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늙은이들에게 노년의 삶이 곤고하지 않토록 여러가지 배려를 하고 있다. 공과금도 덜어 주고, 노후준비가 안된 노인들에게는 노령연금도 주고, 부양가족이 없는 노인에게는 기초생활비도 지급해 주고, 그리고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는 전철요금이나 시내버스 요금은 무임승차토록 배려를 해 주고 있다.   지난 일제시대 때나 조선시대 때는 일본인이나 양반들이 서민들의 것을 착취해서 누리던 것을 이젠 늙은 서민들이 받고 있어 주권재민이란 말이 실감이 날 때도 있다.  물론 지금도 무임승차가 노인에게만 주는 혜택인 것은 아니다.  나라의 각종 혜택들을 누리고 있는 특수계층 사람들은 많다. 국회의원이 그렇고 지방의회 의원들도 그 지역의 호민관으로 처음엔 명예직이던 것이 지금은 그 혜택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호민관으로서 견문을 넓히기 위해 그래서 그것이 국리민복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면, 그것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야 그 제도가 의미있는 제도로 살아나고 본인에게도 자기계발이 될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들이 더 많다고 하니, 불신이나 신뢰가 모두 당사자들 하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늙어서 몸이 나의 상전이되거나 건망증이나 혹 치매가 와서 독립생활이 어렵게 되면 노년의 삶이 갈림길에 서게 된다. 예를 들어 "집에서 계속 모실 것이냐?  아니면 요양원에 모실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이것을 결정짓는 요인은 아마 당사자와 가족관계가 결정적 요인이 되지 싶다.  만약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요양원으로 결정되면, 대부분 손때묻은 자기 집으로 다시 올수 있는 황금교는 이미 사라지고 만다. 이처럼 늙어 자기관리를 못하게 되면 내 일신의 문제가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타의에 의해 결정된다. 내가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내린 결론은, 집이냐 요양원이냐의 갈림 길에서 가족의 판단기준은 "바로 본인이 살아온 삶이 잣대다."  치매가 와도 그 사람 내면의 인격에 따라 순한 치매와 까다로운 치매가 있다. 까다롭거나 난푹한 치매는 대개 집에서 모시기 힘들다.  치매가 아닌 홀로서기가 어려운 몸이 되더라도 인지능력이 있고 가족의 수고를 안다면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본인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족의 수발에만 의존하거나 짜증과 잔소리만 늘면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이테가 쌓일수록 늙어져 몸도 말을 안 듣고 인자와 용서와 너그러움은 쪼그라드는 것을! 내가 춘천에 요양원을 어렵게 세우던 때가 육십대였다. 그때만해도 두뇌회전도 빠르고 몸도 민첩했었다. 십사오년이 지난 지금 세월과 함께 나는 어리버리해졌다.  친구의 이름도 얼른 떠오르지 않고 긴가민가 해진다.  3년짜리 운전 면허증을 내년에 재발급 받아야 하는데 굳이 치매진단서까지 첨부해가며 재발급을 받을까? 반납할까? 고민중이다.  반면 이러한 것들이 삶의 이유이고 삶을 이어주는 끈인데, 이 끈을 놓아버리면 늙음이 더 빨리 달려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누가 나더러 취미가 뮈냐고 물을 때면 밭에서 채소 가꾸는게 취미라고 말한다.  몸의 거동이 불편해도 터밭에 주저앉아 풀을 뽑고 야채들을 가꾸고 풋고추와 가지를 따다보면 하루가 금방간다. 늙으면 할일이 없다는데 나는 할 일이 너무 너무 많다. 

옛先人의 말에 "생사사생(生事事生) 성사사성(省事事省)"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일을 하려고 들면 할 일들이 줄줄이 생기지만, 일을 안하려고 하면 일은 점점 줄어든다.) 나는 늙은 벗들에게 당부한다. 무엇을 하든 몸을 움직여라! 성경에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일과 운동 등 몸관리를 멀리하다 보면,  무위 빈곤 질병 고독이 스물 스물 몸에 배이게 된다.  돈이 있어도 돈을 써본 인간들이나 잘 쓰지 자린고비로 살아 온 이 나라 대부분의 늙은이들은, 돈 한번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손에 돈을 쥔채 가난뱅이로 살다가, 필경 그 돈을 노리고 있는 자식새끼 들에게 모두 빼앗기고 만다.  그리고는 늙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부모가 아니라 짐덩이가 되고 애물단지가 되고만다. 늙으면 사회부담으로 무료로 또는 저럼하게 이용할수 있는 경우들이 많다.   '춘천의 명물 케이불카'도 할인해서 탈수 있고. '화목원'과 문화원은 아예 입장료가 무료다. 서울 가는 전철요금도 무료다.  청춘열차도  할인받는다.   늙었다는 이유로 할인이나 무료혜택을 받는 기쁨보다  늙은이에 대한 배려가, 때론 나를 더 공허롭게 한다.  늙음이 자랑은 아니지만  읍면 동사무소에 가면, 무료 승차권을 발급해 준다고 한다. 노령연금으로 노후를 근근히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노인들에게는 하루 용돈 일만원은 참 소중한 돈이다.   나라에서 늙은이들에게 전철요금을 무료로 해주다 보니, 많은 노인들이 만원남짓 들고 춘천 막국수 먹으러 삼삼오오 줄지어 온다고 한다. 

