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빙크는 개혁교의학 제2권에서 어거스틴은 아타나시우스보다도 더 강하게 성자의 성부의 동등성을 주장하였으며, 아타나시우스의 글에는 종속론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c, Ar. Ⅰ,59) 반해서, 어거스틴은 성부만이 참된 원래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의 모든 잔재를 완전히 버렸다고 하였다. 또한 어거스틴의 삼위일체가 그 이후에 개념적으로 좀 더 발전되긴 하였으나 그의 삼위일체론에 새로운 요소가 더해진 일이 없다고 하였다(Herman Bavinck, Doctrine of God, trans, Willian Hendriksen(Banner of Trust: Eerdmans, 1977), 283-284(재인용, 엄현직, “성경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삼위일체 구조에서 본 고든 J. 스파이크만의 삼위일체론 비판, 안양대학교신학대학원 석사논문, 2002년, 3).

두 사람은 모두 아프리카 사람(African Christian theologians in Roman North Africa and Egypt)이었다. 북아프리카는 서쪽(Hippo)은 라틴어 사용 지역이었고, 동쪽(Alexandria)은 헬라어 사용 지역이었다. 동쪽 아타나시우스는 초기 사역자이고, 서쪽 어거스틴(354–430)은 초기 다음 사역자였다. 알렉산드리아는 Origen(185–254), Arius(256–336), Athanasius(296–373)가 활동했고, 히포와 카르타고에서는 Tertullian(160-225)이 활동했다.

아타나시우스는 325년 니케야 공회의에 부제 신분으로 참석했고,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 참여하지 못하고 소천했다. 어거스틴은 381년 이후에 회심했고(386년 8월. tolle lege, 387년 세례 받음), 431년 에베소 공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소천했다.

바빙크가 아타나시우스에게 종속론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평가했는데, 필자는 그 평가를 인정하기 어렵다. 종속론은 동일실체(homoousios or consubstantial)와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거스틴에게 모든 잔재가 완전히 해소되었다는 전개도 인정하기 쉽지 않다. 삼위일체 지식은 인간 이성으로 수용하거나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A 오류가 B 오류를 양산했기 때문에 논리적일 수는 있다. A 오류인데, B는 정답일 때는 논리 모순의 비일관성 체계가 될 것이다. 오류, 불확실한 개념 위에 자기 사고를 세우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가장 확실한 지식은 성령의 조명으로 주신 내적이고 영적인 지식이다. 그러나 가시적으로 확실한 지식은 표준문서이다. 우리의 표준문서는 세상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갖고 있지 않으며, 우리 안에서는 규범적인 문서이다.

즉 아타나시우스가 제언한 성부와 성자 관계를 종속론적으로 평가한 것이 부당하면, 뒤의 평가도 부당하게 된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의 종속론을 배격하며 평생 고난을 받으며 성부와 성자의 동일실체를 견지한 한 사람이다.

아타나시우스가 완전한 신학자가 아니고, 어거스틴도 완전한 신학자가 아니다. 두 신학자는 모두 공회의에서 활동한 공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신학 판단은 개인 신학 산물이 아닌 공회의 결정에 의해서 판단할 수 있다. 탁월한 신학자를 존경해야 하지만 그 탁월성은 공회의에 반영된 내용으로 결정된다. 아타나시우스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를 주도한 유일한 신학자,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에 의해서 교회의 기둥(Columna Ecclesiae), 세상을 거역한 위인(contra mundum)으로 평가받았다. 어거스틴은 서방 교회, 중세 시대의 유일한 신학자로 평가받았지만, 그의 신학은 나타나지 않았고 16세기 종교개혁에서 부각된 신학의 보고이다.

필자는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그림을 볼 때마나 아쉬움과 염려가 있다. 삼위일체는 오직 믿음 고백으로 믿음으로 수용되는 영의 지식이다. 그림이나 인간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어떤 강연에서 교회 공회의에서 “삼위일체(Trinity)”라는 어휘를 결정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적도 있다. 교회 공회의는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실체이심(325년) 그리고 성령이 하나님이심(381년)을 고백했다. 이 교리 형성 과정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위인은 아타나시우스이고, 체계를 구축시킨 위인은 갑바도기아 세 신학자(Cappadocian Fathers)들이다. 세 교부의 이름은 대바실(Basil of the Great, Bishop of Caesarea, 330-379),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Bishop, 330-395),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329-389)이다.

고경태 목사(주님의교회, 형람서원)
고경태 목사(주님의교회, 형람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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