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 칼럼】 이 사람을 보라!
대자연에도 바람 길이 있고 물 길이 있듯이 인간사회에도 서로 소통하는 말 길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인체에도 생명의 피가 흐르는 동맥과 정맥이라는 혈로(血路)가 있다. 나는 불과 수년 전에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흘러야 할 피가 엉켜 피떡(혈전)이 되어 폐(肺)로 가는 혈관이 막혀 쓰러지기 직전에 강원대 병원 응급실에서 겨우 살아난 일이 있었다. 그때 강원대에서의 나의 몸 건강 나이는 현재의 내 나이보다 열살이 더 많았다. 이처럼 누구나 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몸이 늙어지면 혈관에서 부터 몸 전체가 낡아지는 것은 가고 오는 자연의 순리다. 늙어간다는 것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신체의 모든 기능이 퇴화되어 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서 나 또한 70해가 되고 부터 몸이 낡아지기 시작하면서 그중 신장(콩팥)기능마저 뚝 떨어져 몸이 가렵고 다리 무릅에 통풍이 있어 걷는 것도 매우 부실해졌다. 생노병사(生老 病死)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유한한 인생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살아 야지 자연의 섭리를 어찌 거스리겠는가! 살다 보면 자연의 순리를 따라 사는게 인생인 것을! 그 가는 길을 꿰뚫어 알수는 없지만 순리를 따라 사는게 인생의 최순위가 아닐까 싶다. 이처럼 산자의 몸에 생명의 피가 흐르 듯 나라라고 하는 인간사회의 공동체에도 생명체의 핏줄처럼 반드시 언로(言路)라 하는 말 길이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 요즘 듣자하니 계엄령이란 말이 심심찮게 흘러 나오고 있다. "못된 송아지 엉둥이에 서 뿔난다고 번세기전의 군사정권도 아닌 문민정권에서 주어진 임기 마치고 물러나 면 될것을 대통령 몸통에서 정변이야기가 대명천지 이 시대에서 또아리가 아니고서 이런 막가파같은 발상이 나올수 있단 말인가?
몸서리치는 민족 상쟁의 6 25 전란을 격었고 또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것을 빌미로 구테타에의한 비정상적인 군부독재정권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던가! 어두웠던 지난 역사를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덜떨어진 모리배들이 어쩌다 대권을 잡았다하면 그 권력의 야욕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초 헌법적 수단을 아주 쉽게 그래서 역사를 역린하는 어리석은 망령들이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이번에 느닷없이 경호 실장이던 자가 국방장관이 되었다. 그는 현 대통령의 분신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인권의 희생도 마다 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계엄령이라는 그런 못된 역모를 꾀한다면 그의 말로뿐만 아니라 바로 역사의 수레 바퀴를 꺼꾸로 돌려놓는 역린이므로 바로 역사가 심판할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 진다 (烏飛梨落)는 말이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까? 역사의 순리를 따라 나라가 가야할 방향을 따라 가도 어러울 판에 못된 송아지 엉둥이에서 뿔 나듯 물 흐르듯 순리에 두어야 할 언로의 물꼬를 막고 장악하려고 나라의 흐름을 역린하려 했던가! 민주주의 선거에 의해 통수권자가 되었으면 그 자리에서 국가를 위해 주어진 최선을 다하다가 주어진 임기를 다하면 미련없이 물러나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대한 도리다.
조선(朝鮮)후기 숙종 때의 거유 (巨儒)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은 언로(言路)를 생물의 혈맥 (血脈)에 비유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몸을 사리지 않고 임금에게 직언(直言)을 서슴치 않았기에 그의 나이 여든 한살에 "임금이 발라야 나라가 바로 된다."는 바른 말 한마디로 제주도로 귀양 을 가다 뱃 길에서 병을 얻어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내가 젊은 날 남해 보길도 에서 그곳 야산의 바위(글쓴 바위)에 그의 충혼으로 쓴 글을 보고, 목 놓아 소리 내어 운적이 있다. 섬 마을 뒷산 바위에 새겨진 첫 구절 하나를 소개하면 "팔십일세옹 일언이 대죄(八十一歲 翁 一言而 大罪) 창파만리래(蒼波萬里來). "여든 한 살 먹은 늙은이가 말 한마디 한 것이 죄가 되어 만경창파가 일렁이는 이곳까지 왔다." 나는 그 엄혹한 전제국 시절에도 바른 말을 서슴치 않았던 명재상 송시열을 존중한다.
