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개혁신학】김영규 지음, 2015. 최종본
▶ 김영규 개혁주의성경연구소장
▶ 뉴욕과학아카데미(NYAS), 미국과학 진흥협회(AAAS), 미국화학학회(ACS) 초청회원.
▷독일 궤팅켄대학(Th.D.)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M.Div.eq.)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74회 졸업
▷총신대학교 신학과(B.A.), 74학번.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역임
▷Director, Research Institute for the Bible and Reformed Theolegy(www.ribrt.org)
주요저서 및 논문
■ 『Calvin and the Old Testament:Sola Scriptura and the Trintarian God as an Unique Author of the Old Testament(Germanic), 1993. ISBN 89-950009-1-0 93230』(Seoul 1994.)
■ 『A Dialogical Document and the Metaplasmic Phases of the Pre-Mosaic Hevrew hehind Gen 23.(Germanic. 1993.) ISBN 89-950009-0-2 93700』(Seoul. 1994.) - 창세기 23장에 관한 논문은 인류 역사 중 20세기에 와서 땅이 그 창세기 기록의 진실을 밝힌 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두 고인들이 되었지만, 그 당시 고대 애굽어 기록들과 문헌들 편집의 최고 권위자이었던 H.W.Helck 교수와 고대 아카드 언어나 고대 슈메르 언어의 대가였던 D.O.Edzard의 자문을 받아, 독립적으로 주전 2400년 전의 고대 슈메르 문서들의 대화체 기록 방식들과 동일한 시기의 셈족 기록물들인 에불라 토판들에서 발견된 대화체 기록 방식들 및 고대 애굽 중 왕조의 편지들이나 기록물들에서 증거된 대화체 관용 표현들을 연구하여, 지금 현 창세기 23장에 기록된 그대로가 그 당시 "대화체 중재재판 판매 문서"의 직접적인 내용임을 증명한 논문이었다. 그런 대화체의 시대적 제한성 때문에 야곱에 관한 기록을 마지막으로 한 지금 창세기는 완성된 후 많은 세월을 지나 요셉의 죽음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 첨가된 것은 그 기록자를 알리는 간기(Colophon)라는 사실이 가정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화체 기록에 있어서 '그리고 역시 누가 누구 앞에 이르기를'과 같은 직접 화법 인용 관용구는 셈족 에불라 토판에서도 발견이 되나, '그리고 역시' 없이 '이제 내가 너에게 말하여 이른 것에 대해서' 등과 같은 직접화법 관용구는 후대 고대 애굽의 직접화법에서 증명이 되지 않는 창세기 족장시대에 해당된 고대 애굽 왕조들인 12 왕조와 13 왕조의 고유한 표현방식이라는 것이다.
■ 『17세기 개혁신학』(개혁주의성경연구소, 1995.)
■ 『조직신학 편람 I,II-2,III,IV.』(개혁주의성경연구소, 1998.)
■ 『엄밀한 개혁주의와 그 신학』(도서출판 하나, 1998.)
■ 『Biblica Hebraica et Graeca(Archaic Hebrew Texts and Greek Handwriting Texts of the First Century AD.) ISBN 89-89519-02-0 93230, 2002, RIBRT』(개혁주의성경연구소, 2002.)
■ "Paleographical Dating of 46 to the Later First Century, (Biblica-로마교황청 직영 국제학술기관지, Vol. 69, No. 2, 1988.) P46(최초 바울서신 모음집 사본)의 연대 측정이 주후 1세기 말인 최소한 도미티안 황제시대 이후가 아님을 증명하였다. 또한 필자에 의하면, "P46의 필체는 주후 1세기 안에서는 물론 1세기 전후 수 많은 문헌 파피루스들 중에서도 극히 희귀하게 지금 남아 있는 주전 3세기 전형적인 교육교본 필체를 가진 파피루스 사본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한다. 논문 바로가기 https://www.friktech.com/rel/p46.htm
■ "도르트회의 Marburg 대학의 대표자 Rudolphus Goclenius(1547-1628)의 철학과 신학에 대해서"(대한논총, 2009.)
■ "하이델베르그 대학과 바젤대학의 개혁신학자 J.Jacobus Grynaeus(1540-1617)의 신학에 대해서"(대한논총, 2011.)
■ "초기 청교도 신학 안에서 법치사회의 기독교적 이상과 그 개혁정신 및 그 한계에 대해서"토마스 카트라이트의 논쟁자들을 중심으로"(대한논총, 2012.)
