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 칼럼] 진정한 인격(人格)
세월은 우리가 잠들어 있는 순간에도 시간을 삼킨다. 옛말에 "九牛一毛"(구우일 모)라는 말이 있다. 소 한마리의 몸에 나있는 털 하나 하나를 세자면 어느 세월에 다 셀수 있겠는가? 그런데 소 한 마리도 아니고 아홉마리의 소털은 얼마나 많을까? 옛 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생 중의 하루를 "아홉마리의 소털 중 털 하나라 하여 "九牛一毛"로 표현했다. 우리가 살아있는 날 수가 과연 그렇게 많을까? 이와는 정반대로, "小年 易老 學 難成 一寸光陰 不可輕 (소년이로 학난성 일촌광음 불가경)" 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소년이라도 늙기는 쉬우나 인간 됨의 도리를 깨닫기는 어려우니 세월을 아껴 부지런히 人性을 닦아 높은 경지에 이르도록 하라"는 경구다. 어찌보면 인생의 成敗(성패)는 주어진 세월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우리는 크게 하루 단위로 가는 세월에 빠져 살 때가 참 많다. 그래서 "歲月不待人"(세월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옛 말처럼 세월은 냉혹하고 엄정하다. 나는 매일 새벽 3시 경에 일어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새벽 2시건 3시건 잠에서 깨는 시간이 바로 일어나는 시간이다. 일어난 후 잠간 묵상기도 하고 목욕하고 아침 운동을 마친 후 새벽 예배준비를 한다. 새벽 5시 15분경에 새벽예배를 시작해서 6시 쯤 마치고 나면, 방 청소를 하고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그리고 집 뜰에서 기르는 길 고양이들에게 사료와 함께 따뜻한 마실 물도 준다. 그런데 야생 동물이기 때문인지 날이 너무 추워서 따뜻한 물을 주어도 마당에 눈 녹은 차디찬 물을 핥는 것을 보면, 야생동물들의 생태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요 며칠동안 혹독하게 추워서 얼마 전에 낳은 네마리 새끼들 중 두마리가 추위에 죽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사료를 주면 멀리 있다가도 와서 사료를 먹으면서도 사람에겐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래서 길 고앙이라 부르나 보다. 요즘 날씨가 한 낮에도 영하권에 머물러 있어서 어미 고양이보다 어린 새끼들이 너무 가엽다
내가 요양원에서 섬기고 있는 분들이 모두 아흔 한 분이시다. 지난 날 내가 아직 젊었을 때, 즉 오십대 쯤에 섬기던 그 때와 지금과는 마음의 자세가 사뭇 달라진 것 같다. 그땐 부모님처럼 여기고 섬겼었는데 어르신들을 섬겨온지 어언 30년이 다 되어가다 보니, 내 나이도 덩달아 팔십이 된 지금은, 나 보다 나이가 적은 이도 동갑내기들도 많다. 그래선지 어느덧 같이 늙어 자연 허물 없는 동병상련 (同病相憐)이 되어 동무처럼 허물없이 지낼 때가 많다. 내가 콩팥도 부실하고 건망증때문에 기억력도 점점 부실해져서 조만간 같은 처지가 될 것 같은 그 날이 코앞에 다가 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선지 내가 아직 섬기고 있는 저분들의 외로움과 놓여 있는 상황들이, 바로 남 아닌 나의 일로 여겨져 흉허물이 없다. 1층에서 4층까지 층 층이 계시는 어르신들을 만나 뵈러 갈 때마다, 마치 내일의 나를 본듯 살갑고 반가운 것은, 이 모습들이 바로 미구의 내 모습이기 때문이리라! 며칠 전 어느 젊은 정치인이 늙은이가 오래 사는게 문제라고 했다가 여론의 묻매를 맞았다. 인간의 생명은 노유(老幼)를 떠나서 존엄되어야 할 만큼 존귀한 것이다. "빨리 죽어야 한다"는 장유(丈幼)도 모르는 그런 위인이 과연 집권 여당에서 상생의 정치를 할수 있겠는가? 애비도 없는 호로 자식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런 노인 비하발언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가! 그럼 나이 먹어 죽어지지 않으면 자살이라도 하라는 말인가? 절로터진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될 것이, 말이 그 사람의 의중과 됨됨이를 재는 척도가 될 뿐더러 자칫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줄수 있기 때문이다. 길이라고 다 길이 아닌 것이 치매환자에겐 길이 없듯, 깊은 산속에는 사람다니는 길보다 야생 짐승들이 다니는 길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보고 안타까운 맘이 드는 것은,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지난 날 내가 격었던 힘들었던 일들이 생각나거나, 머잖은 날 내게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나를 사로잡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래서 치매노인과 함께 있다 보면 참 만감이 교차할 때가 참 많다. 어느 누가 치매를 받아들일 이가 있겠는가?