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역협의회 무용론을 불식시켜라

새해를 맞이하여 각종 단체와 기관의 신년하례회가 연속이다. 합동교단 내 몇몇 지역협의회 신년하례회에 참석해 보았다. 서울지역노회협의회, 서북지역노회협의회는 단순한 친목단체가 아니지만, 영남이나 호남, 중부 등 각 지역협의회는 사실상 친목회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지역출신이라고 의무적으로 참석하는 단체는 아니다. 뜻있는 사람들끼리 자기들이 회비를 내서 운영하는 단체이다. 그런데 사실상 정치적 색깔이 강하다. 마치 선거조직 같은 모습도 보인다.   

선거를 목적으로 그 단체들이 출범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 단체들의 특징은 각 지역별로 지역회원들의 단결을 강조한다. 그러자고 모였다면야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지역별로 반드시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낯설게 느껴진다. 이미 우리사회는 소셜미디어로 가득찬 사회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총회 내 목사와 장로들이 만들어서 운영하는 단톡방이 훨씬 더 응집력이 강하고, 소통과 나눔이 활발하다. 그리고 이념이나 정치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역성과 이념을 떠나서 예수 안에서 형제처럼 같이 살아가자는 톡방들이 많다. 

교단 내의 각 지역협의회는 자발적인 친목단체이기 때문에 그 지역 츨신들은 무조건 같은 지역출신에게 투표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건 강제할 사항도 요구할 사항도 아니다. 다만 그 지역출신 후보자에 대하여 우호적일 수는 있다. 그러기에 무조건 호남인은 호남출신 후보를, 영남인은 영남출신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문화는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그걸 요구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무례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사회가 도래했다. 이 부분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선거 실패자에게는 배신감으로 다가오고, 몰표가 안나온 것을 속상해 하고, 그들을 원망하기까지 할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앞으로도 반복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어찌보면 낙선자들은 이런 바람들의 희생양일 뿐이다. 그 개인으로서는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겠는가?     

지난 선거에서 실패한 목사 몇사람을 만나보니, 한 사람은 선거패배 후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시작되기도 하고, 여러모로 건강이 나빠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한사람은 얼굴 모습에서 피로감과 수척함을 느낄 수 있어서 건강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모 기자는 그들의 정신적 건강까지도 염려하기도 했다. 선거 패배의 충격과 배신감이 얼마나 컸으면 저럴까 싶기도 한다. 훌륭한 인재들인데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 동안 교단 내에서 총회 임원선거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목사와 장로들은 이구동성으로 선거로 인한 배신감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그 어떤 배신감을 느낀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상처는 벌써 수년이 지났어도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도 명예도 건강도 잃었지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그 배신자는 상대방이 그 사실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지금도 천연덕스럽게 눈 앞에서 어른 거린다. 상처받은 그 후보자는 마음에서 배신감과 원망으로 그를 지웠지만, 그렇다고 겉으로 내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낙선자들 모두가 이런 상황들이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힘들다고 호소한다.    

4차산업시대에서는 소셜미디어의 발전으로 대인관계 방식이 현저하게 달라졌다. 그래서 많은 단체들은 그 정체성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우선 정치적 단체이냐? 친목단체이냐?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두루뭉실하게 특정지역 출생자는 누구라도 회원이 되는 건데, 사실은 소수가 그 단체 운영은 좌우한다. 예를 들어 특정지역에서 출생한 목사장로가 수천명인데, 불과 4~50명이 그들을 대표한단 말인가? 이는 그 지역성을 팔아서 장사하는 것으로, 이들을 발람의 무리라 칭할 수 있다. 차라리 써클을 만들어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교단정치를 하려는 목사나 장로들에게 각 지역협의회 대표회장을 맡는 것은 일종의 디딤돌이요, 표를 얻을 수 있는 방편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개인의 역량이고 개별적인 차원이다. 현재 합동교단 내에 10개 정도의 소그룹 써클이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 모임의 좌장이나 대표에는 특정지역 사람이 많다. 놀라운 것은 그 서클의 리더들 가운데 호남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호남인들은 소그룹 활동을 할 줄 모르는가? 아니면 비밀스럽게 하기때문에 모르는 건가? 복마전에 뛰어들어 자리다툼하고 행세하면 되는데, 왜 별도로 모임을 만들겠는가?       

