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가을 인생
【종그니칼럼】안경
내가 초등하교를 졸업할 무렵이었으니까 아마 13살 쯤이지 싶다. 그 무렵 나는 안채 끝자락에 있는 갓 방을 혼자 쓰고 있었다. 그 날 오후 부터 싸래기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 날이었다. 그 땐 아직 전기 불이 없던 때라 해만지면 온 마을은 적막강산처럼 어둠에 싸여 간혹 개 짖는 소리 뿐 떠들썩하던 대낮과는 달리 아주 조용했다. 밤은 깊어 눈보라 치는 스산한 겨울 바람소리에 창문에 뚫린 구멍으로 밖을 내다 보는데 앞 마당에 어둔 그림자가 서성이는가 싶더니 내가 있는 방문 앞으로 성큼 다가 와 곧 바로 검정 옷을 입은 사내가 바깥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순간 나는 숨이 넘어갈말큼 놀라 방 안쪽 문고리를 잡고 큰 소리로 외쳤다! 도둑이야! 도둑이야! 그러자 내 방 문고리를 잡고 있던 도둑이 내 갑작스런 소리에 놀라 한발 뒤로 물러섰다. 나는 계속해서 목청껏 외쳤다.
그러자 사랑채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안 마당으로 쏟아져 나왔다. 도적은 슬금 슬금 뒷걸음을 치더니 안채 뒷동산 쪽으로 몸을 숨겼다. 사랑채 사람들이 온 집안 뜰을 샅샅이 뒤졌으나 도둑아니면 강도 였을지모를 그 놈은 36계 줄행랑을 쳤다. 그날 밤 나는 오만가지 생각들이 내 작은 가슴에 밀려왔다. 그 때 우리 마을엔 이종 사촌이 살고 있었는데 어떤 일로 아버지의 호된 꾸중을 듣고 앙심을 품고 있다가 그것 때문에 나를 해꼬지하려 내 방문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을까? 그 이종 사촌은 몇년 후 위암으로 죽었다. 그날 밤 나는 밤 늦도록 책을 읽다가 우연히 바깥이 궁금하여 뚫어진 문풍지로 앞 마당을 내다보는 순간 도둑을 보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벌써 일흔 해가 다 되어 가는 지금도 그때의 절박했던 일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옛부터 "도둑은 잡지 말고 도망치도록 길을 열어주라."는 말이 있다. 도적질이나 남 호주머니 돈을 훔치는 것이 몸에 배어 버리면 종내는 양심의 가책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죄의 속성이다.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땐 집집마다 애들은 기하급수적으로 차고 넘치는데 먹거리가 이를 따라주지 못해서 하루 한끼도 어려운 가정들이 수두룩 했다 그래서 며칠동안 먹지 못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좀 도둑들도 많았었다. 이처럼 먹거리가 없어 내 사는 집에 도둑이 들어 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전 젊은 날 나는 부억 딸린 방한 칸에서 셋방살이 하던 신혼 때에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좀 도둑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이 도둑은 책상 위의 생 밤과 먹다 남은 과일까지 다 먹고 갔다. 참 배고픈 도둑이었던가 보다.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이야기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나 홀로 신작로 길로 오만 해찰을 다하며 집으로 가는데 길가 언덕배기에 보자기로 싼 큰 뭉치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나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 보따리를 살피는 순간 눈이 뒤집혔다. 일만원짜리 돈으로 가득 찬 보따리 였다. 나는 그 어린 나이 에도 돈을 보자 이 엄청난 돈을 잃어버린 사람의 맘을 헤아리며" 이 돈 보따리가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된다." 생각하고 집으로 왔다. 하지만 몸은 집에 있지만 맘은 온통 그 돈보따리에 있어선지 안부가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돈보따리가 있던 자리로 가 보았다. 그 어간이 두시간 쯤 되었을까? 그러나 돈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아마 돈 임자가 찾아갔으리라. 칠십년이 지난 그 때의 일이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양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천금의 돈이 임자를 잃어 '점유일탈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내가 아홉 살 때에 있었던 일로 나는 지금 어언 80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때의 일이 떠오를 때면 입가에 웃음이 돋는다.
