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자연과 팬데믹

자연의 계절을 알리는 세월의 흐름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인데, 질풍노도 처럼 변화무쌍한 세상풍조와 현대문명은 달리는 세월보다 더 빨라서 요즘엔 눈만 뜨면 어제와는 판이하게 다른 생경한 세상을 보게 된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대문명은 나날이 변화무쌍 하다.  세상에 태어 난지 얼마 안된 아이도 현대문명의 적응에 빨라서 '핸드 폰'이 이 아이의 둘도 없는 놀이감이 되고 있다. 이제 머잖아 사람이 아닌 휴대 폰이 '인조 인간'으로 대치될 것같다. 그리고 미구에 내 몸둥이 어느 부위가 손상을 입으면 그 부위만 마켓으로 가서 구입해서 맞추면 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섬뜩해지기도 한다.  

당신은 성인용품 가게를 아시나요? 이 문화는 일본이 압권이라는 말을 들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성(性)에 대한 욕구를 문명의 이기가 시의 적절하게 채워 주듯 인간의 최종 동무는 바로 인간화 된 로봇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결혼 적령기가 대개 십대였는데 요즘은 초혼을 30대 후반이거나 사십대가 대세인 것 같다. 20대 그 좋은 시절을 다 흘러 보내고 중년이 되어서야 겨우 초혼(初婚)을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인조 인간'이 나오게 되면 어찌 될까?  상상도 어려워 진다.  

애완동물이 어린 자녀들의 조롱을 대신하고 있는 요즘 머잖아 로봇 인간이 나오게 되면 먹이고 입히고 배설물을 치우고 씻기는 등 전혀 뒷 치닥거리 없이 가사 일이며 모든 일을 척척해주는 로봇에 의해 아마 애완동물들 은 자연히 도태되고 로봇이 이를 대신하게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는 문명의 속도에 가속이 붙어 어제와 오늘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 마치 초음속기를 탄 것 같은 초 스피드 시대에서 살고 있다.  옛날에 백년주기로 변하던 것이 십년주기가 아닌 일년 주기 아니 나날이 가파르게 변화 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 몸은 구석기 시대의 몸둥아리를 그대로 가지고 있어 변화무쌍한 현대문명을 따라 가기가 어지럽다.    

이런 초 스피드 시대를 팔팔한 젊은이들 말고 현대문명을 뉘라서 끝까지 동승할수 있을까? 그래서 난 발로 다니던 옛날이 그립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과학 문명은 이제 여기서 그만 멈추었으면 싶다  이처럼 모든 문명이 초스피드시대가 되고 있는데 왜 유독 결혼은 만혼이거나 아예 결혼을 포기한 독신으로 퇴행을 하고 있을까? 영혼없는 현대인들의 '말세의 징후'라고 진단할수 밖에 없다.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에서는 40세가 되면 대개 손자 손녀를 본다고 한다. 동남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거의 모계 사회여서 대부분 여자가 가장( 家丈)이다. 그래서 집안의 성(姓)도 여자의 성을 따른다.

기후가 온난해서 인간이 조숙해서 일까? 새삼 남자보다 강한 것이 엄마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모계사회는 대부분이 조혼(早婚)이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에 이르기 전 까지는 대개 조혼이거나  20대가 대세였는데 어느 순간 혼인 년령이 늦어지는가 싶더니 지금은 아예 결혼을 안하거나 한다 해도 30대 후반이나 40대 초의 만혼 (晩婚)이 대세가 되었다.   근자에는 시대의 흐름과 결혼을 했는지 아예 결혼을 포기한 독신세대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 문명의 편의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개인주의가 우리 인생들은 물론이고 지구까지 병들게 만든 병든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런 가사가 있다. 

