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진 목사, 신대원79회, 미국 시카고 거주
Sound mind in a sound body!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그만 몸에 이상이 왔다. 무어 암이랄까 하는 심각한 이상은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 회복되는 그러한 약간의 비정상이 온 것이다. 이제 나이도 들고 해서 몸에 이상이 오면 예전처럼 금방 회복되지도 않는다. 기어이 시간을 끈 다음에 슬그머니 줄을 놓는 그러한 형상이다. 줄다리기를 한다고 해야하나? 내 몸과 그 놈의 질병이 당겼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보면 하세월 따라 늙어가는 것이다

몸에 이상이 오면 첫째, 열이 나고 몸살이라고 부르는 근육통, 그리고 목이 아픈 인후통 등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몸 자체가 나른해지니 별달리 무어라도 하고 싶지않다. 두뇌회전도 느려지니 글 쓰는 것 조차 귀찮아진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않고 며칠 푹 쉬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살아가는 이민생활이라 들어누워서 쉬기도 마뜩찮다. 돈 벌어 쌓아둔 것도 아니고, 누가 돈을 갖다주는 것도 아니라서 쓰러져 몸을 못가눌 정도가 아니라면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돈을 벌고 생활해 나갈 수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던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새삼 삶의 진리로 다가온다.

머리도 맑지않아 찌푸둥하고 욱씬욱씬 하는 몸살을 끌어안고 날마다 새벽이면 일어나 삶의 전장터로 향하고 있다. 한국이라면 가까운 온천이나 시설 좋은 싸우나에 가서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 회복이 빠르려나? 목욕하고 나와서 두툼한 삼결살을 노릇노릇하게 구워먹고는, 별다른 재료가 없더라도 애호박하고 대파나 썰어놓어 보글보글 끓여낸 뚝배기 된장찌개라도 먹으면 대낄이겠다는 소리가 절로 터져나온다. 혹은 내가 좋아하는 칼칼한 생선 매운탕 한 뚝배기 했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같다.

어제는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 선상에서 희한한 경험을 하였다. 차들도 많이 없어 약간은 한가한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집에 오는데 어스름한 시간이라 운전대 앞의 윈드쉴드에 지나가는 차의 조명이 그림처럼 머물렀다가는 지나가곤 한다. 그런데 갑자기 눈 앞에 금방 끓여낸 생선 매운탕 한 뚝배기가 올라온 것이다. 아니 환영(幻影)처럼 스쳐가는 것이었다. 분명히 다 끓여져서 쑥갓과 둥글게 썬 청양고추와 어슷썰기로 한 파를 보기좋게 올려서 내온 칼칼한 생선 매운탕 뚝배기였다. 물론 아래에는 두툼한 생선살들이 희뜩희뜩 보였다.

이게 뭔 조화란 말이냐? 내가 지금 환상을 보고 있다는 말이냐? 아니면 몸이 약간 아프다고 내가 실성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 생선 매운탕 한 뚝배기가 그리도 먹고싶어서 그 바램이 운전대 앞 윈드쉴드에 환영으로 비추었다는 말인가?

아무튼 희한한 경험을 하고는 무사히 집에 도착하였다. 내가 살고있는 이 동네는 딱히 생선 매운탕이랍시고 비슷하게 끓여내오는 식당도 없다. 캘리포니아라면 후딱 식당에 가서라도 한 그릇 시켜먹고 오면 되겠지만서두 말이다.아무튼 오랫만에 몸이 아프면서 별 이상한 경험을 다해본다. 마치 게걸스레 먹는 귀신인 걸구라도 붙은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미국 격언 한 마디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우리가 중학교 시절 필독서였던 안현필 선생이 쓴 삼위일체 영어 참고서의 잔소리 박스에 있었던 문장같기도 하다.

Sound mind in a sound body!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하영진칼럼】 커피와 돌아이 그리고 호스피스

평생을 자식들을 위하여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신 어머님이 계셨습니다. 슬하에 여러 자식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는 배 아파서 낳지는 않았지만 가슴으로 낳고 가슴 아파가며 기른 자식들도 있었습니다. 가슴으로 낳은 자식들은 노모의 암선고 소식을 듣고는 모두 두손들고 소식을 끊고 잠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재가하여 배 아파 낳은 막내아들만이 엄마의 암세포에 대항하여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습니다. 

