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행위언약 = 아담언약(?)
존 머레이 박사는 그의 조직신학 2권 5항에서 '아담에 대한 경륜'을 다룬다. 그는 이렇게 그의 신학을 논증해 간다.
그러므로 아담에 대한 경륜은 사람이 조건부의 지위로부터 확정되고 완벽한 거룩함과 복된 지위로 옮겨질 수 있는, 즉 범죄할 수 있는(Posse Peccare) 그리고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Posse Non Peccare) 상태로부터 범죄할 수 없는(Non Posse Peccare)상태로 옮겨질 수 있는 규정을 하나님이 특별한 섭리의 행위에 의해 사람을 위해 제정했던 경륜으로 해석된다. 실시된 방식은 '집약되고 집중된 시험'의 방식이었는데, 순종 또는 불순종의 결과에 따르는 두 종의 결말이 있었다.
이 경륜은 '행위언약(The Covenant Of Works)'으로 지칭되어 왔다. 두 가지 고찰이 가능하다. (1) 경륜 속에 내포된 은총의 요소가 '행위'라는 용어에 의해 적절히 표현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 용어는 알맞지 않다. (2) 이 경륜은 성경에서 언약으로 지칭되지 않는다. 호세아 6:7은 달리 해석될 수 있으며, 아담의 경륜에 언약으로 지칭되지 않는다. 호세아 6:7은 달리 해석될 수 있으며, 아담의 경륜에 있어서 그러한 구성을 위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게다가 성경은 항상 구속 또는 구속의 계획과 밀접히 연관된 규정과 관련된 하나님의 사람들에 대한 경륜에 대해서 언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성경에서 언약은 맹세와 결부된 약속의 확정을 의미하며, 아담에 대한 경륜에 결여되어 있는 보증을 수반한다. 그 경륜이 언약으로 불리든 아니 불리든, 그 유일 무이성과 일회성은 인식되어야 한다. 그것은 성경이 옛 언약 또는 첫 언약이라 부르는 것과 결코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참고. 렘31:31-34; 고후3:14; 히8: 7, 13).
첫 언약 또는 옛 언약은 시내산 언약이다. 지시 대상에 있어서의 이러한 혼동을 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세 언약을 아담의 제도와 관련하여 해석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피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오직 순수의 상태, 대표하는 머리로서의 아담에게만 적용될 수 있었다. 모세 언약에는 소위 행위 언약의 반복이 있었다는 계약신학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견해는 심각한 오해이며, 모세 언약의 잘못된 구성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담에 대한 경륜의 유일무이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모세 언약은 성격에 있어서 명확하게 구속적이었으며, 아브라함 언약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아담에 대한 구속 경륜은 구속적 규정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그 약속의 요소는 구속이 필연적으로 된 상황에서는 아무런 적절성도 갖고 있지 않았다."
존 머레이 박사는 69페이지에서 아담에 대한 경륜의 적극적 측면 3번 항목에서 이런 말을 한다.
"그리스도가 행한 순종은 아담이 실패한 순종을 성취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이 내용과 요구에 있어서 동일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순종하도록 요구받았고, 근본적으로 다른 요구 사항을 성취하도록 요청되었다. 그리스도는 죄를 담당하신 분으로이었으며, 그가 받은 요구의 절정은 죽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담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구속하러 오셨으나 아담은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전적으로 다른 조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중대한 요구 사항하에서, 아담이 실패한 바 있는, 온 마음을 다한 전적인 순종을 드리셨다.
아담에 대한 경륜은, 우리의 상황과 실제적인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그리고 거의 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만큼 우리로부터 동떨어진 채 추상적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와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성경적으로 형성된 사고 방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사고가 성경의 계시에 의해 규제된다면, 아담의 제도는 강력하게 우리의 문제로 다가온다.
우리는 죄인이며, 죄인으로서 세상에 왔다. 이 상황은 설명을 요구한다. 그것은 경험적 사실로서, 그저 유효할 수 없는 없다. 그것은 의문을 요구한다. 왜 또는 어떻게? 인류적 연대성에 대한 모든 것을 내포한 아담에 대한 경륜만이 그 대답을 제공한다. 이것이 죄와 죽음의 보편성에 대한 성경적 대답이다.