"너 늙어 봤냐? 나 젊어 봤다."  
내가 젊었을 때 나는 마냥 젊을 줄 알았다. 이제 늙고 보니 젊음을 노래하는 날은 잠시인데 나는 이를 모르고 여기에 빠져 있었다.    이제 우리는 산업쓰레기만 양산하는 소비문화에 더 이상 매몰되지 말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새 인류'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아무리 문명의 최 첨단을 달려도 인간의 신체 구조는 옛날 구석기시대의 신체구조와 전혀 다를바 없다.  근본이 그대로인데 문명의 옷으로 치장한다고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대 문명에 묻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인 '새 인류'로 거듭나지 않고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 그러므로 참 나를 잃어버리고 인간 고유의 자유의지마저 병들어버린 지금의 내가 아무리 현대문명으로 도배를 한대도 본래의 나를 되 찾지 못하는 한 최첨단의 현대과학은 한갖 허상일 뿐이다.   

인간(人間)이란 단어가 인간을 정의하듯 '잃어버린 나'를 회복하지 못한채 인간 고유의 사회성을 허물어 뜨리는 현대인들은 아무리 현대 문명으로 도배를해도 잃어버린 나 본래 있어야 할 나를 찾을수는 없다. 살아 있는 지구에서 아무런 개념없이 만들고 있는 프라스틱은 수백년이 흘러도 썩지 않아 지구를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줄 알면서도 계속 양산하는 무책임한 소비 문화를 보면, 막가파와 같은 인간들의 대자연의 자정능력에 대해 너무 과신하였거나 개념이 전혀 없는듯 하다. 그러나 이처럼 개념없는 삶은 결국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 파멸을 가져 오고 만다.  그것은 인간 중심의 편의주의와 이기주의 그리고 개인주의에  매몰 되면 인간 고유의 사회성마저 허물어져 결국 대자연까지 돌이킬 수 없는 종말을 불러올 것이다. 0

어리석은 인간들이 하는 짓을 보면 오늘만 있고 내일이 없는 막가파로 사는 인생들이 점점 많아져 산업 쓰레기가 대자연을 오염시키 듯 이들의 삶에서 쏟아져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  양양한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우리가 공익 보다 개인의 이기(利己)에 묻혀 사회성을 잃게 되면 인간사회는 삽시간에 '이기의 문명'의 틀에 갇혀 종내는 오늘만 있고 미래가 없는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지금부터 약 40여년 전에 KBS 주관으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있었다. 그때의 시청률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시청률이 75% 이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 세계인들도 이 프로에 푹빠져 있을만큼 참 대단했었다. 6.25라는 남북전쟁때 유엔군이 없었더라면 대한민국도 없었을 전란으로 가족들이 천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사십여년의 세월을 생 이별로 지내다가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 시작되자 국내는 물론 세계각지로 흩어져 지내던 모든 이산가족들이 시공을 뛰어 넘어 잃어버린 가족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KBS HOLL로 구름처럼 밀려 들었었다. 이때 나온 노래가 바로 '잃어버린 30년'이었다. 이 노래는 그야말로 대 히트였다. 그로부터 어언 40여년이 지난 지금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다시 한다면 이제 많은 세월이 흘러 세상을 떠난이들이 많기도 하고 또 그 때에 비해 요즘은 가족제도 도 거의 해체 되고 동기간의 우애도 희미해져서 지난 날의 이산가족은 고사하고 현재의 가족개념까지 잃어버린지 오래다.  

내가 어렸을 때는 굶주린 이웃을 살리는 운동으로 십시일반(十匙一飯)이란 구호가 자생적으로 일어나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는 온정의 시절이었다.  지금 뒤 돌아 보면 동화같은 얘기처럼 들린다. 대한민족 오천년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던 때에 '빨리 빨리'가 유행이었다. 이는 그 당시 우리 민초들이 얼마나 근면성실 했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애칭이었다.  바로 그 여명기 직전까지도 무슨 일이든 일 거리가 있는 것이 축복이었다.  

