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 칼럼】 오순도순 살다가자!
'백년하청(百年河淸)'이란 말이 있다. 이는 중국의 황하(黃河)강물이 항상 흐리어 맑을 때가 없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아무리 오래 기다려 보아도 그릇된 인생 잘못된 정치가 유턴없이 변화되기 어려움 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생겼을까! 우리나라가 건국된지 어언 80성상에 이르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동안 이 나라의 민주주의 정치행태는 얼마만큼 성숙해졌을까?
다행히 정치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정치에 있어서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오늘 우리나라의 정당정치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의 붕당정치를 보는듯 하다. 인간의 불신에서부터 시작된 정치형태의 하나인 삼권분립(三權分立)의 예처럼, 타락한 인간에대한 불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를바가 없다. 민주주의란 국민 모두가 나라의 주체가 되어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제도를 말한다. 바로 이런 대전제하에서 출발하여 민주주의의 실천방법으로 직접 민주주의와 간접 민주주의 형태로 분류된다.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후 고고성을 울리며 출발했지만 그동안 무수한 우여곡절을 격으면서 오늘 여기까지 왔다.
언필칭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대한민국이 4,19혁명과 5,16구테타 그리고 6월항쟁 등 숱한 격랑을 헤쳐오면서 좋은 것은 본 받고 나쁜 것은 그 모양까지 버리는 명실공히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마치 지진아처럼 퇴행내지 제자리걸음에 머물러 있다.
다른 여러 분야에서는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유독 정치분야에서는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이 오로지 당리당략과 능소능대의 중상모략이나 권모술수등 국익이 아닌 사리사욕에 눈멀어 칠십여 성상을 허송으로 날려버렸다. 오히려 이런 당리당략을 잘 구사하는 것이 되려 인정받는 정치풍토가 퇴행을 자초하고 있다.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등용이나 인재를 키우는게 아니라 붕당정치이다 보니 나라의 일꾼이 아닌 저들의 입에 맞는 이들을 낙하산식으로 등용하는 현대판 매관매직이 판을치고 있다. 좋은 것은 버리고 당리에 이로운 것만 취사선택하는 구태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근세 초 독일 통일을 앞당겨 대독일을 반석위에 세운 독일의 명재상 비스마르크 (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k)의 그림자에도 못미치는 위인들이, 여야할 것없이 비스마르크의 좋은 점은 본 받지 않고, 하나같이 추종하는게 야합이 아니면 권모술수다. 호랑이를 그리라 했더니 고양이도 그리지 못하는 위인들이다. "중이 고기 맛에 맛들이면 절깐의 빈대까지 잡아 먹는다."는 말처럼, 마냥 그런 위인들이 국가 정치의 노른자리에 앉아서 시대의 흐름을 역류시키고 있다.
헤쳐나가야 할 일은 켜켭이 산더미처럼 쌓여만 가는데, 바른 정사보다 오로지 권력을 잡는 일에 혈안들이 되어 있으니 장차 내일없는 이 나라가 염려스럽기만 하다. 탐욕의 해독제는 바로 분수를 알아서 자신을 성찰하며 허욕을 내려놓는 일이다. 그래야 감사하는 마음과 자족하는 마음이 나를 주장하게 될때 탐욕으로 가득찬 인성들, 그래서 이 나라의 정치를 분탕질하고 있는 위인들이 이제라도 분수를 알고, '염치'를 알아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으면 좋겠다.
천층 만층 구만층' 이란 말이 있다. 계층도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도 양상도 영향력도 다 다른 다양성을 살려내는 성숙한 사회로 이끌어 내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에 혼신을 다 해야할 사람들이 첨예한 국정에는 관심이 없고, 국가 이익보다 사리사욕에 더 눈이 밝아 설사 정권이 바뀌어도 여야 할것없이 정치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질 것이 없다. 북한의 사십도 안된 김정은에게 끌려만 다니다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문정권 보다는 좀 나을까 하여 민주주의가 바로 된 법치주의국가를 염원하여 근소차로 보수정권을 뽑아 보았지만, 전에는 지나치게 좌편향이더니 이번엔 완전 우편향으로 전정권이나 현정권이나 민초의 마음과 역사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기는 도찌니 개찌니다. 구태의연한 구시대에 찌든 자들이 어쩌면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저들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으니 할말이 없다.