우리는 구원을 필요로 한다. 구원은 우리의 필요에 어떻게 관계되는가? 아담 안에서의 인류적 연대는 구원이 계획되고 적용되는 방식이다. 아담에 의한 죄-정죄, 그리스도에 의한 의로움-칭의-생명. 우리를 아담과의 연대성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사고 방식은, 우리를 구원이 오는 방식인 연대성에 부적응하게 만든다. 따라서 아담에 대한 경륜은 인간의 상황에서 한편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또 한편으로 가장 필수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다.
2. 그리스도의 순종과 칭의의 근거
존 머레이 조직신학 2권 163p. 3장 14 그리스도의 순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구속 사업의 중추적 사건들-죽음과 부활-을 그는 메시야권 권세의 행사에서 성부의 명령을 좇아 성취했다. 사도 바울의 가르침은 비슷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순종을 핵심에 놓고 있다(롬5:19; 빌2:7,8; 하5:8,9; 10:9,10). 증거들은 우리가 속죄에 관해 갖고 있는 개념이 순종의 개념에 의해 지배될 때에만 성경적으로 방향이 정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혁파 신학의 대부인 존 칼빈의 통찰력은 이런 맥락에서 상기되어야 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묻기를,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에 대하여 호의를 갖게 하고 인자하게 할 만큼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 죄를 철폐하고 우리와 하나님의 분리를 소멸시키고 의로움을 얻었는가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그는 완전한 순종에 의해 이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존 칼빈)."
그리고 우리는 그 후 개혁파 신학에서 속죄의 교리를 신조화할 때 그리스도의 능동적이며 수동적인 순종의 강조를 상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네 항목으로 나누어 순종이라는 범주를 설명해 나갈 것이다." 내부성, 점진성, 정점을 이루는 요구, (순종의) 동력..
존 머레이 박사는 이처럼 그의 조직 신학에서는 개혁파 선배들의 순종 구분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와 함께 존 머레이 조직신학 2권 , 223페이지에서 머레이 박사는 칭의의 근거로서 4번째 항목에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다." 5번째 항목에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 특히 그의 피를 통해서이다."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근거 구절로서 다음의 성경구절들을 제시했다. 로마서 3:24,25 ; 25:5,9 ; 6:7; 8:33, 34; 고린도후서 5:18-21. 이 성경구절을 제시한 후 아래의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속한 덕목은 특히 그의 구속적 성취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며, 우리는 칭의의 근거가 되는 의를 찾으면서 바로 이 점에 주의를 돌리고 있다."
그는 7번째 항목,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미며 순종이다." 소제목에서 특별히 고린도후서 5:21말씀을 인용하며 설명한다.
'ινα ημεις γινωμεθα δικαιοσυνη θεου εν αυτω.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εν αυτω)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εν αυτω(엔 아우토, 저의 안에서)'의 의미는 바로 앞 구절인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에 의하여 명확히 확정된다. 물론 이 사람은 20절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다. 그가 죄인으로 취급된 것은 우리를 대신해서 였다. 그가 의를 수행하신 것은 우리를 대신하여서였다. 그러나 21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와 연합하여 이러한 의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의의 수혜자일 뿐만 아니라 이 의의 참여자가 되고 실제적으로 이 의에 의하여 판단된다. 우리의 정체성이 이 의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의미에서 이 의는 우리의 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와 동일시되어 죄를 알지도 못하면서 죄인으로 취급받았듯이, 전적으로 불경건하고 의를 알지도 못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와 동일시되어 하나님의 의가 된다.
실제로 그 개념은 전가 개념보다 더 풍부하다. 그것은 우리의 것으로 간주 될 뿐 아니라 우리에게 계산되며,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동일시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것이므로 그의 모든 것은 그와 연합되어 있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그의 백성과의 연합과 친교를 제외하고 대속적 자격을 가진 그리스도, 이 자격 안에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고린도후서 5:21은 사도 바울이 칭의를 로마서 5:17,18,19에서 의의 선물을 받는 것,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는 것,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의인이 되는 것을 말했던 모든 것을 완전히 표현한다."
이처럼 머레이 박사는 첫 언약을 아담과 맺은 언약이 아닌 시내산 언약으로 정의하였다. 이와 함께 그리스도의 순종을 나누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신자의 칭의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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