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한해를 보내며

근대 자연과학의 개조로 불리는 당대 제일의 천문학자 갈릴레이 (Galilei, Galileo)가, 굴절 망원경을 만들어, 목성과 태양의 흑점을 발견하였고, 마침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실증한 것이, 당시 천동설(天動說)을 부동의 금과옥조처럼 신봉한, 카토릭 교리에 어긋 난다는 것이 죄가 되어, 교황 법정에서 종교 재판을 받았는데, 즉 "하늘의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의 흐름을 육안으로 보아도, 태양이 돌고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지구가 돌고 있다."라고 저들이, 과학의 이름을 빌려 혹세무민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만약 그가 교황법정에서도 지동설을 주장하게 되면, 단두대 처형이  확정적이었다. 당시 리바이스탄보다 더 거대한 교황의 절대권력 앞에, 생명이 단 하나뿐이라서, 그는 교황 법정에서 무릅을 꿇었다.

당시 세인들의 주목을 받던 그는 학자로서의 신념을 버리고,  교황법정에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태양이 지구를 돈다."라고 자기 소신을 굽히고 법정문을 나와서는, "그래도 여전히 지구가 (태양을)돈다."라는 말로 유명하다. 조선시대의 엄격한 왕권아래에서도 언로(言路)는, 숨통이 틔여 있었다. 언로는 어떤 사회에서든 호흡기관에 비유할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은 서양 모든 왕권을 손에 쥔 정신적 좌장으로써,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 이 엄혹한 현실을 무릅쓰고, 지동설(地을 주창한 코페르니쿠스 (Copernicus, Nicolaus. 1473-1543)는 누구인가?

그는 폴란드의 천문학자로서 당시 "태양이 지구를 돈다."라는 것은, 우리가 육안으로만 보면, 수십억 인구가 살고 있는 이 어마어마한 지구가, 응당 천체의 중심으로서, 달과 함께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불가역적인 진리처럼 자리잡고 있는, 부동의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천체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여,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는 태양의 위성 중의 하나로,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고 주장하여, 당시의 종교계 이학계가 발칵 뒤집힐 만큼, 가히 혁명적 대 센세이션을 초래하여, 이를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 이라 일컷게 되었다.

요한복음 2장 1절~11절을  보면, '가나의 혼인잔치' 얘기가 나오는데, 잔치가 한창 진행중에 준비한 포도주가 동이 났다. 그때 주방에서 일을 보던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주님께 얘기하자, 주님께서 하인을 불러 포도주가 떨어져 모두 비어 있는 여섯 항아리를 보시고, 사환에게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이들이 아구까지 물을 채우니, "이제 떠서 연회장에 갖다 주라"하시어 갖다 주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기를,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죄를 물 마시듯 그래서 맹물처럼 밍밍한 우리의 삶속에 주님이 오시어,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죄를 흰 눈보다 더희게 씻어 주셨다.

얼마 전 윤대통령 중동 순방에, 대기업에서 중기업으로 위상이 뚝 떨어진 두산 그룹회장이, 유수한 대기업을 제치고 그 중요한 자리에 끼어 들었다. 이유는 두산그룹이 바닷 물을 담수로 만드는, 세계 최첨단 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구의 물의 97%가 바닷 물이고, 우리가 마실수 있는 민물은 고작 3%정도란다. 앞으로는 석유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마실수 있는 담수'로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닷 물을 담수로 만드는 기술은, 실로 맹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주님께서 맹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처럼, 바닷 물로 사람이 마실수 있는 담수로 만드는 기술!  그 기적을 지금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것때문에 중동국가들이, 두산 총수를 쌍수로 환호하는 이유다.