차 례
머리말 ... 5
I. 한국장로교회와 정통개혁신학... 7
II. 역사적 정통개혁신학의 바른 노선의 요점...24
III. 17세기 개혁신학의 역사적 배경...59
IV. 17세기 개혁신학의 개관(槪觀) ...109
V. 도르트회의와 예정론 논쟁... 130
VI.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그 신학... 343
VII. 17세기 언약신학과 정통개혁신학의 몰락..369
맺는 말... 371
참고문헌... 373
II. 역사적 정통개혁신학의 바른노선의 요점
한국 보수주의 교회에서는 정통개혁주의 신학에 대해서 강조해 왔으나, 실제로 정통신학의 계보에 대해서 잘 소개되지 않았다. 최근 퓨리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소개되었어도 회중교회적인 퓨리탄들이 대부분이 소개되었고 진정 장로교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많이 소개되지 않고 미미한 정도에 불과했고 더구나 칼빈 이후의 유럽개혁주의자들의 소개들은 극히 적었다. 이런 면에서 정통개혁주의 신학을 주장하면서 진정 정통개혁주의 신학을 잘못 본 셈이 된 것이다. 하물며 전체적인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에서 어느 것이 바른 노선인지에 대해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다. 사실 웨스트민스터 신학자들 중 죠지 길레스피가 품고 있는 ‘가장 좋은 개혁주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처음 진정한 어거스틴을 재현한 종교개혁자들에게로 돌아가서 베자, 쨘키우스, 우르시누스, 올레비아누스, 피스카토르, 유니우스, 파레우스에 이어진 선까지 와서 도르트회의 당시의 다양한 개혁주의 신학자들 안에 들어와야 16세기말과 17세기의 퓨리탄들의 신학의 다양성들과 비교되어야 한다. 그런 비교와 노선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논쟁점들이 있다. 이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여 그 논쟁점에 대해서 각각 어떤 입장에 서 있는가를 보고 바른 노선이 결정되는 것이다.
개혁주의를 대표한 도르트회의 성직자들이 아르미니우스와 동의한 점은 하나님이 사람을 택하시되 타락한 자들을 택하셨다는 사상이다. 즉 선택의 대상에 대한 싸움이 중요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달리 그 성직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타락한 모든 이들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점에서는 동의하지 않았다. 역시 같은 성직자들이 중세의 반펠라기우스주의자들이 주장하듯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 구원의 방편까지 포함한다하여 행위로 구원하는 방식을 예정 안에 포함시키는 것을 거절하였다. 예정론은 오직 은혜로 구원하신다는 사실의 구체적인 내용과 확증을 의미하고 있다. 물론 예정론은 예정의 대상들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구원의 방식들에 대한 것도 예정론 안에 포함한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뜻과 의지는 작정의 개념을 사용한다. 그러나 개혁주의 안에서의 논쟁점은 예정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예정론의 내용에 대한 것이다. 좀 더 예리한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죽으셨을 때, 과연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 물음은 16세기 후기에 개혁주의 신학 내의 쟁점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여 도르트회의에서 첨예한 문제가 되었다.
이미 칼빈이 이런 문제들을 그의 요한1서 2장 1-2절에 대한 해석에서 드러냈다. 직접적으로 칼빈이 제한속죄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확충으로 인하여 여기에 덧붙인 것은 신자들 즉 그리스도에 의해서 제공된 속죄는 믿음으로 복음을 수용하게 될 모든 이들에게 미친다고 확신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온 세상의 죄들이 속죄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것을 핑계로 모든 유기자들, 따라서 사탄까지 구원을 인정하는 미치광이들의 잘못들을 생략한다. ...... 이 모순을 피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위해서 충분히 고난을 받으셨으나 택자들을 위해서만 유효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일반적인 해결은 학교에서 확고히 되고 있다. 비록 그럴지라도 그 말은 진리임을 나는 고백한다. 그런데도 현 구절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요한의 의도가 모든 교회에 공통적으로 이것이 선한 것이라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이들 아래서 유기자들을 이해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 믿을 자들이고 세상의 다양한 재난들로 말미암아 흩어졌던 자들을 의도하였다”. 여기에서 칼빈은 그 당시 학자들 사이의 건전한 해결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세상에 대해서 충분하되 그 실제적인 적용에 있어서 택자들에게만 유효하다는 주장이었음을 확증하고 있다. 그러나 칼빈 자신은 그 해결에 조건을 더 달았다. 즉 거기에서 칼빈은 모두란 말을 문맥의 정확한 뜻과 상관없이 유기자들을 제외한 택자들로 이해하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이런 칼빈의 입장을 평가할 때, 그 정당성을 로마서 8장 32절이나 11장 32절 등에서 찾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구약의 말씀을 해석하신 요한복음 6장 44-45절에서 찾아야 될 것이다. 이런 칼빈의 정당한 입장이 도르트회의에서 다시 확증되었다. 즉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인 “그리스도는 영생을 위해 택한 그들을 위해서 죽을 수 없고 죽어서는 안 되며 죽지 않았다(Christum pro iis, quos Deus summe dilexit, et ad vitam aeternam elegit, mori nec potuisse, nec debuisse, nec mortuum esse)”는 명제를 그들이 공히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르미니우스는 칼빈의 예정론과 같은 전통적인 예정론이 선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앞세웠다. 이런 입장은 웨슬레주의의 일반적인 입장이다.
