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60여 년 전 대학 시절에 체코 출신의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심판>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작품은 너무나 난해해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억하기는 어느 날 이유 없이 주인공이 기소되고 재판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판사들과 증인들도 한 패거리가 되어 거대한 사법 시스템에 개인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으로 이해되었다. 재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판사(判事, Judge)라고 한다. 금 번 아시안 게임에서 보듯 모든 경기에는 심판(Judge)이 있다. 심판은 경기의 규칙과 법대로 승부를 결정한다. 때문에 거기에는 개인의 사감이나 감정이 들어가면 안된다. 다만 심판의 판결이 의심되는 경우, 비디오 판독(VAR)을 통해 정확하게 공이 선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를 여러 심판이 확인하고 최종 결정을 한다. 

최근에 야당 대표가 구속 적부 심사에서 기각 처분을 받았다. 아직 재판이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마치 무죄를 받은 양 정부와 여당에 대해 공격수로 일하고 있다. 최근의 여론은 야당 대표의 죄보다, 기각 판정을 해버린 판사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옳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 법관이 김일성 장학생이란 말도 있고, 전임 대법원장이 심어 놓은 사람이라고도 한다. 그러니 그 법관의 재판은 처음부터 작심하고 편들기였다는 것을 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미 다 알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의 이론에 ‘먼저 들어간 정보가 나중 들어간 정보를 지배한다’는 것이 있다. 때문에 대학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 중에 종북 사상의 물을 먹은 사람이 후일 정치가, 행정가, 법조인, 예술가가 되면 그 종북 사상이 그를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될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그의 사상은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그러니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서 판단해야 옳지만, 진영 논리가 법이고, 그가 소속되어 있는 기구에 사로잡혀 있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법관들은 모두가 수재들이다. 모두가 명문대학을 나왔고, 그 어려운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훈련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법 위에 정치가 작동하면 그것은 달라질 수가 있다. 말하자면 판결에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요, 녹비(鹿皮)에 가로 왈(曰) 자(字)>가 되기 십 상이다. 만약 판사가 양심을 버리고 정치 논리나 사상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말 그대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 


 이 세상에는 오심도 많고 오판도 많다. 재판에 정치가 끼어들면 금방 처리해야 할 재판을 질질 끌고,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1년이고 2년이고 버티다가 유야 무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두가 어떤 고약한 특수 세력들이 사법부를 농락해 왔던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이 되었다.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이 없다지만, 재판만큼은 법과 양심에 따라 저울추가 올바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모든 국민들의 바람일 것이다. 모든 법관들이 육법전서를 달달 외우고 모든 법전에 통달할지라도 결국은 그가 가진 인생관, 세계관, 신앙관에 따라서 법의 판결이 달라질 수가 있다. 

필자는 50년 전에 법철학자(法哲學者)요, 칼빈주의 자인 헬만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 박사를 개인적으로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형법학과 법철학자이지만, 그의 논리는 사람이 만든 법도 중요하지만, 우주와 만물의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을 중심으로 법철학을 만들었다. 그와 대화 도중에 그는 시편119:105절의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를 사고의 중심에 두고, 성경을 삶의 모든 영역에 표준으로 삼고자 했던 법철학자였다. 자연 만물과 인간 위에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와 사역이 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의 법철학은 <하나님 중심>으로 세계와 우주와 인간사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도, 지식 사회도 별로 고민이 없는 것 같다. 그냥 우선 먹기에 곶감이 달다는 식으로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든 결국은 잘 되겠지라는 막연한 낙관주의 사상이 지배적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의 절반 이상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설마 우리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로 넘어 갈리 있겠는가!’라는 안일주의 사고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인문 사회 과학 교수들이나 학생들은, 자유대한 민국의 건전한 비판이나 대안도 없이, 이 나라가 망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자들이 상당수 있다고 들었다. 그러니 이것은 분명히 이 나라가 사상적으로 큰 병이 들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사상적으로 암 병동>에 살고 있다. 이것은 비단 판사들만의 문제만 아니라, 정치꾼들 그리고 이른바 지식인들까지도 병들어 있고 종교인들 가운데도 일부가 종북 사상이라는 치료가 어려운 암 병에 걸려 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말은 옳다. 그러나 큰 고기는 법망을 교묘히 뚫고 빠져나가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나 건전한 국가는 법과 원칙이 옳게 시행되어야 한다.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이 국가의 법망을 피한다 해도 <양심의 법정>도 있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법정>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재판의 정치도 문제이지만, 정치의 재판도 문제이다!」

[정성구칼럼] 아덴만의 여명 작전

며칠 전 제자 한 분이 책을 한 권 보내왔다. 그것은 청해부대 최영 함장의 고뇌와 결단인 「아덴만의 여명 작전」이라는 현장 전투 실화였다. 작가는 두말할 필요 없이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진두지휘하여 해적들을 소탕하고, 우리 어선을 무사히 구해낸 영웅적 작전을 한 조영주 대령이었다. 나는 이 책을 잡고 읽으면서 다른데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단숨에 독파했다. 말 그대로 생생한 전투장면을 그대로 현장에서 보는 듯 했다. 

