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은 다른 짐승들과 다르게 홀로 창조되었다. 아담이 짐승들의 이름을 지은 뒤에, 여호와께서 아담을 잠 들게 한 뒤에 갈비뼈로 여자를 창조하셨다.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의 인간 창조에 대한 대략(the generations, 톨레돗), 좀 더 세밀한 진술로 이해한다. 창 1:31에서 “보시기에 심히 좋음”에서 6일 창조의 완전함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창 2:1-3에서 안식이 등장하고, 4절에서 대략(내력, 톨레돗)이 등장한다.
(창 1:27-31)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창 2:18-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은 여호와께서 주신 여자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창 2: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두 사람을 한 몸이 되리라고 선언, 혼인주례를 하셨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첫 아담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완전한 상태였다. 그러나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였다.
어거스틴은 인간을 네 단계로 제안하였다(Enchiridion, CHAP. 118; On Correction and Grace XXXIII).
(1) 죄를 지을 수도 있는 인간(humans who are able to sin=posse peccare) , 아담과 여자
(2)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인간(humans who are not able not to sin=non posse non peccare) , 타락한 인간
(3) 죄를 안 지을 수도 있는 인간(humans who are able not to sin=posse non peccare) , 구원 받은 인간
(4) 죄를 지을 수 없는 인간(humans who are not able to sin=non posse peccare) , 낙원(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인간
(참고. http://www.monergism.com/thethreshold/articles/onsite/four-fold.html)
첫 아담은 (1) 단계에서 죽음이 없는 상태에서 (4) 단계로 곧장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여호와의 명령(먹지말라, 먹으며 반드시 죽으리라)이 실현되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인류는 2번 상태가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었다. 그러나 주 예수께서 구속하시고 성령을 파송하심으로 (3)번 상태가 혈통을 넘어서 세계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죽음으로 (4)번 상태에 들어간다.
첫아담의 생명에 ‘조건’이 있는 것을 불완전한 창조로 이해한 학자가 어떤 사람이 있는지 필자는 알지 못한다. 첫 생명에 ‘조건’이 없다고 말하는 학자도 없다. 성경에 조건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에는 항상 조건이 있다. 창 2:16-17를 ‘법’으로 이해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첫 언약을 행위언약"으로 정리하였다(WCF 7:2). 언약은 약속이고 법이다. 언약이 문장으로 되면 계명이다.
(창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아담이 “독처(not good that the man should be alone, 창 2:18)”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불완전하게 창조되었다는 주장이 있다(칼 바르트). 그러나 아담은 6일에 창조되었고, 여자도 6일에 창조되었다. 아담이 독처로 창조된 것은 배필에 대한 필요에 대한 인식, 인격적 선택을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이지 불완전한 창조로 읽힐 수 없다. 아담은 자기 독처에 대한 돕는 배필을 보고 너무나 좋아했고, 여호와께서 둘 하나가 되도록 하셨다. 두 사람은 벌거벗었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그리고 창세기 3장에서 뱀이 등장한다. 그리고 첫 여자에게 이름은 없었다. 여자에게 이름, ‘하와’는 범죄한 이후에 아담이 부여하였다(창 3:20).
첫 아담이 “조건 있는 상태”와 “불완전한 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그런데 언약 신학에서 은혜 언약을 ‘조건’으로 볼 것인가? ‘무조건’으로 볼 것인가?가 큰 관건이다. 현재 개혁신학 진영에서 두 이해가 공존한다. 튤립(TULIP)에서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언약에서 '무조건'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혜언약에서 다시 ‘조건’이 등장하면 구원의 확실성을 담보할 수 없다. 그러나 언약(법)에는 항상 조건이 있기 때문에 문법적으로 이해하면 반드시 조건적으로 이해하게 되어 있다. 신학은 문법적 이해를 너머서 신학적 이해를 가져야 한다. 은혜언약에서 무조건을 취하는 것은 어린양의 보혈로 율법을 성취하셨기 때문이다. 은혜언약에서도 조건 문장이 들어가지만 조건으로 이해하지 않고 은혜로 이해해야 한다.
아담이 불완전하게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불완전한 창조가 되면 범죄에 대한 책임이 최소한 아담과 창조주께 부여되기 때문이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죄의 저자(원인)”가 아니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선신과 악신의 두 신 체계의 기독교 신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선하신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어떻게 악이 들어왔는가? 그 신비 앞에 멈추는 것이지 더 이상의 깊음(deep/all speculation)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그 멈춤에 있다. 칼빈은 헛된 사색(idle speculation)에 들어가지 않도록 경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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