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embering President Harry Truman

Sadly, President Harry Truman does not often receive the credit many people think he rightfully deserves. Below are some interesting facts about Harry Truman our 33rd President many people may not be aware of.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사람들은 미국의 제 33대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도 못할 뿐더러 관심도 매우 적습니다.

President Truman was a different kind of President for three primary reasons:
트루먼 대통령은 세 가지 면에서 다른 대통령들과 차별됩니다.

First - and foremost, he was not elected to his first term of office; he inherited the position of President after the death of President Franklin Roosevelt.
첫째는, 그는 처음부터 선거에 의해 선출되어서 대통령직을 맡은 사람이 아닙니다. 전임자였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서거함으로써 부통령이었던 트루먼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것입니다. (역자 주: 그 다음 선거에서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공화당의 토마스 듀이 후보를 물리쳤습니다. 이 때 당시 유력지였던 시카고 트리뷴지는 이미 "듀이가 트루먼을 이겼음: Dewey defets Truman" 이라는 제호의 호외를 발행하였고, 이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오보로 기록되었습니다.)

Second - While serving as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he chose to pay all of his travel and living expenses such as the food his family ate out of his Presidential salary.
둘째는, 미국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여행경비와 가족들의 식품비같은 생활비를 대통령으로 받는 자신의 연봉에서 지출했습니다. (역자 주: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정부예산을 특활비라는 명목을 붙여 편법으로 집행하지 않았슴.)
  
Third - he placed a sign on his desk in the Oval Office which read - ‘The Buck Stops Here’
세째는, 트루먼 대통령은 대통령 사무실인 백악관 오벌 오피스의 책상 위에,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The Buck Stops Here)"라고 새겨진 명패를 놓고 대통령직을 수행했습니다. (역자 주: 누구처럼 남 핑계도 안대고 대통령으로서 무한책임을 지었슴)

Ironically, President Truman probably made as many, if not more, important decisions regarding our nation as any as the other 32 Presidents who preceded him. Most notably on August 6th, 1945 he, and he alone, ordered the dropping of the 5 ton Atomic Bomb on the Japanese city of Hiroshima.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트루먼 대통령은 아마도 전임자인 32대 루즈벨트 대통령이 자신에게 남겨둔 미국에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일을 수행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주목할만한 결정은 1945년 8월 6일 일본의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결정을 자신의 결단만으로 감행한 것입니다.
  
However, his true measure of greatness actually does not begin until after he left the White House in 1952.
그러나 트루먼 대통령이 진실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백악관을 떠난 1952년 이후에 나타났습니다.

After President - Elect Eisenhower was inaugurated into office as the new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Harry and his wife Bess drove themselves back home to Independence Missouri in their personal automobile. There was no such thing as a Secret Service escort which followed them.
자신의 후임으로 아이젠하우어 대통령이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임직식을 한 후에, 트루먼 대통령은 영부인이었던 아내 베스와 단 둘이서 자신의 자동차를 손수 운전하여 고향인 미주리주 인디펜덴스로 떠났습니다. 그 여정에는 미국 대통령실 경호원같은 수행원은 단 한 사람도 따르지 않았습니다. (역자 주:  해리와 베스 둘이서 1066 Miles, 1755 Km나 되는 장거리를 운전을 하여 자기집으로 돌아왔슴. 당시의 자동차 성능과 도로상태, 그리고 연령을 고려해볼 때 일주일 가량 걸렸을 것같음)

When they left Washington the only source of income they had was a small U.S. Army pension Harry earned and the only asset he and his wife Bess had to their name was a small house in Independence Missouri which Bess inherited from her parents. Other than the six years Harry and Bess spent in the White House, this was the only house the two of them ever knew during their entire married life.
트루먼 대통령이 워싱턴을 떠났을 때 유일한 수입이라고는 해리가 받는 약간의 미 육군 연금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재산이라고는 아내 베스의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아 두 사람의 이름으로 등기 되어있는 미주리 주 시골 동네 인디펜덴스의 작은 시골집뿐이었습니다. 백악관에서 살았던 6년간을 제외하고는 그 두사람은 오직 이 작은집에서 평생을 함께 살았습니다.

Almost immediately upon returning to Missouri large corporations from across the county began to contact Harry Truman. They all wanted to offer his positions with huge salaries to come work for them. However Mr. Truman declined every offer he received saying "You don't want me, Gentlemen you want the office of the President, and that unfortunately doesn't belong to me. It belongs to the American people and I am sorry but that office is not for sale."
미주리 시골집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전국에 있는 많은 회사들에서 해리 트루먼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회사들은 그에게 고액의 연봉이 따르는 직함을 제시하고 함께 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스터 트루먼은 그 모든 제안들을 일거에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여러분은 저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합중국의 대통령직을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대통령직은 저에게 속해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대통령직은 미국 국민들에 속해있습니다. 미안하게도 그 대통령직은 파는 것이 아닙니다." 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Several Congressmen soon noticed the former President was paying for all the stationary and the stamps he was using to respond to letters her received from US citizens and people around the world who wrote him. Not only that, President Truman personally licked every stamp he placed on an envelope. Congress voted to grant President Truman the very first 'Retired Presidential Allowance. The following year, Congress voted to give him a retroactive Presidential pension of $25,000 per year.
몇몇의 의원들이 전 대통령 트루먼이 세계 각지와 전국에서 오는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쓰면서 사용하는 편지지와 봉투 그리고 우표를 자신의 비용으로 사용하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트루먼이 (비서도 없이) 일일이 우표에 침을 발라서 봉투에 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회에서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임 대통령 보조금'이라는 예산항목을 만들어 통과시켰습니다. 그 다음 해에 대통령 연금 예산을 통과시켜서 일 년에 2만5천불씩을 소급해서 지급했습니다.