선거에 의해 나랏 일을 맡은 대통령이나 자치단체장으로 당선된 자가 초 헌법적인 방법으로 국난을 자초하거나 국가권력을 농단할 때 이는 국민의 권리를 강탈 혹은 도적질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국민과 역사의 심판이 따르게 될 것이다. 주어진 법에 의해 나라 살림을 잠시 맡고있는 호민관의 자리에서 일탈할 때 그것은 나라의 것을 자의적으로 농단하는 탈법적 범죄인 것이다. 옛말에 '견물생심'이란 말처럼 인간은 눈앞에 보이는 것에 약하다. 이는 마치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처럼 "먹지 말라"한 금단의 열매에 탐심이 생겨 먹어서는 안될 열매를 따 먹고만 것처럼 이 나라를 중흥시킨 박정희와 같은 시대의 흐름을 읽는 방향 감각도 없으면서, 손에 닿을듯 금단의 열매가 바로 눈 앞에 아른 거릴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이는 권력의 열매에 손이 가는 불쌍한 아담들! 불빛을 쫒다가 불섭속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본능적인 권력욕에 사로잡혀 자신조차도 다스릴줄 모르는 위인들이 능력밖의 것에 허욕을 내다가 권력의 늪에 빠진이들의 말로가 어찌 되었는가? 누구는 그 때문에 죽어서도 유골이 묻힐 곳이 없는 이도 있다. 자유 대한민국의 무궁한 내일과 오늘의 대한국민을 위해서도 이런 일은 없어야 한다. 북한 김일성을 보라! 오로지 초법적으로 거머 쥔 권력으로 인민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실로 듣도 보도 못한 소위 김일성 일가의 전제 제국을 만들어 북한 인민을 권력의 시녀나 노예로 추락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은 보다 눈을 크게 열고 세상의 모든 매임으로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리가 꿈에 그리는 참 자유와 그리고 누구나 다 풍요를 구가할수 있는 상생의 날을 이끌어 가자! 동시대를 살면서 현재 있는 것보다 분수 이상의 것, 절대 먹어서는 안될 금단의 열매에 눈독을 들이지 말고 다시 탐심을 비우고 우리의 양양한 내일을 보자! 그리하면 먹어서는 안될 '금단의 열매'가 아니라 반드시 내가 지녀야 할 '사랑의 열매' '희생의 열매'가 보일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꼭 필요한 것은 권력이나 재물이 아니라 포용력있는 사랑과 용서와 화해가 사람사는 사회에서 최고의 덕목이 되어야 한다.
온 인류의 죄성을 끌어 안고 '십자가 사랑의 제단'에 어린 양으 로 죽어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예수는 우리를 향하여 "원수를 사랑 하라" 하시고 스스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주셨다. 이 진순무구한 사랑으로 지금 우리가 상생의 삶을 살고 있다. 국가의 시원을 설명하기 위해 '사회계약설'이 있다. 국가란 공공사회의 안전과 질서를 위한 상생의 약속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란 사회계약 즉 공동체를 위한 약속 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전제위에 세워진 사회공동체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계약을 번번히 깨뜨리는 것은 그 사회공동체를 이끌 권한을 위임받은 자들이었다. 나라의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나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나 또는 그 이상의 것에 탐욕을 내는 것은 법치주의를 솔선 수범하여야 할 수임자가 모름지기 지켜야 할 불문률이다. 성경은 무릇 "지킬 만한 모든 것 위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말씀하고 있다. 헌법에 주어진 권한 이상의 것에 탐심을 버리라는 얘기다. 누구나 주어진 권한 즉 '도로 위의 차선'은 스스로의 방어능력이 없다. 술에 취한자나 잠에 취한자 그리고 이 공공질서 의 약속을 어긴 자는 마치 믿고 맡긴 권한으로 국권을 농단하려는 것과 같다. 중국 후한(後漢)때에 후삼국 위(魏) 촉(蜀) 오(吳)의 三國이 잠시 정립하던 때에 유현덕을 도와 촉(蜀)을 세운 '제갈공명'도 죽음에 이르러 독백처럼 "내가 젊은 날 적을 너무 많이 죽여 벌을 받고 있다."며 "전쟁에서 패하여 도망치는 적을 도망 칠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군웅할거의 피 바람이 부는 시대가 지나가자 후삼국 주역들의 욕망과는 거리가 먼 여러 혼돈의 과정을 거쳐 隋에 이어 唐이 들어 섰다. 그래서 인류사는 인간이 써 내려 가는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그분의 역사 History"인 것이다. 인간들은 이처럼 하나님이 펼쳐 준 무대위에서 주어진 곡예를 하다가 무대가 끝나면 무대 뒤로 사라진다.