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지난 해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재교부 받기위해 4시간 교육을 받으러 갔더니, '치매진단서 를 첨부'하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하리만큼 엄청 큰 충격을 받았다. 이때처럼 나이를 실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란 곧 '세월의 년륜' 이겠지만 그러나 이 날 내가 '치매진단서 첨부'를 요구받고 보니, 당시로서는 너무나도 생경하게 들렸었다. 그때 나는 큰 충격을 받아 치매 진단서를 요구한 창구에다 대고 "아니 자동차 운전면허증 교부받는데 '건망증 진단서'라면 모를까 무슨 '치매진단서'냐? 며 거세게 따졌다. 후에 돌이켜 보니 나의 이러한 과민반응이 현재의 내 나이를 부정하려는 또 다른 늙은이 증상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나는 참 철부지처럼 인생을 살아왔던 것 같다. 이를 통하여 내가 깨달은 것이, "아! 그래서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이 손사래를 치며 요양원 입소를 한사코 거부"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나는 오늘 Tv 채널 Jtbc에서 방영중인 '싱어게인'에 도전한 한 젊은 가수의 말이 내 맘에 비수처럼 와 꽂혔다. "네게 다가 온 시련의 벽을 두려워 말고 뛰어 넘어라!" 이 말을 채 음미하기도 전에, 유명 탈렌트 이선균씨가 마약혐의로 몇차례 수사를 받다가, 이 어려움을 뛰어 넘지 못하고 "그만 극단적인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 하였다."는 비보를 들었다. 왜 사람들은 걸핏하면 하나뿐인 생명을 자살로 내 던지려 할까? 참 가슴 아프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고귀함을 미처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내 생명' 이라하고 '내 자식'이라 하고 '내 소유'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여러분은 어제 저녁에 먹은 음식들이 이 아침에 거의 다 소화가 되었을 것이다. 허지만 내 몸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기적같은 신진대사들이 어떻게 소화가 되고, 이 모든 영양소들이 어떻게 전신에 공급 되며, 바로 내 몸안의 노폐물들은 또 어떻게 배설되고 있는지 그 전모를 전혀 알지 못하는 순간에 이루어진 신진대사의 전 과정을 혹여 알고 있는가? 내 몸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도 잘 알지못하면서, 오늘 내게 무슨일이 일어날 지도 알지못하면서, 과연 내가 무엇을 안다 할수 있으며, 그래서 내 몸도 내 것이라 할수 없다면 과연 내것이라 할 또는 이 것만은 내가 알수 있다 할 것이 과연 무엇인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기에 내 생명은 물론 이 땅위에 있는 모든 것들은, 주인도 아닌 내가 팔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내 몸을 비롯해서 바르게 쓰고 원래의 자리에 놓고 가는 것이 조물주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써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현실에 부딛친 상황이 아무리 버겁고 힘들지라도 세상에서 못견딜 시련은 없다. 하나 뿐인 아니 단 한번 뿐인 일회자의 생명인데,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해 버리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자살행위' 라 표현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금년 한 해를 뒤 돌아 보며 덧없이 보낸 날 들을 아쉬워하면서, 동시에 밝아오는 새해를 또 설레는 맘으로 새해를 맞이 하는가 ? 이제 달랑 오늘 뿐인 2023년 12월의 마지막 끝자락에 서서, 올 한해를 살아 온 날들을 돌이켜 보시라! 며칠전 정세균 전 총리가 야당 대표를 만나, 현애살수(懸崖撒手. 낭떠러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라.)라는 고사성어로 고언(苦言)했다고 들린다. 아무리 좋은 말도 들을 수 있는 '순한 귀(耳順)'가 있어야 한다. 나는 과연 이 해에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만약 내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내려놓지 못한 천려일실 (千慮一失)의 한을 남기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생명의 끝날이 오늘이라면 이 땅에 온 소명을 이루었는가? 금년도 달랑 오늘 뿐이다. 이처럼 누구나 다 하루에 한번 지는 석양을 보며, 또 일년에 한번씩은 한 해의 끝자락에 서게 된다. 나 또한 이제 저물어가는 노년을 살면서 시대의 아픔과 좌절 그리고 온갖 만고풍상을 다 격으면서 마침내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다. 그대여! 인생의 나중과 오늘만 지나면 다시 새 해가 떠 오르는 내일을 보시라!
