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 칼럼】진정한 부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세상 살이도 천태만상이어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격으며 살아가는게 인생이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세상을 내 의지를 따라 살면서도 나의 자업자득으로 만들어진 일들도 있지만 내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일어난 일들도 많아서 사건들의 추이를 예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요즘은 일기 예보가 비교적 정확해졌지만 예전엔 이를 믿었다가 낭패를 보는 일들이 많았다.  인생살이 또한 지금처럼 최첨단 과학이 눈부시게 발달되었다고 해도 현대 과학의 눈으로도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인생사다. 그러기에 인생의 희노애락과 생사화복을 뉘라서 예단할수 있겠는가? 사람사는 거리 골목 길까지 cctv를 설치한다 해도 피의자의 마음까지를 알아낼수는 없기 때문에 여전히 오리무중인 미제사건 (未濟事件)들이 많다. 한 인간의 생애의 문제는 그 누구도 인생의 희노애락을 달관하지 못했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의 근본문제를 풀어 낼 능력이 인간에게는 없지 싶다. 

우선 인간이 이 땅에 그리고 이 시대에 태어나기를 자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 내 의지와는 전혀관계 없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다. 인간의 생사화복에 있어 인간의 노력이 필요 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불가항력적인 경우에는 전혀 보탬이 되지 않기도 한다. 그것은 왜 그럴까? 자칫 우리는 인생을 내 손안에 있다고 착각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는 어림없는 망상이다. 저녁에 먹은 음식이 어떻게 소화가 되어서 몸에 필요한 여러 영양소가 한치의 오차없이 기막히게 걸러지고 분리되어 적재적소에 골고루 공급되고 노폐물들은 몸밖으로 땀과 대소변으로 어떻게 배출되는지와 그리고 내 몸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면서 우리는 이 몸둥이를 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수천년전 그리이스가 낳은 대철인 소크라테스는 "너 자인을 알라"고 질타 했다.  그가 '인생의 근본'을 알고 이렇게 질타한 것인지는 알수 없으나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역사 즉 'History'는 '인간이 만들어 온 삶의 역사'라기 보다는 인간의 삶을 주장하시는 '그분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법률 주간 신문에 실린 어느 법조인의 굴절된 생애에 대해 쓴 기사를 우연히 읽었는데 그 분이 살아 온 삶의 궤적들을 보노라니 내가 젊은시절 한 때 사시준비를 하던 시절이 문득 주마등처럼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래선지 동병상린 이랄까?  비록 여기까지 걸어온 인생 길은 달랐어도 그가 격은 삶의 우여곡절들이 마치 또 다른 나의 삶을 보는 듯 너무도 닮은게 많다 싶어 그가 살아 온 생애를 보며 인생사 희노애락이 인간의 의지대로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삶을 주장하시는 초월자의 손에 있음을 깨닫고 새삼 소스라쳐 놀라게 된다. 지난 세월 세상으로 나아 가는 것에 마음을 접고 절대자의 뜻을 따라 종의 길을 걸어온 것 또한 내 의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바로 판사가 되자 좋은 규수를 만나 결혼을 해서 딸만 넷을 두었을 때 요즘으로 보면 딸부자였을 땐 그는 세상 복을 혼자 다 받은양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복을 누가 시샘이라도 했을까? 첫째 딸이 갑자기 시력이 떨어져서 백방으로 치료를 했지만 결국 양쪽 시력을 모두 잃게 되었다. 그는 딸 치료등 뒷바라지를 위해 천직으로 여기던 판사를 그만 두고 변호사로 개업을 했다. 그 딸은 앞을 볼 수는 없었지만 공부를 잘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와 서울맹아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취직한지 9개월 쯤 되었을 무렵 두 동생들과 함께 집 부근 삼풍백화점에 들렀었는데 아! 인간의 생사문제가 정녕 절대자에게 있는 것인가? 그 때 그 수많은 순간들 중 왜 하필 바로 그 순간에 삼풍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들어갔을까? 아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끌려 들어갔을까? 세상이 꺼졌거나 엎어졌거나 사라지는 것 같은 경천동지할 삼풍백화점 건물이 굉음과 함께 삽시간에 붕괴되어 세자매가 모두 둘도 없는 생명을 잃고 말았다. 그 변호사는 세 딸들의 보상금으로 받은 6억 5천 만원에 본인 재산 7억 원을 보태어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첫째가 근무했던 서울 맹아학교 에 기증을 하였다. 

나는 여기서 문득 떠 오르는 늙은 부부가 생각났다. 그 늙은 부부는 젊은 날 동대문 시장에서 가게 얻을 돈도 없어서 이리저리로 쫒겨 다니며 길바닥에서 노점상으로 시작해서 자녀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정말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시간도 돈도 자린고비로 돈을 벌어 그가 팔십이 넘었을 즈음에는 동대문시장에서 소문난 부자가 되었다. 이제 이 부부도 늙자, 평생 모은 재산을 몽땅 자기 큰 아들의 모교인 고려대학에  모두 다 기증을 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생애인가! 고려대학측 말을 인용하면 "지금까지 기증받은 것 중 가장 큰 금액" 이라고 했다. 얼마나 보람된 삶인가!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아가 서울 맹아학교에 장학재단을 세웠던 그 변호사가 며칠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이름이 바로 '정광진 변호사'다. 삼풍 백화점의 이 천인공노할 부실공사로 인하여 딸 셋을 모두 잃고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 그는 아마 철인 (鐵人)이지 하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주신이도 하나님이시요 주신 것을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겼던 욥처럼 어찌보면 인생을 달관한 분이라 여겨진다. 