내가 어렸을 때 고향집엔 싸리나무 울타리가 있었고 사랑채와 안채 뒷켠에는 나즈막한 동산이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언제나 열려 있는 작은 샛문이 있었는데 이 문을 통하여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꼬맹이들은 대문보다 이 샛문을 더 선호 하였다. 이 샛문은 누나가 마실을 가거나 혹 군것질을 사러 전방을 갈 때에 뻔질나게 이용되었다. 옛날 어른들은 알면서도 눈 감아 주고 속아 주는 배려가 많았던 것 같다. 바로 이것은 마음의 여유이고 아량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는 지극히 엄격하면서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헤아리듯 남을 헤아리는 사회, 이 얼마나 사람사는 사회의 훈훈한 모습인가! 추석을 앞두고 내가 살고 있는 '행복이 가득한 집' 요양원엔 입소하신 가족친지들의 방문으로 정신이 없다. 그래도 피곤치 않은 것은 요양원에 모실수 밖에 없는 가족들의 안타까움이 얼굴에서 또는 몇 마디 말속에서 다 배어나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흘러 가족이 해체되어 가고 있다 할지라도 그래도 아직 가족애가 애틋하게 살아 숨쉬 고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된 곳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므로 "보람과 사랑을 먹고 산다" 그래서 먹는 입에 들어 가는 게 없으면 '입이 포도청'이기에 "먹거리에 인심난다." 고 했다. 내가 서울 이촌동에서 목회 할 때의 일이다. 내가 시무하고 있는 교회가 너무 비좁아서 교회 인근에 155평 철도부지가 공매로 나왔다. 나는 첨부터 이 땅을 눈독들이고 교회부지로 매입코자 서울 용산에 있는 '서울지방 철도청'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마침내 그 땅을 공매할수 있게되었다. 그래서 서울 명동 제일은행에서 현금 200만원을 찾아서 (그때 200만원은 지금 2000만원은 족히 될것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용산에 있는 '지방 철도청'으로 가면서 돈을 양복 안 주머니에 챙겨 넣고 팔꿈치로 꽉 누르고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는데 차안에 앉을 자리가 있는 데도 사람들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제야 낌새를 알아 차린 나는 즉각 운전기사에게 "여기서 차를 세워 달라"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버스 기사가 즉시 차를 세워 주었다.
