되면 “신앙고백서”와 유사한 권위로 생각할 수 있는데, 교단 안에서 시행된 신학조사보고서와 신앙고백서의 권위는 동등하지 않다. Canons of Dort도 “도르트 신조”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도르트 회의(Synod)”에서 배격한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며, “도르트 포고령(布告令) 혹은 교령(敎令), 교회법” 등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도르트 교회법은 네덜란드 교회가 “일치된 세 문서(Three Forms of Unity, 세 일치 문서)”로 표준문서로 확정하여 규범적 문서이다. 신조(信條)는 Creed에 전유시켜 번역하는 것이 좋겠고, 신경(信經)은 Symbol에 연결시켜 번역하면 좋겠다. Formula나 Canon을 ‘신조’로 번역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런데 Formula Consensus까지 ‘신조’로 번역한다면 문서 권위를 이해하는데 큰 혼란을 줄 것이다.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주님의교회)
고경태 목사(형람서원, 주님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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