2. 언약의 통일성
칼빈의 신구약 통일성을 말할 때, 단순히 기독론적인 통일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의 통일성이요 구원의 길과 서정에까지의 통일성을 의미한다. 비록 칼 바르트가 유태인을 배척하는 독일의 국가교회에 대해서 바른 성령론이외에도 신구약 통일성 즉 칼빈의 예레미야 주석에 따라 율법은 복음의 한 형식이요 율법보다 복음이 먼저이다라는 사상을 가지고 저항하였지만, 아직도 그의 신구약의 실체의 통일성에 관한 견해는 기독교 강요의 증거에 머무른 기독론적인 통일성이였다. 일찌기 독일 칼빈연구자들의 대표자들과 오토베버(Otto Weber)의 제자들의 학위논문들은 이 선에 굳게 서 왔다. 그러나 칼빈의 증거 전체를 볼 때, 터툴리안의 삼위일체의 통일적 경륜과 어거스틴의 삼위일체의 경륜적 통일성이 칼빈의 언약의 통일성뒤에 깔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칼빈의 신구약 실체의 통일성이 정통 개혁주의안에서 계속 되었고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 현저히 고백되고 있다. 따라서 정통 개혁주의에서는 루터주의가 대화하기를 원하고 만나기를 원하는 코케이우스의 성경신학적 언약론을 비판없이 지나치지 않았다. 구약의 성도와 신약의 성도 사이에 죄의 용서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세 언약들이 신구약을 통해서 발전된 것(doctrina de triplici foedere)도 아니다. 계시의 점진성이 신구약 사이의 실체의 통일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이렇게 개혁주의가 독특하게 주장해 온 신구약의 실체적 통일성이 복음주의 신학아래에서 현금 상당히 약해지고 있다. 즉 신구약 서론, 성경의 낱 권의 개별적 신학 연구, 계시의 점진성, 유기적 영감론의 광대한 적용, 적응계시 이론(Accommodation-theory)아래 보수주의 서구 신학계에도 가블러(J.Ph. Gabler)의 성경신학(theologia biblica)의 개념등과 같은 계몽주의 시대의 산물인 루터주의적 신신학(Neologie)의 영향이 이처럼 강도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그러나 구원의 근본원리가 인간론 중심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 카톨릭은 세례관(화체설)을 통하여 신앙 없이 모든 지역주민들을 그리스도인으로 삼아 지역의 국가교회로 발전할 수 있었다. 역시 신앙으로 의롭게 된다는 구원론을 가지고 종교개혁에 임하였던 루터주의자들도 세례관에 있어서는 카톨릭적인 정신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지 못하여 실제로 믿음이 없어도 그리스도인으로 삼는 길을 열어 놓았고, 그것에 의해서 독일의 국가교회로 발전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웨슬레주의와 침례교도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고 있으나, 전자는 아르미니우스의 입장에서 이신칭의 교리를 취한 것이고 침례교는 같은 믿음의 원리에 의해서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있다. 다만 침례교적인 퓨리탄인 죤 스미스와 같은 이는 어거스틴의 참된 신앙의 개념을 받아드려 역사적 신앙 혹은 지식신앙, 기적신앙, 일시적 신앙을 비판하여 교회의 순수성을 보전하고자 하였다. 이런 비판의 최소한 선에서라도, 오늘날 복음주의 교회 안에 일어나는 신유 은사들을 바로 참된 신앙의 결과인 것처럼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어떤 사람에게 계시나 이상이 임하였다면, 그것이 두 사람 이상의 검증 없이 교회 안에 공적으로 선포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성경계시가 종결되었다고 믿는 것은 교회의 기초로서의 그런 계시가 종결되었다는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성령이 성경 밖에서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항상 성경과 더불어 성경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의미에서 종결되었다는 말이다. 참된 신앙의 정의에 대한 퓨리탄 침례교인의 좋은 어거스틴주의에도 불구하고, 침례교가 유아세례를 부정하거나 재세례를 주장하는 경우, 혹은 가시적인 중생의 체험과 확신을 요구할 때, 거기에 아르미니안주의를 열어놓은 것이 된다. 그에 반해서 개혁주의자들은 신론에서 뿐만 아니라, 구원과 교회에 관련해서도 예정론을 강조하였다. 신앙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성령의 열매이며 그 근원은 하나님의 영원한 성정에까지 올라간다는 것이다. 