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진정한 모습은 지킬 박사의 얼굴일까, 하이드 씨의 얼굴일까?​
  ◆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진정한 모습은 지킬 박사의 얼굴일까, 하이드 씨의 얼굴일까?​

한국의 장로교회들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교회정치의 요소는 바로 ‘회의체’(The Assembly)에 관한 이해와 그 운영일 것이다. 마치 세속의 민주주의정치에 있어서 의회정치가 어려운 것처럼, 의회에서의 대화와 타협이 법률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특정한 집단의 이익이나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근거함으로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술수와 싸움이 난무하는 것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러한 유사성은 역사적인 근거가 분명하니, 영국에서 발달한 의회민주주의(웨스트민스터식 의회제도)가 장로교회정치의 원리와 매우 유사하던 데서 그 근거를 추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수많은 혁명을 통해 의회정치의 방식이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정치방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바로 ‘법률’(Lex)이다. 어떠한 의사결정을 논의하는 회의에서 법은 특정한 집단이나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배제시키고 모두가 동의하는 결정을 도출시키는 가장 분명한 기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장로교회도 모든 의사결정이 교황(The Papal)제나 감독(The Prelatical)제와 같이 특정한 사람이나 사람들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회의(The Synod or Assembly)에 맡겨진 것이며, 그러므로 ‘교회법’(canon)을 기준으로 모든 논의와 의사결정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장로교회의 교회법을 보면, 기본적으로 교회의 성격이 ‘모임’ 혹은 ‘회’의 성격임을 볼 수가 있다. 무교회주의(Non-church movement)와 같이, 각자 개인적인 신앙에 따라 개별적으로 교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인 회중(a congregation)으로서 비로소 교회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1907년의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최초의 노회록에서도 ‘대한 교예수 쟝로회 규측 뎨일됴 교회’에 관한 첫 번째 조항의 말미에서 “…보이는 교회는 온 세상에 설립한 교회니 그 교인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니라.”고 규정한 후에 두 번째 조항을 시작하며 곧장 이르기를 “예수교인 몇 사람이 합하여 한 규칙을 쫓아 한 모양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행위가 거룩하고 성경의 계명을 쫓으며 예수의 나라 넓히기를 힘쓰며 때를 저하여 함께 모여 예배하면 교회라 칭하느니라.”고 했다. 한마디로 “예수교인 몇 사람이 합하여 한 규칙을 쫓아 한 모양으로” 모이는 것이 바로 교회(church meeting)인 것이다. 따라서 작금에 한국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명칭을 쓰는 모든 교단들은, 바로 이 같은 ‘대한 교예수 장로회 규측’에 동의하며 따르는 교단들임을 스스로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장로교회란 항상 ‘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교회의 치리나 권징 또한 철저하게 회의체로서의 치리회를 통하여 시행된다. 만일에 이를 간과하고서 특정한 한 사람(보통은 개별교회의 담임목사) 혹은 특정한 사람들(장로들이나 집사들 혹은 교회의 유력한 자들)에 의해 치리와 권징이 이뤄진다면, 그곳은 장로교회가 아니라 로마교회 혹은 감독교회(The Prelatical Church)에 속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치리와 권징이 교회 회원권을 지닌 소위 형제들이라 칭하는 자들 혹은 회중들 모두에게 있다면, 그곳은 장로교회가 아니라 독립교회(The Independent Church) 혹은 회중교회(The Congregation Church)에 속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장로교회는 그러므로 항상 성경의 제시를 따라서 장로들과 집사들에 의해 치리와 권징을 행하되, 회중들을 잘 감화하고 설득시키어 동의(agreement)를 거치도록 하는 방식(공동의회를 최종적으로 거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한편, 그러한 장로교회정치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원칙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장로들(가르치며 치리하는 장로인 목사와 치리만을 전담하는 장로인 치리장로)에 의한 정치’와 ‘교역자들(즉, 목사들)의 동등성’과 ‘치리회의 3심제도’이다. 특히 3심제도(3 trial system)에 의해서 장로교회의 각 치리회의 성격이 기본적으로 법정(The Court, 즉 대표자 회의)의 성격임을 알 수가 있으며, 그런 만큼 장로교회의 치리와 권징은 기본적으로 교회법에 근거한 ‘고소’ 혹은 ‘수의’에 의해 회의를 통하여 판결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아울러 이러한 3심제도의 보장을 위하여서도 개별교회의 치리회인 ‘당회’(Congregational Presbytery) 이외에 ‘노회’(The Presbytery)와 ‘대회’(Synodical Assembly) 혹은 ‘총회’(The General Assembly)라는 치리회 및 회의체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각 치리회의 명칭에서 우리들이 주목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당회와 노회가 공히 ‘장로회’(Presbytery)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반해, 대회나 총회는 회의 혹은 회합을 뜻하는 ‘회’(Assembly)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에 그 ‘장로회’가 기본적으로 당회와 노회를 지칭하는 것임을 나타낸다. 반면에 대회나 총회는 1년에 1회 정도로 규정하여 모이는 회의(Assembly)의 성격을 갖는 것이다.

특히나 장로교회정치에 있어서의 회의들은 세속정치에 있어서의 의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구별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회의의 종결(이를 ‘파회’(scattered)라고 한다)과 함께 회의를 구성하는 대의원들의 권리와 권한 또한 없어진다는 점이다. 반면에 세속정치에서는 의원들이 여전히 존속하여 그 권한과 권리를 지속적으로 행사하는데, 바로 이 점이 웨스트민스터 총회(Assembly)와 웨스트민스터 의회(Parliament)의 근본적인 차이점이었다.

왜냐하면 장로교회에서의 치리와 권징에 관한 권리와 권한은 항상 특정한 사람(개인이건 여러 사람들이건 간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회의’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장로교회는 당회에서나 노회에서나, 그리고 상설적인 역할과 기능이 전혀 없는 대회 및 총회이거나 간에 특정한 사람의 판단이나 결정이 아니라 다수의 회원들이 함께 논의하고 동의하는 회의에 의한 판단이나 결정만이 유효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과 결정의 기준은 각자의 입장에 따른 이해관계의 조율이나 합의가 아니라 교회법에 따른 판결이어야 하며, 그러한 교회법은 반드시 성경에 부합하는 법령으로서만 그 힘을 발휘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의 대부분의 장로교단들의 ‘총회’는 최고회(Highest Court)로서 자리하고 있으며, 더구나 의회와 마찬가지로 상설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형편인데, 그렇게 하여 최고회의 최고 수장인 ‘총회장’을 머리로 하는 위계구조(Hierarchy)를 이루며, 그것은 고스란히 로마교회의 교황주의와 감독교회의 교회정치 방식을 또 다시 답습하는 모순적이고 혼란스러운 교회정치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거기다가 ‘총회 회관’을 내로라하는 규모로 지은 것이 총회의 위상을 드러내는 것인 냥 뿌듯해 하는 지경이니, 그런 한국의 장로교단들은 장로교회도 아니고 감독교회도 아니며, 심지어는 독립교회나 회중교회도 아닌, 그러나 감독교회이기도 하고 회중교회이기도 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Dr Jekyll and Mr Hyde)의 품성을 모두 지닌 참으로 기이한 돌연변이(mutation) 종교임을 직시하여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러한 모습을 개혁하지 않는 한, 그런 대한예수교장로회는 1907년 독노회 시절의 대한 교예수 쟝로회에도 못 미치는 참으로 희한한 장로교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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