19세기 초 옥스퍼드 대학에서, 종교학 과목  시험시간에 출제된 주관식 문제는,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 논하라" 였다. 이 진정한 뜻을 찾느라 끙끙대고 있을때, 유독 한 학생만은 멍하니 창 밖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시험 감독관이 다가가 주의를 주었지만, 학생은 시험에 전혀 관심 없어 보였다. 그러자 화가 난 감독 교수가 다가가,백지 제출은 당연히 '영점처리'로 학사경고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뭐든 써 넣어야 한다고 최후통첩을 했더니, 정말 단 한 줄만 달랑 써놓고 고사장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달랑 한 줄 답안지는, 이 대학 신학과 창립이후 전설이 된, 그야말로 만점 답안지였다!  그 학생의 이름은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사람인 그 유명한, "조지 고든 바이런 (Byron, George Gordon 1788-1824.)"이었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처럼, 대학의 모든 신학교수들을 감동시켜, 올 하트를 받은 바이런의 답안은 이러했다.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을 붉히더라"

바이런(Byron)은, 낭망파 시인 중 가장 저명했다. 그는 포르투칼 스페인 그리이스 등 유럽 여러나라를 방랑하면서 쓴, '차일드 헤럴드의 편력'을 1812년에 발표하여, 일약 저명문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일찍 삶의 권태를 느꼈고, 그래서 문화가 전혀 다른 이방나라에 대한 정열과 원시적인 삶, 즉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몰아 적이 되어, 마치 조선 후기 때의 김병연(김삿갓) 처럼, 떠돌이로 생애를 보내면서, 혁명적 아니 반역적 정신으로, 자유분방한 영웅주의적이면서 동시에 자유주의적인 시상(詩想)을 구사하여, 근대 유럽 문학과 문명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는 1823년 그리이스 독립전쟁에 지원, 종군 중에 그 다음 해에 병사하여, 짧지만 온 몸으로 치열하게 살아 온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종그니가

 【종그니칼럼】한해를 보내며

내가 삼십여년전 경상남도 하동에서 목회할 때, 지금처럼 자녀들 대부분이 도시로 나가고, 할머니 할아범들이 시골을 지키며 농사 짓고 살았어도, 그땐 아직 꾸러기 어린애들도 있었다. 당시  사십대였던 나는 어르신들의 아들이 되어 논밭으로 나가, 어르신들을 돕는 것으로 심방을 대신하고, 주일과 수요일은 예배를 마치고 나면, 어르신들과 음식을 마련하여,함께 나누는 것이 큰 즐거움 이었다. 시골 노인들은 논밭에서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일하시다가, 과로가 되어 곧잘 몸살이 나시곤 했다. 그땐, 사골(소뼈)과 한약재를 사가지고 달려가 달여 드리곤 했었다. 그 어르신들 지금은 다 돌아가시고, 불러도 대답없는 고인들이 다 되셨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생각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땐 아직 팔팔한 중년이었더니, 어느덧 77세 늙은이가 되었다. 하루 하루를 세노라면, 참 많은 날들인데, 뭉뚱그려 돌이켜 보니, 지나간 세월이 참 어제일처럼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래선지 그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같다. 아니 하루하루 걸어온 지난 날들을 아련히 떠올려보면, 내 생애 중 가장 힘들었고 부끄러운 순간들까지도, 모두 다 너무 소중하고, 오늘의 나를 있게한 참으로 소중한 은혜의 날들이었다. 그래서 혹여 질투의 화신이 시샘해서, 이 행복을 앗아갈까 두렵기도 하다. 실로 숨쉬기조차 버거웠던 힘든 순간들까지도 아! 이제와 돌이켜보면, 한 여름 따갑게 쏟아지는 태양의 뙤약볓처럼, 나를 나되게 영글어가는 축복의 순간들이었다. 사람은 진정 무얼 먹고 사는 걸까? 나는 말하리라!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받아 푸르른 숲을 이루는 나무들 처럼, 나는 오늘도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은혜의 햇살을 받아, 내가 오늘 살아 있어 보람을 먹으며, 주어진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사노라고!

