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예수교장로회의 교회정치 방식
해마다 가을이 되면 대한민국의 장로교회들에서는 ‘총회’(the general assembly)를 실시하는데, 그러한 총회는 회의의 자리임과 동시에 선거 및 투표의 자리이기도 하다. 아울러서 새로이 당선된 ‘총회장’(the president)은 새로운 임원들과 더불어서 한 해 동안의 임기를 시작하는 것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총회장은 일종의 단체장(group leader)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교단과 관련한 이미지와 대표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직위처럼 이해되곤 한다. 그러므로 총회장은 임기 동안에 실행할 정책과 여러 단체나 기관들과 긴밀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대표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한국 장로교회 총회들의 공통적인 현실은 사실 한국의 장로교회들이 장로교회정치에 바탕을 둔 교파가 아님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심각한 퇴행일 뿐이다. 오히려 그러한 현실은 역사적인 장로교회들이 피를 흘려가면서까지 개혁하여 세운 교회정치를 모두 무너뜨리고, 다시 교황제도(papacy)나 감독(monarchical bishop)제도가 필요하며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드러냄인 것이다. 물론 현행 장로교회 총회들의 총회장들은 교황이나 감독들에 비하여 훨씬 적은 권한과 권리를 지니는 실정이어서, 마치 영국의 국왕과 같이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기보다는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다.”(The king reigns, but he doesn’t govern)라고 하는 문구로서 단적으로 표현되는 입헌군주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그 직을 수행하는 모양새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러한 총회장의 직분과 직무는 전혀 장로교회정치의 원리에 부합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장로교회정치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이며 중요한 원리는 바로 모든 권위와 권한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시다”라는 문구로서 단적으로 표현되는데, 그 말인즉 교회의 모든 운영과 운용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시거나 가르쳐 주신 대로만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로 모인 회중 안에서 누구든지(목사거나 치리장로이거나, 심지어 특정한 누구이거나 간에) 자신의 판단과 생각을 따라서 의사결정과 결의를 도모하는 자가 있다면, 바로 그 자가 교회에서 오직 유일한 자리인 그리스도의 자리를 찬탈하는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대로의 예배와 교회질서, 그리고 치리와 권징을 찬탈하여 자신이 임의로 판단하고 욕심을 채우는 그러한 자는, 경건과 겸손으로 아무리 그럴싸하게 자신을 위장한다 할지라도 끔찍스러운 적그리스도임에 분명한 것이다. 하물며 노회나 총회 차원의 회집 가운데서 그러한 권위의 자리를 어떤 식으로든 취한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끔찍스럽고 경악할만한 적그리스도의 등장이 아니겠는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 정도로까지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겠는가? 생각할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일찍이 가장 잘 개혁된 교회의 형태를 거의 최초로 구현한 프랑스 개혁교회 총회는 그 첫 총회에서부터 신앙고백서와 교회정치의 문서를 작성했는데, 특별히 프랑스 신앙고백(1659년) 제30조에 명시하기를 “우리는 모든 참된 목사들은, 유일한 머리이자 유일한 군주이시며 유일한 대주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아래 어디에서나 동일한 권위와 동등한 권세를 가진다고 믿는다.”고 했으니, 그러므로 목사들 가운데서 혹은 직분자들 가운데서 누구든지 ‘남들보다는 내가 더 낫다’고 여기는 자는, 바로 이러한 신앙고백에 정면으로 거스르며 반항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제도적으로나 교회정치 체제에 있어서 남들보다도 우월권을 가지거나 행사하려는 모든 발상과 제도들은, 바로 이처럼 기초적인 신앙의 원리조차도 거스르며 대적하는 사악한 제도요 로마 가톨릭의 교황주의의 견고한 그 조직과 전혀 다르지 않은 맥락을 이루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찍이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치리서들과 교회정치 규정들에서는 공히 사람에게 어떠한 권한이나 권위도 부여하지 않으며, 다만 각 ‘회의체’들 자체의 권위와 권한에 의해 모든 판단과 결의를 선포하고 실행토록 한 것이다.
