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얼마 전에 나는 <과학의 우상화>라는 칼럼을 썼다. 그런데 바로 다음 주에 헌법 학자이자, 전 강원대학교 법과 대학장이신 김학성 박사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그 책의 제목은 <다윈을 법정에 세우다>였다. 나는 이 책을 꼬박 밤을 세우며 탐독했다. 우선 책의 제목도 끌렸지만, 도대체 법학자가 다윈의 진화론의 허구성을 어떻게 증명해가는지가 매우 궁금했다. 저자인 김학성 박사는 법조계에서 잘 알려진 헌법 학자이자 <헌법학 원론>을 비롯해서 <헌법 개론> 등 많은 저서를 남긴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출간한 <다윈을 법정에 세우다>라는 책은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의 논지를 따라가면서 느끼는 것은, 저자의 분명한 <성경적 세계관>이었다.

성경적 세계관은 우리의 일상생활뿐 아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정치, 교육 등 삶의 모든 영역을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이 세상에는 유물론적 세계관도 있고, 무신론적 세계관도 있다. 사실상 다윈의 진화론은 19세기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무신론적 세계관에서 나온 산물이다. 때문에 다윈의 진화론은 전혀 과학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김학성 교수께서는 이 책에서 그 자신이 검사가 되어 다윈의 진화론을 조목조목 해부해 갔다. 지금까지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증명해보겠다고 화석을 한두 개 찾아서 궁색한 논리를 전개했다. 한편 진화론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그냥 두루뭉술하게 창조론과 반대되니 반대한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별로 먹혀들지 않았다.

그런데 김학성 교수는 신학자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닌 법학자로서, 다윈의 진화론의 허구성을 낱낱이 파해 치고 있다. 사실 우리들은 세상 학문은 다 옳은 줄 알고 있지만, 따지고 들어가 보면 편견을 진리인 듯이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자는 진화론의 선구자인 <라이엘>, 진화론의 창시자 <다윈>, 진화론의 전파자 <도킨스>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재미나는 표현 중에 다윈을 말하면서 「세련된 도둑은 물건을 훔치는 대신 상품 가격만 바꾼다」 라고 했다. 생물학의 뉴톤으로 불리는 다윈은 뉴턴의 옆자리에 묻힐 정도였다. 그러나 다윈은 지나친 상상에 매몰되어 객관성을 놓쳤고, 잘못된 신념으로 방향을 잃었다. 다윈의 주장은 과학적 가설에 불과했는데, 그 가설이 인류 전체를 근본부터 뒤집었다. 다윈으로 말미암은 피해는 하나님을 대항하려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다윈이 엎지른 물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입증되지 않는 과학적 가설을 철석같이 진리인 듯 받아 드리고 연구하는 것은 유치하기 짝이 없다.

다윈이 쓴 <종의 기원> 이후 16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단 한 개의 진화론에 대한 증거가 제시된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과학한다는 모든 사람들은 ‘진화론은 과학이다’라고 버럭버럭 우기고 있다. 사실 저자인 김학성 교수는 법정에 선 검사의 모습으로 다윈을 법 논리로 고발하고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찰스 다윈이나 칼 맑스, 레닌 등은 다 그 시대의 사람으로서 계몽주의, 인본주의, 합리주의 사상을 배경으로 생겨난 이단아들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중·고등학교 교과서는 진화론을 철석같이 믿고 가르치고 그것을 과학이라고 소리 높인다. 특히 교과서에 다윈과 헤겔의 <생명 나무>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생명계통수>가 그대로 실려 있다. 아메바에서 고등동물로 진화되었다는 것은 순전히 다윈의 사상이다. 그러나 성경 창세기에는 “그 종류대로 창조했다”고 되어 있다. 개가 소가 될 수 없고, 개구리가 고양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다윈의 영향을 받은 이 땅의 지성인들 또는 과학자들은, 한 번도 증명된 일도 없는 순전히 반기독교적이고 무신론적 세계관에서 건축된 다윈의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안쓰럽다. 성경은 계시로서 우주의 시작과 인간의 시작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해 안되면 신화로 몰아가는 것은 19세기 계몽주의자들의 공식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참된 과학이고 진리인 듯이 가르친 사람은, 옥스퍼드대학교 리차드 도킨슨 교수로 그는 진화론의 전도사이자 무신론자이다. 그는 “진화는 우리가 아는 다른 어떤 과학 만큼 확실하다”라고 했고, 계속해서 “인간은 자기의 필요에 따라 신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유치한 사람이다. 나는 김학성 교수의 <다윈을 법정에 세우다>라는 책을 밤 세워 읽고 읽으면서 ‘역시 참된 그리스도인인 동시에 법학자로 <진화론의 허구성>을 명쾌하게 논증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로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일찍이 네덜란드의 수상인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
yper) 박사는 “19세기는 진화론이란 최면술에 걸려 있다!”고 했다. 찰스 다윈과 헤겔과 맑스가 설치던 그 시대에 대 신학자이자, 대 칼빈주의 정치가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진화론의 허상을 명쾌히 비판했었다. 카이퍼는 “논리는 논리로, 세계관은 세계관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본래 이 책은 신문에 실렸던 칼럼이었지만, 하나로 통합하여 쉬우면서도 무게 있는 저서이다. 한국의 교육을 전교조들이 장학하고 있고, <진화론은 과학이다>라고 우기는 이러한 혼탁한 시대에, 금번 김학성 교수의 <다윈을 법정에 세우다>라는 책은 일선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일학교 지도자, 목사님들, 장로님들의 필독서가 되어, 우리 시대의 거대한 영적 전쟁의 전투장에서 승리하기를 바라고,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정성구칼럼】루돌프 사슴코

