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진 박사께서 WEA의 성경관에 대한 브리핑을 보았습니다(WEA의 성경관은 성경의 오류를 인정하고 있는가?(feat. 콘텍스트 혼동의 오류에 대하여). 참 이해하기 쉬운 영상입니다. 그것은 WEA 성경관에 문제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왜 WEA 신학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을까요? WEA 신학과 합동 교단의 신학이 동일하기 때문에 신학적 일치 운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정당합니다. 그런데 이 박사는 신학은 다르지만 선교적 등 유익을 위해서 교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모든 찬성측 발제자들은 신학이 다름을 인정했습니다. 이 박사의 신학 인식과 주장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 박사께서 WEA 성경관과 개혁파 신학(성경관)이 일치한다고 주장한다면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WEA의 성경관, 신관, 구원관 등등에 차이가 없다면 신학적 일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WEA가 그런 성격이라면 포괄주의적 성격도 나타날 수 없다고도 보아야 합니다. 이 박사가 비판하는 개혁주의(근본주의의 가면을 쓴)와 동일한 신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WEA의 성경관"이 가장 명시적인 차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이 박사께 자기의 견해와 다른 형제 혹은 진영에게 비난, 비방 등 부정적 어휘를 사용하지 않도록 제언하고 있습니다. "근본주의를 표방하면서 자신들을 개혁주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라는 언어는 상당히 모욕적인 언사입니다. 이 박사는 그러한 사람의 이름의 정확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박사께서 불특정인에게 부당한 어휘를 사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 박사는 WEA 선언문에 있는 성경 부분에 문장을 요약하여 제시했습니다.
The Holy Scriptures as originally given by God, divinely inspired, infallible, entirely trustworthy; and the supreme authority in all matters of faith and conduct 입니다.
이 박사는 무오와 무류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합니다(해당영상 1:52). 20세기 미국 성경무오성 논쟁에서 비롯된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이 둘을 구분하기 시작했다고 제언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미 구분된 것으로(1980년대에) 이해해야 합니다.
WEA 성경관에 infallible가 있다. infallible(무류)은 inerrancy(무오)와 다른 신학 개념이다. 1976년 현대 복음주의 역사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이었다는 것이 inerrancy와 infallible이 논쟁이다. 이 논쟁이 신복음주의 논쟁이고, 신복음주의 논쟁이 다시 한국 교회에서 살아난 것은 1980년대 당시 충분한 이해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inerrancy(무오)와 infallible(무류)” 차이점을 명료하게 이해하지 않는다면, WEA 논쟁은 다람쥐 챗바퀴 돌듯할 것 같다. 이 박사는 신복음주의 신학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막연하게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강조하기 때문에 개혁신학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성경의 축자영감과 무오”를 명확하게 견지해야 한다. 우리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보다 더 과격한 새관점학파의 광풍 위에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유일신 종교를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라고 했고, 새관점학파는 아브라함의 언약인데 그 안에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있다. 미국에는 크리슬람(Chrislam)이 있다. 리폼드 투데이(http://www.reformedtoday.net)에 게재한 고경태의 글.
이 박사께서 무오와 무류에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는 부분입니다. infallible(무류)은 inerrancy(무오)가 사전적 의미로 차이가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오와 무류 논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세워진 개념입니다. 무류 이해는 신복음주의이며, 칼 바르트적 견해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칼 바르트도 성경영감설(divinely inspired)을 부정하지 않으며, 신적권위 등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 박사의 주장을 따르면 칼 바르트의 성경 이해도 문제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박사는 WEA의 성경 이해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고경태는 그렇습니다)에게 "콘텍스트 혼동의 오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것까지 이해할 수 있지만 "신천지식 오류"라고 분류시킨 것은 모욕적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콘텍스트 혼동의 오류는 현재 상황에 대한 인지 오류라고 보아야 할 것인데, 이 박사는 뒤편에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제시된 infallible을 재론하는 것이 오히려 콘텍스트를 혼동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해설> 출판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서 당시에 infallible와 현재 infallible의 차이점을 해설서에 첨부시킨 것으로 기억합니다. 17세기 잉글랜드 콘텍스트와 20세 콘텍스트.. 그리고 21세기 대한민국 콘텍스트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1980년대 신복음주의 논쟁으로 교단 분열의 아픔을 갖고 있는 콘텍스트입니다. 신복음주의 논쟁은 infallible(무류)은 inerrancy(무오) 논쟁이 주요한 부분입니다. 그 infallible(무류)를 주장하며 논쟁의 중심에 있었던 풀러신학교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습니까?
이 박사의 무도한 주장입니다. 한국교회총연합에 들어간 것을 그렇게 WEA 교류 단절과 함께 맹비난을 했는데, 성경 딤후 3:15-17절에 무오에 대한 고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럼 거기에 무류라는 단어는 있습니까? 어떻게 그런 주장까지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으로 신학한다"는 말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것일까요?
이국진 박사의 WEA 성경관에 대한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WEA 성경관이 개혁파, 장로교 합동 교단과 전혀 다름이 없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박사께서 WEA 신학이 합동 교단과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WEA와 우리 신학에서 차이점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WEA 성경관이 신복음주의적이라고 질문했을 때에 신복음주의적인 것은 배척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면 WEA 성경관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우리교단헌법과 일치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럼 WEA 신학과 교단 신학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WEA 선언문을 볼 때에 함축적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점을 밝히기가 어렵다고 제언했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쉬르마허의 행동과 소개에서 친교황주의적 성향, 모슬렘(국제이맘공회의)에서 쉬르마허를 친숙하게 소개하는 것을 소개했습니다. WEA 선언문에서 콕 집어 낼 수 있는 것이 infallible(무류)은 inerrancy(무오) 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국진 박사는 쉬르마허가 무슬림 100만명을 회심시킨 전도자이고, WEA 성경관도 문제가 없다.. 등등이면 우리 합동 교단의 신학과 선교에 월등하다고 평가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반대 의견 측에는 사탄적이다, 비난한다, 무지하다, 번역을 잘못했다 등등 수 없는 부정적 언어를 사용하셨는데, 그 경향을 지금도 유지하는 것 같아 유감입니다. WEA가 아무리 훌륭한 단체에도 교단 밖이고, 교단 안에 있는 형제에 대해서 "근본주의면서 개혁주의라고 한다"는 "위선자"라는 모욕적 언사를 감행합니다. 저는 근본주의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WEA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근본주의(근본주의 5대 교리)가 우리 신앙과 일치된 면이 많고, WEA 체계는 칼 바르트적(신복음주의적 경향)이라고 생각하는 장로교 목사입니다. 이국진 박사의 견해를 보면 근본주의에 대해서는 배격, WEA는 수용으로 볼 수 있는데, "WEA 신학에 문제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WEA를 비판하는 너희는 무지(번역도 못하는), 탈인격(맹목적으로 비판만 하는), 이단적(사탄적, 신천지적)"으로 제게 이해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사과로 될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교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국진 박사를 유투브 동영상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동영상 강의는 매우 정돈되고 절제된 감정으로 영상을 전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WEA 공청회 장소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강연을 하셨는데, 저는 위압적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다음 공개 강의가 있다면 그때는 동영상처럼, SNS처럼 부드럽고 정확한 표현으로 진행해주시면 좋다는 제언입니다. 고경태 목사(주님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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