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가 실로 경이롭다.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능을 내놓으며,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겼던 창작과 전문 지식 분야까지 넘보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동시에 깊은 실존적 불안을 안겨준다. 특히 경제 활동의 주축인 3040세대부터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은퇴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과연 나의 일자리는 안전한가?", "기계가 나를 대체한다면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오늘날 많은 믿음의 자녀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직업'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는 질문이 곧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질문으로 통용되는 시대라서 그렇다. 명함에 적힌 직함이 사라지면 마치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는 듯한 박탈감을 느낀다. 이러한 시대적 불안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참된 '소명(Calling)'과 '정체성'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할까?
첫째, 우리의 소명은 ‘직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 됨’
종교개혁자들은 모든 직업이 거룩한 소명임을 주장했으나 이것이 현대에 와서 '직업지상주의'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 직업은 소명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지만, 소명 그 자체는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근원적인 부르심은 죄인 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은혜로 말미암아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을 생산해내느냐, 얼마나 유능하냐에 달려 있지 않다.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자녀 삼아주신 그 변치 않는 '언약'에 기초한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결과물을 내놓는다 해도, 결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혼을 대체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자녀의 신분을 빼앗을 수 없다. 직업의 현장이 급변할수록, 이 영고불변한 첫 번째 부르심에 정체성의 뿌리를 깊이 박아야 한다.
둘째,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유효한 ‘문화 명령’
그렇다면 직업은 무의미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는 문화 명령을 주셨다. 이는 타락 이전부터 주어진 노동의 신성한 의미이며,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가꾸고 돌보라는 청지기의 사명이다.
단순 반복적이거나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은 AI가 담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술을 윤리적으로 활용하고, 기술이 감당할 수 없는 공감과 영적 돌봄, 창조적 직관과 도덕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직업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그곳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신 소명의 현장이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어떤 자세'로 하느냐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로새서 3:23-24)
직장에서 은퇴를 했든, 혹은 AI로 인해 직무가 바뀌었든, 우리가 숨 쉬는 모든 순간은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시간이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의 작은 구석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모든 행위가 곧 넓은 의미의 소명 수행이다.
셋째, 주님의 절대 주권을 신뢰하며 안식한다
급변하는 시대는 끊임없이 불안을 조장하며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우리를 몰아세운다. 그러나 믿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역사의 주인은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미래를 다 알 수 없으나, 그 미래를 붙들고 계신 분을 안다. 직업의 안정성이 사라진 시대에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더 많은 스펙이나 기술 습득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참된 평안과 안식이다. 우리의 가치는 노동의 결과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십자가에서 확증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이에 동요할 필요가 없다. 직업은 바뀔 수 있고 은퇴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영원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적인 일, 즉 하나님을 예배하고 이웃을 깊이 사랑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의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흔들리는 삶의 터전 위에서 우리의 시선을 땅이 아닌 하늘에 고정하자. 변하는 파도 대신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정체성을 두는 것, 이것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의 지혜이자 능력이 아닐까.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