특별히 개혁교회에서나 장로교회에서나 공히 회의의 중재와 인도를 책임지는 자리인 ‘노회장’과 ‘총회장’의 직무를 회의 자체로 한정함으로써 특정한 사람에게 권위와 권한이 부여되는 것처럼 인식될 여지를 배제했었다. 물론 노회장의 경우에는 훨씬 다양하고 실질적인 직무들과 연계되어 있어서, 회의가 있을 때만 조직이 결성되는 임시회인 ‘대회’(the provincial synod)나 ‘총회’(the general synod)와 다르게 상시적으로 운용이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그 권한은 노회의 회의에서 결의한 사안들의 구체적인 실행과 보조를 위한 것들에 한정되거나 재판국 등 치리회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국한하여 행사되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16세기에 개혁교회를 이루고 있었던 네덜란드 교회의 엠든 치리서(Acta of the Synod of Emden. 1571)의 지방대회(the provincial synod)에 관한 조항들 가운데 제2조를 보면, “그들이 이처럼 모였을 때에, 그 장소의 목회자나 만일 그곳에 그가 없을 경우에는 지난 번 회의를 주재한 사람이 기도함 가운데 인도하여 회장, 부회장, 서기를 선출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여 지방대회나 총회의 회장의 성격이 결코 단체장과 같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회의를 주재하며 중재하는 조정자(Moderator)의 성격임을 알게 한다. 더욱이 그러한 회장의 선출을 회의가 열린 그 회기의 석상에서 하도록 명시하고 있어서, 노회 이외에 대회나 총회 차원의 단체장이 결코 운용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더구나 제6조에서도 “회장의 직무는 대회의 정회(adjournment)와 더불어서 끝이 난다. 동일한 인물이 회장을 계속하도록 할 것인지 혹은 다른 회장을 선출할 것인지는 다음 지방 대회에 맡기도록 한다.”고 명시하여, 분명히 회의의 의장인 회장은 그 회의의 회기가 시작됨과 더불어서 선출되고, 또한 그 회기의 회의가 종료됨과 동시에 회장의 직무와 자리 또한 종료되도록 한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개혁교회의 교회정치 방식에서는 그 교단을 대표하는 단체장이나 교단장의 역할을 수행하는 자가 전혀 없는 것이며, 교단과 교단의 모든 조직은 오직 교단 안에 있는 교회들에 관련된 문제들을 처리하고 판단하는 ‘치리회’(governing body)로서의 역할과 기능만을 수행할 뿐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기초적인 장로교회정치 원리의 이해와 더불어서, 노회와 구별되는 대회 혹은 총회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전반적으로 결여되어 있는 한국의 장로교회 교단들은 항상 현 회기에 다음 회기까지의 회장을 선출하며, 또한 함께할 임원들을 구성함으로써 명백히 상시적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단체로서의 총회를 구성하고 운영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총회들 가운데서 총회장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적인 모습으로 자리하며, 교단의 총무가 실무를 수행하며 각종 이권과 권한들을 행사하여 비리와 권력의 온상을 종횡무진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러한 한국 장로교회의 현실들은 분명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아니라 ‘대한예수교감독회’에 가까운 것이며, 이 땅에서는 로마 가톨릭 못지않은 권한과 위세를 드러낸다 할지라도, 하늘 위 하나님 앞에서는 죄와 벌을 높이, 더 높이 쌓아 올리는 적그리스도요 교회를 무너뜨리는 여우짓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장로교회와 교단들이 정말로 ‘대한예수교장로회’를 이루려 한다면, 현 회기의 회장을 현 회기의 시작과 더불어서 뽑으며, 또한 다음 회기의 회장을 현 회기에서 뽑을 것이 아니라 다음 회기로 넘기며 현 회기의 회장이 그 직무를 종료하는 ‘파회’(break the meeting)의 구현하는 개혁부터 반드시 이뤄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모든 장로교단들은 505주년 전 ‘1571년 10월 4일 엠덴에서 개최된 독일과 동프리슬란트에 흩어져 있는 십자가 아래에 있는, 네덜란드 교회 회의의 법령’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회정치 수준의 ‘대한예수교감독회’로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조선예수교장로회의 교회정치 방식
1907년에 처음으로 조직된 ‘대한국예수교장로회 노회 회록 서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풍부히 주심으로 수년전에 미국 남 장로교회와 북 장로교회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와 케나다 장로교회 이 네 곳 총회에서 특별히 대한국장로회 노회를 세우기로 허락한고로 장로 공의회 회장 마포삼열 목사께서 네 곳 총회의 권을 얻어 한국 교회에 노회되는 취지를 설명” 하였다는 언급을 볼 수가 있는데, 이는 한국의 장로교회가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미국과 영국령 오스트레일리아, 케나다에 있는 장로교회들과 역사적 궤를 같이 하는 명실상부한 역사적 장로교회로서 설립되었음을 천명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즉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 노회는 1907년에 비로소 세워졌을지라도 그 원류는 북미대륙과 영국령에 세워진 장로교회들에까지 소급되며, 더욱 근원적으로는 신약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로까지 소급되는 장로교회의 노회임을 알 수가 있다.