아무튼 각 지역단체가 반드시 그 지역출신 후보의 득표에 직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 단체가 그 지역이나 그 지역 출신자들의 욕구와 바램을 충족시켜주거나 대리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소급룹처럼 결속력이 강하지도 않다. 그래서 교단 정치를 하려면 별도로 자기만의 소그룹을 운영해야 한다. 친목계 형태로 만들어서 자발적으로 회비를 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표밭을 가꾸어야 할 수 밖에 없다. 이미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정지역 회원이 선거에 출마하면 당연하게 그 지역사람들은 그 후보를 무조건 찍어야 한다는 요구는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그 단체 회원들은 선거운동의 대상이지 특정인의 표밭이나 지지자 모임이 아니다. 과거에는 그랬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럼으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단체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생각은 이제는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럼 점에서 지역협의회 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교단정치란 상생하는 것이다. 리더란 적을 친구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거기에 특정지역이나 특정단체가 무조건 지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누구든지 그런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고향에서 지지표를 많이 받을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적게 받기도 한다. 어느 지역이든 표를 가져오면 되는 것이지, 꼭 동향의 표를 다 가지려고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타지역의 표를 가져오는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각 지역협의회가 정치로부터 벗어나야 발전할 수 있지만, 이미 변색이 되었다면 어쩔 수 없다. 바라기는 앞으로 지역이나 출신을 따지지 않는 교단의 풍토를 만들면 좋겠다. 산술적으로는 특정지역 총대들의 표가 똘똘 뭉치면 교단내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지금은 특정지역출신들이 총회의 거의 모든 권력을 독식하고 있다는 말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 지역 사람들 가운데 이들에게 불만인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이라기 보다는 특정그룹이나 특정교회 출신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우선되고 중요한 것은 특정지역 정신이 아니라, 예수 정신이 우선이다. 예수 안에서 영호남이 왜 중요한가? 지난 1979년 영남인들이 주도하는 합동총회가 호남인들을 배제하고 총회를 개최하고서 도망가 버렸던 사건을 지켜보았다. 그 사건를 보면서 필자는 국란이 닥쳐 올 것을 예감했다. 옛 말에 호남을 버리면 국난이 일어난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던 터이다. 10.26, 12.12, 5.18이 연달아 일어났다.

특히 5.18광주를 겪은 광주시민들이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했다. 그 때 호남의 교회와 목사들은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 때 영남중심의 합동교단은 광주를 비난하고 빨갱이들이라고 했다. 이럴줄 알고 호남교회를 축출한 것을 참 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난감한 광주지역 교회들이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순복음교회 등이 빈자리를 차고 들어와서 급속한 교회성장을 이루었다. 광주의 주요 장로교회들은 정체되고 말았다. 미국 남장로교의 본산이 복음주의와 신천지의 본산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호남의 개혁교단은 이 모든 아픔을 이겨내고 2005년 합동과 통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구합동과 구개혁이 통합된 이후 합동교단은 신학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되었다. 합동에서는 신학적 정체성 논쟁보다는 친목을 통한 정치활동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서인지 각 단체들은 부부동반세미나가 주요사업 이더라.    

이제는 각 지역협의회들이 총신대학이나 신대원 학생들 가운데 그 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사랑의 식권을 나눠주면 좋겠다. 장학금 전달도 좋겠다. 그 지역 출신 목사들의 경조사를 더 꼼꼼히 챙기고, 건강도 살펴주면 좋겠다. 그 지역 출신 목회자가 어려움을 당하면 그 것을 알리고 서로 돕는 역할도 하면 좋겠다. 

굳이 교단 내 지역협의회에게 바라는 사설을 쓰는 이유는 각 지역협의회 신년하례식을 지켜보면서, 이 단체들이 그 지역출신 전체 목회자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때문이다. 교회의 위기, 목회의 위기 앞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가는 현실에서 서로 손을 잡아주고 힘을 모은다면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 각 지역협의회가 지역주의를 넘어서 동료들을 살리는 단체가 되기를 바란다. 각 지역협의회가 특정인들의 선거를 위한 정치단체가 된다면 각 지역협의회는 당장 해체해야 할 것이다. 정치를 위한 써클활동은 모르지만, 지역단체를 그렇게 이용하는 것은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의 복마전일 뿐이다. 그래서 각 지역협의회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이다. 

교단은 정치하는 곳이지만, 교회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고 따르는 곳이다. 그 어떤 정치라도 예수님 보다 우선될 수는 없다. 아울러 공교회는 누구의 소유가 아니다. 하나님의 소유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그 어떤 교회라도 예수를 신실하게 믿는 교회라면 모든 교회가 운명공동체이다. 같이 죽고 같이 살아야 한다.

필자가 예수재림을 이야기하면 "2천 년을 기다려도 안오시는 분이 언제 다시 온다는 거냐?"고 항변하는 목사들이 많다. 크로노스적(연대기적) 시간이란 인간이 만든 가설일 뿐이다. 칼렌다식 시간은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에서는 나이가 없다고 한다. 족보도 없다고 한다. 공간 조차도 하나님 안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오리라.

마라나타!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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