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범 박사(총신교수, 새순교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후부터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한다. 이때 누리는 은혜가 너무 많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소망하는 것은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나라이다. 그런데 하늘나라가 어디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으면 쉽게 답하지 못한다. 이런 현실에서 장차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은 오래 전에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사도 요한이 마지막으로 본 환상으로서 그를 통해 알 수 있다.

그가 본 새 하늘과 새 땅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대체하는 개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죄로 말미암아 절망상태에 있던 사도요한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놀라운 환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도 요한만 바라보아야 할 곳이 아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 살고 있는 우리도 죄와 죽음으로 인해 절망하면서 바라보아야 할 곳이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바른 고찰”이라는 논지를 고찰하는 것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에 살면서 죄와 죽음으로 인해 절망하고 탄식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일일뿐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곳은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영원히 섬기며 살 곳이기 때문이다.

완전 소멸론

그러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소망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디인가? 이런 질문에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하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처음 창조된 세계와는 전혀 다른 불연속의 장소라고 한다. 이 경우는 마태복음24:29절과 베드로후서3:12절 등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그날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리라”(마24:29). “그날의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 지리라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이런 성경구절에 근거하여 불연속을 강조하는 자들은 현재의 우주가 완전히 소멸되어 전혀 별개의 우주가 등장한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취하는 자들을 ‘완전 소멸론 자’라고 한다(최홍석, “현대 교의학에서의 천년왕국과 종말” 신학지남 제59권 4집, 1992, pp.43~44.).

만유 갱신론

또 하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처음 창조된 세계의 연속이 될 장소라고 한다. 이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 현재의 우주와는 근본적으로 동일하되, 오직 새롭게 되고 정화된다는 입장이다. 물론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 신천지(이만희), 재림예수교회(구인회) 등이 주장하는 새 하늘과 새 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렇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소멸되지 않고 새롭게 갱신된다는 경우는 대개 요한계시록21:5절과 로마서8:20~21절) 등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계시록21:5).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로마서8:20~22).

이런 성경구절에 근거하여 연속을 강조하는 자들은 현재의 창조세계가 성령의 능력으로 정화되므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갱신된다고 한다. 이런 주장을 취하는 자를 ‘만유 갱신론자’라고 한다.“(최홍석. p.42)

창조경륜 - 바른 관점

이런 두 견해를 놓고 어떤 견해가 바른 견해일까? 이것은 성경 몇 구절을 가지고 바르다 틀리다고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경륜의 관점에서 볼 때 가능하다. 여기서 창조경륜이란 하나님이 창조를 하실 때에 세우신 목적으로서 창조세계 가운데서 자기 백성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그들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창조경륜의 첫 시행인 처음 창조를 이해해야 한다. 이때 창조란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 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기와 다른 존재를 자기 밖으로 나타내신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창조란 풀루티누스의 유출설처럼 하나님자신의 유출이나 분여가 아니고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주권과 의지로 만든 피조물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세계 위에 온전히 임재하시며 자신의 창조물들로부터 찬송과 영광을 받으셨다. 이런 의미에서 처음 창조세계는 하나님이 찬송과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여기서 처음 창조는 하나의 출생으로서 죄의 유입여부와 관계없이 역사의 과정과 흐름을 거쳐 완성이 이루어지는 종말을 향해 간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창조 언약 파기- 아담의 불순종

그러나 처음 창조세계를 위임받은 첫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하나님과 맺은 창조언약을 파기하므로 죄가 창조세계에 유입되고 말았다. 이에 인간과 피조세계가 하나님과 분리되었고, 또 이런 분리로 인해 인간과 피조세계가 오염과 부패, 그리고 죽음이 지배하는 타락한 세상,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죄 때문에 처음 창조 때 가졌던 자신의 목표인 하나님나라를 포기하지 않고 개입하셨다. 그 일환책으로 하나님은 자신이 세운 대표들과 언약을 체결하였다. 곧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 등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일반역사 속에 찾아오셔서 언약의 바퀴를 돌리시면서 구속의 역사를 전개하셨다. 하나님은 때가 되어 창조 중보자인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중보자로 삼고 그를 세상에 보내셨다. 그 이유는 창조 중보자만이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과 피조세계를 그의 피로 구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 언약 회복 - 그리스도의 구속

이에 하나님은 구속 중보자인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우리 인간대신 진노를 받고 죽게 하셨다. 더 나아가 그가 흘린 그의 피를 통해 인간과 피조세계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고 부활하심으로 세상나라에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나라를 도입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이 있다. 그것은 구속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첫 번째 대상이 인간이다. 그런데 구속의 대상이 인간만이 아니다. 또 다른 구속의 대상이 피조세계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죄로 인해 피조세계도 죄의 오염과 저주뿐만 아니라 죽음의 지배를 받고 탄식하고 있기 때문이다(롬8:19~22).

