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집안의 장남임에도  선친께서 돌아가시자 마치 돌아가시기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향학열에 불타 열 아홉에 서울로 와서 고학을 했다. 때론 호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고 생활비가 빠듯해서 아침 혹은 점심을 생수 한잔으로 대신할 때도 있었고 잠자리도 아주 불편했지만, 그러나 내가 서울로 유학을 와서 하고픈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는 행복했었다. 허나 이것도 잠시,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순간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만 3년을 폐결핵으로 천금같은 날들을 헛되이 보내야했다. 인생의 황금기 꿈 많았던 20대를 그렇게  날려 버렸다.   폐결핵은 세월만 앗아간게 아니다. 향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마저 앗아가 나를 꿈을 잃은 룸펜 족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이 12월 4일 벽에 걸린 카렌다 금년 12월 마지막 장을 넘기려니 한달도 채 안된 남은 날 들이 참 소중하게 다가 온다.  언젠가 이곳 요양원에서 99세로 소천하신 증조 할머니를 보러온 증손녀가 할머니를 보고, "할머니! 할머니는 나이가 그렇게 맛있어?"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제 내 나이 일흔 여덟이 되고 보니 새삼 그 증 손녀가 한 말이 되 살아나 나를 두고 하는 말처럼 들려 온다. 날마다 먹는 것도 아니고 한해에 겨우 한살 먹는 건데, 상경한게 엇그제 같은데, 아! 그 세월에 어느 덧 늙고 보니,  마치 세상은 그대로인데 나만 홀로 세월에 씻겨져 호호백발이 됐나 싶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내 남은 삶이 얼마 남았는지 알길 없지만 돌이켜 보니, 나는 지금 예전엔 생각지도 못한 장수를 누리고 있다.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유유자적 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노년의 지혜다  80의 벽을 넘으면 어찌 될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보니 내가 참 존경하는 분이 있다.   늦게 만났지만 금년 86세가 되신 최광재 목사님은  고령임에도 주어진 세월  남은 시간을 금쪽처럼 아끼면서 오로지 선교열정 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 선교를 일년이면 3~4회를 다녀 오신다.  국내에서 2~3개월 동안 모금을 하시면 4천에서 1억 정도 모금이 된다. 한 두번도 아니고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한결같이 해외 선교에 혼신을 다하고있다.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 사명감과 그 열정이 어디서 솟아나는 것일까? 수십년 세월동안 가난한 아프리카  의 청소년들에게 쏟은 신앙 열정과 사명의식은 실로 대단하다.  그 연세면 인간의 한계에 다달은 그 나이에 인간으로서는 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은 하실수 있기에 그를 통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내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뿐 아니다!  서울에서 탄자니아까지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중도에서 갈아 타고 또 현장까지는 비포장도로를 보통 10여 시간을 타고 간단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도저히 할수 없는 대단한 노익장이다.  약속된 탄자니아 오지에 도착하면 예정된 건축현장에서 주어진 날 동안 그들과 생활을 함께 하면서 모든 것이 열악한 빈민촌 마을에 학교, 교회, 우물, 화장실등을 짓고  그 일을 마치기가 바쁘게 또 지체 없이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모금활동을 한다. 금년에도 무려 세번째로 지난 11월에 탄자니아로 날아가 한달여 동안 그곳 건축현장에 머물면서 건축 하나 하나를 꼼꼼히 감리하다가 그 일을 다 마치기가 바쁘게 지난 11월 말에 귀국하셨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엄두조차 낼수 없는 참 대단한 노익장이다.  아마 이렇게 선교하며 한 평생을 살아 오셨다.  그럼에도 지금도 정정하시다.  아마 주님께서 아플 틈도 주시지 않은 것같다.  이 분은 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  지금 이 나이까지 일할수 있도록 건강을 책임져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자신을 믿고 맡겨주신 선교 후원자들의 후원금을 들고 탄자니아로 달려가서, 늙은 몸을 오로지 선교의 사랑으로 불태우는 그의 노년의 모습에서 인생 말년을 너무 아름답고 멋지게 마무리 하고 있는 삶을 보고 있노라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 진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은 이와같이 나이와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는 삶에 있다.  요즘 세상을 보면 나만 나만하고 나만 찾는 이기주의가 팽만한 막가파 세상이 되어가고 있어 안타깝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할 것없이 오로지 돈뿐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으로 태어난 소명의식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 신앙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돈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모두 하나 같이 이 호주머니에서 저 호주머니로 굴러다니는 돈을 잡으려고 돈 돈하며 산다.  돌고 도는 돈을 잡고자 쫒아다니면 자연히 내가 돈의 노예가 된다. 내게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이 아직 있다는 사명감이 그리고 그 사명감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축복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사는 진정한 이유다.  내게 할 일이 있는 한, 몸은 늙어도 내 영혼은 젊다.  누구의 표현대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누구는 80이 되면  칠십대처럼 체력도 기억력도 따라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니다! 하나님이 부여해 준 사명감에 불타게 되면 그 사명이 인간의 한계의 장벽을 능히 뛰어 넘을수 있다. 이것이 만년 청년의 삶이다. 그것을 나는 86세의 노익장 최광재 목사님을 통해서 보고 있다.  사는 것이 먹고 자고 노는 것에 있다면, 그 인생이 짐승과 무엇이 다를까?  다시 말하면 세월을 죽이며 허송하며 살지 않고 사명감이 불타고 있는 한 세월은 우리의 것이다. 