예정론을 통하여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전적으로 부정하였고, 그런 예정론은 보이는 교회 안에서 아무도 하나의 지체를 오용하지 못하게 하는 근본뿌리가 되었으며, 동시에 잘 믿는 자에게는 큰 위로와 확신을 가져오는 교리이다. 특별히 순전히 영적이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감추어진 비밀로 남아 있는 예정론 사상은 믿지 않는 일반 시민에 대해서도 진정한 인간 존중의 기틀이 되는 것이요, 가난하고 무시받는 자에 대해서도 강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고, 반면에 보이는 교회의 부패와 사회부패에 대해서 비판정신과 혁명정신의 원동력이 되게 한다. 루터주의는 이신칭의 교리만 가지고 어느 정도 의식적이고 제도적인 교회와 그런 종교사회를 비판하는데 성공하였어도, 구약을 파괴하였고 성화(구원의 서정)를 도외시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칼빈은 예정론에 의해서 참된 교회를 정의함으로 복음의 순교자들과 나그네된 자들을 변명할 수 있었다. 즉 예정론은 개척하는 교회에 신실과 정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개척된 교회에 내적인 성숙을 가져다 준다. 권징에 있어서도 교회가 흔들리지 않게 하고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밑거름이 되게 한다. 칼빈의 주장대로 권징의 목적은 사람앞에 정죄되어도,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안에서는 영원히 정죄받지 않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1638년 스코틀란드 총회는 그리스도가 모든 이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아르미니안주의, 혹은 일명 카메론주의와 박스터주의를 정죄함으로 개혁하였으며 웨스트민스터 성직자들도 도르트회의의 타락 후 선택설 정도만 허용하였다. 이런 고백의 선은 장로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선명하고 확고한 것이다. 19, 20세기에 와서 선교에 방해된다고 하여 구미의 보수주의 개혁교회 안에서도 제한속죄와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포기하려는 경향은 우리가 이미 확인한 바 있고 한국장로교회도 그런 위험을 안고 시작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유기자를 위해서도 죽으실 만큼 충분한 은혜를 강조하다보면, 유기자의 구원까지 그리스도와 교회밖에 구원을 허용하는 식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미 웨스트민스터 성직자 중에서도 평화주의자인 리차드 박스터와 절친한 에드문트 칼라미(Edmund Calamy)는 요한복음 3장 16절에 대한 논쟁에서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택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유기자를 포함한 모두로 이해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모든 이에게 충분하다 하였으며 그에 의해서 택자를 위한 절대적 의도, 유기자에 대한 조건적 의도라는 용어를 사용하기까지 하였으나, 그래도 그의 주장은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보편구원과 거리가 멀고 일부 도르트회의 성직자들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죠지 길레스피에 의해서 카메론과 아미롤드가 그와 비슷한 조건적 구원을 주장하였다고 논박하였을 때, 칼라미는 해명하기를 자신의 말은 유기자에 대한 은혜의 어떤 경륜(ea administratio)에 대한 것이라 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석상에서 이런 칼라미의 언변이 유일한 예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이고 에큐메니칼적인 칼빈을 발견하려는 자가 칼빈 연구의 대표자들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칼빈 자신에 의해서 섭리에 관한 특별논고(De occulta Dei providentia)를 통하여 종결된 것이고 17세기에 비로소 리베트(A. Rivet)와 불란서 쇼무르학파(J. Camero, M. Amyraut)사이에 칼빈의 예정론에 관한 논쟁에서 종결된 것이다. 역시 같은 경향으로서, 비록 창조 전 선택설이라 할지라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예정의 주체로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강조하여 제한속죄를 포기하려는 바르트주의는 루터주의(종교개혁 주 저서에서 희미하게 나타나는, 언약의 주체가 그리스도라는 사상)는 될지언정, 역사적 정통개혁주의와는 거리가 있음에 틀림없다.