In May 1971, Congress was preparing a bill to award President Truman the Medal of Honor on his 87th birthday; however President Truman wrote a letter to Congress in which he stated he would refuse to accept any such medal. He said "I don't consider what I have done anything which should be the reason for any award, Congressional or otherwise – all I did was my job."
1971년 5월에 의회는 트루먼 대통령의 87세 생일에 맞추어 미국 최고의 훈장인 의회 명예훈장을 주기로 안건을 준비했습니다. 그러자 트루먼 대통령은 의회에 편지를 써서 자신은 그 메달(훈장)을 받을 수 없노라고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나는 내가 의회나 그 어디로부터라도 상이나 훈장을 받을 정도의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The one Truman quote I will personally never forget was the one he gave during an interview with the New York Times. When asked why he had gotten into politics in the first place he said "My choices in life were simple, either become a piano player in a Missouri whore house or enter politics. And to tell the truth, the way I saw it there was hardly any difference – so I choose politics."
개인적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트루먼의 어록은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정치에 발을 디뎌놓게 된 가장 우선적인 동기가 무엇이었나 물었습니다. 트루먼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인생에서 나의 선택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미주리의 어떤 술도 팔고 매춘을 하기도 하는 업소에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되거나 정치가가 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둘 중 어떤 차이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치를 선택했습니다."

Many Presidents and numerous political figures that followed President Truman found new levels of success by cashing in on their time in Public Office. Many used creative ways to accumulate untold wealth as a result of their time serving in public office.
트루먼 대통령 이후 많은 대통령들과 정치가들은 그들이 공직에 있었던 기회를 이용하여 부자로 성공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직에 있었던 경력을 이용하여 엄청난 부를 쌓는 나름대로의 창조적인 방법들을 깨우쳤다는 말입니다. (역자 주: 민주당 소속 대통령들인 클린튼과 오바마는 대통령 퇴임후 거부가 되었고, 현직 바이든은 아들에게 엄청난 이권을 연결하였슴. 반면에 공화당 소속 대통령들인 부쉬는 텍사스 석유재벌이라 돈에 별 관심이 없었고, 부동산개발 재벌이었던 트럼트는 연봉 1달러만 수령하였으며 퇴임 후 오히려 재산이 많이 줄었슴.)

It might be wise for us to take a moment now and then to remember President Harry Truman.
때때로 우리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회상하면서 지혜로워져야 합니다.®

【사족】
이 글을 쓴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트루먼 대통령은 어쩌면 가장 저평가 되어있는 미국 대통령일 수 있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더욱 인기가 없지요. 6.25 동란 발발의 이유 중 하나가 되는 애치슨 국무장관의 애치슨 라인 선포로 한반도가 미국의 방어선 밖에 놓이게 된 이유를 들것입니다. 그리고 만주 폭격을 놓고 맥아더 사령관과의 갈등으로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를 해임시킨 책임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주 젊은 전도자였던 빌리 그래함 목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6. 25 동란, 공산군의 침략을 막도록 참전을 결정한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력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위의 글 전반에 흐르는 트루먼 대통령의 검소함과 진실함은 그 어느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그만의 장점이자 귀감이 됩니다. 

현직에 있을 때 국민이 낸 혈세로 사치와 해외여행을 즐기고 온갖 이권을 챙기고, 퇴임 하면서 엄청난 저택을 지어 입주하고, 자기가 자기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모든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며 검수완박이라는 헌법에 위배되는 초특급 방탄법까지 챙기는 한국의 대통령과 너무 비교가 됩니다.

특히, 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명패를 White House의 Oval Office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날마다, 매순간마다 바라보면서 대통령으로서의 무한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스스로 짊어졌다는데서 존경받아야 마땅한 지도자상을 볼 수 있습니다.

트루먼이 대통령이었을 때 신속한 결단으로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꾼것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투하 결정입니다. 그 후 단 9일만에 일본은 항복했습니다. 세계 제2차 대전은 종언을 고했습니다.
둘째,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전격적으로 건국선언을 하였습니다. 벤 구리온 초대 대통령이 건국선언한 후 11분 후에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이스라엘 정부를 승인했습니다. 당시의 통신기술을 고려한다면 곧바로 승인한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세째, 1950년 6월 30일 북한군이 남침을 시작한지 5일만에 투루먼은 미군 지상군 파병을 결정하고 일본에 주둔하고 있던 1개 연대를 급파하고 곧이어 2개 사단의 증파를 결정하였습니다.

The Buck Stops Here. 이 명패를 한국 대통령들도 집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소박한 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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