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년간 동막교회 섬기며 지역교계에서 리더십 발휘한 송기섭목사
▶ 제111회 총회 임원선거 부총회장 후보 출마 선언
한국교회가 변화와 혁신을 갈망하는 이 시대, 31년간 한 교회를 섬기며 지역 교계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온 송기섭 목사가 제111회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 조용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군림이 아닌 섬김, 갈등이 아닌 화합"을 기치로 삼으며, 투명하고 공정한 총회 운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표명했다.
■ 시련을 통해 다져진 신앙의 여정
송기섭 목사의 신앙 여정은 시련과 은혜가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과정이었다. 3남 3녀의 막내인 그는 중학교 때 아버지를 간암으로, 대학교 때 어머니를 폐암으로 잃고 일찍부터 인생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형제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장학금이 아니면 대학에 다니지 못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열심히 공부하며,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전액장학금으로 학비를 해결했다. 또한 입주 가정교사로 들어가 고등학생을 가르치며, 의식주 등 경제적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해나갔다.
입주 가정교사로서의 생활은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하심이었다. 입주 가정의 전도로 그는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고, 부산 부전교회에서 신앙의 기초를 쌓아나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잠시 방황했지만, 하나님과 교회가 나를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고 회고하는 송목사는, 부전교회에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해 하듯 열심히 배우고 봉사하며 신앙의 기초를 다져 나갔다.
■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신학의 길
주변에서 많은 이들이 목회자의 길을 권유하였지만, 그는 ‘좋은 장로님 되는 것이 소망’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게 잘 나가는 듯했던 직장생활 중 간염을 판정받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는 40일간 교회에서 철야 기도를 하며 비로소 자신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간구했다.
이에 하나님은 시편 51편 12-13절 말씀을 그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주시며, 평안한 마음을 허락해주셨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신 분명한 음성이었습니다.”
그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안정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1987년 총신신학대학원에 M.Div로 입학했다. 신학대학원 재학 중에는 1학년 3반 반장으로, 원우회 총무로 섬기며 ‘무감독시험’제도를 제안했고, 이를 성공적으로 실현시키며 실천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 온천제일교회, 목회 여정의 첫 발걸음
송목사는 온천제일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첫 사역을 시작하여, 선임부목사까지 5년 6개월 간 사역하며 목회의 기초를 착실히 쌓아나갔다.
“모교회인 부전교회에서 고 한병기 목사님(증경총회장)을 통해 구속사적 목회를, 고 신예철 목사님을 통해 감성적, 부흥적 목회를 배웠다면, 온천제일교회에서 장차남 목사님(증경총회장)을 통해서는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목회를 배웠습니다.”
장차남 목사가 총회장으로 활동 당시, 담임목사가 신경 쓰지 않도록 조용히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며, 선임부목사로서 자신보다 더 연장자요 사역 경륜도 더 오래된 부교역자들을 이끌어갔던 경험은 송목사가 어린 나이에 일찍 담임목사가 될 수 있었던 귀한 훈련과정이었다.
■ 담임목사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
교사였던 아내가 둘째를 출산하고 몸조리하던 당시, 송목사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유학의 뜻을 아내에게 내던졌다. 아내가 복직하여 두 아이와 생활해나가는 동안 자신은 홀로 미국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돌아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때 송목사의 아내는 주간기독신문의 동막교회 담임목사 청빙 광고를 내밀며 조건을 걸었다.
당시 만 34세였던 송목사는, 만 35세 이상이라는 담임목사 청빙조건에 부합되지 않았다. 신앙적인 배경도, 힘이 될만한 연고도 없었다.
때문에, 양털로 하나님의 뜻을 시험했던 기드온의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보자고 송목사의 아내는 제안했고, 청빙 지원에 떨어지면 송목사 혼자 유학을 가는데 동의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송목사는 간염으로 고생하며 건강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유학비를 마련할 특별한 방법도 없는 상황에서,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아내의 지혜로운 제안이었다.
둘째를 출산하고 수유 기간임에도 아내는 40일간 한 끼 금식기도를 하며, 자신을 동막교회에 담임목사로 보내달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보여 달라며 간절히 기드온의 기도를 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양털을 통해 불가능한 일을 보이시며 하나님의 뜻을 확인시켜 주셨듯이, 송목사의 동막교회 칭빙과 간염 치유라는 기적으로 그 기도에 답해주셨다.