현대 문명사회에서 도로 위에 노랑 색과 하얀 색으로 차선(車線)을 그은 것은 현대문명이 만들어 낸 차로(車路)위 에서의 상생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될 생명을 담보로한 生命 線이다. 이 엄중한 생명선을 술에 만취한채 차를 주행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졸음 운전을 하는이도 있다. 이리되면 엄청난 살상을 초래하게 된다. 때문에 도로 위의 차선(車線)은 모두가 지키기로 약속된 토대위에 그어진 '생명선'인 것이다. 인간사회의 공약으로 세워진 헌법 또한 모든 국민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도로 위의 차선(車線)보다 더 엄혹한 나라의 근간 법이다. 이러한 절차를 따라 만들어진 국헌(國憲)과 그 토대위에 만들어진 법은 법치사회의 엄혹한 약속인 것이다. 우리 헌법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근본을 누가 지켜야 하는가? 바로 헌법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정권을 받은 집권자들이 최우선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다. 하나님이 우주를 품듯이 어미 닭이 병아리를 품듯이 건강한 인간사회의 구성원들이 이 약속의 선(線) 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법지킴이들이 역린을 꾀하는 자로 돌변하여 '섬김의 자리'를 '무소불위의 권력의 자리'로 착각하고 주권 재민의 국민아래에 있어야 할 권력이 종내는 권력의 화신이 되어 '법을 법무지랭이들의 시녀'로 전락시키고 만다. 교회의 성직자도 종의 자리요 나라 공직의 자리 또한 공복(公僕)의 자리다. 그런데 오늘 교회의 모습을 보라! 눈에 보이는 건물의 웅장함으로 교만과 야망의 키재기들을 하고 있다. 인류 역사 이래 위정자들이 하나같이 그 자리를 꿰차기만 하면 무소불위의 독불 장군이 된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다시 말하면 의사는 환자가 어디가 아픈가 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이 먼저이기에 의사의 안목으로 환자의 건강을 정확하게 짚어야 한다. 그런데 덜 떨어진 인간들이 줄타기를 잘해서 얻은 공복의 자리를 섬김이 아닌 무소불위의 개인영달을 위한 자리로 착각하고 어느 순간부터 권력의 단맛에 빠져 권력의 화신이 되어 나라 주인의 주객이 전되되는 행태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헌법에 의해 부여된 공복의 자리를 '도로 위의 생명선'으로 여기지 않는 순간 인간의 비극은 시작된다 주어진 권력을 행사하는 자는 예외없이 대부분 "헌법을 지켜야 할 자리"에 있다.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헌법 그 자체로서의 국민을 그의 통치수단 위에 두어야 하는데 인민이나 국민을 권력아래 두려는 태도는 정도(正道)보다 야욕으로 가득찬 인간들의 일관된 행태다. 그래서 영국의 액톤경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며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고 갈파했다. 이처럼 권력의 맛이 술이나 마리화나 보다 더 중독성이 강해선지 권력의 단맛에 얼빠진 얼간이들이 쉽게 빠져들기 십상이다. 집권자가 초심(初心)을 잃어 버리면 모두를 다 잃어버리게 된다.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하였다. 자칫 권력의 맛에 도취되어 국민이 권력의 눈 아래로 보여 지는 순간 스스로 권력의 노예가 된다. 바로 이것이 권력의 아킬레스다. 얼마 전 우리나라 대통령실에서 한 말들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한말이 아닌가?" 하고 착각 할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을 보았다. "일본의 수십 차례 사과에 피로감을 느낀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정권이 갈데까지 간 것아닌가? 대통령실은 한술 더 떠 철지난 이념공세를 내 뱉고 있다. "반국가 세력이 암약하고 있어 항전 의지 를 높여야 한다." 이를 두고 재야측은 "철지난 이념공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요즘처럼 살기가 팍팍해서 먹고 살기조차 힘들게 만들어 놓고 적반하장으로 국민들에게 웬 반국가세력이란 말로 국정을 농단하는가? 자신은 될소리 안될소리 맘가는대로 국사를 어지럽혀도 되는가?
