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회의 상설기구는 그리스도적 체계인가?

1907년에 조직된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독노회 설립 이후로 일제 강점기 이후의 장로교단의 분열을 겪기 이전 시기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하나의 총회로 조직되고 유지되어 왔었다. 그리고 그 분열의 시작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에 따라 강요된 ‘신사 참배’의 문제였으며, 그에 대한 찬반에 따라서 이미 분열의 단초가 발아하기 시작했었고, 상당히 이른 시기에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와 케나다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강제추방 됨에 따라서 신학적으로나 교회 정치적으로 신사 참배를 가결한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불법에 대한 교정이나 신학적 재정의 등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광복 후에 곧장 야기된 분열의 문제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수많은 분열의 역사로 진전되고 말았다.

"해방 이후 한국의 장로회의 역사,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혼란으로 점철."

해방 이후로 신사 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므로 투옥되었었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출소하고, 또한 목회직에 복귀하여 심사 참배에 대한 회개와 친일 청산을 촉구함에 따라, 김길창을 비롯하여 신사 참배를 가결하고 실재로 신사 참배를 강행했던 목회자들의 교권과의 갈등은 곧장 야기되었다. 그리하여 해방 후의 혼란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여전히 장로교단의 기득권을 점하고 있었던 신사 참배 찬동세력은, 끝내 1951년에 한상동, 주남선 등을 중심으로 한 출옥성도 진영의 목회자들을 일방적으로 권징하여 총회에서 축출해버렸다.

그러므로 축출된 출옥성도 진영의 목회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이 설립한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고려파 총회를 설립함으로써 한국 장로교단의 최초의 분열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만일에 이러한 분열 이전에 신사 참배 가결의 불법성이나 그 부당성에 대한 충분한 재논의와 재정립이 이뤄질 수 있는 신학적 역량과 객관성을 확립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신사 참배를 가결하고 강행한 목회자들의 충분한 회개 및 권징이 이루어졌다면, 한국 장로교단의 최초의 분열은 아마도 예방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1951년 총회 이후로 이뤄진 한국 장로교단 최초의 분열은 그것으로 종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일제치하에서 평양신학교를 대체하여 설립된 조선신학교에서 성서비평학 등을 수용하여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의 스펙트럼을 형성했던 교수들이 새로운 장로회신학교에서 배제되는 과정을 통해서, 김재준을 비롯한 조선신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로의 분열이 이뤄졌다. 뿐만 아니라 고려파 총회의 설립과 별도로 이북 지역에서 이계실을 중심으로 각각 1938년 장로회의 신사참배 결의에 반발하여 탈퇴 후 독자적으로 노회를 조직하여 ‘예장순장’을 형성한바 있었으며, 경남 지방에서도 최덕지를 중심으로 ‘예장재건’이 형성되어 예장순장과 함께 1951년에 거제도에서 ‘대한예수교재건교회’라는 이름으로 연합하였다가, 1969년에 각각 ‘대한예수교장로회 재건 총회’와 ‘대한예수교순장로회’로 다시 갈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에 있어 가장 크고도 결정적인 분열은, 1960년에 세계교회협의회(WCC)에 가입하느냐의 여부를 놓고서 일어나게 되었다. WCC에 가입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연동교회에 모이고, WCC에 가입하기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승동교회에 각각 모이므로, 결국 찬성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를, 반대파는 고신 교단과 손을 잡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합동 총회는 신학교 합병 등의 부분에서 견해 차이를 보여서 결국에는 통합한지 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분리되었다. 그리고 이후로 한국의 장로교단들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분열과 통합, 그리고 재분열과 자생 등의 혼란스러운 역사로 점철되었다.

이러한 한국 장로교단의 분열사로 볼 때에, 1907년에 설립된 대한 예수교 장로회 독노회를 시작으로 조선 예수교 장로회로 이어진 장로교단의 역사적 정통성의 계승은 사실상 역사적 정황에서가 아니라 신학적 혹은 헌법의 적용과 실천의 정황 가운데서 파악해 보아야 할 것인데, 무엇보다 1907년에 독노회가 설립될 당시에 미국과 케나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를 통해 계승한 역사적 장로교회로서의 ‘공교회’에 관한 인식을 얼마나 확고히 하는가 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 할 것이다.