■ 동막교회 31년, 갈등을 화합으로 승화시킨 목회
1994년 9월 18일, 2년간 임시목사 조건으로 송목사는 동막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했고,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의 신뢰를 통해 4개월 후 위임목사로 위임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만 34세의 젊은 나이에 담임목회를 시작한 송목사는, 목회 초기에 큰 시련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송목사는 부임 1년 후, 50-60대 장로들과의 갈등을 참지 못하고 사표를 내던지게 된 것이다.
“목사님, 우리는 60대이고 안 바뀝니다. 목사님이 바뀌십시오.”
그때 한 장로님이 사표를 반려하며 했던 직언을, 송목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였다. 송목사는 ‘연세 많으신 장로님들이 먼저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젊은 내가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훈련해 나갔다.
책상 위에 ‘무인불승(無忍不勝)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적어 붙여놓고 매일 확인하며 인내 훈련을 했고, 당회 전마다 금식하며 기도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장로님들의 의견에 공감하고 수용해 드릴 때 당회 분위기가 서서히 바뀌어가는 것을 경험했고, 송목사는 진정한 섬김의 리더십을 체득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막교회는 부임 초기보다 몇 배 부흥을 경험했고, 도시공동화 현상으로 주변의 많은 교회들이 위축되는 상황 속에서도 대구의 도심 한 가운데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어가고 있다.
■ 대구 교계 대표로서의 경험, 검증된 행정력과 추진력 그리고 리더십
송목사는 31년 간 한 교회를 섬기며, 대구지역 교계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아 섬겨 왔다. 대구군선교회 지회장, 동대구노회 노회장, 대구성시화 대표본부장,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대구교직자협의회 대표회장, 제103회 총회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 교계 발전에 기여했다.
송목사는 직책을 맡을 때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가? 내가 될 수 있는가? 내가 되어서 할 수 있는가?"를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확신이 섰을 때 그 직책을 수락하여 섬겼다고 밝혔다. 이처럼 신중하면서도 책임감 있는 자세가 그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핵심 원동력이다.
특히 노회장 재임 시에는 투명한 의사결정과 공정한 업무 처리로 동료 목회자들의 신뢰를 얻었고, 대구지역 교계연합사업에서도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며 화합과 협력의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경험과 실적을 바탕으로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지역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 목회자의 중요한 자질, 위아래를 화평하게 아우르는 품성
송목사는 올해 소천하신 고 정석현 원로목사를 31년 간 극진히 모시며 화목한 관계로 지내왔다. 고 정석현 원로목사가 주변에 후임 송기섭 목사를 존경한다고 종종 말씀하셨다는 것은 송목사의 인품을 반증하는 일화이다.
① 교인들을 잘 양육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자가 되게 하는 것.
② 그리고 부교역자들을 잘 성장시켜 좋은 담임목사가 되게 하는 것.
사람을 키우는 사역을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는 송목사는, 이를 자신의 목회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두 가지 축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함께 사역했던 여러 부교역자들 또한 훌륭한 담임목사로 성장하여 대구뿐만 아니라 영남지역에서 사역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다. 각 지역에서 지금은 중견의 자리에 있는, 동막교회 부교역자 출신 담임목사들은 공공연하게 송목사를 자신의 “ 멘토”라고 이야기하지만, 송목사는 그들을 가리켜 “ 청출어람 목사들 ”이라며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이들은 매년 송목사의 생일 때마다 각처에서 모여 생일축하 자리를 마련해주고 함께 식사하며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갖는다고 송목사는 또한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이러한 사례는 평소 아랫사람들을 향한 송목사의 깊은 애정과 권위의식 없는 태도에서 출발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그 인성의 열매일 것이다.
■ 소통과 화합의 총회 비전 제시
그는 "군림하지 않고 섬기는 총회 리더가 되겠다"며 "항상 소통과 화합을 중요시하고, 신중하게 합리적으로 의견을 도출하고, 결정이 되면 내실 있게 일을 이루어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송목사는 이를 ①소통과 화합, ②공정한 총회, ③내실 있는 실행, ④섬김의 리더십 4가지로 정리하여 강조한다.
송목사의 가장 큰 강점은,
① 31년간 화평한 관계로 원로목사를 잘 섬기며 성도들의 신뢰 속에서 한 교회를 묵묵히 목회해온 인격적이고 포용력 있는 인품,
② 목회 초기의 갈등을 화합으로 승화시킨 실제적인 경험,
③ 대구지역 교계에서 행정력과 추진력을 검증받은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이를 바탕으로 한 송목사의 도전이 제111회 총회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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