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이 글을 쓴 목적은 간략한 글이지만, “행위언약”에 대한 개념은 각 연구자마다 상당히 다른 개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다. 행위언약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만큼 언약 개념도 각 연구자마다 같지 않다. 다름을 총합해서 한 문장으로 결론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혁신학이 언약 사상이 핵심이고 모든 개혁 신학자들이 언약 신학을 강조하지만 모두 약간의 차이를 가진 다양한 이해를 제시하기 때문에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1. 퍼킨스의 행위언약은 모세언약

문정식은 “윌리암 퍼킨스와 윌리암 에임스의 언약신학 비교 연구”에서 윌리암 퍼킨스(William Perkins)의 언약 신학이 구도화된 작품 『황금사슬, A Golden Chaine, 1590년』을 통해서 행위언약을 제시했다. 퍼킨스는 하나님의 언약을 둘로 나누었고, 쌍무적 개념(bilateral coveant)이었다. 언약의 두 종류는 행위언약(The covenant of workes)과 은혜언약(the covenant of Grace)이다. 퍼킨스가 사용하고 있는 “행위언약(The covenant of workes)”은 십계명 즉 율법과 관련된 모세와 맺은 언약(Mosaic covenant)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 WCF의 행위언약

사람과 맺으신 첫 언약은 행위 언약이었는데, 거기에서 완전한 개인적 순종을 조건으로 아담과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WCF 7:2)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행위언약은 첫언약이다. 아담에게 순종을 요구하셨고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참고 어거스틴). 아담은 개인의 순종이지만 인류 대표의 자격이 있다. 아담의 불순종, 창조주 하나님께 반역함으로 인류의 보편 원리가 죄, 죽음이 되었다.

WCF의 행위언약은 창조주 하나님과 범죄하기 전 아담과 맺은 언약(Adamic covenant)이다. WCF에서 은혜언약은 율법과 복음이다.

3. 존 오웬의 행위언약

장헌민의 “약속과 보존 : 존 오웬의 모세 언약론 연구”(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박사논몬, 2014년)에서 오웬의 언약신학 구조를 a. 구속 언약(The Covenant of Redemption), b. 행위 언약(The Covenant of Works), c. 은혜 언약(The covenant of Grace), d. 모세 언약(Mosaic covenant)으로 제시했다. 오웬은 모세언약과 행위언약을 다름을 밝혔다. 그리고 장현민은 오웬이 은혜언약에 모세언약을 부가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4. 코케이우스의 행위언약

코케이우스(Johannes Coccejus, 1603-1669, 꽃체유스, 콕체이우스: Summa doctrinae de foedere et testamento Deo (“The Summa on the Doctrine Concerning the Covenant and Testament of God”), 1648)는 행위언약을 “하나님과의 교제와 의를 얻는 방식”으로 제시하였다(서철원, 인간론, 174). “의는 행위들에서 나온다. (중략) 그러므로 그는 율법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인간론, 175). 코케이우스는 행위언약을 첫언약으로 제시하면서, 율법 준수에 대해서 말한다. 이것은 모세언약과 행위언약을 혼동한 것이다(인간론, 175). 행위언약과 모세언약을 혼동한 것이다(인간론, 176, 177). 행위언약은 첫언약이고 본성언약(foedus naturae)는 바르지 않다(인간론, 179). 그런데 본성언약은 자연언약, 창조언약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서 코케이우스의 언약 사상이 잉글랜드, 독일, 스코틀랜드, 뉴잉글랜드, 네덜란드에 영향력을 끼쳤다고 제시하고 있다.

5. 바빙크의 행위언약

바빙크 박사는 행위언약을 “초자연적 은혜가 없는 상태에서 언약을 지킬 수 있는 수준”으로 제시했다(바빙크, 개혁교의학 2권, 708). 바빙크는 행위언약에 아름다운 사상이 있다고 표현하였는데, 타락 이전의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을지라도 아직 최상의 상태를 소유하지 못한 사실이다(개혁교의학 2권, 714). 그리고 루터파와 개혁파가 아담의 상태에 대해서 다르게 이해한 것을 제시했다. 루터파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최초의 상태를 이상적 인간의 실현이고, 그 이상이 아담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고 그 보다 더 높은 상태는 불가능한 것으로 제시했다. 아담 안에 거룩한 삼위일체의 완전하고 은혜로운 내주가 실현되었다는 것이다(개혁교의학 2권, 715). 그러나 개혁파는 어거스틴의 견해를 따라서 아담은 최상의 것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이해했다(개혁교의학 2권, 715). 최상의 것은 실질적인 자유이며 더 이상 오류를 범할 수도 범죄할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상태이다. 신자는 그 최상의 것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직접 받았다. 그들은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고, 더 이상 죽을 수 없고, 믿음을 통해 즉각적으로 상실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다(개혁교의학 2권, 715).

나가는 글

웨스트민스터총회에서 작성한 문장은 세 왕국의 교회들을 한 믿음으로 묶을 수 있는 총의적 개념이 있다. 모든 교회가 합의할 수 있는 문장은 성경을 그대로 제시하는 것이다. 성경에 조금의 사색을 가미하면 각각의 사색이 충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상당히 특이한 문서인데 그것은 개혁파 교회 이룸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세 왕국이 한 개혁된 교회 이룸을 위한 문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총합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문장을 작성한 잉글랜드 교회에서 자기들이 작성한 문장을 거부하고 배척한 것은 특이한 일이다. 그리고 업저버로 참석한 스코틀랜드 교회가 그 문장을 표준문서로 채택한 것은 교회 역사의 신비이다. 17세기 당시에도 수 많은 다양한 언약 이해를 갖고 있었지만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로 합의하였다. 다양한 언약 이해를 정죄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언약 이해들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중심으로 한 교회를 이룰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문서는 실현되지 못한 채 스코틀랜드 교회의 표준문서가 되었다. 그리고 장로교회의 표준문서가 되었는데, 장로교회에서 표준문서는 성공회 39개신조처럼 모셔놓고만 있는 문서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각 교단이 자구적으로 수정하는 문서가 되었다. 그럼에도 장로교회에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위치는 절대적이다. 지금도 모든 연구자들은 자기 나름의 언약 이해를 창출하고 있다. 이 다양한 언약 이해를 하나로 결합시키면 어떤 개념이 될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거의 불가능한 수준일 것이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를 표준으로 삼고 자기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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