사실 대한국예수교장로회의 노회 회록 서문에서의 이러한 언급은 참으로 중요한 것으로서, 비록 장로교회가 역사 가운데 무수한 지역들에 걸쳐서 흩어져 있을지라도 하나의 ‘공교회’(ἐκκλησια καθολικη)를 이룬다는 신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와 원리에 따라서 장로교회의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분리’(schism) 혹은 ‘분열’(Division)의 죄가 얼마나 크고 심각한 것인지를 역으로 실감할 수가 있다. 비록 나라 전체와 전 세계에 걸쳐서 흩어져 있을지라도 장로교회는 하나의 ‘공교회’를 이루고 있는 것인데, 이를 간과하거나 무시하고서 스스로 떨어져 나가거나 분리하여 새로이 시작하려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를 쪼개어 분리하는 참으로 흉악스러운 죄악에 해당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원리와 맥락으로서 1907년의 대한국예수교장로회 독노회는 대한국 자체에 의해 스스로 설립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미국과 케나다, 그리고 영국령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장로교회 총회에서의 허락을 득하여 설립했으니, 이 때로부터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는 새로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유수한 장로교회의 역사 가운데 포함되는 것으로서 시작되었다. 한마디로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의 정통성에 대한 그 어떤 이의나 문제제기도 있을 수 없이 분명하고 확고한 정통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대한국예수교장로회의 정통성은 그러한 역사적 정통성을 계승하는 것으로서만 성립했던 것이 아니다. 비록 1907년 독노회의 회의록에서는 명확하게 명시하고 있지를 않지만, 이미 독노회 설립 때부터 제정한 대한 예수교 장로회 규칙 제4조에서 ‘교회의 치리’에 관하여 명시하면서, “1. 교회를 다스리는 자는 곧 당회와 노회와 총회니 이 여러 회는 일련에 일차 이상으로 마땅히 모일 것이라.”고 하는 장로교회정치의 주요한 원리를 포함한 것이다. 즉 장로교회 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원리이자 원칙으로 알려져 있는바 ‘장로교회의 권세는 개인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회의체로서의 회 자체에 부여되는 것’이라고 하는 원리와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1907년에 오직 하나로 설립된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규칙이 의미하는 바가 사뭇 남다르다 하겠다.
사실 가장 잘 개혁된 교회정치의 원리와 근간을 확립했었던 웨스트민스터 총회 이전까지 잉글랜드의 교회정치는 주교제도(episcopal system)를 채택했는데, 그것은 주교를 세우는 권한을 지닌 잉글랜드 왕권의 확고부동한 유지를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주교제를 유지할 수 있는 교회정치 제도로서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 그리고 지교회의 철저한 자치권을 확립하려는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파, 또한 에라스투스주의와 독립교회파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오직 성경에 따른 장로회 제도를 지지하는 장로교회파 간의 열띤 논의는 최종적으로 장로교회파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아울러 그러한 장로교회정치에 있어서, 교회를 다스리는 권세는 왕당파가 지지하는 에라스투스주의나 성공회의 감독제도에서처럼 특정한 한 사람으로서의 주교에게 부여되지 않고, 항상 회의체로서의 회의 자체에 권세를 부여하도록 하는 제도(system)로 확립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총회 가운데서 명확히 확립한 장로교회정치의 원리는 다수의 회중에 의한 교회의 치리를 지향하는 회중교회(Congregational Church)와, 또한 노회와 같은 상위의 회의체에 종속하지도 않고 자체적인 단일 회중 안에서의 장로들과 성도들에 의한 ‘혼합민주정치’(mixed Democratical Government)를 표방하는 독립교회와도 분명하게 구별된다. 장로교회정치는 ‘순수한 귀족정치’(pure Aristocratical Government)로서 노회와 같은 상회에 지교회가 종속할 뿐 아니라 상회에 대한 항소권이 분명하게 확립되어 있으되, 성도들을 제외한 지교회의 당회와 노회 등의 교회 치리자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성경적 교회정치인 것이다.