지난 달 15일에는, 왕복차들이 쉴새없이 달리는 부산 어느 골목길에서, 폐지를 줍고 있는 할머니가 너무 위태로워 보여, 중학생들이 달려들어 할머니와 폐지를 함께줍고, 또 할머니가 골목길을 다 지날때까지 감싸고 있는 모습이, 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또 며칠 전엔, 광주시 남구 진월동 8차선거리 건널목에, 허리가 꼬부라지고 발도 절뚝거리는 할머니가, 건너기를 주저하고 있는 모습을 본 중학생이, 할머니 손을 붙잡고 할머니의 눈 높이와, 걸음 걸이에 맞춰 걷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아니 어느 꽃이 이보다 아름다울까! 그런가하면 나는 몇년전 서울 종로3가 건널목을 건너가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20대 젊은이의 팔과 부딛쳤다. 그 청년은 눈알을 굴리며 험한 인상을하고, 금방이라도 내려칠듯 째려 보았다. 나는 기가질려 "젊은이 내가 잘못했오." 하고 내가 먼저 얼른 사과하여, 아찔한 순간을 모면했던 일도 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강원도 춘천시의 환경미화원들의 따뜻한 온정이,살을 에일듯 차거운 추위를 녹아내리고 있다. 지금부터 15년전인 2007년부터 환경미화원 50명이,도로를 청소하다가 주워 모은 동전으로 시작한 사랑의 온정운동이, 지금은 125명이되었고, 이렇게 사랑의열매를 맺은 누적 금액이 무려 8530만원이 되었단다. 옛말에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말이 있다. 열 숟깔을 모으면 밥 한 그릇이 된다는 말이다. 일년동안 이렇게 모아서, 년말이면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씌여지니, 듣기만해도 얼마나 훈훈하고 가슴 따뜻한 이야기인가!

충북 제천에 사시는 시각 장애인이신 유영애 할머니 (83세)는, 정부보조금으로 사시면서, 자린고비처럼 자신을 위해서는 두부 한모 사는 것도 벌벌떨면서도, 아프리카 굶주린 아동들을 돕고 싶다며, 월 5만원씩을 수년동안 후원하고 있단다. 또 인천에 사시는 이행자(75세)할머니는 길가의 폐지를 주워 생활하시면서, 월 1만원씩을 후원하고 있다고 하니, 남을 돕는 일은 능력이 아니라, 나누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을 일깨워 준다. 영하의 추운 세밑에 얼마나 훈훈한 이야기인가!

내가 아는 참 어리석은 사람은, 자린고비로 평생을 짠지처럼 살면서, 통장에 돈만 잔뜩 모아만 놓고, 정작 본인은 한푼도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자녀들이 그 돈때문에  서로 자기가 더 많이 가져야 된다며 얼굴 붉히며 다투다가, 상중에 동기간 우애만 깨졌다고 한다. 당신은 금년을 어떻게 사셨는가? 보람으로 사셨는가? 아님 세상이 주는 주염열매를 쫓아 사셨는가, 나는 20여년을 노인들과 같이 살면서, 다양한 인생여정들을 보아 왔다. 돈 거머쥐고 살다가 정신 줄을 놓게 되니, 자식들에 등 떠밀려 빈손으로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을 수없이 보며 살고 있다. 세밑 끝자락에서 금년 한해를 저 영겁속으로 보내면서, 후회보다 보람 있는 한해로 기억되고, 다가 오는 새해에는, 지난 해에 다 베풀지 못한 이웃 사랑, 후회없이 베풀며 사는, 축복의 새해이기를 소망한다.

나 대신 상하셨네.
나 대신 피흘리셨네.
십자가 위에서 
나 위해 상하셨네.
나의 모든 죄는 사라지고 
이제 내겐 새 노래 있네.
영원한 갈보리 
나 대신 죽은 예수!
그 사랑으로 살기로 했네.                 (W.G.Ovens)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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