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6.25 전쟁 73주년 기념식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사실 정부는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제대로 된 정부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가 우리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행사가 많았다. 그중에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전우들의 가족을 찾아내어 위로하거나, 한국 전쟁 당시에 군번도, 이름도, 빛도 없이 나라를 위해서 싸운 영웅들을 찾아내어 포상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복을 맞춰드리고, 훈장을 달아드리는 것은 아마도 처음 있는 일이지 싶다. 제복을 받아 입은 노병들은 너무도 좋아 그 제복을 입은 채 영정사진을 찍겠다고 했고, 관속에 들어갈 때 그 제복을 입고 가겠다는 이도 있었다. 그동안 나라가 친북 정책을 쓰면서 김정은의 입맛에 맞는 일만 했는데, 이제야 나라가 제자리를 찾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는 잘 알려진 정부 인사 중에는 가짜 유공자들이 있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다. 나라를 위해서 피 흘리며 조국을 지켰던 노병들은 참으로 분하고 억울했을 것이다. 그런데 금번 6.25 전쟁 행사에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 옆자리에 있던 노병이 쪽지에 글을 써서 한동훈 장관에게 건내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이 되었다. 한 장관은 그 쪽지를 유심히 보고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저는 KLO 출신 이창건(李昌建)입니다. KLO가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지난 2월에는 보상금과 6.14일엔 청와대 오찬에 초청받았습니다.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나는 T.V로 이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쏟을뻔했고, 참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더욱 뭉클하게 하는 것은, 한 장관은 이 쪽지를 훼손하지 않고 액자에 넣어 장관실에 두었다는 보도이다. 목사의 설교도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지만, 정부도 국민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사실 나는 이창건 박사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나, 30여 년 전부터 연락이 끊겼다. 이창건 박사는 우리나라에 <정근모 박사>, <장인순 박사>와 함께 우리나라 원자력의 1세대 학자이다. 나와 이창건 박사와의 만남은 참으로 우연히 이루어졌다. 1980년대 초로 기억되는데, 그때 나는 총신대 총장으로 극동방송에 초대되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네덜란드 암스텔담 유학 시절에 <하멜 표류기> 원본을 발견했으나, 돈이 없어 놓쳤다고 말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이창건 박사가 나의 방송을 듣고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당시 그는 <한국 원자력 진흥원장>으로 있었는데, 하멜 표류기 원본은 자기 미국 친구인 서지학자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니 꼭 필요하면 미국 친구에게 연락해서 빌려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 후 나는 그에게 감사의 회답을 보내면서, ‘우리 아들도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에 재학 중입니다’라는 답신을 써서 드렸다. 그 후 우리는 서신을 주고받으면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었다. 그리고 나는 총신 교수들과 함께 <한국 원자력 진흥원>을 방문하고 그의 삶을 드려다 보았다. 나는 그의 자동차 앞에 <헬라어 신약 성경>이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한때 신학교에서 헬라어를 가르쳤지만, 이창건 박사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음에도 헬라어 원문으로 된 성경을 읽고 있음을 보고 참으로 부끄러웠다. 하기는 나의 친구였던 건국대학교 물리학 교수로 평생을 지냈던 주영흠 박사도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국어처럼 읽고 해독하는 분이었다.

나는 이창건 박사를 T.V 화면에서 보고 이튿날, KBS의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창건 박사의 연락처를 알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나 나의 지인의 대답은 “KBS는 민노총이 장악하고 있어서 기자들 모두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자들로 채워져서 요청하신 정보를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서울 보훈처>에 전화를 했더니, “규정상 개인의 정보는 가르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한·미동맹 이승만 기념재단>의 고문으로 일하시는 장인순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전화번호를 알았고, 드디어 이창건 박사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가 보훈부 초대장관을 탄생시키고, 나라를 위해서 피 흘리고 고생한 노병들을 위하고 격려하며 숨어 있는 유공자들을 찾아서 예우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 지 73년 만에 있는 일이다. 이것이 제대로 된 나라이다. 

 최근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려는 운동도 이제 국민의 뜻이 모아지고 있고, 원로 배우 신영균 선생이 서울에 있는 자신의 땅 4,000평을 기증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 도대체 이 지구상에 건국 대통령의 흔적을 없애버린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나 싶다. 나는 36년 전부터 이화장에서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와 이인수 박사 내외 앞에서 예배를 인도했고, 금년 1월 2일과 3월에도 예배를 인도한 바 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옛일을 기억하라!>고 했다. 대한민국은 공산당의 사주로 건국 75년 동안 이승만 지우기 운동을 해왔다. 그러므로 이제 대한민국은 새롭게 탄생해야 한다. 가짜 평화, 가짜 유공자, 가짜 민주주의의 무법천지였던 나라를, 최근 정부가 자유를 위해서 목숨 바치고 수고한 노병들을 따듯이 감싸주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유언이자 평생 외웠던 성경 구절을 소개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절」 아멘.