그 아들은 엄마의 암선고를 듣던날 온 세상이 무너지는것 같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일단 녹즙부터 만들기 시작 했습니다. 항암성분이 많다는 케일과 치커리, 그리고 여러 생야채를 날마다 갈아먹이며 의사의 권유대로 암과의 전쟁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항암치료는 나쁜 암세포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면역세포까지 죽이게 되는 부작용이 있어 생야채즙을 소화 시키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중단하라고 선언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수십권의 책을 읽어가며 어머니를 살리고자 부작용으로 설사가 나오는 것까지 자신이 감당하리라고 엄마에게 기저귀를 채워가며 녹즙투여를 계속하였습니다.

항암치료 때문에 피부는 거무거뭇한 탈색이 되어가고 피부는 늘어져갔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지극정성 보살핌으로 엄마는 차차 혈색을 찾아갔습니다. 엄마를 살리고자 아들은 직장을 퇴근하면 엄마 손을 잡고 인근 중학교로 가서 운동장을 이십여 바퀴를 돌고는 스쿼트를 하루에 삼사십여개를 하게 했습니다.

엄마는 아들의 지극정성 간병과 자신을 향한 막내아들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자고있는 새벽에 가만히 일어나 학교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운동을 하게되었습니다. 그러던 엄마가 결국에는 내가 일하고 있는 샘물 호스피스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된것입니다. 아들은 뭐가 문제인지 알고싶었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완전 회생까지는 아니지만 다만 몇년만이라도 곁에 계시라고 엄마를 붙들고 애원했습니다.

아들은 엄마를 샘물 호스피스에 모신후 병원내의 여러 간병시스템을 보고는 자신이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와도 되겠다고 안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그리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새벽이면 일을 가고 저녁이면 들어오는 빈집의 공허감이 찾아들어왔습니다. 도저히 견딜수 없었습니다. 힘들어도 엄마곁에서 자야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엄마의 발병이후 일곱번내지 여덟번의 응급실과 대학병원에 입원시키면서 아들은 점점 엄마의 암에 대하여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 아들은 엄마를 들쳐업고서라도 공기 맑은 지리산에 가지못한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함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은 최선을 다했노라고 가만히 말해주었습니다. 누구도 최선을 다하지만 생명만큼은 그 누구의 몫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는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우리는 전능자앞에서 잠잠히 설수밖에 없는것 존재라고 조용히 말해주었습니다. 정말 그의 손이라도 꼭 잡아주고 허그라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는 남자였습니다. 마음으로만 그리하였습니다. 지금 쏘셜워커로서 내가 할수있는 일은 최대한 그 자신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일이라 생각했고 잠잠히 그가 하는 말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들어온 첫날부터 얼마나 까탈스럽고 불만 투성인지 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요양사들까지 모두가 그를 슬슬 피했습니다. 나도 역시 되도록 그와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 나이가 몇 살이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하여왔던가? 그동안 파란만장한 목회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깨어진 유리의 여러조각들도 정성들여 붙여놓으면 말끔한 유리창보다 스테인드 글래스라는 묘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고 말해주던 천국에 먼저 가신 남편 목사님이 나에게 해주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래스 작품을 만들어가는거야 하고 작심했습니다. 

나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 말에 탄복하며 고개를 끄덕여가며 그가 하는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커피 로스팅을 해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바리스타였습니다. 대화 속에서 커피 라는 간단한 단어 하나가 그의 입에서 나와 수십개 때로는 수백개의 날개를 달았습니다. 때로는 잔잔한 호숫가의 백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음험한 흑조가 되기도 했습니다.

커피콩 하나로 에디오피아에서 케냐, 인도 그리고 남미까지 전세계 깊숙한 고산지대까지 넘나들었습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의 기류를 타고 이곳저곳의 커피생산지를 탐험했고 로스팅의 수십가지 방법에따라 얼마나 원숙한 커피가 탄생하는가 고개를 끄덕거려가며 들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게 올려지는 다양한 커피 종류에 관하여 들었습니다. 병원복도만 아니라면 노트와 펜을 들고 적어가며 듣고싶었습니다. 