딸 셋을 한꺼번에 잃은 아버지는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까? 주의 종인 내가 이 일을 당했대도 아마 나는 미쳐버리지 않았었을까? 그 참혹한 날들을 어떻게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있었을까? 가늠도 잘 안 된다. 만약 내가 이 시련을 격게되었다면 아마도 나는 짐승처럼 날마다 울부짖다가 숨졌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겁니까?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습니까?" 라며 격렬하게 하나님께 대들었을 것이다. 혼탁한 사회에 꼭 있어야 할 법과 정의의 사도가 되겠다고 해서 걸어온 법조인의 길을 이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그는 법조인으로서의 사명과 본분을 잃지 않았다.

그는 불법이나 탈법이 난무하는 현실에서도 자세를 흐트러 뜨리지 않았다 그 또한 인간의 희노애락을 아는 한 인간이기에 절망으로 격렬하게 몸부림치던 중에 섬광처럼 절망을 뚫고 소망의 빛이 그의 온 몸과 영혼을 덮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는 "이제는 비명에 간 내 딸들이 세상의 빛이 되게 하는 것이 내가 아비로써 할수 있는 사명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는 망연자실의 절망을 딛고 절망을 희망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가 필생을 다하여 만든 맹인청소년들을 위한 장학재단은 세 딸의 이름 한자씩을 가져와 "삼윤정 장학재단"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수많은 맹인 학생들에게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삼풍백화점 사고로 세상을 떠난 둘째 따님은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한 살짜리 아들이 있었는데 정 변호사님이 그 외손자를 데려와 자신이 키우며, 사위를 설득해 재혼케하여 새출발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역지사지(易之思之)의 마음 참으로 놀라운 선택이 아닌가? 그 손자 아이는 절망가운데 비탄에 젖어있던 외조부모에게는 살아야 될 이유가 되었을 것이고, 또 홀아버지보다 더 극진한 사랑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린 손자의 생부에게는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 새 출발하는데 마음의 부담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때 그 어린 손자가 이젠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 영락없이 외할아버지를 닮아서 건장하고 아주 준수하게 잘 자랐다고 한다. 고인의 이러한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선택이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 모습을 보면서 그는 이 땅에 꼭 있어야 할 존재로서 모든 이의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무엇이 그런 탁월한 선택을 하게 하였을까? 그는 삼풍 백화점에서 세 딸을 잃고도 몇년 후엔 넷째마저 병으로 아버지 곁을 떠났다 자신의 삶을 다 쏟아 기른 네 딸 모두를 다 잃고도 어쩜 그렇게 대쪽처럼 올 곧게 정신 줄을 놓지 않고 석양의 아름다운 저녁 노을처럼 그리곱게 인생을 마감할수 있었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문득 유대인으로서 독일 히틀러에 의해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 남은 '빅터 프랭클린'이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유고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 무엇을 기대하는가?' 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게 하는가? 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보다 삶을 통하여 우리 자신에 대하여 매일 매시간마다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에서 머무르지 않고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삶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를 끊임없이 정화시켜 나가는 일일 것이다. 또한 내가 이 시대에  살아 있는 양심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몸담고 있는 맛을 잃은 이 사회가 살만한 세상이 될수 있도록 자신을 던져 맛을 내는 소금이 되자! 

'행동하는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나의 삶속에서 올바른 해답을 찾고, 내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려고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우리가 져야할 십자가를 대신 지시려고 이땅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정광진 변호사의 삶이 었고 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부름 앞에서 그는 끊임없이 세상에 기대는 것을 뒤로 젖히고, "세상이 내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 앞에 놓인 당면의 과제는 무엇일까? 나는 그 과제를 어떻게 수행해 나가야 할 것인가?"하고 그는 온 몸으로 물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자기의 삶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책임을 온 몸에 짊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먼저 떠난 딸들이 세상의 빛이 되어 영원히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 그 남겨진 혈육이 온전히 성장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평화를 다시 되찾는 것이었다. 그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련들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승화시키며 진정한 성화의 길을 삶으로 빚어 냈다. 그리하여 그는 임종의 순간에 "이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나이다." 하며 눈을 감을 수 있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의 인생은 그렇게 슬픈 것만도 또 그렇게 기쁜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 잘못과 무관하게 큰 시련이 올 때도 있다.   