옛날을 생각해보시라. 회갑까지 사는 이들이 가뭄에 콩나듯 했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가난을 숙명으로 여기고 그 가난을 뛰어 넘으려는 의식이 결여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약 60여년전만 해도 대대로 이어 온 가난이 대물림 되었었다. 나라가 너무  가난해서  이 가난을 퇴치할수 있는 도약의 발판이 될 안목조차 결여 되어 있었다. 현재의 가난의 틀을 벗어나려면 사고(思考)의 전환 즉 굼벵이가 나비가 되듯 탈바꿈의 대전환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렇게 반만년을 개미 쳇바퀴 돌듯 살아왔던 우리가 1960년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리치려는 몸부림으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가 활짝 뚫렸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이 가난으로뷰터 환골탈태하는 결정적인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바로 이것은 도약하려는 몸부림의 산물이다. 그리고 내가 1966년 봄 서울로 올라올 때만해도 잠자고 있던 대한민국이 思考가 바뀜으로 나라의 틀도 바뀌어 고속도로가 뚤리면서 대한민국은  반만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환골탈태의 고고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젊은 날 나는 이 도약의 대열에 탑승할 젊은 날의 꿈이 있었다. 그러나 거듭된  악순환으로 깊은 나락속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것이 내 인생에 있어 180도 전환이 되어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이 예정하셨던 종의 길을 걸어왔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다.  아! 이 나이 되어 내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내 발로 걸어 온 세월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이의 손에 이끌려 온 세월이었다.  

이게 어찌 내 개인의 삶에만 있겠는가! 일회자의 인생 길이지만 내가 이 대전환의 시대에 이땅에 태어난 것도 내가 자원해서 된 것이 아니고,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절대자의 섭리로 내 삶이 시작된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오늘을 인생 100년의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인생 백년이 무슨 대수인가?  오고 감이 어찌 내 의지로 되는 것인가?  젊은 날 내가 원하는 것은 멀어지고 나를 이땅에 내신 조물주의 뜻에 따라 이루어 졌다. 이것이 절대자의 섭리다. 내가 살고 있는 요양원엔 겨우 오십대에 건강을 잃어서 입소한 이들도 있다.  육십대도 있고 칠십대는 더 많고 80대는 수두룩하다. 구십과 백세가 넘은이들도 있다.  젊은 날 한 때 강원도를 주름잡았다는 주먹도 나이를 비껴가지 못하고 이곳에서 아무도 찾는 이없이 말년을 쓸쓸하게 지내고 있다.  며칠 전엔 이 노인이 음식을 잘못 삼켜 복통을 일으켜서 잠시 호흡곤란이 오기도 했었다. 나도 이제 1년 남짓 남은 80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남의 수발 안 받고 여기까지 왔지만, 오뉴월 날씨와 같은 늙은이의 건강을 어찌 알랴마는, 그러나 오늘 여기까지 무탈하게 지내온 것만으로도 축량할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다. 최광재 목사님이 당신의 나이를 잊고, 온 몸을 던져 선교 활동에 올인하며 살아 오셨듯이, 오갈 곳 없는 어르신들을 섬기기 시작하여 지금의 요양원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살아 오면서 만고풍상을 다 격다 보니 정말 아플 겨를도 없었다.   사람들은 노년을 즐기며 살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것 하고 가고 싶은 곳 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운동은 산책으로 대신하고 번거롭고 복잡한 일은 피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한다. 절로 터진 입들이라고 말들을 참 편하게 한다. 