나는 차문이 열리자 곧 바로 뛰어내렸다. 버스는 떠나가고 안 주머니에서 돈 다발이 길 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하고 양복 안쪽 주머니를 보니 주머니가 예리한 칼끝에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내가 팔꿈치로 돈 다발을 꽉 짓 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돈이 내 수중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참 아찔한 순간이었 다. 나는 오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일이 어제의 일처럼 생각 날 때면 지켜주 신 하나님께 감사가 절로난다. 그 당시 나는 교회부지를 구입하려는 의지가 강했 기 때문에 이를 "하나님이 지켜주셨다"고 믿고 있다. 이처럼 만난을 무릅쓰고 교회부지를 구입했는데 내가 하동, 부산 영도로 전전하는 동안 이 때 매입한 땅이 천정부지로 올라 이 땅을 팔아서 용산 삼각지 국군전쟁기념관 옆 부지를 매입하고도 그 남은 돈으로 현재의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 교단에서 나온 후였기때문에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아무튼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쓰셨다. 내가 열세 살 때의 일이다. 오늘처럼 추석을 바로 앞둔 가을 들녘엔 누렇게 익은 벼이삭들이 황금 물결을 이루며 농부들의 낫을 기다리고 있는 벼들을 몇 날에 걸쳐 낫으로 가을 추수를 정신없이 마치고 나면 가을 들녘은 텅빈 헛간처럼 삭막했다. 가을의 풍요를 집 마당에 볏단으로 모두 채우면 볏단에 치여서 다니기도 힘들만큼 꽉 차게 된다. 마당 한 복판에 하늘 높이 쌓여있는 나락 볏가리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어린 내도 이리 좋은데 여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하신 부모님들 맘은 얼마나 흐뭇하실까! 그래서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다. 철없던 우리는 그 볏가리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았었다. 내가 어린 시절 그때는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식량보다 입들이 많아 식량이 아주 모자라 던 때라 볏단을 훔치는 이들도 있고 또 홀태로 훌터놓은 벼를 훔치는 이들도 있었던 아주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견물생심이란 말이 있다. 내 손끝에 새우깡이 있으면 새우깡이 다 없어질 때까지 손이 간다. 내가 어렸을 때 하삼암 (河三岩)이란 이가 있었다. 그가 어쩌다 품팔이가 있어 쌀이나 보리 한되박이라도 생기면 어린애들 삼남매는 아예 먹지도 못하게 하고 혼자 다 먹는게 다반사였다. 이유는 내가 살아야 애들도 살 수 있다는 거였다. 자식 사랑보다 자신이 먼저였다. 그는 몇년 후 병을 얻어 아직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인간의 생명이 양식이나 돈에 있는게 아닌데 우리는 그것에 목을 맨다. 권력도 부귀도 유한한 세상에 사는 우리는 잠시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고 했다. 우리는 오랜 세월이 흘러 인생에 대해 눈이 열린 후에야 창조주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가 있다. 나를 이땅에 보내신 이에게 맡기고 사는 삶, 그것이 "마음의 여유"이고 "지혜"다. 세상 일은 꼭 생각 처럼 되는 것이 아니다. 이치나 원칙만으로도 무소불위의 권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널부러져 있다. 그러니 날마다 맘을 비우고 남의 사소한 허물을 덮어주지 못하고 몰아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오늘을 사는 우리도 샛문처럼 여백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묵화의 넉넉함과 아름다움을 즐길 줄은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데는 너무도 인색하다.
가진 자들이여! 국민들이 눈 아래로만 뵈는 자들이여! 항상 위만 쳐다보지 말고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구름이 대지위로 비를 내리듯이 우리가 사는 것은 소유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늘이 주는 은혜로 사는 것을 알자! 적정한 소유가 마음의 평안을 주고 남을 헤아리는 여유가 있는 삶이 풍요를 준다. 제주도 돌은 하나같이 구멍이 뻥뻥 뚤려 있다. 제주도 돌담 길은 엉성하지만 뚤린 구멍때문에 드센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다. 이처럼 우리네 삶에도 빈틈이 있어야 그 빈틈새로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돈을 귀히 여기는 자는 탐욕에 빠지나, 사람을 귀히 여기는 자는 모든 것을 얻는다." 그래서 인생은 하늘의 영광이 되기도 하고 또 우주의 오욕(汚辱)이 되기도 한다.
