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下. 대한민국의 나아 갈 길.
임기응변이나 처세에 능한 사람을 지혜있는 사람이라 고 말할수는 없다. 그럼 진정한 지혜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자연의 순리처럼 만인이 공감하는 지혜가 참 지혜일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요란 떨지 않고 조용히 변화되고 순리를 따라 사는 것이 지혜의 참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엔 터가 상당히 넓어 길고양이들이 많다. 여러해전부터 제대로 먹지 못해 비실거리는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기 시작했는데, 길고양이들에게도 무슨 텔레파시가 있는지, 여기 저기서 들고양이들이 모여들었다. 심지어 산 짐승들까지 내려왔다. 그런데 참 기이한 것이 몰려든 길고양이들이 몇날동안 북새통을 치더니, 어느 날 부턴가 또 하나 둘 사라졌다가 다시 찾아든다. 그러던 어느 날, 암 고양이가 타지에서 새끼를 낳아, 입에 물고 또 걸리고 요양원으로 들어 왔다. 이렇게 새끼들이 자라게 되면, 또 타지로 가서 터를 잡고 사는게 길 고양이들의 습성인가 보다. 20Kg들이 사료가 보름만에 바닥이 날때도 있다.
그중 내가 '나비'라고 이름지은 암코양이는 매우 영리하다. 나를 매우 잘 따른다.그녀석이 나와 같이 지내면서, 새끼를 세배째 모두 열 세마리 정도 낳았는데, 그 중 몇마리는 병을 얻어 죽고, 나머지는 살길을 찾아 각지로 훝어져 살고 있다. 젖을 떼고 독립이 가능하면, 각자 제 살길를 찾아가는게 야생동물들의 습성인가 보다. 그리고 그 어미 고양이는 또 임신을해서 어미만 아는 곳에서 새끼를 낳아 길르다가, 며칠전 요양원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았다. 그리고 밤이 되면, 숨겨두었던 새끼들을 불러 내어, 사료를 먹이는 어미가 얼마나 지혜로운가!
나비가 임신을 해서 몸이 무겁고 불편할 때면, 밭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 안마를 해달라고 내게 몸을 맡긴다. 그럼 전신을 두손으로 주물러 주면, 그렇게 좋아 한다. 길 고양이도 낯을 가리지 않고 지혜로우면, 이렇게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공생하는 것이다. 길고양이 사료 값도 만만 찮다. 그러나 어미 암코양이가 내게 살갑게 하니, 사료값이 아까울리가 없다. 어미 나비의 지혜가, 내 지갑을 기쁜 맘으로 열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땅에는 길 고양이 만도 못한 인면수심의 인생들이 참 많다. 자기가 낳은 자식을 버리는 짐승만도 못한 어미들의 손에, 한해에 버린아이들이 5000여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가 낳은 자식을 버려도, 처벌 법이 없기때문이란다. 그럼 처벌법이 있으면 아이를 안버릴까? 참 길 고양이 보기가 민망하다. 사실 길 고양이는, 그 모든 악조건속에서도, 자기 새끼들을 온 힘을 다 쏟아 길러낸다. 자기 새끼들이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얼마나 주의를 다하는지 참 눈물겹다. 그렇게 온 힘을 다해 길러놓으면, 새끼들이 엄마의 수고를 알까? 아마 모르긴해도 한 놈도 없지 싶다. 그저 조물주가 어미에게 심어준 어미의 본능적 모성애다. 한낱 동물들도 이같이 온 힘을 다 기울여, 죽기살기로 새끼를 양육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부모에게 맡긴 자녀 양육의 자리를 망각하고, 자식을 길바닥에 버리는, 길 고양이보다도 못한 인간들의 추한 모습들을 보면서, 참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자연과학은 우주를 정복할만큼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지만, 오로지 인간에만 주어진 인의예지(仁義禮智) 싸가지(네가지)를 모두 잃어버린, 망종인간(亡種人間)들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사후(死後) 후손을 위한 사랑의 지혜를 본다. 때는 조선 성종때, 어떤 사람이 일찌기 딸 하나를 낳아 길러서 시집을 보낸 후, 초로(初老)가 되었음에도 대를 이을 아들 낳기를 하염없이 바랬는데, 그 염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늦둥이 아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컷겠는가! 그러나 세월을 이길 장사 없어, 늦둥이를 낳고 얼마 못되어 그만 병을 얻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늦둥이 아이는 아직 강보에 싸여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의 번뜩이는 지혜는, 이때 그의 진가(眞價)가 유감 없이 발휘 되었다.