이처럼 가난을 대물림 하던 신생 대한민국이 근대산업에 눈을 돌리게 되자, 오랫동안 등잔불 아래 잠자고 있던 근대산업에 눈이 열리면서 일반 서민들의 노동력의 수요가 급증하였다. 시골 젊은이들까지 생산 공장을 찾아 도시로 도시로 마치 구름처럼 몰려 들었다.  불과 얼마전까지 일거리가 없어 세월을 죽이고 있던 젊은이들이 도시 모두 산업전선의 역군들이 되었으니 이를 두고 상전벽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할 일 없이 놀던 손이 상품을 만들어 내는 근로자의 손으로 바뀌어 지자 노동자들이

노동 가치에 눈을 뜨면서 '사용자들에 의한 노동의 상품가치를 높이려는 노동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노동에 대한 의무만 알고 근로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던 노동자들이 상품생산에 있어 노동의 가치에 주목하고 부터  '전태일의 사건' 에서 보듯이 수많은 노동 운동으로 근로 기준법이 제정되고 근로자들의 근로 시간과 근로자의 대우가 법상으로 보장되는 상전벽해와 같은 사회 대변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밑바닥 민초들의 삶이 격상되는 역사적인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경제는 노사(勞使)간의 숱한 우여곡절을 격으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전통과 가문을 중요시하던 자급자족의 시대에는 전혀 없던 현대 산업이 여러 전문 분야로 급변하면서 단순 노동에서  전문노동으로 하루가 다르게 다변화 내지 급변하는 동인들이 수많은 사회변혁을 가져와 가족 등 혈연 중심의 자급사회의 공동체가 와해되면서 이러한 빠른 변혁의 시대에 적응하려다 보니 마침내 가족공동체마저 해체되고 나 홀로 세대가 급증하면서 출산률의 급격한 저하로 산업전반에서 수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고 있다. 지방분권 제도가 자립을 하기도 전에 지역 인구가 고령화 되면서 재정자립도 또한 퇴행을 거듭 하고 있다. 사회는 초음속처럼 급변하고 있는데 이를 대처 하는 각종 제도는 항상 소 걸음이다.  

시대의 변화에 능소 능대하게 대응을 못하면 시간을 다투는 현안들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더 꼬이게 마련이다. 이처럼 현대문명의 편의주의에 편승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현대인들의 의식구조를 뿌리째 와해시켜 국가의 미래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도농(都農)을 불문하고 사회 공동체의 단추인 결혼을 마다하는 나홀로 세대가 늘면서 마침내 출산률 저하로 이젠 어디를 가도 늙은이만 있고 어린 아이들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는 그래서 "공무원 월급 줄 돈도 없다''는 좀비 지자체' 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여파로 전국 지자체 재정 자립도는 겨우 43.%에 머물고 있다. 부동산 산업이 침체되고 소비마저 둔화되면서 일할수 있는 젊은이는 없고 복지지출의 대상인 늙은이 들만 줄을서 있는 지자체의 세수(歲收)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반면 복지 지출은 해마다 늘어 나고 있다.  


전국 243개 광역· 기초자치단체의 건전 재정 핵심 지표인 재정자립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추락하고 있다.  지방세 수입은 줄어든 반면 고령화에 따른 복지비 지출은 급증하고 있어 지자체가 점점 자생력을 잃어가고 좀비처럼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재정자립도가 낮을수록 중앙정부에의 의존도는 높아 간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을 했으면 자립을 해야할 것은 자명하듯 이는  매우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2023년에 재정 자립도가 평균 45.0% 에서 다시 추락했는데 이런 추세는 계속 하향곡선을 그어 전국 243개 지자체 중 재정 자립도가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 153개나 된다. 가장 큰 원인은 시장경제 침체로 인한 기업실적 악화 및 소비 부진 등에 따른 지방세수의 감소 때문이다. 2022년 118조 6000억원 이던 지방세 수입은 지난해 110조 6000억원(잠정 치)으로 급감했다. 지자체는 현재 23.2%에 불과한 지방세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기획재정부는 지자체 예산 구조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저출생·고령화가 겹치면서 도농할것 없이 인구가 급감하고, 특히 지방에는 기업도 없어 세수는 매년 줄어들수 밖에 없다. '마이산과 진안고원'으로 유명한 전북 진안군의 올해 세입 예산은 5430억원 이다.  이 중 지방세 수입은 194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3.5%에 불과하다. 