또한 바로 그러한 맥락 가운데서 1907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규칙 제1조 교회, 1항에서 언급하는바 “하나님께서 만국 가운데서 큰 무리를 택하사 그 무리로 영원토록 무한하신 은혜와 지혜를 나타내실 터이니 이 무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예수의 몸이요 성신의 전이라. 전과 지금과 후에 만국의 성도이니 그 이름은 거룩한 공회라. 교회에 두 가지 구별이 있으니 보이지 아니하는 교회와 보이는 교회라. 보이지 아니하는 교회의 교인은 하나님께만 아신바 됨이요, 보이는 교회는 온 세상에 설립한 교회니 그 교인은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하고,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니라.”고 한 문구에 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숙지가 도모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 라는 문구, 이미 사문화되어 버린 실정

그런데 이 같은 교회에 관한 규정에서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거룩한 공회”라는 것으로써, 그것은 “만국 가운데서” 택하신 큰 무리일 뿐 아니라 보이는 교회에 있어서 “온 세상에 설립한 교회”이다. 이후로 1922년 조선 예수교 장로회 헌법, 제2장 2조에서는 “거룩한 공회” 대신에 “성공회(聖公會)”라는 명칭 가운데서 “전과 지금 이후에 만국의 성도니”라고 했고, 또한 “보이는 교회” 대신에 “가현적(可現的) 교회”라는 명칭 가운데서 “전세계에 설립된바 교회니”라고 한 것을 볼 수가 있다. 한마디로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그 태동에서부터 시간과 지평을 너머서서 하나님 안에 있는 유일한 교회로서의 “거룩한 공회”에 관한 뚜렷한 인식에 기반을 두고 설립했었으며, 그런 교회가 여럿으로 나누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여지를 두지 않았다. 시간이라는 것과 지평(땅)의 구분과 한계로 말미암는 물리적인 한계와 제약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는 비록 눈에 “보이는 교회”요 “가현적 교회”로서 일지라도 결코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교회인 것이다. 최소한 1931년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전시체제 전환 가운데서 이전까지의 종교정책과는 다르게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등의 변화된 종교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1939년 3월에 조선신학교가 설립되는 시점 사이의 1934년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에 이르기까지도, 교회에 관한 그러한 공교회적인 하나의 교회로서의 인식은 공식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비록 1934년에는 “보이는 교회”를 “유형(有形) 교회”라는 용어로 바꾸었을지라도, 여전히 그러한 교회 또한 “전세계에 산재한 교회니”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공교회’에 관한 이해는, 이미 무수히 분열되어 버린 한국의 장로교단들과 심지어 각 교단에 속한 지교회들 단위로 철저히 찢겨져 버린 형편이다. 예배 때마다 고백하곤 하는 사도신경 가운데서 “거룩한 공회(혹은 공교회)를 믿사오며” 라고 입으로 시인하지만, 정작 그 머리와 마음속에는 오직 하나인 공교회에 대한 이해와 추구라고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 라는 문구는, 현실 교회에서 이미 사문화(being dead letter)되어 버린 실정이며, 심지어 말씀의 일꾼들인 목사들조차도 공교회로서의 인식 가운데서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정치와 같은 계산과 역학관계의 맥락 가운데서의 사교(Socialite)로서 서로를 인정하거나 교류하는 실정인데, 그렇게 해서는 교단을 각각의 위계(grade)에 따른 사교장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결코 “공교회”, 그것도 “거룩한 공교회”를 이루기는 어렵다. 그저 각각의 사교장의 영역 안에서 최대한 이익과 편의를 도모하는 연합회(association)를 이룰 뿐이니 말이다.

끝으로 필자는 이 같은 현실 가운데서, 우리들이 다시 한 번 최초로 세워진 조선 예수교 장로회 정치(1922년) 제1장의 원리에 관한 규정들을 살펴봄으로써 그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특별히 2조에 명시하는바 ‘교회의 자유권’에 관하여 “어느 교파, 어느 교회를 물론하고 각기 교인의 입회규칙과 회원과 임원의 자격과 교회 안 일절제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바 대로 자유 설정권이 있느니라.”고 하여, 얼핏 각 교파와 각 교회가 각기 자유롭게 운영되도록 하는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 혹은 ‘개(an individual) 교회주의’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바 대로” 교회 안 일절제도를 자유로이 설정할 수 있다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행하신바 교회의 운영이 어떠한 것인가에 관하여 모든 장로교단들이 함께 논의하며 종합하는 작업을 선행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야말로 수없이 분열하여 제각각 흩어진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행하신바 교회의 운영이 어떠한 것인가에 관하여 일치점을 찾는 작업은 결코 단기간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만 보더라도, 에라스투스주의(Erastianism)와 독립교회파, 그리고 장로교회파가 최종적으로 합의된 교리와 교회정치 원리 등을 산출하기까지 6년여의 기간이 소요되었고, 그조차도 이후의 역사 가운데서 사장되어버리거나 변경되고 말았으니, 우리 시대에는 아마도 그러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과 케나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장로교회들의 승인에 따라 역사적 장로회를 새롭게 새우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장로회를 계승한 정통성 있는 장로교단을 뿌리로 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를 지향하고 있는 교단의 장로교회 사역자들과 성도들이라고 한다면, “전과 지금 이후에 만국의 성도”로서 설립되었던 공교회로서의 장로교회와 교단의 회복이야말로 참으로 의미가 깊은 개혁의 과제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고백하곤 하는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 라는 고백은 바로 그러한 교회를 바라보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교회로서 개혁해 나가고자 하는 다짐이요 선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조국 교회’로서의 ‘총회’(National Assembly 즉, 나라 전체에 걸친 하나의 총회)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의미에서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총회의 상설기구는 그리스도적 체계인가?