【종그니칼럼】안경
안경은 눈의 시력이 약한 사람의 안력을 높여주는 보조기다. 나는 근시에다 난시여서 안경없이는 무척 답답하다. 내 시야에서 좀 떨어진 글은 읽을수 없다. 돌아가신 울 엄마는 글을 읽지 못하셨다. 눈이 나빠서가 아니라 한글을 터득하지 못하셨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경험은 살아있는 교육이란 말처럼, 우리 다섯 남매를 기르시고 언제나 일손이 모자란 우리집 안팍 살림을 두루 잘 해내시었다.꼭두 새벽에 일어나셔서, 집안팍에 가득 쌓인 일들을 모두 챙기시고 하루 한끼도 거르는 일 없이 우리를 양육하셨다. 봄이면 몇십리 깊은 산골까지 가셔서, 산 나물을 한자루 가득 뜯어 오셨던 어머니! 혹여 우리가 반찬 투정이나, 밥이 거친나물 밥이어서 먹기 싫다고 하면, 그 끼니는 굶는 것이 어머니의 법이었다. 아! 어머니! 나 이제는 그런 철없는 소리, 어머님께 복창터진 소리, 이젠 다시는 안할테니, 모진 세월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늙어 쭈그러진 그 얼굴! 한번만 보여주세요. 이제야 철이 들어, 어릴때 나의 철 없는 면박에도, 당신 자식이란 이유로, 마냥 인자하셨던 그 모습! 단 한번만 보여 주소! 꿈속에서도 좋으니 보여 주소!
우리 5남매를 길러 내신 울 엄마 손은, 가녀린 여인네 손이 아닌 영락없는 시골 남정네 손이셨다. 산에가서 나무를 해오시고, 터밭에 있는가 하면 마웃들 논에, 도봉골 밭에, 터지네 논에, 아니 뒷동산 과수원 밭에, 새벽 미명에 일어나셔서, 밤인지 낮인지 구별없이, 평생 자식 들과 일만 알고 사시다 가신 울 어머니! 밤이면 밤 늦도록 베틀에 앉아 '베틀가'로 시름을 달래시며 베삼을 짜시던 어머니! 꼴망태 가득 소꼴을 베어 이고, 들판을 가로 질러 곰박산이 나게 오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이제사 내가 철이 들어선지 맘 시리도록 보고 싶다! 아! 내 가슴속엔 울 엄마로 가득차 있는데, 왜 이리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는가! 내가 이제 눈이 어두어 울 엄마를 보지 못하는가!이제는 목이 쉬도록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살아계실 때 이렇게 가슴시리도록 보고 싶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만 항상 곁에 계실 줄 알고 언제나 어머니께 심드렁하게 했던 제가 몹쓸 자식입니다!" 옛날 정철 시인이, "어버이 살았을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돌아간 후면 아엽다 어이 하리, 생전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한 詩가 입술에 고인다. 오늘 천번 만번 억만번을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여! 이제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를 마냥 그리워만 할 것인가? 이승에서는 다시는 못 뵐 하나님 나라로 가신 엄마! 이제는 내가 여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 어머니의 가슴으로 산자를 위하여 "네 곁에 있는 이를 네 몸 대하듯 살라"는 교훈이다. 너는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그럼 이제 주의 종된 하나님의 눈으로 이웃이 보이는가? 혹여 세상 소욕으로 보이지 않거든 사랑의 안경을 끼고 보시라! 미운 사람을 미운 눈으로 보지 말고,어머니를 보고파 하는 그 가슴으로, 하나님이 너에게 붙여 준 네 이웃을 보라! 그 이웃이 보이시는가? 그것이 '사랑의 안경'이다. 네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만 보이는 사랑의 눈이다.