제정 러시아 빌헬름 2세가 제왕의 자리에서 인민들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귀족들과의 야합의 실정으로 '쁘롤레따리아 레닌 혁명'을 자초하였다. 국정을 권력이라는 힘의 논리가 아닌 국민의 마음을 읽을줄 알아야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 그는 무엇하는 총리인가? 참 따분한 있으나 마나한 총리다. 바로 이것이 현 정권의 단면이다. 지금 얼마나 엄혹한가? 의료대란으로 모든 병원에 진료할 의사가 없다. 누구의 책임인가? 책임을 질 이도 없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사 언급이 없었던 것에 대해 '김태효 국가 안보실 차장'이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 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되자 대통령실의 어설픈 해명으로 또 다시 논란이 있었다. "일본의 공식사과가 수십 차례 있었다. 이 때문에 피로감이 많이 쌓여있다"고 해명한 건데, "도대체 피로감을 느꼈다는 국민이 누구냐"며 재야는 거세게 반발 했다. 과거사는 물론 오늘의 한일 관계 까지 윤석열 대통령의 일제 36년의 광복 절 경축사에서 사실상 일본이 사라져 버린데 대해 김태효 국가 안보실 1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죠.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것이 과연 진정성이 있겠는가?" 이에 "대한민국 안보 실세가 일본을 대변하냐"는 비판이 거세지자 다시 대통령실이 해명에 나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우리를 강력한 경쟁자로 여기고 긴장하게 만들어서 이제 우리가 일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하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수십 차례 일본 정부의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고, 그런 사과에 우리는 피로 감이 많이 쌓여있다"고도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해 3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일본은 이미 수십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해 반성과 사과를 표한 바 있다." 김 차장은 외교부가 집계한 일본의 공식 사과가 20여차례가 넘는다며, 윤 대통령 주장을 엄호했다. 일본이 수십 차례 사과를 했다고 해도 그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독도 영유권이나 위안부 문제 등에서 일본이 그동안 책임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사과에 피로감을 느끼 는 이가 있다? '독도는 일본 땅'이란 억지에 누가 피로감을 느끼는가? 진정으로 대통령실이 배려할 것은 대일본 제국 천황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인 것이다. 전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가 "한국전쟁이야말로 하늘이 일본에게 내려준 축복이다."라고 했다. 유엔군 16개 국이 참가한 6 25 전란때 제2차 세계대전 의 추축국으로 전쟁의 참화에 빠져 있던 일본에게 6 25 남북전쟁은 우리에게는 대전란의 참화였지만 일본은 우리의 참화를 딛고 다시 일어섰다. 그래서 한반도의 '육이오 전란'의 재미를 가장 톡톡히 본 일본의 중의원 '마루야마 호다카'는 2019년 9월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 고유의 영토에 자위대가 출동해 불법점거자를 쫓아내는 것을 포함한 다양 한 선택지를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2022년 8월에 에토 세이시 일본 방위청 장관은 "한국과 확실히 협력해 한국을 잘 지켜보고 지도한다는 큰 도량으로 한일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지난 날 한국을 식민지 삼은 일본은 한국에 어떤 의미에서는 형님과 같은 존재이므로 한일 관계가 한국과 대등하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이 항상 지도적인 입장에 당연히 서야 한다". 그리고 2024년1월 "독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 봐도 그리고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인 만큼 이러한 기본적인 입장에 근거해 의연하게 대응하겠다" 요미우리는 “윤석열 정부에 국제법에 근거한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산케이 신문은 “다케시마는 북방영토와 함께 반드시 반환을 실현해야 할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한국은 일본에 사과하고 독도를 반환해야 한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겸 재무상은 2017년 9월, “향후 한반도에서 대량 난민이 일본으로 몰려올 수 있다. 그들은 무장 난민일지 모른다”“자위대가 방위 출동할 것인가, 사살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출처 국민일보)
윤대통령은 2023.08.15일 광복절 78주년 기념사에서 “일본은 이제 한국과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 했다. 2023.09. 윤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반일 감정을 선동한다”고 했다. 국립외교원 60돌에 신원식 국방장관은 “이미 사라진 과거 완료형 일본 군국주의 에 대한 적개심에 기대어 저질적인 반일 선동의 ‘죽창가’만 열창한다”면서 “한일 간에 과거사, 독도 영유권 분쟁이 있는 건 사실이다”고 했다. 1953년 구보타 한일회담 일본대표는 일본의 36년간 한국통치는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라 했다. 1965년 다카스키 한일회담 대표는 "한국을 20년 쯤 더 갖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고 했다. 1982년 마쓰노 국토청장관은 "한국 역사 교과서에 한일합방을 일본의 침략이라 한 것은 오류다." 1994년에 나가노 법무상은 "대동아전쟁 목적은 정당했다. 위안부는 공창이었다." 와타나베 외상은 1995년에, "한일합방은 원만히 체결된 것이다." 1996년에 일본 에토 총무처 장관은 "한일합방에 대해 왜 반성을 하여야 하나? 일본은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다." 1997년 에토 다카미 의원은 "한일합방과 마을 통합이 무슨 차이가 있나."