내가 즐겨쓰는 말이 생사사성(生事事省) 성사사성(省事事省)이란 말이다.  이 말은 "할 일을 찾으면 할 일이 계속 생겨나고, 할 일을 줄이려고 하면 할 일들은 몽땅 사라진다." 는 말이다. 내가 할 일들을 찾으려들면 할 일들은 수두룩 하다.  그러나 일을 안 할려고 들면 할 일들은 눈에서 멀어진다.  아직 건강한데 소일거리가 없다면 그건 불행인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요양원은 할 일들이 수두룩하다. 나의 하루 일과는 나는 보통 아침 3시면 일어나서 반드시 전신 목욕을 한다. 목욕을 마친 후 약 30분 정도 체조를 한다.  그럼 아침 4시정도 된다.  새벽 예배 준비를 하고 새벽 예배를 30분정도 드리고 난후 약 한 시간 정도 글을 쓴다.  그리고 아침 밥을 준비하면서 방 청소를 한다. 이것이 아침 식사전 나의 하루의 시작이다. 나는 하루 하루 하는 일들이 마냥 즐겁다. 내일 일이 어찌 될지 그걸 알아서 뭘 하겠는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인 것이 있다.  죽음에는 누구나 두 길이 있다. "좋은 삶이었다고 자족하면서 눈 감을 수 있는 행복한 길과, 죽음이 두려워 悔恨의 눈물을 흘리는 길이다.  어제까지 하던 일이 오늘 할 수 없는 사태가 올수도 있다.  '혹시 내가 치매인가 하는 불안도 있다.   배우자의 죽음에 직면하여 절망과 고독에 빠질수도 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여 '행복한 晩年'과 '불행한 晩年'을 두고,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할수 있는 일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활용하는 자세다!

나이가 들면 病의 씨앗을 몸에 품고 산다.  오늘은 건강해도 내일 돌연사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을 전제로 내일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80이  넘어도 활기 있게 살고 있는 사람은 그 정신력이 살아 있기때문이다. 노쇠는 병이 아니다. 점차 몸이 약해져서 죽음에 이르는 자연스런 과정이다. 85세가 지나면, 누구나 몸속에 많은 病의 種子를 갖게 된단다.  그걸 가지고 신경쓰는 것은 늙은 몸을 탄식하는 것과 같다.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면서 살면 된다. 그러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80 넘으면 병은 완쾌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나이를 먹었다는 증조다. 늙게 되면 가장 damage를 많이 받는 곳이 腦다! 腦는 산소와 당분을 공급받지 못하면 저 산소 저 혈당을 일으킨다. 당뇨병 치료가 80을 넘기면  비만을 걱정하지 말고 약간 살찌는 건 보기에도 든든해 보이니 가리지 말고 땡기는 것은 실컷 드시라! '먹고 싶다는 건, 몸이 요구하기 때문'이다.  영양부족은 노화를 촉진시킨다! 무엇인가에 흥미를 느끼고 관심을 갖는다는 건 뇌가 젊다는 증거다. 기도(祈禱)를 많이 하면 자연히 마음도 맑아진다. 종교인은 많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종그니 칼럼] 누림의 아름다움

언제부터인가 전혀 여과 없이 우리의 모든 생활영역 속에 스멀스멀 흘러들어 온 자본주의가 낳은 황금 제일주의가 우리의 생활 의식의 뼛속 깊숙이 배어 있다. 황금만능에 대한 가치관이 인간의 모든 가치 중에 단연 최우선순위에 있어 시대의 모든 이들이 마치 아편 중독자처럼 돈의 마력에 중독되어 있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내가 무의탁 양로원을 시작한 1999년 첫 출발은 참 비장했었다. 20여 년의 일반목회에서 오갈 곳 없는 노인들의 삶을 보아온 나는 인생 후반을 이들과 함께하고자 4년여 동안 밤낮없이 뛰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어렵사리 경기도 청평에 건평 240평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때의 그 기쁨은 정말 세상 모든 것을 다 얻은 그런 기쁨이었다.

무의탁 양로원을 꾸러 갈 운영비 문제는 일단 이를 준비만 해 놓으면 이 땅에 나와 뜻을 같이할 후원자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얼마 못 가 빗나가고 말았다. 입소자가 하나둘 늘어남과 비례해서 유지비 또한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후원금은 날이 지날수록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때가 바로 IMF 직후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천상 세상에 나가서 이 시급한 타개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또 하나는 이분들을 수발할 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내국인보다는 의식주 문제가 더 절실한 중국 교포들을 고용하였다. 하지만 고정 수입원이 없이 모든 것을 자비량으로 충당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평소 알고 지내던 목사, 장로들의 말을 믿고 이때 발을 내디딘 것이 종로 바닥에서 기생하는 부동산이나 금융 브로커들이었다. 이 브로커들은 천층만층으로 그중에는 지난날 정부 고위직에 있었던 이, 또는 기업이나 교육계, 혹은 퇴역 장성에 이르기까지, 살아온 삶의 경력이나 이력들이 실로 다양하였다.