【정성구 칼럼】삼박자 구원

30년은 더 되었다. 나는 독일의 뮌헨에 한인 교회에 부흥회 인도 차 갔었다. 그때 안내하시는 목사님이 나를 뮌헨 올림픽 경기장을 구경시켜 주었다. 듣던 대로 대단했다. 목사님이 그곳을 해설하면서 몇 해 전에 조용기 목사님이 이곳에 와서 독일 사람들을 중심으로 올림픽 경기장에서 수만 명을 모으고 대형집회를 열었다고 소개해 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조용기 목사님은 참으로 탁월한 대 전도자라고 생각했고 부러웠다.

그뿐 아니라 조용기 목사는 전 세계 모든 대형집회에서, 그 속사포 같은 영어로 대중들을 휘어잡고, 간단 명료한 메시지로 복음을 증거 했다. 그는 어찌하여 한국의 난다 긴다 하는 미국 유학, 영국 유학파 목회자들도 못하는 수만 수십 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어로 복음을 선포하고, 회중들을 환호하게 했을까를 생각해 봤다.

세기의 전도자 미국의 빌리 그레함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면, 그 영어가 명쾌하고 정확한데다 아주 짧은 단문이 계속 연결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대중들이 바로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영어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이다. 아마도 조용기 목사도 빌리 그레함을 친구로 삼아서인지 그의 메시지 또한 단순 명료했다. 

순복음 교회 최측근의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조용기 목사는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리는 그 짧은 시간에도 영어단어와 문장을 외우는 것을 봤다고 한다. 역시 그는 전 세계를 품고 중단 없이 기도하고, 끊임없이 노력한 분임에 틀림이 없다.

그는 가난했고 질병을 앓았었다. 불광동에 천막 개척교회를 하면서, 그는 대중들의 요구(need)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요한삼서1:2의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이 마음에 꽂혔다. 그래서 그는 그 구절을 통해서 예수 믿고 부자 되고, 건강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했다. 이를 가리켜 이른바 <삼박자 구원> 또는 <삼박자 축복>이라 했다. 모든 메시지의 결론은 그것으로 끝을 마감했다. 

1960년대 초에 나는 서대문구 충정로에 박윤선 목사님이 개척한 동산교회를 전도사로 섬기고 있었다. 한길 건너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중앙교회가 있었고, 가난에 찌들고 병에 걸린 사람들이 조용기 목사의 이른바 <희망의 메시지> 또는 <긍정의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그 후 여의도 개발의 정보를 알아낸 서울시 부시장(?)인 그의 오른 팔의 도움으로 여의도에 땅을 사고, 여의도 순복음 시대를 열었다. 그래서 세계 최대의 교회가 되었다. 전 세계 모든 교회지도자들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부흥을 배우기 위해서 몰려왔고, 한국의 모든 목회자들도 조용기 목사를 따라 하려고 그와 함께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조용기 목사의 부흥운동은 1970~1980년대 부흥의 견인차가 되었고, 한국교회부흥운동의 중심에 섰다. 그의 사역과 그의 삶은 모든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옛 말에 인물이 시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시대가 인물을 만들기도 한다. 조용기 목사가 성령 충만을 기치로 내세우고 사역을 시작한 1960년대는, 대한민국이 정말 찌들게도 가난하고 못살던 시절이었다. 교회의 부흥은 멈추고 어디하나 희망의 출구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고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라는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을 가져야 나라도, 개인도, 새롭게 바꿀 수 있다는 캠페인을 벌리고 있었다. 어쩌면 조용기 목사의 <삼박자 구원>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성경말씀을 <긍정의 힘>으로 이해한 듯하다. 

사실 당시 미국의 수정교회 로버트 슐러 목사는 노만 핀센트 필의 <긍정의 힘>을 빌려서 인간은 자기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말로 세계를 움직였다. 물론 그 배후에는 프로이드(Freud)의 심리학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쨌든 그 시대는 그것이 바로 진리이고 그것이 성경적이란 인식이 있었다. 특별히 20세기는 오순절교회(Pentecostal Church)의 대 부흥의 시기였다. 세계 각국에 오순절 운동으로 방언의 역사가 강조되었고, 한국의 오순절 운동도 그것과 괘를 같이 했었다.

 그런데 9월 13일 조용기 목사는 86세를 일기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가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에 끼친 신앙의 유산은 너무도 큰 것이었다. 그의 아호대로 영산(靈山), 말 그대로 영적 큰 산이었다. 하지만 그가 60년 동안 외쳤던 <삼박자 구원>이 성경적으로 옳은가는 지금부터 진지하게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도요한이 가이오에게 통상적 안부의 인사와 기도하는 덕담을 가지고, 그의 모든 신학과 신앙을 메달아 놓은 것이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삼박자는 <창조>, <타락>, <구속>이다. 즉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전적타락>,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이것이야말로 개혁교회의 핵심이다. 칼빈이 말한대로 <말씀>과 <성령>이 더불어 역사해야 한다.

 아무튼 그는 우리시대, 한국교회의 영적 거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모든 성도들과 가족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