각종 수수료와 이자수입 등 세외 수입도 176억원으로 3.2%에 그친다.정부가 나누어 주는 지방 교부금과 보조금 등이 4900여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90%가 넘는다. 진안군의 올해 재정자립도는 7%미만으로 최 하위다. 내가 지난 해에 진안 마이산을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날이 저물어 모텔에서 자고 진안군 바로 아래에 있는  장수군을 둘러보고 전주를 거쳐 춘천으로 올라오려 했지만 아쉽게도 진안에는 숙박 시설이 없어 그날 밤에 전주로 되짚어 와서 여장을 푼일이 있다. 왜 진안에는 마이산과 같은 훌륭한 관광지가 있는데도 여행객이 쉬어갈 숙박시설이 없는 걸까?   

현재 전국 243개 지자체 중 지방세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도 충당하지 못하는 지자체가 무려 104 곳(43%)에 달한다. 전남·북 경남·북 강원 지역 기초 지자체 대부분이 그러하다.  이들 지역은 인구도 적을 뿐 아니라 주민 칠십세 이상이 대부분이다. 기업도 거의 없으니 지방세 수입을 늘리기는 고사하고 갈수록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져서 복지비 지출은 해마다 불어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춘천 서면 박사마을 역시 일천여명의 주민 중에서 대부분이 다 고령자들이고 젊은이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서울 등 수도권 지역의 ‘부자 지자체' 재정 상황은 매년 악화되고 있단다.

전국 기초단체 중 경기 성남시 (57.2%)에 이어 재정자립도가 가장 높은 서울 강남구 역시 지난해 60.4%에서 올해 56.1%로 하락 했다. 서울 서초구의 재정자립도 역시 작년 57.3%에서 올해 53.2%로 낮아 졌다.  매년 늘어나는 복지 사업도 지자체엔 아주 큰 부담이다.  대부분 정부 보조금에 비례해 지자체도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매칭 방식'이어서다. 행안부에 따르면 전국 지자체의 올해 사회복지 수요는 작년 대비 6조 7000억 원 증가할 전망이다. 올해 지방세 수입이 110조7000억원으로, 작년(110조 6000억원·잠정치)과 비슷한 것과 대비 된다. 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지방세가 줄어드는 와중에 복지비 지출은 더 불어나면서 전체 예산 규모는 수천억원인데도 구청이 가용할 수 있는 예산은 5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행안부에 따르면 올해 국세와 지방세 비율은 각각 76.8%와 23.2%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지방세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정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써야 할 곳은 증가하는데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선심성 사업'을 늘리고 있어서란다. 기재부 관계자는 “허리띠를 졸라매는 중앙정부와 달리 초등학생 용돈, 소풍비, 입학 축하금 등 건전재정을 외면하고 있다하나 시골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경사보다 더 큰경사가 어디 있겠는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장19~20절)

【종그니칼럼】자연과 팬데믹

국가적으로 아니 세계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참 견디기 어려웠던,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지나갔다. 인류 역사상 미증유의 재난을 겪으며, 이 것이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인간이 자초한 인류의 재앙이 아닐까 싶다.

