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솔직히 말하면 스웨덴 나라에 대하여, 고작해야 영국이나 일본처럼 입헌 군주국(국왕은 있으나 군림하지 않는다.)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 한번도 그 나라를 가본적도 없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 얼마전 어느 기사를 통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이 누구냐" 고 그 국민들에게 물어보면 ,  예외없이 대답이 한 사람에게로 모아진다. 심지어 어느 국회의원은 그의 이름을 되뇌이면서 눈물을 흘린다. 바로 '타게 엘란데르' (1901~1985)총리다.    

이 분은 내가 태어난 해인 1946년부터 무려 23년간 스웨덴 총리를 지낸  그는, 재임 중 무려 열한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마지막 선거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훌쩍 넘는 득표율로 재집권한 후,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초연히 정계를 떠났다고한다. 세계정치의 면면을 보면, 중국과 러시아도 종신집권을 꾀하고 있고, 또 함량미달의 위인들이, 권력의 단맛에 빠져 종신집권을 꾀하다 비명에 사라지는, 권력중독자들의 말로를 보면서도, 아편과도 같은 권력의 맛에 미쳐, 그 자리를 꿰차고 있다가 비명에 가는, 아둔한 독재자들도 수두룩하다. 이처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판에, 그는 진정있어야 할 민주정치의 진수를, 조국 스웨덴에 심은 인물이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에게 장장 20여년의 장기집권이 가능하도록, 스웨덴 국민들이 '타게 엘란데르총리'에게, 한결같은 신뢰를 보낸 저변의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첫째는 그에게는 진솔한 대화와 타협에대한 피차 유불리가 없는 실천이었다. '타게 엘란데르'는  청년시절 급진주의 활동을 한 좌파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가 총리로 선출 되었을 때,국왕과 국민들은 많은 우려를 했고, 당시 날마다 노사분규로 몹씨 힘들어 하던 경영자들의 거부감은 실로 엄청났었다. 그러나 취임 후 그의 행보는 모든이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의 당면한 정치를 보는 예감능력이 뛰어나서,  야당인사라도 능력있는 야당 인사라면, 적재적소의 내각 요직에 참여 시키고, 경영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화를 한 후, 노조대표와 함께, '勞.使.政 3자 회의'를 열어, 아무리 실타래처럼 헝클어진 노사문제라 할지라도, 노사정간에 서로 이마를 맞대고 허심탄회한 대화로 해결하였다.

이렇게 대화정치를 연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목요회의' 이다.  매주 목요일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총리별장에, 해당 정·재계, 노조 인사를 초대해서 당면한 이슈의 문제들을 대화로 풀도록 하였다. 이 '목요회의'는 국회의원, 지방의원, 경총, 노총 대표 등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주 유명해졌다. '목요회의'가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보여주기식 대화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 때문에 가능했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 한발앞선 복지제도도, 대화정치 덕분에 가능했다.

둘째는 그의 검소한 삶이었다. 
스톡홀름 남쪽에 '린셰핑'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그곳에 '타게 엘란데르'의 아들부부가 살고있다. 아들은 대학총장을 역임한 후, 아버지가 살아온 길을 책으로 발간했는데, 아들이 들려주는 부모님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감동적이다. 엘란데르는 23년동안 국정의 수반이었지만 지극히 검소하게 살았다. 총리시절내내 이십 년이 넘도록 외투를 입고, 신발도 구두 밑창을 갈아가며 오래도록 신었다. 검소함은 부인도 똑같았다. 집권 23년 동안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던 옷은 단 한 벌.  이처럼 그는 재임동안 내내 국민을 생각하는 맘으로 가득차있었기에,  검소함이 그의 삶의 전부가 되었다.

세번째는 특권 없는 삶 이었다.
엘란데르 총리는 관저 대신 임대 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다. 출 퇴근도 관용차 대신 부인이 직접 운전하는 차를 이용했다. 임대주택은 자신의 재임 시절 서민을 위해 지은 아파트였다. 그는 특권을 버리고 국민의 삶속으로 들어와, 친구처럼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다. 1968년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할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당원들이 급히 돈을 모아 집을 마련했다.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봄메쉬빅'은, 아주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 부부는 마을 호수가 옆 작은 주택에서 16년을 살았다. 그런데 재임중의 총리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 왔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지자보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의 진심이 심장 깊숙히까지 
통했던 것이다.

네번째는 정직한 삶이다.
아들부부가 또 다른 일화를 들려준다. 어머니 '아이나 안데르손' 이야기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화학 교사로 남편의 총리 시절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엘란데르가 퇴임한 후 어느 날, 부인이 정부부처 장관을 찾아갔다. 그녀의 손에는 한 뭉치의 볼펜자루가 들려 있었다. 장관이 반갑게 인사하며 방문 이유를 묻자 볼펜자루를 건네줍니다. 볼펜에는 ‘정부부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남편이 총리시절 쓰던 볼펜인데, 이제는 총리를 그만두었으니, 마땅히 정부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 이야기를 들려주던 노부부가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의 삶은 겸손, 그 자체이셨고, 유산은 재물이 아니고 고결한 삶이 셨기에, 당신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기에, 부모님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타게 엘란데르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23년동안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잡았고,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경청, 겸손, 공감, 봉사의 삶.  바로 이것이 원칙과 상식의 사회를 만드는 그의 비결이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척박한 토양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지만, 우리나라 역대 집권자들 중에, 이처럼 영향력을 끼친 멘토가 있었던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대선은 참 난감하다. 실타래처럼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한 국정에, 여야를 불문하고 고만 고만한 함수 미달자들 뿐이어서, 지금 나는 한국정치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암울하다. 오늘의 집권지망자들에게 말한다. 더 멀리 더 높이 날기를 바라는가? 몸과 맘을 비우고 보라! 흔히 우리는 남을 평할때엔 쇠자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에 대해서는 고무줄자로 잰다. 이것이 바로 망국의 길이다.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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