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들녁에 서서 봄을 기다렸던 선열들의 탄식이, 오늘도 나의 귓전을 때린다. 8월이 기울어가는 29일 이 아침, 창밖에는 가을을 재촉하는 가는 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두 나라는, 서로 동서(東西)로 극과 극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역사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남과 북이 쪼개졌었거나 현재 진행형인 것과, 오랜 세월 열강의 속박에서 살았다는 공통점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옛부터 세계 열강의 틈 바구니에 끼어,항상 외환의 위기속에 살았다. 특히 주후 70년경 로마의 티토장군에 의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땅을 잃고 디아스포라가 되어, 근 2000년의 세월동안,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아야 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2000년을 세계 각처로 흩어져 살았지만, 이스라엘은 민족에대한 선민의식과 여호와 신앙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2000년의 장구한 세월이 지난 1948년에,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았을 때의 그 기쁨이 오죽했을까! 그분의 역사(history)는, 기다리는 자의 몫이다.
우리민족이 이땅위에 수수 만년을 지내오면서, 어떤 고난의 길을 걸어왔을까? 이 땅 한반도에 한사군이 들어서고, 위만조선이 들어서고, 중국을 호령하던 고구려가 망할때, 수많은 고구려 유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또 얼마나 많은 백제유민들이, 일본으로 혹은 중국으로 흘러들어 갔을까? 또 얼마나 많은 고려인들이, 중국 원나라에 끌려갔을까? 그후 조선이 일본에 병탄된 뒤, 우리 민족은 다시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1세대 2세대 3세대를 거쳐오면서 대한국인의 얼은,그 나라의 문명속에 용해되어 점차 사라져 갔다.일제에 나라를 패앗긴 우리 민족은, 민족의 얼인 한글과 나랏말까지 잃어버릴뻔 하였다. 우리 대한민국은 헌법상 영토는 한반도 이지만, 현실은 한반도 이남에 국한되어 있다. 조국이 두 동강 난채로, 무려 80성상을 지내오고 있는 것이다. 그 몹쓸 이념때문에 국토가 두동강나고, 민족이 양분된 것도 모자라서인지, 대한민국인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계륵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케케묵은 좌우 이념에 빠져, 국론마저 사분오열 되어 있다. 지금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 김일성 일당 전제국이다.
마흔살도 안된 김정은을 '인민과 민족의 존엄자'라 칭한다. 30대 김정은에게 존엄자 내지 지존자라는 극존칭은, 바로 신격화다. 정말 소가 웃을 일이다. 그런데 남한은 어떠한가? 입이 있는 자들은, 다 좌가 아니면 우다. 이 이념논쟁으로 해방된 조국이 두 동강으로 쪼개진 것도 모자라, 국론이 사분오열 되어 손바닥만한 남한 땅마저, 대한민국호가 바다가 아닌 산으로 가고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진실을 왜곡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세상이 된 대한민국, 이런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건국 75주년의 감회는, 참담과 비통함 뿐이다. 건국 75년만에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역사상 미승유의 세계 일등국이 되었음에도, 그래서 최고 수준의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대한민국 건국이 축복이 아닌 재앙이라는 말을 함부로 지껄이면서, 이념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이념에 빠진자 들을 종종 본다.
건국 74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이, 아직도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정체성이 뿌리채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참담함을 느낀다. 1948년, 이 남한 땅에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헌법등 모든 국법을 제정하고, 국가의 정체성과 기틀을 확립하였음에도, 그 몹쓸 망국의 이념논리에 매몰되어, 이들은 매번 나라의 근간을 뿌리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나라없는 설움을 톡톡히 격고도, 나라를 빼앗길 때의 그 어리석음을 다시 반복하고 있다. 치매는 본 정신 줄을 놓쳐서 일어나는 증상이다. 바라건대 민족의 얼을 잃어버린 얼빠진 국민이 아니되길 바란다. 법질서를 의미하는 '레귤러'라는 원 뜻은, 심겨진 나무의 지주대 즉 버팀목을 뜻한다. 나무와 식물이 하늘을 향하여 곧게 자라도록 받쳐주는 지주대가 바로 레귤러다. 그럼 나라를 받쳐주는 례귤러는 무엇일까? 옛말에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신 父父 子子)"라는 말의 뜻은, "(대통령은 대통령다와야 하고, 장관은 장관다와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 다와야 하고, 아들은 아들 다와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다하는 것이 도리(레귤러)다.
