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11:4(개역개정)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KTV(바른성경) 4 다윗이 전령들을 보내어 그 여자를 데려오게 하니, 그 여자가 다윗에게 왔는데 마침 그 여자가 부정함으로부터 정결케 된 때였으므로 다윗이 그 여자와 동침하였고, 그 여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이 말씀을 읽고 궁금한 부분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바셋바가 정결케 된 뒤에 다윗이 동침했다”는 내용이다. 즉 ‘그 여자’, 밧세바가 부정함으로부터 정결케 된 상태에 대한 것이다. 정결하게 되었다면 다윗에게 죄가 없다는 말로 이해될 수도 있다.

송태근 목사의 『쾌도난마 사무엘하』(p155)와 김회권 교수의 『하나님 나라 신학으로 읽는 사무엘하』(p149)와 함께, 사무엘하 매일성경을 묵상하고 있다. 두 책에서는 밧세바의 부정을 ‘월경’으로 해석했다. 이와 반대로 성서원의 『관주 메모성경』의 주석에서는 “밧세바의 부정을 다윗과 성관계”로 나와 있었다.

그러면 밧세바가 부정하다고 평가된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월경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윗과 동침을 한 것이다. 먼저 전자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레위기 15장 19절에 근거 “어떤 여자가 유출을 할 경우, 그 여자의 몸의 유출 생리이면, 그 여자는 칠 일 동안 불결하며 그 여자를 만지는 사람은 모두 저녁까지 부정하다.” 부정하게 됐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밧세바가 월경을 하고 7일 후 정결해졌다는 보고를 받은 다윗은 안전하다는 생각에 범죄를 지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임신이 된 것이다. 이러면 또 두 가지 경우 수를 고려해야 할 수 있는데, 하나는 밧세바가 다윗에게 거짓 보고를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자는 그럴듯한 해석이다. 밧세바의 행위를 정치적 야심을 담은 유혹으로 보려는 일부 주석가들의 견해가 있다. 이 논쟁은 이곳에서 다루지 않겠다. 성경에서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후자는 생리 현상을 거스르는 큰 믿음이 필요하다.

다른 부정의 경우는 레위기 15장 18절 “남자가 여자와 함께 동침하여 설정하였으면, 그들은 물로 목욕해야 하며 저녁까지 부정하다.” 말씀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다윗과 밧세바가 동침을 하고 저녁까지 같이 있다가 밤에 밧세바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이 해석이 좀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한다. 한글 성경으로 보면 순서가 바뀌어있지만 원문에서는 “그 여자가 다윗에게 왔고, 다윗이 그 여자와 동침하였고, 그 여자가 부정함으로부터 정결케 된 때에 그 여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순서로 되어있다. 이렇게 해석했을 때 다윗의 죄악이 더 추악하게 드러난다. 십계명 제칠 계명 간음하지 말라와 제십 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안 지키고, 레위기 15장 18절에 나오는 율법은 지키는 얼마나 위선적이고 우매한 행동인가!

이 부분에 있어서 원문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 『맛싸 성경』의 번역자 이학재 교수님께 문의했다. 교수님은 사무엘하 11:4에 있는 부정은 원문으로 툼아, 성적 관계로 인해 부정한 기간이 지났다고 이해된다고 답변하셨다.

이렇게 두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결론은 동일하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고, 율법을 어겼다는 것이다. 권력을 취해 분별력을 잃어 버린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다윗과 우리아의 행동을 보면서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점이 있다. 신명기 23장 9-14절을 보면 전쟁 중 성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지금 이스라엘은 전쟁 중이었다. 전쟁 중에는 성관계를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다윗은 이 말씀을 무시하고 우리아에게 성관계를 유도했고, 우리아는 이 말씀으로 인해서 병사들과 지냈는지 모르겠지만 말씀대로 아내와 동침하지 않았다. 그의 고백은 감동이다. 사무엘하 11장 11절 “우리야가 다윗에게 말하기를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장막 가운데 머물고 있으며, 내 주 요압과 내 주의 부하들이 들에 진을 치고 있는데, 어떻게 제가 제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제 처와 동침할 수 있겠습니까?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생명을 두고 맹세하는데, 이와 같은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얼마나 멋있는 고백인가! 이 고백을 통해서 우리아는 전쟁 중에 아내와 동침하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다윗의 행동과 매우 대조되는 모습니다.

그 충성된 부하, 여호와의 종 우리야를 다윗은 죽이기 위해서 더 교묘한 계략을 고안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의 악은 감취지지 않았고, 온 천하에 드러나 버렸다. 그럼에도 다윗은 이스라엘 왕국 중 가장 신실한 왕 중에 유일한 사람이다. 다윗의 그러한 죄악에 대한 정당성이나 핑계가 아니라, 주의 징계를 불만없이 수용하고 오직 주만 의지한 왕이다. 주께서 높이신 왕을 주의 자녀는 합당하게 존중한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왕으로 다윗을 추앙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그 다윗의 후손이라고 지목되셨고 자처하셨다. 죄인의 모습이 아니라 주의 뜻에 순종하며 언약의 땅을 성취한 왕으로 모형을 갖고 있다.

고은 전도사(광신대학교)
고은 전도사(광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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