3. 유한이 무한을 받지 못한다(finita non recipiunt infinita)
기독론에 있어서 종교개혁자들의 통일적인 고백인 구약의 여호와에 대한 기독론적인 이해는 보존되어야 한다. 칼빈에 따라 여호와 이름아래 그리스도의 현현(manifestatio)은 인정하되 구약에서의 그리스도의 실체적인 육체(substantiale corpus)는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루터주의처럼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이 신성과 인성의 실제적인 통일성으로서 이해될 수 없을 것이다. 즉 신은 죽었다는 신학이 루터주의안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아타나시우스의 신조와 칼케톤 신조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루터주의와 칼빈주의 톡특성(Extra illud Calvinisticum) 사이에는 약간의 충돌이 있다. 다시 말하면 루터주의는 두 본성의 실제적 통일성을 주장하되 육체밖에 로고스가 없다(nec λóγος extra carnem)는 주장이지만, 쯔빙글리 이래 개혁주의의 경우는 그리스도의 신성(totus)이 인성안에 거하는 인격적 통일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그래도 신성(totus)은 인성밖에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주의의 기독론적인 전통에 있어서 구약의 그리스도와 성육신된 그리스도 사이에는 난제가 있다. 그러나 그 난제에 대한 해결에 있어서 개혁주의 내의 다양한 노선과 관련하여 또렷한 기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 이런 입장은 개혁주의의 독특성이었다고는 할 수 있으나, 개혁주의의 보편성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이런 입장에 대해서 개혁주의자들 사이에 큰 논쟁이 되었거나 모두에 의해서 또렷이 주장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교부들의 입장에 머물고 이런 방향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4. 장로교 정치원리는 성직자 개인에게(uni)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직자 회자체(unitati)에 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당시 문서출판을 통해서까지 장외논쟁한 인물중에 개혁주의 장로교 신학적 입장을 변명한 가장 대표적 인물들로서 샤무엘 러더포드와 스티븐 마샬, 죠지 길레스피등을 들 수 있겠다. 샤무엘 러더포드는 스코틀란드 교회개혁시에도 아르미니안주의와 싸우는 글을 발표하였지만, 웨스트민스터 회의의 논쟁과정에서도 회중교회의 입장과 에라스투스주의에 대한 반박의 글들을 발표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총회후에도 러더포드와 뜻을 같이하여 또한 다니엘 코드레이가 회중교회를 비판하는 중요한 논쟁의 책을 썼다. 극단의 분리주의자들인 브라운주의들과 달리 상당히 건전한 회중교회의 입장은 화란과 신대륙에 있는 회중교회들이었다. 이미 화란에서 장로교입장에 강한 John Paget(?-1638)과 회중교회주의자들 사이의 싸움이 잘 알려져 있었지만, 특별히 웨스트민스터 성직자들에 의해서 독립교회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의 주장의 근원으로 돌아가, 좀 더 건전한 회중교회주의자들의 중심인물의 교회관들도 비판받게 되었다. 주 비판의 대상인물들은 Henry Ainsworth(1570-1622), Willam Ames(), Henry Jacob(1563-1624), Francis Johnson(1562-1618), John Robinson(1575-1625), Thomas Hooker(1586-1647), John Cotton(1584-1652), John Davenport(1597-1670), Hugh Peter(1598-1660)등이었다. 이 논쟁의 중심은 교회의 열쇠가 누구에게 있는가, 교회언약(Church-Covenant)으로 연합되어 날을 정하여 공적인 예배와 성례를 위해 모인 조합(company)으로서 교회 회중자체가 완전한 교회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장로교주의자들의 비판은 교회의 열쇠가 믿는 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에게도 아니요 교회나 사도를 대표하는 한 개인 베드로에게도 아닌, 사도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주어졌다는 대답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제정된 공직자들을 가진 지교회들로 구성되되, 한 고위성직자(one Lord prelate)나 한 머리교회(one head-Church) 혹은 주교회(the chiefe Church)와 결합된 매어있는 교회들이 아니라, 한 정치형태아래서 다스리는 직책자들과 다스림을 받는 여러 지교회들로서, 그들이 모여 가시적으로 교통하는 지역교회, 국가교회, 세계교회가 완전한 교회라는 것이 장로교의 근본사상이다. 또한 그는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결정에서와 같이 성경에서 증거된 대부분의 교회들은 회중교회나 관구교회가 아니라, 장로교 정치형태를 가진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별히 사무엘 러더포드에 따르면, 회중교회의 교회관은 G.Voetius의 동의이외에는 전유럽개혁주의들(J.Calvin, Th.Beza, Peter Martyr, H.Zanchius, F.Junius, D.Pareus, W.Whitaker, Tilenus, Professors of Leyden-J.Polyander, A.Walaeus, A.Thysius, A.Rovetus - J.Piscator, W.Bucanus, )로부터 인정이 되지 않는 주장으로서 그 근원에 있어서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과 소키니우스주의자들의 주장으로 돌리고 있다. 