천년 로마가 저절로 탄생한것 아니다. 이 역동성은 바로 군주가, 시대를 읽을 줄 아는 판단력, 진실을 듣는 귀, 공론(空論)과 실용(實用)을 가려내는 지혜와 판별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우리에겐 거짓과 진실을 분별할줄 아는 귀가 없다. 2천년 전, “나는 로마인이다” 라고 말하는 것을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로마인! 1960년대 우리 한국인들은 얼마나 근면성실했던가!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저 즐겁고 편하게만 살자는 생물학적 충동에 취해, 기적의 시대, 축복의 시대, 감동의 시대를 살면서, 감사할 줄을 모른다.축복과 은혜를 망각하고 배신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처럼 흥청망청 대는 국민은 지구상에 우리 말고 아마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과거를 회고하며, 주어진 축복에 감사할 줄 모르는 국가와 민족이, 계속 번영을 이어간 예(例)는 없다. 이것이 역사의 가르침이고 하늘의 이치다. 그래서 이민족(異民族)들에게 끊임없이 부대껴 온 “민족흥망의 대서사시(大敍事詩)를 기억 못하는 민족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냐 공산주의냐의 선택을 강요 받으며,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던 8.15해방 정국에서,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함으로, 대한민국 탄생의 기적을 이루어 낸 가슴 벅찼던 순간을 기억한다. 역사에대한 바른 기억은 우리가 번영의 길을 가느냐, 멸망의 길을 가느냐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영양(營養)이 넘쳐나, 다이어트를 고민 하고, 그처럼 화려한 국내 골프장도 마다하고, 해외 골프여행을 즐기고, 연휴가 되면 해외여행을 즐기고, 쌀이 남아돌아 보관을 고민하는 부자 나라가 되었는가? 도시 시골 할 것없이, 자가용이 홍수를 이루고, 전국 맛집 식당을 다니며 외식을 즐기는 고급 문화인이 되었는가? 가난에 찌들어 숨도 제대로 못 쉬던 그 처절했던 과거, 중국에, 일제에 복종만을 강요당하며, 엎드려 지내던 암울했던 역사의 기억들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가?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말은, 물을 마실 때는 그 물이 어디서 나왔는지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이, 축복이 아닌 민족의 갈 길을 막는 재앙이라면,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초근목피로, 아님 냉수로 주린배를 채우던 시절에서 벗어나, 지금 이렇게 엄청난 축복 속에서, 자유와 부(富)와 고급문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준 조국을, 암울하고 절망적 이고 희망이 없는 세계인, 디스토피아(Dystopia)에 빗대, '헬 조선‘을 외치는 배은망덕을 본다. 부정적 사고(思考)에 젖어, ‘헬 조선’에 매몰돼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냄새나는 꼰대의 말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헬 조선’은 한 마디로 분에 넘치는 자유와 갑자기 주어진 부(富), 다시 말해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의 충돌이 빚어낸 산물이다. 버려야 할 과거 청산은 빠를수록 좋다. 타산지석이란 말처럼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과거를 되풀이 할수 밖에 없다. 국가와 국민의 기본 가치관이 이처럼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데에는, 초아적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야하는 지식인들과 사회지도층의 책임은 실로 막중하다. 죽은 지식인의 사회엔 봄이 오지 않는다. 저 고대 그리이스의 패망의 원인이, 바로 지식쟁이들이 (소피스트)사회를 부패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암담한 현실을 보면, 지식인 최고의 덕목은,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할수 있는 용기다.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며, 정치적 사상적 싸움을 하는 부끄러운 행태는, 역사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념 문제라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다. 해방, 광복, 건국에 대해, 일반 국민이 똑바로 이해하도록 개념 정리만 제대로 해주었어도, 오늘과 같은 참담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묶여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방이고, 잃었던 나라와 주권을 되찾은 것이 광복이고, 없던 나라를 새로 세우는 것이 건국인데, 이런 간단한 이야기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꼬여 있는가? 1945년 8월 15일은, 일본식민지로 묶여있던 조선이, 그것도 남의 힘으로 풀려난 단순한 해방이었지, 잃었던 나라와 주권을 우리가 되찾은 광복은 아니지 않는가? 표현이 광복이든 독립이든 1948년 8월 15일 자정을 기해 미군정으로부터 통치권을 이양 받은 그 시점이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대한민국 건국의 출발점이라는 것은, 역사의 진실이다.
우리는 과거에 겪은 고난의 역사 속에서, 미래의 교훈을 얻어가며, 공산세력과 싸워 여기까지 왔다. 역사의 고난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곧 국가에 대한 사랑이다. 우리는 역사에서 미래를 배우기 전에, 역사의 혹독한 고통을 먼저 경험한 민족이다. 그래서 지금 조국이 겪고 있는 처참한 시련은, 국민의식이 조금만 깨어나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 아픈 역사는 잊어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아픈 역사를 끌어 안을때, 위대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지혜와 힘과 용기가 생겨난다. 사람이나 인류가 만들어 가는 역사는, 시련을 통해 만들어 진다, 70년의 고난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이끌어 내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축복의 열매만 차지하겠다면, 고난의 짐은 누가 지는가? 지금 우리 맘속에는 권리만 있고 의무는 사라진지 오래다. 고난의 짐을 같이 지고 가겠다는 책임의식이 국민정서를 지배할 때, 지금의 시련은 축복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약한 것을 강하게 하고, 장애물을 수단으로 삼고, 재난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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