내게 있어 안경은 제 2의 눈이다. 나는 근시(近視)에다 난시(亂視)다. 그래서 글을 쓰는 데는 안경이 없어도 별 불편이 없는데, 내 시야에서 좀 떨어진 사물이나 글을 보려면, 안경이 없으면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안경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언제 부턴가 나는 건망증이 심해서, 눈에 안경을 끼고도 안경을 찾을 때가 많다. 그뿐 아니라 일년이면 한 두차례씩 요양원 텃밭에서 일하다가, 안경을 잃어버려,여러 날에 걸려 겨우 잃어버린 안경을 찾을 때도 있다. 어느 할머니가 손주를 업고 키우는 3년 내내, 손주를 찾았다는 말이, 바로 나를 두고 한 말이다. 저녁에 안경을 침대 잠자리 곁에 두고 잠을 자다가도, 내 잠 버릇이 나빠서, 머리로 혹은 몸뚱이로 안경을 짓눌러서, 고치러 안경점을 찾아간 것만도 여러번이다. 주인을 잘 못만나서다. 이렇게 수난을 격으면서, 안경다리가 구부러지고 휘어져서, 안경점에서 고쳐 왔으면 좀 조심해야 되는데, 이것은 조심한다고 되는게 아니었다. 그때마다 나의 마누라로부터 핀잔을 얻어 듣는게 다반사 였다.
그렇게 자존감 긁는 잔소리를 들었으면 좀 달라져야 되는데, 언제나 도로아미다. 지난 해에 자동차 면허증을 재발급 받을 때, 재발급 요건 중 하나가 '치매진단서' 첨부 였다. 아니 '건망증진단서' 가 아니고 웬 '치매진단서' 라니? 이런 우여곡절을 격고서야 겨우 재발급을 받으면서, 기한은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었다. 나이 많은 것도 죄인가 싶다. 정말이지 병원에가서 '치매진단서를 발급받는다.'는 사실이 늙은이의 심사를 뒤틀리게 할만큼 자존감을 긁는 처사다. 아무리 교통사고의 원인이 늙은이들에게서 많이 발생한대도 그렇다. 음주 운전자의 운전부주의 사고가 훨씬 더 많을 텐데, 음주 운전자들을 늙은이들 한테 하듯 하면, 사고 발생률이 확 줄어들텐데 말이다. 눈에 낀 안경도 소리없이 내몸에서 일탈을 해서, 그래서 불편한 것들이 어찌 늙음 뿐이겠는가? 초고령 사회가 눈앞에 와, 인구 절벽시대를 실감하는데, 늙은이들을 너무 홀대하지 마시라! 온 나라 시골 지킴이는 늙은이들 뿐이다.
치매 여부를 가려내서 교통사고를 줄이겠다는 사고, 이것은 교통사고를 빙자한 나이 많은 노인에 대한 인격 모독이다. 나이 많은게 무슨 죄인가? 요즘 우방국 미국이 대통령관저를 도청했다는 외국 뉴스가 터지면서,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소란스럽다. 대통령실 김ㅇㅇ씨가 왜 갑자기 물러났을까? 혹여 이와 연관된 것은 아닌가? 그런데 정작 도청을 당한 대통령실은, 미국을 적극 옹호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여조삭비 (如鳥數飛)라는 말이 있다. 새가 창공을 날기위해서는 끊임없이 날개 짓을 해야 한다는, 논어(論語) 학이편에 있는 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뜻이다. 혹여 사건을 호도하려 전전긍긍하시지 마시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지혜를 찾으시라! 위정자나 언론이나, 안경을 잘못 끼고 보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면 색안경 색깔대로 보이는 법이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 잡는 최고의 정치 수완은 투명성이다. 혹여 거짖으로 있는 사실을 호도하려 마시라! 그것을 우중정치(愚衆政治)라 한다. 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에게로 돌아 간다. 국민의 눈은 정치실무자 보다 한수 위에 있다. 배가 바다 위를 항해하지만, 그러나 배를 띄우는 것은, 바로 국민인 바다다.