한편 같은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스코틀란드 총대인 Robert Baillie는 독립교회의 참된 근원을 재세례파에게 돌리고 있다. 에라스투스주의에 대한 비판 서적들 중에서도 죠지 길레스피의 「아론의 싺난 지팡이」(Aaron's Rod Blossoming: or The Divine Ordinance of Church Government, London 1646)이란 책이 개혁주의 장로교 입장을 변명한 결정적인 책이었다. 거기에서 뿐만 아니라, 유고작으로 출판된 그의 논문집에서 카톨릭 교회와 영국 국교회의 정치원리들을 비판하는 장로교의 원리를 한 마디로 장로회 자체(unitas)에 교회의 열쇠가 주어졌다는 원리로 설명하였다. 이 회 자체(unitas)에 주어진 권리와 회중교회 지도자 토마스 후커의(그것만이 교회직원을 선출할 권리를 갖는) 본질적인 교회전체(Totum essentiale)에게 주어진 권리 사이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런 장로교의 원리는 어떤 형태로든지 한 회안에서 혹은 그 회를 넘어서 어떤 한 개인에게 권리가 이양되는 모든 교회의 정치활동을 배제하면서도, 교회의 정치활동도 교회의 성격에 포함시킨다. 지교회로서 완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지교회 밖에 노회나 총회를 두고 있다. 다만 지교회 안에 다스리는 장로가 있고 가르치는 장로가 의장으로 하는 장로회인 당회가 있지만, 지교회의 당회와 같이 다스리는 성격으로 노회가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노회 안에서의 목사들과 장로총대들 사이에 동등성이 강조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스코틀란드의 교회전통에서 회를 대표하는 상비적인 인물들( 예를들면, a perpetual moderator)이 있었다라기 보다는, 그 때 회의 중에서 결정되었던 의장들이나 위원회들, 총대들이 있었다는 것은 오래된 바른 가르침이 된 것이다.
5. 세속정치와의 교회의 독립성
칼빈에게 있어서 저항권은 교회안에서의 저항권을 인정하고 관원에 대한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저항방식이란 오직 성경 이외에 다른 저항방식을 인정하지 않았다. 칼빈의 이런 저항정신에는 전제해야 할 특별한 원리들이 있었다. 첫째로 칼빈이 그리스도의 영적인 왕국(Spirtuale Christi regnum)과 시민정체(civilis regimen, civilis ordinario, regnum politicum) 사이를 왜 구별하였는가가 중요하다. 이 구별은 단순히 질서와 법의 차이가 아니라 거기에 속한 것들은 크게 구별된 것들이다는 것(res esse plurimum sepositas)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왕국, 참된 의, 영생의 축복에 관련된 하나님의 순수한 지식(pura Dei notitia), 참된 의의 본성(verae iustitiae ratio), 하늘의 왕국의 신비(regni coelestis mysteria)와 같은 하늘의 것들(res coelestae)이라 부르고 후자는 정치(politia), 경영(aeconomia), 모든 기술들(artes omnes mechanicae)과 자유학문들(disciplinae liberales)등과 같은 땅의 것들(res terrenae)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후자의 요소들 안에서 전자의 것을 찾거나 그 안에 포함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왕국에서는 땅의 정치체제가 민주주의이냐 공화정이냐, 왕정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즉 교회는 “사람들 사이에 너가 어떤 조건에 있든, 어떤 땅이나 종류의 법아래 살든 중요하지 않다(nihil referre, qua sis apud homines conditione, cuius gentis legibus vivas)”. 그러나 이런 지식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부패된 인간에 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있다. 따라서 윤리적 혹은 정치적 질서의 씨로서의 인간이성(humana ratio) 혹은 이성의 빛(lux rationis)이나 그로 인한 인간활동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고 어떤 영원한 목적에 이바지하는 성격에서 포용적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특별한 이해가 있다. 셋째로 이것과 함께 저항방식으로서 오직성경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도행전 5장 29절에 근거하여 지배자에 대한 복종이 하나님에 대한 복종보다 앞서지 못한다는 점이다. 주님 만이 왕의 왕이시다는 것이다. 칼빈은 그 복종의 질서를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주님은 “모든 것 전에 동시에 모든 것 위에 들어야 할 자이다. 따라서 우리보다 높은 인간들에게 우리가 복종하되, 그 분 안에서 외에는 복종해서는 않된다(Dominus ergo rex est regum, qui ubi sacrum os aperuit, unus pro omnibus simul ac supra omnes sit audiendus. Iis deinde qui nobis praesunt hominibus subiecti sumus: sed non nisi in ipso)”. 이런 사도행전 5장 29절에 대한 입장이 후에 개혁주의 안에서 John Poinet, Christopher Goodman(1520-1603)과 John Knox의 저항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유럽개혁교회(우르시누스이래)와 장로교 전통에서 교회의 주권을 관원에게 허용하는 에라스투스주의를 단호히 거절해 왔다. 특별히 그리스도 만이 교회의 유일한 왕이시오 머리이시라는 고백이 장로교회의 확고한 입장이다. 