이 사람이 죽으면서 유언하기를, 그의 유산 전부를 시집간 딸에게 모두 물려주고, 어린 아들에게는 자기 자신의 얼굴 모습이 그려진 족자 1개가 전부였다. 딸은 친정 재산을 모두 물려받았으니 살림은 넉넉해졌지만, 부모없이 홀로 남게된 친정 늦둥이 어린 동생이 눈에 밟혀, 고아가 된 동생을 데리고 와서 자기 자식처럼 돌보아 길렀다. 노인의 아들은 점차 나이가 들면서 옛날 부친이 돌아가실 때, 모든 재산을 누나에게 다 주고, 자기의 몫은 족자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결국 족자를 들고 관청에 나아가 선친의 참 뜻이 어디에 있는지 관아에 주청을 올렸다. "누나가 저를 자식처럼 잘 길러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부친이 무슨 뜻으로 전 재산을 누나에게 모두 주고, 저에게는 이 족자 하나만 물려주셨는지, 결코 누나를 원망해서가 아니라, 유독 이 족자만 물려주신 선친의 참 뜻을 알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렇게 젊은 아들의 청원이 접수되었는데, 고을 관장이 도저히 밝힐 수가 없어서, 성종 임금에게 상소하고 그 족자를 바쳤다. 성종이 족자를 펴보니, 족자에는 단지 노인 한 사람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성종은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고민하다가, 족자를 벽에 걸어놓고 멀리 앉아 쳐다 보니, 그림 속의 노인이 손가락으로 아랫부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다.이것을 본 임금은 퍼뜩 '이것이다.' 하는 예감이 떠올라, 사람을 시켜서 그 족자 끝을 쪼개 보도록 했다. 그랬더니 성종의 예감대로, 그 속에 종이 쪽지가 들어 있었다. "내가 재산을 딸에게 모두 다 준 것은, 딸에게 어린 동생을 잘 돌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고 나면 내 재산을 균등하게 나누도록 하라."는 유언이 들어 있었다. 그래서 성종은 문서로 자초지종을 밝히고, 영을 내려 재산을 남매에게 균등하게 분할해 주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시 재산을 어린 아들에게 물려주었다면, 누나는 재산 때문에 어린 동생을 돌보지 않고 해쳤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 따라서 지금처럼 동생을 잘 거두어 기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녀의 화목과 어린자식을 향한 노인의 지혜가 놀랍도다." 이처럼 노인의 경우와 같이 참 지혜는, 상대방에 대한 깊은 배려와 자식을 향한 상생의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생들의 참다운 지혜요 인성일 것이다. 그러기에 지혜란,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한낱 미물에 불과한 어미 길 고양이 보다도 못한 존재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지난 1960~70년대 우리나라 제일 구호가,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 였다. 지난해 12월 북한 노동신문에, '김정숙평양 제 사공장'의 모습과 함께, 이 공장 안에 붙은 구호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이는 전체주의 국가의 아주 전형적인 구호이다. 북한은 공산주의와 김일성 유일체제다, 이제 겨우 30대 후반의 김정은 은, 북한 극존칭인 '존엄자'로 이미 신격화 되어 있다. 우리는 이렇게 칠십여 성상을, 이스라엘의 '통곡의 벽'처럼, '민족끼리 이념의 삼팔선'을 그어놓고, 혈륙이 갈라지고 창자가 끊어지는, 분단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1990년대 때, 우리나라 주도로 日, 北, 中, 유럽을 잇는, KTX 구상을 발표한적이 있었다. 이러한 일본, 중국, 러시아, 유럽을 관통하는 KTX 구상은, 작금 중국의 ‘일대일로’와 달리, 상대 국가들과 호혜적인 윈·윈관계를 지향하고, 또 자유·민주· 인권의 활력소를 공산국가인 북한, 중국, 러시아로 흘려 보내게 되면, 언젠가는 이념의 장벽을 뛰어 넘어, 인권존중의 공존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때 우리나라는 고속철도(KTX) 사업을, 유럽국가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북한·만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을 잇는 KTX 유라시아 프로젝트를 구상했었는데, “당시를 돌이켜보면 격세지감이 있는 것이, 그 당시만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국력이 이를 따라주지 못해 한국에 기대는 입장이었고, 북한도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 등으로, 어느 때보다 상호 신뢰가 있어, 하늘이 준 천재 일우의 기회였으나, 우리의 사정으로 결국 이 구상이 폐기되고 말았다.