이에 그리스도가 그의 피로 피조세계의 죄까지 다 제거하였다. 그리하여 피조세계도 회복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본래의 목적을 구현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사건은 한 개인의 사건이거나 한 시대의 사건이 아니고 전 우주를 회복시키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창조 언약 완성 - 그리스도의 구속

더 나아가 구속중보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초림한 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시작한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역사의 종말에 재림주로 다시 오신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주로 오시는 것이 악한 자들을 심판만 하시기 위해 오시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심판은 구속의 완성을 위한 일환책일 뿐이다. 결국 그리스도가 재림주로 오시는 이유는 그가 구속중보자로서 초림 때 시작한 구속을 완성하려 오신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창조역사의 시발자로서 그가 시작한 창조역사를 완성하신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의인)들은 그리스도처럼 시공간에 제한을 받지 않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또한 죄로 인해 탄식하던 피조세계도 그리스도의 피로 완전히 정화되어 신령한 몸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살기에 합당한 거소가 된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되었기에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불에 타거나 사라지지 않고 보존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 - 새 하늘과 새 땅의 예언 및 성취의 근거

이런 사실은 하나님이 일찍이 이사야를 통해 세세토록 존재할(사66;22) “새 하늘과 새 땅”(사65:17~18)을 창조한다고 약속했고, 또 다니엘을 통해 “이 열 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단2:44)고 했다. 사도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있지 않더라.(계21:1)

여기서 “새롭다”는 단어는 neos(νέος)가 아니라 kainos(καινός)이다. 이것은 단순이 신선하다”(fresh)는 의미가 아니다. “새롭다”는 것은 질적으로 새로워진 상태를 의미한다(Leon Morris, The Revalation of St. John, Tr. 김근수, 서울: CLC. 1992, p.296). 따라서 “새 하늘과 새 땅”(οὐρανὸν καινὸν καὶ γῇν καινήν΄)은 “현재의 우주와 완전히 다른 우주의 출현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롭게 된 것이다. 결국 새 하늘과 새 땅은 현재의 우주와 연속성이 있는 우주의 재창조를 뜻한다(Anthony A. Hoekema, The Bible and Future.2012. p. 389).

이는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요한계시록21:5)는 말씀을 통해 입증된다. 여기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이는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어란 양이다. 이때 어린 양은 짐승이 아니고 십자가에서 피 흘림을 통해 구속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시한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 중보자였는데, 이제는 구속중보자가 되어 피조세계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므로 구속을 이루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이순태.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디인가?1994.pp.19~20).

새 하늘과 새 땅 - 완전소멸 아닌 만유갱신

그런데 이런 진술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부활한 신자들의 육체들과 비교할 때 더 명확해진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재림 때 영광스럽게 부활한 육체는 다른 육체가 아니라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이라는 것이다. 물론 부활 때의 우리 육체는 부활의 첫 열매인 예수 그리스도처럼 신령한 몸으로서 현재의 육체와는 다른 점이 있다(불연속). 그렇지만 부활 때의 육체(영체)는 현재의 육체와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몸의 부활이다. 그러하기에 부활 때의 육체(영체)와 현재의 육체와는 연속적이라고 해야 바른 이해이다.

이처럼 피조세계(종말에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도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연속적이다. 그것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소멸되지 않고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상태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이때 만일 하나님께서 현재의 우주를 변화시키지 않고 아담의 죄로 소멸시킨다면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영광을 받기 위해 창조한 세계를 포기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렇게 되면 사단은 승리를 쟁취했다고 큰 소리치고 말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은 소멸된 뒤 다른 세계가 아닌 기존세계의 회복, 또는 갱신된 세계(Anthony A. Hoekema. op. cit.p.395)라고 해야 바른 이해이다. 즉 기존의 것이 완전히 폐기되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기존의 것을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새롭게 회복되는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것이다. 이때 인간이 이룬 모든 문화도 회복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룩한 문화로 변화된다.

새 하늘과 새 땅 - 영원세계로 편입

하나님이 죄로 더러워진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이렇게 그리스도의 피의 권세로 깨끗하게 하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된다. 이때 새 하늘과 새 땅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 다 제거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죄가 완전히 제거된 새 하늘과 새 땅에 임재 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냥 임재만 하시는 것이 아니고 구속받은 그의 백성들과 영원히 함께 사신다(계21:1~7,22,27. 22:1~5). 그리고 하나님은 구속받은 그의 백성으로부터 영원히 찬양과 경배를 받으신다.

그뿐이 아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하나님이 온전히 임재하므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연 순환법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산다. 그러하기에 새 하늘과 새 땅에는 밤이 없고 계절이 없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없다(눅20:34~36). 온갖 악과 불법이 없다. 또 이곳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 때문에 눈물, 고통, 질병, 늙음, 저주, 죽음이 없다(계21:4) 그 대신에 그들은 영원한 기쁨과 생명과 안식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살게 된다(계22:1~5).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이곳과 다른 저곳에 하늘의 보좌가 있고, 그곳에 하나님이 계신다. 그런데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해, 죄가 제거되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 저 하늘의 보좌가 합치된다. 그리고 그때는 지금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적인 제약과 공간적인 제약이 없게 된다. 그 결과, 하나님이 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원세계로 편입되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바른 고찰”이라는 논지 앞에 새 하늘과 새 땅은 다른 세계가 아닌 기존세계의 회복, 또는 갱신된 세계라는 사실이 창조경륜의 관점에서 바른 이해임을 알아야 하겠다. 즉 새 하늘과 새 땅이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완전히 폐기되고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기존의 것이 그리스도의 초림 때 구속을 통해 회복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구속이 완성되는 곳임을 알아야 하겠다.

최낙범 박사(총신교수, 새순교회) : 중앙대학교 철학과 졸업(B.A), 총신대신학대학원 및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졸업(Th.M), 숭실대학교 대학원 졸업(Th.M), 미,Kernel University 대학원 졸업(Th.D), 총신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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