이 해의 끝자락에 와 있는 그대는 지금 과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인생의 새 지평을 열어가야 할 새 날들을 앞에 두고, 그대는 지금 나이와 관계없이 이제 무엇을 추구하시려는가? 한 해의 끝자락에 선 나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영적으로도 더할수 없는 행복이 가득한 하루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살아가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과 더 좋은 인연을 이어 가고자,옛 이웃이거나 새로 만난 이웃이거나 세상 것 때문에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 가시라! 하나님이 맺어준 좋은 인연들을 더는 육신의 소욕으로 잃지 마시라! 이제라도 사는 의미를 깨닫는 오늘이 되시라!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인고(忍苦)의 세월을 격었는가! 그럼 이젠 아픈 눈물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고, 또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인생의 희열과 비애도 맛보고서야, 아! 깨달은 것이 더불어 사는 여기에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먼저 이루어져야 바른 人生 길을 걸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늘 웃을 일만 있다면! 그러나 단 맛 쓴 맛 짠맛 매운맛 아린 맛의 진수를 모르고서야, 어찌 인생의 진수 (眞髓)를 깨달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새해에는 얼굴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인생의 희열도 알게 되고, 혼자보다 함께 사는 즐거움을 아는 그래서 참 행복을 나누고 누리는 새해가 되길 소망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모든이를 사랑으로 품을 수만 있다면! 그래서 나는 모든 이들이 나를 좋아하도록 나의 인성을 새 사람으로 만들어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새해 를 만들어 남은 여생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래서 새 해에는 내가 남은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알아 억만금보다 더 소중한 내게 주어진 날 들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동행케해 주신 이웃들을 더 좋아하고 사랑하며 그래서 내가 이 이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리라! 또한 가장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요양원 노인들과 함께 늙어가리라! 그리하여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어르신들이 금년 마지막 날인 오늘도 행복으로 마치는 하루 되시길 빈다. 또한 전국 요양원 모든 어르신들이 다가오는 새 해에도 주님이 오라 부르시는 그날까지 몸과 영혼이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시간이 가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계절이 바뀌고 또 오늘처럼 해가 바뀌어도, 우리 함께 가는 이 인생 길 위에서, 사는 날 동안 모든 만남 중에서 가장 큰 만남인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이 땅위에서의 모든 만남들이 축보으로 이어져, 늘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참 좋겠다.
[종그니 칼럼] 진정한 인격(人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즉 Barometer(바로미터)는 과연 무엇에 두어야 할까?
고대 그리스시대의 소피스트들은 만물척도의 중심을 인간에게 두었고, 특히 그들은 `愛智者` 즉 Philosopher인 철학자에 두고 이들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이외 동서고금 모든 나라의 공통점이 응당 권력자가 그 중심축에 있었다. 이런 좌식계급들이 자신들의 위상과 입지를 위해 만들어 낸 신분제도는 아주 엄격하였다.
민주주의가 성립된 지금, 이런 앙상레짐의 산물인 신분제도는 역사 속의 기록물로만 남아 있을까? 그렇지 아니하다! 비록 법상으로는 예전의 신분제도가 없을지라도 지금도 사회 각계 층에서 신분상의 차별이 엄존하고 있다. 흔히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상해 임시정부의 국가 주석이셨던 김구 선생의 아호가 백범(白凡)이다. 당시 소 돼지를 도살하는 이를 가장 낮은 이름으로 `백정`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김구 선생이 자신을 白凡이라 한 이유는 자신을 `지극히 평범한 자`란 뜻으로 살기 위해서였다.
흔히 성경 말씀을 `역설의 진리`라고 말한다. 정치가를 비롯한 세상 많은 사람은 자신을 낮출 때 인격의 위상이 높아지는 `역설의 진리`를 알 까닭이 없다. 대한민국이 들어선 이후 국민을 위한 공복(公僕)의 자리에서 일한 집권자가 과연 있었던가? 우리는 이 `역설의 진리`를 링컨대통령의 삶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다.
링컨의 아버지의 직업은 구두 만드는 제화 기능공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당시의 귀족들은 비천한 구두 공의 아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링컨이 미국 제16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상원 의회에서 대통령 취임 연설을 하려고 했을 때, 한 연로한 귀족 출신의 상원의원이 링컨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링컨! 당신은 이 나라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예전에 당신 아버지가 우리 식구들의 구두를 만들기 위해 우리 집을 드나들곤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기 바라오. 또한 여기에는 당신의 아버지가 만든 구두를 신고 있는 상원의원들이 많이 있소. 그러니 당신의 출신 을 잊지 마시오." 이 모멸찬 말에 환한 미소로 답한 링컨은 콧대 높은 상원의원들 앞에서 그들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각인될 대통령 취임사를 남겼다.
"나의 아버지는 매우 멋지고 창조적인 예술가였습니다. 나의 아버지보다 더 아름다운 구두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이 땅에 없습니다. 나는 결코 아버지의 구두 만드는 솜씨를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만일 나의 아버지가 만들어 드린 구두가 여러분의 발에 잘 맞지 않다면 나에게 말씀하십시오. 나는 훌륭한 제화공은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배운 기술이 조금 있으니 최소한 여러분의 구두는 수선해 드릴 수 있습니다. 연락만 주시면 언제라도 여러분의 집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이처럼 링컨은 자신의 아버지가 구두 만드는 기능공이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이처럼 당당하고 신념에 찬 명연설을 들은 상원의원들은 진정한 "인격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저 사회 밑바닥 구두 공의 아들이 전 미국을 이끌어 갈 차기 대통령이라는 사실과 그의 격조와 품격 있는 충고 앞에 그들은 쥐죽은 듯이 잠잠하였다. 바로 이것이 그 어떤 무기보다 더 고귀한 인격이다.
링컨은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노예제도를 없애고 흑인들을 노예의 사슬로부터 해방했다. 피부색과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가장 존귀한 인간을 비참한 노예의 굴레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그는 이와 같이 노예해방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흑인들을 구원한 이 시대의 진정한 리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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