그들이 입만 열면 이런 역사 왜곡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궤변을 늘어 놓고도 "일본이 수십차례 사과를 했다고?" 우리 국민들이 이런 궤변을 사과라고 믿고 있을까? 몇차례 사과같지 않은 사과를 했으나 바로 극우들이 나서서 부정하는 말들을 쏟아내지 않았던가? 그래서 엉터리 사과마저 무효로 만들지 않았던가? 나는 이제라도 현 윤석열 정권이 역사와 국민들의 역린을 더 이상 건드리지 말고 민족의 사관과 나라의 갈 길을 바로 잡아 역사에 부끄러움이 없는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종그니 칼럼】 이 사람을 보라!
밭에 씨를 뿌리는 일은 봄에만 있는게 아니다. 초겨울에 보리씨앗을 뿌리고, 마늘을 심듯이, 인생의 밭에 씨를 뿌리는 것역시, 계절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갈 봄 여름없이, 이땅에 살아 있는 동안 내내 사랑의 씨, 온정의 씨를 심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부유한 사람이요,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 누군들 이땅에 자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있으리오 마는, 세상에서 가장 불우하게 태어나서, 가장 불우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그러나 가장 값진 인생을 살다간 '김 우수'란 이가 있다. 그는 천애고아로,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다. 그래서 학교는 근처도 못가 봤다. 그의 나이 54세가 되도록 결혼도 못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중국요리 식당에서 허드렛 일과, 잔 심부름을 해주며 자랐다. 그리고 스무살이 넘어서야 월급 70만원을 받았다. 그는 돈이 없어 한평도 못 되는 판자촌 쪽방에서 잠을 잤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54년을 살아온 그의 눈에, 이 세상이 어떻게 보였을까?
"그가 바로 나다"하고, 그의 삶을 내 입장에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처럼 열악한 환경에서도, 그는 어쩌면 그렇게 세상때가 전혀 묻지 않은 참 바보처럼 살 수 있었을까? 싶다. 그에게는 언제나 차디 찬 겨울만 있었을 뿐, 따스한 햇빛이 깃드는 인생의 봄이 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참으로 박복한 음지의 인생이었음에도, 세상때가 전혀 묻지 않았다.
그가 오토바이로 짜장면 배달을 가다가, 음주차량에 교통사고 발생 25일만인, 2011년 9월 26일, 아직 애석한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세상안목으로 볼때, 참 박복하고 불행한 인생이었다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 당시 대통령과 영부인이 이 삶을 크게보고 조문을 갔다. 또한 정계 거물들도 그의 장례에 참여하였다.
그의 죽음이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게 되었을까?
그 자신은 참담하리만큼, 급여 70만원의 박봉으로 구차하게 살면서도, 매월 10만원을 "어린이 재단'을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들을 도왔다. 2006년 이후 부터는, 어떻한 어려움속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쉬지 않았다. 보험도 4000만원 짜리를 들었다. 그리고 자기가 죽으면 그 돈을 타서, 불우한 어린이 가장들을 돕도록 하였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자린고비처럼 살면서도, 남의 어려움을 돕는데는 온몸으로 도왔다.
어린이 재단 후원회장 최불암 씨가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를 주관하였다. 그의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이 애도하는 편지가 수북히 쌓였다.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항상 격려하여 주시던 아저씨를 가슴에 묻고 평생 살겠습니다.” 누군가가 “기부나 봉사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잘 보살펴 드리십시다.” 대통령도 고인 앞에서, “고인은 자기 최소한의 생계비를 나눔으로, 그것이 더욱 커지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 주셨다.” 그가 그렇게 죽은 후, 어린이 재단 홈페이지에는 기부가 꼬리를 이었다. 댓글은 이런 것들 이었다.
“천사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하겠습니다." 일생동안 그는 겨울인생을 살면서, 한겨울내내 이렇게 많은 씨를 꾸준히 뿌리며, 아름다운 마침을 이루었다. 김우수 씨는 이처럼 인생의 한 겨울에도, 쉬지 않고 나눔의 씨앗을 뿌리다 하나님곁으로 갔다. 그가 이처럼 구차하게 살면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보였던 것은, 사랑의 눈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탐욕은 인간을 소경으로 만든다." "진정한 친구를 가졌다면 당신은 가장 귀중한 것을 가진 셈이다"라는 토마스 풀러의 말을 되새기며, "나는 누구에게 진정한 친구로 남아 있는지"를 이 아침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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