그러나 노회와 같은 상회에 지교회가 종속할 뿐 아니라 상회에 대한 항소권이 분명하게 확립되어 있더라도, 교회의 치리권이 지교회의 당회와 노회 등의 교회 치리자들에게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목사(보통은 담임목사)나 특정한 장로(치리장로) 개인에게 부여된다거나, 노회 혹은 총회에서의 특정한 개인(보통은 노회장이나 총회장)이나 특정한 집단(예컨대 ‘정치부’와 같은 별도의 논의기구)에 부여된다면, 그것은 주교제 혹은 감독제도로 회귀하는 것이거나 교권주의(Eclesiastical Authoritarianism)로 전락해버리는 퇴행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을 따라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 규칙(1907) 제4조를 이해해야만 하는 것인데, 비록 불완전하게나마 “1. 교회를 다스리는 자는 곧 당회와 노회와 총회니 이 여러 회는 일련에 일차 이상으로 마땅히 모일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규칙(1907) 제4조는, 이후로 1922년에 정식으로 제정된 조선 예수교 장로회(이는 일제하의 상황에서 계명된 명칭이다) 헌법의 장로회정치 제8장의 ‘교회정치와 치리회’라는 제목의 각 조항에서도 명시되었는데, 1조에서 이르기를 “교회를 치리함에는 부득불 명백히 제정한 정치가 있어야 하느니라(고전 14:40). 그런즉 우리의 아는 바는 사리에 적합한 것과 성경에 교훈한 것과 사도적 교회의 행한 일을 의지하여 미루어본즉 교회를 치리하는 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마땅히 당회, 노회, 총회와 같은 치리회에 있느니라.”고 했으니, 교회의 다스리는 권한인 치리권이 특정한 목사나 정치부와 같은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라 당회, 노회, 총회와 같은 공적인 치리회에 있음을 분명하게 명시했다. 이후로 1034년에 개정한 조선 예수교 장로회 헌법에서도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정치 상편 제9장 1조에서 “교회 치리에는 명백히 제정한 정치와 조직이 있어야 하느니라(고전 14:40). 정당한 사리와 성경 교훈과 사도시대 교회의 행사에 의한즉 교회치리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당회, 노회, 총회 등 치리회에 있었느니라(행 14:6).”고 거의 그대로 명시했으며, 그러므로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을 비롯한 여러 교단들의 헌법에서도 “교회를 치리함에는 명백한 정치와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전 14:40). 정당한 사리(事理)와 성경 교훈과 사도 시대 교회의 행사(行事)에 의지한즉 교회 치리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당회, 노회, 대회, 총회 같은 치리회에 있다(행 15:6).”(합동교단 헌법 Ⅳ. 정치 제8장 제1조)고 명시한 것이다.
이처럼 아직 분열되기 전에, 한국의 장로교회에서는 처음부터 교회의 치리권이 감독제도의 교회에서처럼 특정한 사람이나 소수의 사람들(당회, 노회, 대회, 총회 등과 같은 공식적인 치리회의 구성원과 별도로 조직되어 운용하는 모임의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것을 명백히 반대했으며, 또한 회중주의적인 교회운영과 같이 다수의 회중들에 의한 민주적 교회정치의 방식 또한 분명하게 거부하여, 고전 14:40절이나 행 15:6절에 명시한 바와 같이 치리회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교회정치를 수립했던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는 이러한 헌법의 문구가 의미하는 바를 상당부분 망각하고서 오히려 이러한 문구의 맥락과는 상반된 ‘정치부’와 같은 임원회를 조직하여 두었으며, 심지어는 그러한 정치부가 중요한 안건들을 선정하거나 걸러내기도 하며, 어떤 경우에는 정치부 자체의 판단에 따라 안건사항을 결정하는 초법적인 일을 벌이기도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는 1907년 독노회 회록의 규칙에서부터 1922년 처음으로 제정된 정식 교회헌법(이는 대한민국 헌법보다도 앞서 제정된 것이다)에서 분명하게 거부한바, 교회치리권이 개인에게 부여되는 불법적인 행태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장로교회의 치리권 및 여타한 결의들은 오직 각 노회와 같이 하회에서 정식으로 수의된 안건들에 관한 총대 전체의 회의를 통해서만 이뤄져야 하며, 그러한 회의에 있어서 노회장이나 총회장은 회의를 주관하는 자(moderator)로서의 ‘의장’일 뿐이지 권한을 행사하는 ‘회장’(President)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교회의 노회에서든 총회에서든 ‘총대’로 추천되는 자는 반드시 장로교회 헌법을 숙지하고서 회의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자여야 하며, 노회장 혹은 총회장은 그러한 회의를 주관하여 발언들을 잘 조율하고 의사소통을 원활히 이끌 수 있는 중재력이 능통한 자여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나 임시회(회의 자체를 위한 회집)인 총회에 있어서는 그러한 회의의 주관함 외에 총회장이 행할 권한이 없는 것이니, 바로 이러한 장로교회의 정치 방식이 1907년 대한국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 회록, 그리고 192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에서 공히 지향하여 세운 장로교회의 운영모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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