교회 에서 유일한 권력자는, 예수 그리스도뿐

장로교회의 다스림은 결코 특정한 사람에게 부여되지 않으며, 오히려 회의체(Assembly)를 구성하여 공적인 논의를 통해서만 시행할 수 있는 점에서 결코 지배구조를 지향하지 않는 치리의 형식을 취한다. 
만일에 누군가 권한과 권력을 소유하고 행사하려고 한다면, 그는 장로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유일하게 지니시는 권한과 권력을 위임받거나 찬탈해야만 가능한 것인데, 바로 그러한 자를 가리켜서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칭한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서 최고이자 유일한 권력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 오직 그의 열두 제자들, 곧 사도들 외에 그 누구에게도 그 권한을 직접 부여하시지 않으셨다.

 교회의 다스림에 있어서는, 무엇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시고 행하도록 하심인지를 논의하고 판단하는 ‘치리회’((Ruling assembly)의 운용이 필연적인 것이다. 그런고로 장로교회들에 있어 회의의 주제와 논의는 필수적으로 성경에 근거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말씀의 일꾼들인 목사들이야말로 자신의 심령에 간직된 말씀의 지식들을 바탕으로 논의하며 판단을 내리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이와 정반대로 장로교회들이 운영되고 있다. 무엇보다 회의체로서의 당회(Congregational eldership)나 노회(Classical assembly), 그리고 총회(General assembly)에서조차 거의 모든 논의는 성경을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이거나 정치적인(파벌과 인맥의 이해관계) 입장들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들에 있어서는, 성경에 근거하여 발언하는 회원의 발언에 극렬하게 반대하며 모욕적인 언사로 이를 가로막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법정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서 선서를 하듯이,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여 논의하며 판단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사실 장로교회가 얼마나 교권주의(clericalism)를 싫어하는가는, 그 조직구조에서도 알 수가 있다. 즉 ‘당회-노회 혹은 총회’의 구조 가운데 이미 교권주의가 차단되도록 하는 기본적인 골격을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교회의 치리는 ‘당회’라고 하는 회의체를 통한 논의와 판단에 따라 치리하는 것이며, 이조차 홀로(즉, 독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의 회의(greater ruling assembly)인 ‘노회’의 시찰과 협력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교회의 당회가 오류에 빠지거나 나태할 경우에는 노회에 상고하므로 당회의 오류나 나태를 시정하도록 할 수가 있다. 그뿐 아니라 ‘노회’는 또한 ‘총회’(General assembly)에 의해 오류나 태만이 시정될 수가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장로교회에서 ‘당회-노회-총회’는 서로 간에 ‘~할 수 있는’(may be) 관계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must be) 관계로 연계되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총회’ 조차도 유일한 상급기관이 될 수가 없도록 함으로써, 교권주의를 차단하는 것이 바로 장로교회정치의 기초인데, 총회는 상설기구가 아니라 회의를 위해서 조직되는 임시기구라는 점에서 상시적인 기구로서의 교권을 휘두를 수가 없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간과하고서 상설화 하여 운영하고 있는 현행 총회제도는 고스란히 교권주의의 폐단을 입증하고 있다. 또 세속정치의 금권선거 못지않은 금권을 바탕으로 하는 총회장 입후보 절차 및 임원들의 전횡과 각종 비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파회(dissolve)되지 않는 총회의 운용이야말로 교권화 하여 위계구조를 지닌 적그리스도적인 체계의 완곡한 얼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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