중국의 老子는 춘추시대의 인물이고, 莊子는, 전국시때의 인물이다. 이 두사람의 사상을 노장사상이라 하고, 그 대표적인 것이 "無爲自然, 人間의 힘을 전혀 들이지 아니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무릇 道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본 받는 것이 道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났으므로 자연을 본 받고, 땅은 하늘을 본 받고, 하늘은 道(자연의 이치, 즉 元亨利貞)를 본 받는다" 는 것이다. 그래서 "道는 인위적으로는 표현이 불가하다" 하였다. 그 것은, 인위적으로 표현하는 순간, 이미 道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여 한 마디로 줄인 문구가, 바로 “有無相生”이다. 

周易의 표현을 빌리자면, “一陰一陽”이라 할 것이다. "나와 반대되는 것, 즉 陰과 陽이 연결돼 함께 꼬여 돌아가는 것," 바로 이 것을 ‘자연의 순리’라고 하는 것이다. 즉 너와 내가 하나가 되고, 이 자연의 순리를 따라,  인간이 自然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럼 自然은 뭔가?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 풀이할 수 있지만, 이 정의만으론 느낌이 바로 다가 서진 않는다. "결국 自然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알아서 관계를 맺고 돌아 가는 것이다." 여기서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西洋은 自然을 인간이 과학의 종속에 두는 상대적 개념으로, 그 틀을 만들어 왔음에 비하여, 인간과 자연을 상생의 관계 즉 하나로 여겼던 동양은, 인간을 自然의 한 부분으로 보았다. 그래서 동양화는 곧 산수화요, 그 그림 속에서 한 모퉁이에 자리잡은,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화는 '인물중심' 즉 '사람 중심'이 아니었던가!

결국 대자연이 사랑의 공동체로서 생명의 하모니를 잃지않기위해 생명의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회귀 본능이 바야흐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이 지경에 와서 생각해 보니, 老子의 선견이 자연의 맥을 정확하게 짚은 것이다. 自然은 道의 法理에 따라 땅이 하늘에 의지하여, 그 위에 온갖 생명들을 생육케하는 것이다. 땅은 하늘에 의지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들을,一陰一陽의 ‘道’라 일컬어지는 법칙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돌아 가도록 체계를 형성한 것이니, 요즘 말로 이를 ‘자연의 생태계’라 말할 수 있겠다.

김종근 목사
김종근 목사

프랑스 계몽사상의 최후를 장식한 루소(Rousseau,) 는,문명과 전통을 부정하여 그의 "인간불평등기원론 (人間不平等起源論)"에서, 그는 인간의 원시상태를 찬미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대자연의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과학의 힘으로 자연을 좌지우지해온 산업혁명이 지구를 한 바퀴를 돌아 중국이, 현대 산업화에 다다르면서, 결국 자연이 인간에게 회초리를 들고 나선 것이, 바로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아닌가 싶다. 대자연을 거스른 인간을 향하여 대자연은 “너도 결국 대자연이라는 자연의 가장 작은 한 부분일 뿐이야!”라고 질타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은, 예외 없이 살아 있는 것들의 끝없는 희생을 통해 이루어져 가고 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먹을 만큼만 챙기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유독 인간만이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을 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통해, 과다하게 생명을 앗아가므로 자연의 생태계를 끊임없이 교란시키고 있다. 밥상위에 먹을 만큼만의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으로, 끼니마다 먹고 남은 음식 쓰레기가, 온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다. 과잉생산의 필연적 본질인 자본주의가, 피할 수 없는 지경으로 자연을 크게 거스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에 조화와 균형의 회복을 본질로 삼는 자연은,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인간에 의해, 자연도 이미 설상가상으로 정화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생명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그래서 극히 중립적이고 중도적인 바이러스를 통해, '인간에게' 모든 자연을 해치는 “동작 그만”을 엄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시간은 흘러 2021년의 새해가 밝아오고 있다. 아마 새해의 첫 태양도 어김없이 다시 떠 오르리라! 어서 忍苦의 세월이 지나가고 다시금 자연이 살아 숨쉬는 희망의 새해가 도래하길 기원한다.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