작년 성탄 이브였다. 시내에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차로 명동, 종로, 을지로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몇몇 호텔과 백화점을 제외하고는 그 흔하디 흔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없고, 반짝이는 영롱한 불빛도 거의 없었다. 특히 성탄 전야 때마다 북적대던 명동은 인적이 끊어졌다. 참 썰렁했다. 코로나19의 후유증이 이토록 심각한지는 서울의 중심가에도 불빛으로 나타났다. 

그 옛날 1960년대 성탄절의 추억을 뒤돌아보면 교회에서 학생들, 청년들이 교회에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 케롤을 부르고, 선물교환을 하고, 대나무에 참 종이를 바르고 큰 별을 만들어서 새벽송을 돌던 생각이 난다. 대게는 소복이 쌓인 눈길을 뽀드득 뽀드득 밟으면서 성도들의 집 앞에서 캐롤을 부르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한국의 성탄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보다 거의 서구 문화에 묻은 여러 가지 전통이 깔려있다. 그래서 대개 사람들은 성탄절 곧 Christmas로 기억하는 것은 루돌프 사슴코, 징글벨, 크리스마스 트리, 산타 클로스, 성탄 카드가 생각난다. 하기는 이런 것은 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그냥 서양문화일 뿐이다. 사실 크리스마스라 하지만, 오늘날은 Christ는 없고 Mas만 있다. 

마스는 앵글로 섹션어로 <축제>란 뜻이다. 기독교의 세속화로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온데간데 없고, 이 계절에 먹고, 놀고, 즐기는 날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도 한동안 Christmas 대신에 Holy day란 말을 쓰고, 아예 예수 그리스도를 빼 버리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트럼프 대통령이 Christmas를 복원하고, 백악관에서 성탄절 예배를 드렸다. 실제로 크리스마스 트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알려진 나무에 영롱한 방울과 이것 저것을 거는 것은 독일의 토속종교에서 나온 전통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의 의미와는 무관하다. 그런 전통이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미국을 거쳐 한국에 전달 되었다. 

교회에서 어린이들의 연극에서는 산타클로스가 빠지지 않았다. 특히 백화점에서는 산타클로스 영감이 제일 먼저 등장 한다. 사실 산타 클로스 영감의 생일은 12월 5일이다. 서양에는 그날을 한국의 어린이 날과 비슷했다. 그래서 서양 백화점은 그때부터 바겐세일기간이다. 12월은 산타 클로스가 12월 25일 성탄절까지 계속 되다보니 성탄절 대신에 산타 영감이 돋보인다. 지난해 팔지 못한 물건들을 땡 처리하는 기간이고, 그런 상징을 산타클로스로 만들었다. 성 니콜라스는 이른바 홍의주교였다. 붉은 모자에 붉은 망토를 입고, 그의 생일인 12월 5일에 아이들에게 사탕과 과자 등 먹을 것을 나누어 주던 것이 전통이 되어 성탄절 하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준다는 스토리가 되었다. 그러니 산타 영감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성탄 하면 12월에는 성탄 카드 보내는 것이 큰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카톡과 문자 메시지로 성탄과 새해를 축하하고 있다. 필자도 수십년 동안 해외 친구들이나 친지들에게 약 300여 개의 카드를 보내곤 했는데, 지금은 카드를 보낼일도 없고, 받을 일도 없어졌다. 이것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 외에도 <썰매>니, <루돌프 사슴코>니 하는 것도 북유럽의 생활에서 나온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참된 성탄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에서 그 해답을 얻어야 한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에 대해서 아주 구체적 사건(Fact)을 기술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래전에 선지자가 예언한 데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 동방의 박사들이 크고 이상한 별 곧 왕의 탄생을 예고한 별을 따라서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아기 예수께 선물한 것이 역사적 사건으로 나온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동방박사의 도착 성명은 이랬다.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했다.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면 성탄의 의미도 모른다. 예수께서 탄생했을 때, 천사들의 찬송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 평화로다”고 했다. 예수의 탄생은 일반인의 출생과 같은 것이 아니고, 또한 성인들의 출생과도 다르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위대한 사건이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예수의 성탄의 의미를 명쾌하게 기술 했다. 공관복음이 일간지라면 요한복음은 월간지 해설 기사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 탄생의 의미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쓰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것은 그냥 한 인간이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성육신(成肉身)하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구속함을 받을 수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시고,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 말씀 곧 소통이 된 것이다. 이것은 말 그대로 <신(神)의 한 수>였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는 방법은 하나님이 직접 설계하시고 계획하신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 곧 성육신 사건이다. 이 진리에 녹아지고 감격하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코로나19로 좌절과 희망을 잃은 모든 백성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의 기쁨과 평화와 은혜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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