그뿐아니라 "공짜 지하철 여행을 통해서 얻는 기쁨도 쏠쏠하다"고 '한국 노인에 대하여 뉴욕타임즈(NYT)의 기사를 보면,  65세 이상의 노인들은 지하철 무료 승차 혜택을 이용한 전철 나들이를 노년의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23일 '한국의 나이 든 지하철 탑승자들이 전철여행으로 기쁨을 찾는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다양한 지하철 여행자들을 조명했다. 지난 8월 한여름 고운 한복에 운동화에 밀짚모자 차림으로 집을 나선 이진호(85)할아범은 집 근처 4호선 수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차례 환승해 1시간여 만에 1호선 종점인 소요산역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역 근처를 한 30분정도 거닐다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늙은 몸을 실었다. 그는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무료 지하철 타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며 "집에 있으면 지루하고 누워만 있게 되므로, 달리는 지하철을 타고 차창너머로 펄쳐지는 자연경관을 바라보며, 내가 원하는 곳으로 바깥 나들이를 하면서, 보고 싶은 것 보고 용돈이 허락되면 맛집을 찾아, 먹고 싶은것 먹으면서 다닌다"고 말했다.

NYT는 한국의 많은 노인들이 이진호 노인처럼 지하철을 타고 종착역까지 가거나 혹은 특별한 목적지 없이 요리조리 눈구경을 하다가 해질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특히 올 여름처럼 무더운 여름에는 지하철안에 에어컨도 나오고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기에 좋은 데다 노선도 많고 긴 수도권 지하철은 소일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고 했다.  지하철 나들이에 나서는 노인들은 지난 날 젊은 날 직업들도 다양했다.  전종득(85)씨는 수학 교수로 일하다 은퇴했다. 그는 지하철을 타고 가며 책을 읽다가 졸기도 한다면서, "지하철 여행은 정말 멋지다. 서울 인천은 물론이고 경기도와 강원도 춘천까지 구석구석 안 가본 곳이 없다"고 했다. NYT는 노인인구 증가로 서울에서 지하철 무료승차 대상이 연간 승차인원의 15%를 차지하게 되면서 '지공거사(地公居士)'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이들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나름의 규칙도 있단다 사람들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대는 피하기,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도록 앉아 있는 젊은이들 앞에서 서있지 않기 등이다.  여론은 지하철 적자로 노인 무료 승차를 폐지하거나 기준 연령을 올리는 방안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지만, 노인 빈곤율이 일본이나 미국의 두배에 달하는 한국에서 1회 탑승 요금 1500원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은 어르신들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배기만(91)노인은 70년을 해로한 아내가 지난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깊은 우울감에 한동안 며칠씩 씻지도, 먹지도 않고 지내다가 지하철 나들이를 다니게 되면서 옷을 찾아 입고, 밥을 챙겨 먹게 됐으며 잠도 더 잘 자게 됐다고 말했다.  노후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가? 밥 잘먹고, 잠 잘자고, 똥 잘싸는 것이다. 열심히 걸으시라! 그래야 내 주변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다. 오늘이 '추석'이라하니 풍요롭고 즐거운 명절 되소서!

 

[종그니 칼럼] 넬슨 만델라

나처럼 견문이 모자란자가 보아도 세계정치 경제 등 전분야에서 초급을 다투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처럼 다 쓸어담아도 한줌도 못되는 빈 소리만 뻘쭉하다. 정작 머리싸움과 발에 땀이나도록 씨름해야 할 곳은 세계무대인데, 현 집권당인 민주당정부의 정권말기가 되어서인지 가히 제자백가 쟁명의 시대다. 저마다 입 달린자는 책임없는 세치 혀로 온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말들만 요란하다. 말이 많으면 주어 담을만한 말은 적어지게 마련이다. 나랏일을 어찌 세치혀로만 하려고하는지! 정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정치인들이 말만 앞세워 국정을 더욱 혼란스럽게 할게 아니라 꼬인정국을 풀어 낼 지혜와, 무엇이 나라에 득이 될 것인가를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자성해 보시라.