현재 미국과 중국간의 패권 대결은 격화일로에 있다. 미·중과의 대결은, 지난 날 유럽 근대질서와 전통을 공유하고 벌인, 미소(美蘇) 냉전과는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늘의 미·중 대결은, 제국의 패권(覇權imperial hegemony)을 놓고 벌이는 격돌이자, 체제 대(對) 체제의 전면전이다. 발단은 자유, 인권, 개인 소유권, 신앙의 자유, 자연법적 실정법, 개방된 시장경제 등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중국이 전면부정하는 데 있다. 지금 중국은 통치체제를, 옛날 조공(朝貢)체계와 같은, 전제제국시대로의 현대판 복원을 꾀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프로젝트란, 진출국가의 엘리트들을 매수하고, 나라 전체를 빚더미로 만들어, 장악·복속시키려는 꼼수다. 일당(一黨)공산주의의 일인(一人)철권통치의 전제국으로, 권모술수와 사이비와 짝퉁이 난무하는 나라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통제를 접목해서,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디지털 전체주의 완성이, 중국 공산제국의 목표인 것이다.
바야흐로 2017년부터, 발트해 연안의 소국인 리투아니아가, 유럽연합내 반중(反中)전진 기지로 급 부상하고 있다. 이러틋 엄중한 지금, 대한민국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도록, 모든 지식인들은 각성하여야할 것이다. 올해는 한중(韓中)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승만, 박정희 시절 화교(華僑)들을 쫓아내, 한국은 세계에서 차이나타운이 없는 유일한 나라였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에서 중국인 수가 급증하고 그들의 경제력이 급팽창일로에 있다. 그들이 부동산을 사고 파는데 있어서 법적으로 우리국민보다 훨씬 유리한 모순들이 있다. 그래서 뉴질랜드는 일찌감치 자국내 중국인의 토지 구입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도 이를 마냥 방치하다가, 엄청난 화를 자초할수 있음을 명심할 것이다.
이번 대선 결과에 따라 해양문명 세력과 단절되고, 개인·자유가 통제된 길이 더 빨라질 수 있다. 미국·중국 대결은 어떻게 귀결될까? 중국의 논리는 설득력이 없을 뿐 더러, 세계 각국의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지만, 문제는 당근책이나 병주고 약주는 조삼모사의 전법이 통하는데 있다. ‘일대일로’에 대한 해당국들의 불만도 엄청나고, 유럽연합이 미국에 합세하고 있으니, 다만 중국의 자충수로, 회생불능이 되길 바랄뿐 이다. 이 힘겨루기에서 경제규모 9~10위국인 한국의 선택은, 미·중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세계사의 향방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지난 우리나라 문민정권과 군사정권을 비교 분석해 볼때, 군출신들은 자신들의 무지와 현실정치의 한계를 인정하고, 외부 전문가들을 중용하여 시야를 넗혔다. 허나 민간 대통령들은, 자칫 자기 독선에 빠져, 정권을 창출한 정당 안에서만 인재를 쓰기때문에, 세계를 보는 시야가 좁을수 밖에 없다. 이들은 하나같이 주어진 5년의 임기내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 남북 관계에 매달렸지만, 예외없이 모두 실패하였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먼저 통일에 대한 착각, 민족에 대한 환상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하나의 민족이니 통일돼야 한다’는 등의 주장은 환상일 뿐이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다른 나라로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체제가 비슷하면 굳이 통일하지 않고 미국·캐나다처럼, 자유롭게 교류하고 통상해도 충분하다. 그러나 남·북한처럼 체제가 완전히 다르면, 연방제도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 중 통일외교위원회에서 일했는데, 임기 4년동안 외국 저널에 실린 논문 한 편 제대로 읽고 오는 의원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거의 대부분을 무역을해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서, 무엇보다 국제정치와 국제적 역학 관계가, 한국인의 삶의 80%를 지배하는 냉엄한 현실을, 우리는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일례로 북핵(北核)이나 반도체 등은, 국내만의 시각이나 노력만으로는 활로가 열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한국인의 잠재력과, 한국이 부여받은 세계사적 사명을 깨달아, 국가를 경영하여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속에 있는 아주 작은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변곡의 시대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나이와 관계없이 이 엄중한 시대를 읽을줄 아는 안목을 넓혀야 한다. ‘만년 학생’이라는 각오로, 계속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게 우리에게 부여된 천명(天命)이다. 중국에 겁 먹은 나약한 정치인들의 사고(思考)로, 어렵게 쟁취한 이 나라 대한민국 국권을 과연 지켜낼 수 있겠는가? 친중이냐 친미냐의 기로에 서 있는 대한민국은, '작은 거인'이 되어, 중국과 북한의 전체주의 틀을 바꾸는, ‘문명사적 사명’을 기필코 이루기 위하여, 두 눈을 부릅뜨고, 세계 도처에서 거센 파도가 끊임없이 일렁이는, 양양한 세계의 바다위에, 대한민국號를 띄우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자!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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