나는 며칠 전 고추를 심으려고, 삽으로 밭두렁을 만들고 비닐로 덮는 작업을 하다가, 늦게서야 안경이 내 얼굴에서 일탈한 것을 알았다. 손으로 얼굴을 만져 보니 안경이 온데 간데 없어졌다. 안경을 잃어버렸구나 생각하니, 눈앞이 더욱 캄캄해졌다. 아무리 눈에 쌍심지를 켜고 봐도 안경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다음 날 혹시나 하는 맘으로, 맨 나중에 작업한 이랑을 눈여겨 보는 순간, 아 글쎄 흙속에 묻힌 안경테가 빠꼼히 보였다! 반가운 맘으로 안경이 내 손에 집히는 순간, '이젠 정녕 잃어 버렸나보다' 했던 체념이, 일순 반가움으로 교체되면서, 아! 이다지도 반가 울수가 없었다! 눈물이 펑펑 쏟아질 만큼 반갑다! '한국 호'가 길을 잃은 듯 자꾸만 갈팡질팡 하는 현 정부가, 있어야 할 본연의 제자리로 돌아 올, 열린 눈을 갖게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주여! 이 정부를 축복하소서! 아하시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신 하나님! 저들의 눈을 활짝 열어 보게 하옵소서! 인간은 높아지면 높아 질수록, 현실직시의 안목이 없으면, 파멸은 더 큰 법이다. 그러기에 나라를 책임진 사람은, 겸손하게 죽어져야 한다. 진실로 현명한자는 흐트러짐 속에서도, 자신의 부조리를 찾아낸다.
【종그니칼럼】가을 인생
내가 어렸을때 나는 농사 짓는 일이 너무 싫었는데, 선친께서는 농사꾼으로 사는 것이, 세상 때를 안묻히고 사는 길이라며 농부로 살라고 하셨지만, 나는 학문으로 안목을 넓혀,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젊은 꿈을 펼치고 싶었었다. 그래서 나는 선친이 돌아가신 이듬해, 아버님의 바램을 저버리고, 새끼 소와 쌀 한가마를 팔아 만든 일만 오천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당시 영어강사로 유명한 안현필씨가 설립한, 서울 종로1가 EMI학원에서, 근학생으로 험난한 서울 유학생활을 시작하였다. 어찌보면 안해도 될 고생을 사서한 것이다. 대입준비를 하다가, 산사로 들어가 일년 육개월이 흐른 이듬해, 사법및 행정요원 예비시험과 사법1차시험에 합격, 그때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 싶었었다. 이때 내 나이 스물 둘이었다. '청운의 푸른 꿈'은 수많은 난관도 장애물이 되지 못한듯 보였다. 그리고는 내 인생길이 내리막 길이었다.
그리고 지금 필설로 다할수 없는 험난한 우여곡절을 격은 후에야, 주의 종이 되어, 종의 길을 걸어오다. 이제 늙어 노년을 요양원에 서 보내면서, 내 어렸을때 선친께서 '농부가 되라' 하신 말씀의 깊은 뜻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터밭에서 채소를 가꾸며 선친을 기리고 있다. 꼭 영락없는 청개구리 심뽀다. 이렇게 세월은 덧없이 흘러, 금년도 어느 덧 시월, 바로 어제가 찬 이슬 내린다는 寒露이고, 십여일 후면 霜降이다. 그러고 보니 금년 한 해도, 저 망각속으로 저물어 가고 있다.
중국 당(唐)나라 말기 시인 杜牧(두목,803~852)이 쓴, '秋 山行'(추 산행) 이라는 詩가 있다.
"遠上寒山石徑斜
멀리 가을 산 비탈진 바위 길을 오르노라니,
白雲生處有人 家
흰 구름 피어 오르는 곳에 인가가 보이네,
停車座愛楓林晩
수레를 멈추고 늦 가을 단풍을 즐기노라니,
霜葉紅於二月花.
찬서리에 붉게 물든 단풍이 이월의 꽃 보다 더 붉네."