그럴 때 어떤 사람은 남을 탓하고 자책하고 비관하다가 사라지고, 또 어떤 사람은 고통을 극복하며 세상에 남을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다시 '빅터 프랭클'의 글을 인용하면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 선택과 힘이 들어 있다." 시련이 왔을 경우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힘을 사용하느냐 에 따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시련 속에서 억울해 하며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대신, 삶이 우리에게 기대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에 대한 대답을 올바른 행동과 태도에서 찾아냈던 사람은 불멸의 가치를 만들어 냈다. 성경에서 욥이 그랬다. 빅터 프랭클이 그랬다. 그리고 정광진 변호사가 그랬다.

【종그니칼럼】 진정한 부자

서양철학의 개조(開祖)라 추앙받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Thales, BC.640-550)는 "소망이란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처럼, 빈부귀천 없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다"라고 말하였다.

조선 후기 19대 숙종(肅宗, 1675~1720 재위)에 대하여는 是是非非가 엇갈린다. 됨됨이보다 외모의 미색에 끌려 간택한 장희빈, 결국 나랏 일의 근간을 어지럽힌 그녀를 사사하고 난 후,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자 가난한 백성들이 모여 사는 민가로 암행을 나갔다. 가난이 덕지덕지 묻어 나는 민초들의 움막집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안타까워하고 있을 때, 천만뜻밖에도 다 쓰러져가는 움막집에서 낭랑한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솟을대문 기와집이 즐비한 부자 동네에서도 듣지 못했던 순박한 웃음소리에 숙종은 어리둥절했다. 숙종이 그 까닭을 알아보고자 움막 안뜰로 다가가 주인에게 냉수 한 사발을 청했다. 그리고 문틈으로 방안을 살펴보니 수염이 허연 할아범은 새끼를 꼬고, 올망졸망한 어린 애들은 짚을 고르고 있었다. 할멈은 방비를 들고 방을 쓸고, 젊은 애 어멈은 낡은 옷을 깁고 있었다. 그런데 모두 얼굴이 어찌나 밝은지, 도무지 근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숙종은 주인에게 물었다.

"나는 지나가는 행인이오 마는, 지나가다 들으니,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리기로 들어왔소! 형편은 무척 어려워 보이는데, 혹 이 집에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게요?"

할아범은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빚을 갚으며 저축하면서, 부유한 마음으로 살고 있으니, 저절로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잖습니까?"

궁궐로 돌아온 숙종은, 금방이라도 허물어 질듯한 움막에 살면서도, 빚도 갚고 저축도 하며 산다는 말이 하도 의아해서, 사람을 놓아 몰래 알아보도록 했다. 조사결과 그 집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몹시 가난한 집이었다. 더욱 궁금해진 숙종은 다시 그 집을 찾아가 주인에게 예전에 했던 말의 뜻을 물었다. 주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부모님 봉양하는 것이 곧 나를 낳아 길러준 은혜의 빚을 갚는 것이고, 내가 늙어서 의지할 아이들을 키우니 이게 바로 저축이 아니겠소. 그러니 무엇이 이보다 더 부자일 수 있겠소!"

그대는 아는가! 우리 조상들은 가난을 대물림하며 살아왔지만, 효행과 청빈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언제부턴가 가난을 모르고 사는 우리는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만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 도시던 시골이든 할 것 없이 거리마다 아이들로 가득 찼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가 되었는데도, 젊은이들은, 결혼도, 자녀 갖는 것도, 손사래를 치고 있다. 그래서 나라가 나날이 늙어가고 있는데도, 목전의 이익과 안일에 젖어 있다. 시골은 태반이 빈집이고, 노인들이 유령화 되어가는 농촌을 지키고 있다.

그래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 서민 출신 장희빈은 중전까지 되어, 부귀를 한몸에 받았음에도 분수를 모르고 더더하다가 죽음을 자초하였다. 그에 반하여, 숙종 때의 천민출신 '동이'는, 어려서 궁궐 안의 관노로 있다가 천성이 순수하고 영특하여 궁내의 감찰부에 발탁되어, 틈틈이 경전에 힘써 이를 두루 섭렵하였는데, 천성이 바라서 숙종의 눈에 들어와 숙인이 된 후, 장희빈의 눈을 피해 궁을 나와 왕자 금을 낳았는데, 이가 바로 장희빈의 아들 景宗을 이어 등극한 英祖(1725~1776)이다.

오늘 우리는 혹여 제2의 장희빈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부자는 아침에 눈을 뜨고 오늘을 축복으로 맞아,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사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즐거워하는 사람이 아닐까?

우리가 평소에 소소한 것으로 여겼던 바로 이것이 행복이며, 어떤 부족함도 없는 자족 할 줄 아는 마음, 즉, (知足이면 可樂), 주어진 것에 족할 줄 알면, 모든 것이 즐거울 것이다.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자기화할 줄 아는 마음이 "진짜 부자"가 아닐까?

"사람이 안일(安逸)의 방석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잠들기 쉽다. 그러나 고난의 길을 걸을 때, 바로 거기서 인생의 진수를 깨닫게 된다." Emerson.

성탄을 맞이하여,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속에, 평화의 아기 예수가 임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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