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옛터는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연상시킨다.

동로마 천년왕국이 무너지고 지금은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어버린 동로마교회 성터에서 소강석 목사는 <황성옛터>를 부르며 통곡했다. 잃어버린 교회당, 잃어버린 신앙,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를 애통해 하면서...

<황성옛터>는 1928년 한국인이 작사와 작곡을 한 최초의 대중가요이다. 나라 잃은 아픔을 폐허에 빗댄 가사와 슬픈 왈츠의 곡조는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했다. 조선총독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전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1.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서 잠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2.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덧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

3. 나는 가리라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는 이 심사를 가슴 속 깊이 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베르디가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입지를 다지게 한 작품인 오페라 <나부코>는 구약성경 예레미아서에 있는 바빌론 포로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국을 잃고 거친 강제 노역에 시달리는 히브리인들이 잠시 쉬는 동안 부르는 노래가 바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다. 오페라 나부코는 1842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8천명의 합창단과 함께 초연했다.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언제나 앙코르 요청을 받았으며, 결국 이탈리아의 비공식적인 국가가 되었다. 나부코의 딸과 히브리 청년의 사랑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아비가일레의 삼각관계는 종교와 국가의 대립과 아버지와 딸의 대립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구약에 보면 히브리 백성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심판으로 바벨론 포로가 된다.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 가장 먼저 예배를 잃어버렸다. 찬송도 마음껏 부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용지물이 된 수금을 바빌론 강가 어느 나무에 걸어두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시137:1-2)"

히브리 백성들은 바빌론 강가에서 시온을 바라보며 울면서 하나님 앞에 마음껏 예배드리던 그 옛날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페르시아왕 고레스를 세워 하나님의 백성들을 예루살렘 시온 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꿈같은 일이었다.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그들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그들 혀에는 찬양으로 가득했다. 예배가 다시 회복되는 기적이었다. 

예배든지 신앙이든지 나라든지 잃어버리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줄 알게 된다.  동로마교회의 황성옛터가 남의 일 같지 않은 것은 지금 우리 현실이 그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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