가을 산야에 서리가 내리면 온 산이 붉게 물드는데, 내 나이 칠십이 넘어 머리에도 찬 서리가 내려, 서릿발 처럼 백발이 되니, 젊은 날에 충일했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마저 이젠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지난 날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밤잠을 설칠만큼 너무도 신바람이 났었는데, 이제는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려는 욕구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욕구가 사라져 가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기억력마져 가물가물해져 가고 있다. 이제는 눈마저 침침해져서 글씨도 잘 안 뵈는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익숙한 것들을 젖혀 두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만한 용기마저도 없다.
이젠 눈도 않 좋고 길치가 되어서, 자주왔던 길도 생소하게 느껴질때도 많다. 스마트폰의 다양한 용도도 내겐 그림의 떡에 불과할 뿐이다. 겨우 통화하고, 카톡하고, 달아나버린 옛날의 앎을, 겨우겨우 되찾아와서 글을 쓰는 낙 이게 전부다. 그러니 내가 칩거해 온 손때 묻은 조그마한 방, 역시 손때 묻은 책과 휴대폰이, 진한 정감이 배여있어서 좋다. 어디 그 뿐이랴! 평생을 아날로그로 살아와서, 아무리 디지탈시대라 해도, 난 여상히 아날로그에 머물고자 한다. 이젠 몸도 갈수록 무거워져서, 걷기조차 불편하다 보니, 때론 "새로운 것에 한번 시도해 볼까"했다가도, 이내 용두사미가 되고 만다. 이제 금년도 만추가 되어 나뭇잎새가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어떤 늙은이는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하며, 늙어 가는 것을 무척 아쉬어 한다. 그러나 지금 일흔 여섯 이 나이가 내게 딱이다. 내가 이 나이까지 무탈하게 살아온 것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다. 전라도 임실에서 태어나, 서울. 하동, 부산, 청평, 그리고 지금 춘천에서 말년을 지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격었던가! 그럼에도 세상에 함몰되지 않고,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말년의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 모든 것에 감사 할 뿐이다.
수개월전부터 주방에서 일 할 조리사를 구하지 못해 얼마나 애를태웠던지. 요즘 서로 이 나라 대통령이 되겠다고, 똥통속의 구데기떼들처럼 난무하고 있는데, 참 기가 찬다. 어제까지 노심초사끝에 인원이 충당돼서, 가까스로 위탁은 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주님께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에 비해 지금은 인구 수가 엄청 늘었으니 일할 일꾼도 많아져야 하는데, 인구가 아무리 많아져도, 하나님이 찾는 일꾼은 점점 더 희소해져 가고 있다. ‘일꾼이 적다’라는 주님의 말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귓전을 때리고 있는 것은, 주님께 아멘으로 순종할 일꾼이 아주 적어졌기 때문이다. 오로지 세속적인 것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어서, 정작 적재적소에 필요로 하는 일꾼이 없는 것이다. 세월이 갈수록 늙은이는 계속늘어나, 요양원도 같이 늘어 나고 있는데, 늙은이 수발 할 일꾼은 줄어 들고만 있다.
어떤 사람이 지금 하는 자기 일이 너무 즐거워서 신이 났다. 이 모습을 본 동료가 “일이 그렇게도 재밋는가?” 하고 묻자. “너무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그가 “월급은 재미없는 일에 대한 댓가인데, 일이 재미있다니 반대로 돈을 내고 회사에 다니셔야 겠네.”했단다. 과연 그렇잖은가?
우리는 나의 재미를 위해 놀이공원, 야구장, 동물원, 극장 등을 찾아가서 돈을 지불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일터는 내가 돈을 받는 곳이니, 재미가 없을 것은 당연하잖은가? 이 당연한 것을 많은 이가 재미없다, 힘들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 등의 이유로, 일터에서 그만두는 예가 허다하다. 답은 간단하다. 이기적 인간이 되어서, 목전의 이익에만 함몰되어 권리만 주장하고, 마땅히 하여야 할 일에 사명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만 나면 노인들과 함께하고, 터밭에서 농작물과 소통하며 지내는게, 그렇게 재미가 있는데 말이다. '여가의 선용' 그것은 인간으로서 할 일을 다한 후에 누리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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