그는 워낙 까칠한 남자라서 늦은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간호사조차 끊지 못하는것 같았습니다. 나역시 온갖 눈치를 보면서도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 까칠한남자를 순한 양인것처럼 상대하는 나를 야단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아니 그보다 그의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가 있는지 그에게서 계속해서 커피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나는 가끔씩 커피를 햠한 젊은이들의 습관적인 무한소비와 무턱댄 사랑을 슬쩍슬쩍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의 커피 찬양론과 커피 로스팅에 나 자신이 구수하게 로스팅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은 왜 로스팅한 것 커피를 사다가 내려서 손님에 주지않고 직접 로스팅해가며 힘들게 영업을 하는지를 그남자는 조용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열변을 토해냈습니다. 그 청아하고 깔끔한 한 잔의 커피를 탄생시키려고 수도 없는 나라와 지역들을 찾아다니면서 그 하이 퀄리티의 지식을 습득하기위한 길고 긴 시간과 여정과 재물까지 아낌없이 투자한 사람들을 찬양했습니다.

마시고 난 뒷맛이 깔끔한 한 잔의 커피. 그러한 커피를 인정해주고 거금도 아끼지않는 커피 매니아들. 어느새 나는 더 이상 커피에 관하여 무지한 말을 삼갔고 어찌하면 나도 그런 세련된 커피를 마실수있느냐고 묻고 말았습니다.

혹시 강릉서 커피 로스팅하는 유명한 집을 아느냐고 그는 물었습니다. 그의 질문에 나도 들어는봤다고 응답했습니다. 언제 한번 시간내서 가보라고 그는 말했고 나도 꼭 한번은 KTX열차를 타고 가서 강릉에 가서 그 유명하다는  강릉커피를 한잔하고 오리라 다짐했습니다.

그 까질하다못해 돌아이 아니냐고 뒷담화를 했던 우리들 호스피스 직원들과 나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워졌습니다. 작은 커피 한 잔에 담긴 열정과 미학도 모른채 살아온 나 자신이 슬그머니 부끄러워졌습니다.

이제 그는 순한 양처럼 자기 엄마 옆자리 누워서 쌔근쌔근 잠자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도 밤을 새어가며 내가 맡은 일을 해야합니다. 날이 밝으면 새장의 새가 날아가듯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달려갈것입니다. 

힘들고 기나긴 오늘 밤이여 안녕!
엄마와 커피밖에 모르는 돌아이여 안녕!
내일은 또 다시 내일의 해가 떠오를텐데 이 아름다운 상처입은 청년을 아웃사이더로 몰아내려했던 나자신을 채찍질합니다.

너는 여전히 부족해! 
그러면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

*후기: 
이 글은 호스피스에서 사역하는 쏘셜워커분의 수기 입니다. 저의 선배 목사님 이시지만 저의 친구이기도 했던 목사님의 사모님이 저에게 보내준 경험담을 제가 단편꽁트처럼 수정하고 편집하였습니다.

그 분은 언제나 허허 하면서 소탈했던 목사님이셨습니다. 커다란 체격만큼이나 마음도 넓은 분이셨습니다. 체격만큼만은 파바로티와 엇비슷해서 한국의 파바로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맑은 테너 음성으로 찬양하기를 참 좋아하셨던 목사님이셨습니다. 말년에는 서해안 흑산도 부근 작은 섬에서 목회하시다 소천하신 후 시신은 아산병원에 의료연구용으로 기증하셨습니다. 이 땅에 말뚝 하나 꽂을 손바닥만한 땅도 차지하지 않고 툴툴 털어버리고 홀연히 하나님나라로 가신분이십니다.

한향기 사모님은 이름 그대로 예수향기가 풀풀나는 분입니다. 섬 목회 하면서 언젠가는 섬에서 나오게되면 전세라도 얻으리라고 절약하고 절약하여 적금을 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려운 어느 사모님 이야기를 듣고는 목포까지 배 타고 나가서 적금을 깨어 그 사모님 손에 쥐어드리던 분입니다. 목사님 소천 후 쏘셜워커가 되어 호스피스에서 일하며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며 신앙으로 천국길로 안내하는 사역을 사명감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큰 딸은 목사 사모가 되었고 작은 딸은 최근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로 임용 허락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마음을 품으시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 임종을 앞둔 분들에게 천국으로 인도하는 귀한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하고 계시는 분의 생생한 삶의 현장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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