사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은 벌써 11년이 되었다. 그 즘에 북한 공산당이 우리의 천안함을 폭파 시키고, 연평도에서 우리 측을 폭격 도발해서 우리 군의 자존심이 구겨진 시절이었다. 바로 그 후에 한국에서 너무도 먼 거리에 있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지역에서 해적들이 나타나서 우리 어선을 나포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최영 함장 겸 청해부대장 조영주 대령과 300명의 해군이 일사불란한 전투로 해적을 소탕하고 우리 어선을 구출해낸 사건은 두고두고 이순신 장군의 해전 이후 잊을 수 없는 아덴만의 여명 작전의 승리였다. 그런데 11년 전 뉴스의 초점은,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승리로 이끈 조영주 함장보다 오히려 해적의 총탄을 맞고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이 더 크게 부각 되었었다. 그리고 사경을 헤매던 석해균 선장을 수술로 살려낸 외과 전문의 이국종 박사가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모든 사건은 방송사가 시청률을 올리고, 국민적 관심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을 뉴스 거리로 만든다. 또 카메라 앵글이 어디를 맞추느냐에 따라서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내가 이 책을 접하고 느낀 것은, 2011년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나포된 우리 국민들을 구출하는데 1차 작전은 실패했으나, 심기일전하여 좌절을 극복하고 또다시 2차 작전에 성공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절망적 위기에 처했을 때, 지도자의 인격과 판단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어떤 공동체나 국가이든 간에 지도자의 리더쉽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해적에게 나포된 삼호주얼리호는 13명의 무장한 해적과 21명의 선원이 뒤엉켜서 피아를 구분키 어려운 상황에서 새벽 미명에 해적을 제압하고 선원들을 안전하게 구출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자칫하면 선원들이 모두 죽을 수도 있고, 부하 장병들의 죽음과 부상, 작전 실패가 되면 지휘관은 상부로부터 질책 등 그 복잡한 번뇌와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지휘관으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해군력을 세상에 알리는 해상 인명 구출 작전에서 영원히 기록될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물론 삼호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의 기지와 그의 협력도 소중하다 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최영함의 함장이요,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기적적이고 성공적으로 이끈 조영주 대령의 리더쉽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어떤 추천자의 말처럼 이 사건도 영화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감동한 것은 단순히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지휘한 조영주 함장의 지휘관으로서의 기지와 결단보다 그의 <신앙인격>이었다. 나도 50년 전에 군목으로 일할 때, 전방 철책선을 방문하고 병사들을 위로한 적이 있는데, 사선을 넘는 장병들은 자신들의 연약을 알기에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조영주 함장은 위기가 닥쳐오고 힘들 때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었다. 이 책을 읽어보니 조영주 함장은 말씀과 기도의 사람이었다.

특히 그의 글 가운데 <하늘로부터 임한 승리의 비법>이란 부분이 내 가슴을 적셨다. 그는 말하기를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감 속에서 내가 의지할 곳이라고는 전능하신 하나님뿐이었다. 지금까지의 삶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있었기에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도 끝내 극복하고 승리하게 되리라 믿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함장실에서 그는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조르듯,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었다. 그리고 그는 함장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 동안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영어 성경을 들으려고 레시버를 끼고 들었는데, 시편 27편이 들렸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라는 말씀이, 그에게는 전기가 통하듯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새 힘이 솟았다고 한다. 사실 조영주 함장은 지휘관으로도 위대한 분이지만, 신앙의 사람으로서,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성공시켰다.

그래서인가 그는 <위기의 리더쉽>이란 곳에서 위기에 처할 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몇 가지 메시지를 남겼다. <본질에 굳게 서라>, <신앙으로 무형의 전투력을 극대화 하라>, <지휘관이여! 등대와 같이 우뚝 서서 빛을 비추라>, <위험을 전화위복으로 만들라!>, <기존의 사고와 관행에서 빠져나오라>, <상대방의 관점에서 다시 나를 살펴라>, <결국은 사랑이 답이다> 등이다.

곧 <대선>이 치루어진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나오는 사람이 자그마치 26명이나 되고, 그중에 절반이 전과자란다. 참으로 웃기고 기가 막힌다. 그들의 오고 가는 이야기가 시중 잡배들과 다르지 않다. 이런 시기에 <자유 대한민국호>라는 배에 제대로 된 선장이 필요하다. 
<아덴만의 여명 작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조영주 제독의 메시지가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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