나는 어리석게도 이들 브로커들의 꾐에 빠져 이들의 꾐에서 벗어나기까지 참 긴 긴 세월과 함께 많은 수업료를 지급해야 했다. 그리고 내게 돌아온 것은 4년여 동안 악전고투하여 일궈 낸 무의탁 양로원을 개원한 지 7년 만에 경매처분을 당하여 오갈 곳 없는 노인분들의 설 자리 마저 잃어버려야 했다. 이로 인해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오갈 곳 없는 예순 다섯분이 문제였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뱃는 혹독한 세상에서 그래도 동향 후배가 이를 경매로 인수를 하여 이 후배의 배려로 당분간 피난살이는 면하게 되었다. 밥 한 그릇은 고사하고 자동판매기에서 커피 한 잔 살 돈도 없는 브로커들이 입으로는 수백 수천조 원을 힘도 안 들이고 씨우리는 자들에게 흠뻑 빠진 나는 어이없게도 정말 비싼 인생 수업료를 지급했었다.

참 세상은 욱일승천이란 말처럼, 사회 각 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초고속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이는 마치 인간의 몸뚱이는 저 수만 년 전의 구석기인에서 한치의 진화도 없는 것처럼 모든 만물의 최고의 정점에 있는 인간의 인성 또한 그 화려한 문명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정서적으로 나를 컨트롤할 수 있는 유유자적한 부유보다 부지불식간에 육신의 안일이나 그 요구에 따라 사는 자본주의에 흠뻑 물들어 버린 물질의 예속적 존재가 되어버렸다.

멕시코시티의 재래시장 한구석에서 양파를 파는 ‘포타라모’라는 인디언 노인이 있었다. 시카고를 거쳐 이곳에 온 한국 여행객이 그에게 다가와 양파 가격을 물었더니 양파 한 줄에 10센트란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그럼 두 줄 사면 좀 깎아 주나요?”

“아니요. 두 줄이면 20센트입니다.“

“스무 줄 다 사면요?

“스무 줄 전부는 팔지 않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양파가 일찍 다 팔리면 좋은일 아닙니까?"

자본주의 시장논리가 몸에 배인 이 한국인 여행객은, 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 노인은 방긋 웃으며

“나는 지금 양파를 팔려고가 아니라, 인생을 사려고 여기 있는 겁니다. 나는 이 시장통의 활기와 따스한 햇볕, 이웃들과 나누는 정감있는 대화,나는 이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바로 이 삶속에서 내 삶의 진수를 깨닫고 싶어서요. 바로 이 것들을 얻기위해 나는 하루 동안 양파 스무 줄을 파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한 번에 모두 다 팔면,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단번에 내 삶의 진수를 잃을 수는 없지요."

양파 파는 노인은, 시장에서 양파를 팔아 이득을 챙기는 돈벌이가 낙이 아니고 서민들이 필요로하는 물품을 시장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동시에 희노애락을 나눔이 곧 낙(樂)이고 인생의 `누림`이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울림인가! 그러니 어찌 인생의 진국을 우러내는 이 하루를 어찌 생명없는 물질에 팔아버릴 수 있겠는가! 수년전 내가 터키를 갔을때 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터키인이 우리 한국인을 `빨리빨리` 라 불렀다. 빨리빨리가 바로 한국인의 대명사였다.

무식이 용감하다 했던가? 우리는 이렇게 용감무쌍해서 자본주의 시대를 일구어냈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한 풍요를 구가하고 있는 게 아니고, `풍요 속의 빈곤`이란 말처럼, 모든 `인간관계`가 가시적인 빠른 성과만을 얻기 위하여 빨리빨리로 허겁지겁 살아오면서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 채 인생의 진국인 정서의 즐거움까지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수박 겉핥기로 살아가고 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에서 바울은,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 유익했던 것을 해로 여김에 대하여,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혜가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이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하였다.

노을이 질 때 억새의 은빛 물결에서 해질 무렵 강아지풀의 반짝임에서, 익어 가는 겨울 인생의 진수를 맡 보고 싶다. 인생의 겨울을 맞아 지금까지는 "더 많이 더 빨리"가 우리 삶의 동력이었다면, 앞으로의 남은 여정(旅程)은, 인생을 `누림`으로 즐거움과 행복을 찾는, 품격과 여유가 묻어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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