성경말씀은 대부분 '역설의 말씀'이다. "네가 높아지고자 하거든 네가 먼저 낮아지고, 섬김을 받고자 하거든 네가 먼저 섬기는 자가 되라."

예수그리스도는 우리를 만나주시고자 가장 낮은 자리 말구유로 오시었고, 섬김을 받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시려고 오시었다. 민주정치의 핵심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내가 그 중심에 서는 것이 아니라, 혼미를 잠재우고 정명가도 를 가는데 있다.

지금 여(與)도 야(野)도, 이 난국을 뚫고 나갈 형안이 없기 때문에 정국이 빈수레처럼 소리만 요란할 뿐이다. 지난 인류사를 볼때 역사를 새로 쓴 인물들은 말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형안과 실천이 먼저였다. 여당은 대선을 코앞에 두고 보궐에서 국민의 엄중한 소리를 듣고도 아직도 친문이니 친노니 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명한 정치는 국민의 힘을 정략적으로 소모시키는데 있는게 아니라, 국민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데 있다. 우리는 지난 날 허구헌 날들을, 조국통일과 는 거리가 먼 이념문제로 이전투구처럼 쌈박질만 하다가 6.25동족상잔의 비극의 역사를 치뤘음에도,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도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처럼, 일촉즉발의 위기속에, 한 세기를 맞이하고 있다.

문득, 명실공히 남아프리카 민주공화국을 반석위에 올려놓은 '넬슨 만델라'가 떠 오른다.

"아파르트 헤이트정책"을 고집한 백인정권에 맞서 싸우다, 절해고도의 섬 악명높은 감옥, 0.75평의 감방에서, 무려 27년동안 형극의 세월을 보낸 넬슨 만델라는, 27년의 형기를 마치고 석방되던 날, 그는 당당하게 걸어서 나왔다. 그는 가히 철인이었다. 수차례나 올가미를 씌워 암살하려했던 백인정권이, 마침내 그의 앞에 굴복하기까지, 원한맺힌 마음에 피의 보복으로 대응했더라면, 일순간 내란으로 나라가 분열될 것을 알았기에, 이를 온 몸으로 막아냄으로, 남 아프리카 공화국을 온전히 지켜낸 넬슨 만델라!

그래서 성경은 "무릇 지킬만한 모든 것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자기 마음을 다스릴줄 아는 자는 성을 빼앗는 용사보다 낫다."하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독재와 부패로 치달아 해마다 내전으로 영일이 없는, 다른 아프리카 지도자들과는 달리,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마침내 흑백을 화합과 평화로 결집하는데 성공하여, 마침내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하나로 재탄생시킨 만델라를 보라! 조국의 통일보다 남북한 분리를 더 선호하고 있는, 그럼에도 권력의 맛에 도취된 남북권력자들은, 민족통일에 대한 절대절명 의 소명을 망각한채, 오로지 집권욕에만 도취되어 있다. 꼭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다.

참으로 가슴아픈 것은, 우리에겐 만델라 같은 초아적 정치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남아공은 흑인들간의 상쟁이 아니라 흑인과 백인간의 도저히 하나되기 힘든 인종간의 갈등이었다. 백인 우월주의와 인간평등을 주장하는 흑인들과의 융합은, 우리와는 근본이 다른 골 깊은 흑백인종문제로 물과기름과 같은 충돌이었지만, 소아적인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대아적 정신으로. 오랜 기다림과 불굴의 의지와 인내로,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하기 힘든 인간의 총체적 저력과 인내, 그리고 지혜의 최고봉이라 할, 꿈같은 대역사인 흑백 공동체 국가를, 마침내 세운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민족은 어떠한가? 우리민족은 만델라가 이룩한 남아공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유구한 역사를 지닌 단일민족이다. 지난 날 일제 36년의 치욕의 세월을 격고도, 이나라엔 만델라와같은 남과북을 어우르는 초아적 정치지도자가 없다는 것이 슬프다. 기껏해야 남과 북이 갈라서 있는 현실에 오히려 자족하는 졸장부들이 득세하고 있다. 아! 언제까지 더 인고의세월을 견뎌야, 조국통일의 그 날이, 진정한 광복의 그날이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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