이런 식으로 정경분리는 가장 기본적이고 확고한 개혁교회의 입장이었고, 그러면 어떻게 분리할 것인가에 대한 그 분리의 정신도 칼빈의 정신을 유지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세속세계에 대한 이해도 적극적이다. 창조계시 혹은 일반계시에서도 초자연적인 은총으로 이해하는 정도로 하나님의 지식을 발견하고자 하나, 그 계시의 본질적인 성격을 오직 성경에서만 인식한다는 점에 강조를 둔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성경의 창조론으로 돌아가지 않고, 창조의 주체와 창조의 근원과 방식, 목적 및 그 종결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에 대한 성경계시를 파괴하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그 계시는 모든 계시의 기초이다. 여성문제와 관련하여 바울의 입장을 고집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정당하다. 그리스도인의 의식은 사회윤리나 과학적 의식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오직 성경만 먹고 마시는 삶의 차이일 것이다. 사실 사회나 국가가 우리에게 특별히 요구하는 것은 함께 운동하고 같은 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사회나 국가에 궁극적 해답을 주는 것이다. 칼빈의 욥기주석에서 나타난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도 차원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는 것이다. 인간들도 일하고 영적인 실체들도 일하고 하나님도 일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하시는 차원과 방식이 다른 것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 분안에서만이 시작과 종결이 있다. 다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원수를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에 대한 범위와 관련하여 칼 바르트(에밀부르너와 파울 알타우스에 반대하여)처럼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이란 이원론을 거절하고 철저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자유롭고 주권적인 하나의 은혜만을 강조하는 신학에 대해서 현금 심사숙고하는 경향이 있다. 즉 칼빈의 경우처럼 보편은혜 혹은 일반은총에 대한 개념이나 입장이 성경에 대한 고백에 대한 도입의 성격에서 들어오거나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에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일반은총과 특별은총, 일반계시와 특별계시의 구별이 결코 민족주의나 이성주의에 대한 근거로서 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자유롭고 주권적인 은혜아래 복음만 포함한 것이 아니라, 율법, 심판, 죽음과 지옥까지 포함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마치 바울(고후 3:1-12)과 어거스틴의 정신인 것처럼, 그것은 그가 성경이란 개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개념을 더 좋아하는 정신과 비슷한 정신이 되어서는 않된다는 점에서 또한 바르트주의와 거리를 갖는 조심한 기준이 된다. 문화적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방식은 이미 과거 미국 북장로교가 1902-3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수정할 때부터 시작하였다. 중생되지 못한 자들에 의해서 행한 것들도 하나님이 명령할 것일 수 있고 유익할 수 있다는 부분을, 1902-3년이후 그것들은 찬양할 가치가 있고 그런 것들을 무시하는 것은 죄요 하나님께 불쾌한 것이라고 수정하였다. 또한 사랑과 은혜 사이의 구별, 유아로 죽은 모든 택자들이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유아로 죽은 모든 아이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식으로 수정하였다. 그 때이래 장로교회에서 유아세례를 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을 포함하여 현금 보편은혜안에 일반적 총애(favor in general)와 일반적인 선물들(gifts in general)사이의 구별은 종교적 다원주의와 대화의 방식에서 나오고 있다.
6. 주일성수와 예배의식들
칼빈에게 있어서 의식법을 제외한 모세의 법의 대부분을 도덕법으로 이해하였고 십계명안에 포괄할 수 있었다. 따라서 중생된 이후에 그 법의 사용(usus legis tertius)을 열어 놓았다. 그와같이 제 4계명 안식일 준수도 도덕법으로 해석하였고 중생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한 의식적인 성격을 제외한 주일의 개념아래에서 같은 방식으로 지켜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퓨리탄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였다. 그들은 주일만 지키고 도덕법으로 이해될 수 없는 의식법에 속한 유대절기들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드여왕시대에 이미 주일날 백성들의 오락을 위해서 공적으로 스포츠가 허용된 이래(1583) 퓨리탄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안식일 논쟁은 Mr.Bound가 안식일에 관한 논문에서 주일은 유대인의 안식일처럼 지켜져야 하며 그 법은 도덕적이고 영원한 법이라 하여 주일을 세속화하는 스포츠나 오락게임들을 버릴 것을 발표하자, 대주교인 Whitgift가 출판된 그 책들을 회수하고 더 이상 출판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던 일이 있는 후에도 계속 은밀히 읽혀졌다.
그러나 이런 정신은 역사적으로 카톨릭이나 영국 국교회에 의해서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 우선 첫째로 퓨리탄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1618년 8월 25에 처음 법정과 주교들이 결정되어 제임스 1세의 왕명으로 출판된 퍼스의 5개 조항이 결국 목회자들에게 강요되는 사건들이 있었다. 이 5개 조항은 성례를 무릎을 꿇고 받도록 할 것, 사적으로 병자에게 성례를 집행할 의무, 필요에 따라 사적인 세례집례의 허용, 이미 세례받은 어린애들은 주교에게 데리고 가 견신례(Confirmation)와 주교의 축복을 받을 것, 크리스마스, 부활절, 성령강림절, 승천절을 지킬 것 등이다. 둘째로 개혁주의 퓨리탄들의 번성을 막기 위해 소위 「오락의 책(A Declaration to encourage Recreations and Sports on the Lord's Day)」을 출판하여 목회자들로 하여금 읽도록 강요한 사건들이 제임스 1세 때(1618)와 챨스 1세 때(1633)에 있었다. 특별히 퍼스의 5개 조항은 스코틀란드 총회에서 불법으로 통과되었기 때문에 계속 스코틀란드 교회의 저항의 대상이 되어 왔다가 1638년 총회개혁에서 처음 그 총회의 결정을 무효화하였다. 퓨리탄들의 순수성(non-conformity)이란 이런 주일성수와 예배의식에 대해서 생명을 걸고 그 개혁주의 전통을 지키는데 있었다. 그리고 이런 오락의 책에 대한 저항정신과 퍼스의 5개 조항에 대한 거절은 모든 퓨리탄들(장로교적인 퓨리탄들과 독립교회적인 퓨리탄들)에게 공통된 정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역시 미국의 프린스톤 신학의 확고한 정신이었다. 유럽대륙에서도 이런 퓨리탄정신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인물들(G.Udemanus, W.Teellinck, J.Spiljardus)이 1612년이해 강한 주일성수를 강조함으로 논쟁이 되기 시작하여 도르트회의에서도 논쟁이 되었고, 1620년 이후 G.Udemannus, W.Teellinck와 Jacobs Burs사이에 논쟁이 있었고, 거기에 꼬리를 이어 1621-1627년 사이에 남홀란드(Zuid-Holland)의 특별대회에 논쟁이 있었고, 계속해서 A.Thysius, A.Walaeus, F.Gomarus, A.Rivetus, G.Amesius등으로 이어지는 Hoornbeek, Heidanus, Coccejus사이의 논쟁, Utrecht대학, Groningen대학내의 논쟁으로 발전하였다. 즉 기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퓨리탄들의 기본입장은 카톨릭주의와 영국국교회자들의 주일의 세속화와 재세례파, 퀘커교도, 다른 이단들의 주님의 날을 버리는 운동, 또한 이런 이단들에 대해서 관대하고 관용함으로 상업도시들이 세속화됨으로 주님의 날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반대하여 강한 주일성수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였다고 볼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 성직자 중 William Gouge는 사도행전 20장 7,11절의 주석에 근거하여 24시간 주일성수를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서 몇 가지로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
첫째로 장로교인들은 예식서의 사용을 불법적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정해진 예식서에 제한하는 것을 거절한다.
둘째로 장로교인들은 주일이외에 부활절, 성탄절 등의 절기들을 지키지 않는다. 부활절은 Eostre라는 이방여신을 기념하는 축제를 기독교적으로 대체하였고 성탄절은 로마의 신 Saturn을 기념하여 제정된 것을 축제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세례 시 십자가의 상징을 하지 않는다.
넷째로 견신례(Confirmation)의 의식을 거절한다.
다섯째로 성만찬을 받을 때 무릎을 꿇지 않는다.
여섯째로 성만찬 예식을 사적으로 집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장로교의 경우 지금까지의 예배의식들의 전통으로 보아 이런 개혁주의 정신이 역사적으로 확고하게 인식되거나 바르게 가르쳐 왔다고 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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