차세대를 위한 백년대계는 차치하고 인재를 재원으로 나라 살림을 이끌어 가고 있는 지금, 인재를 발굴하는데 혼신을 다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마저 이젠 점차 퇴색되어 가고 있다. 미래세대가 아닌 이기(利己)와 당리당략의 권모술수에 푹 빠져 있는 국회 꼰대들에게 차세대를 위한 헌법개정의 일익을 맡기면 과연 과연 밝은 미래를 여는 헌법을 창출해 낼수 있을까? 왜 저들은 오늘의 타익에 빠져 이나라의 백년대계를 그르치지 않고 오로지 차세대를 위한 헌법을 창출하기위해 진통과 난산(難産)을 거듭하고 있는가? 지금의 우리 헌법은 1987년에 개정된 후 무려 일제시대와 비견되는 36년 의 세월이 흘렀다.우리 국민이 정치에 대해 둔감한 건지 아님 정치권이 국민이 바라는 있어야 할 헌법보다 현행 헌법을 더 선호해서인지 여하튼 현행 헌법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우리 차세대들에겐 전혀 맞지 않는 옷이다. 주지하다시피 현행 헌법은 대통령에게 초헌법적 절대적 권력을 부여한 5년 단임제다. 이러한 절대적 권력에 책임을 물을 어떠한 헌법 규정도 없다. 1987년에 무슨 까닭으로 권력의 속성상 부패하기 십상인 집권자들에게 이처럼 막강한 절대 권력을 부여한 것일까? 참 미스테리다. 지금 현 대통령의 무한 절대권력을 보고 있노라면, 저 근세기에 세계를 휩쓸었던 앙상례짐의 대명사이자 절대 권력의 상징인 전제 군주제를 보는듯 하다. 아니 작금의 북한 정권이 그러하듯 세계 도처에서 이러한 절대 권력의 독버섯들이 우후죽순처럼 발흥하고 있다.
대명천지 이 문명한 시대에 북한은 아직 사십도 안된 애숭이가 소위 '민족의 존엄자'를 자처하고, 또 남한에서는 정치불신에 기초한 삼권분립을 무색케하는 행정권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무소불위의 국가권력을 집중시킨 편향된 헌법을 무려 36년이란 세월동안 사실상 방치해왔다. 삼권분립은 원래 권력지향주의 인간들의 절대적 부패성에서 시작된 것임에도, 어떻게 이런 헌법을 국회의원들이 창출해 냈을까? 마치 정치를 붕당으로만 보는 자 자들이 민주정치의 진수를 모르기에 진정 민초가 주인 되는 일에는 돈다 무시하고 중이 염불보다 젯밥에만 정신 팔리듯 권력의 중앙 선(線)을 권력에 취해서 넘나들고 있다. 삼권분립이 아닌 절대적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언행은 마치 고려청자를 다루듯 조신해야하는 것은, 절대통치자의 말은 그것이 바로 법이 되는 천금같은 무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의 균형을 법이 아닌 인간의 자의에 일임해 놓고 그 스스로 권력 조정자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혼란기로 회귀하고 있지 않는가? 이를 아시라! 권력은 잠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무궁해야 한다. 빵 없는 자유, 자유 없는 빵이 아니라 실질적인 자유권과 생존권을 지향하려는 고민이 현 집권자에게 과연 있는가 묻고 싶다. 오늘의 대한민국 국정을 지켜보면서 집권자의 말로를 위해서도 민초를 위해서도 매우 잘못된 헌법임을 자각하고 하루 빨리 개정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더군다나 절대적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5년의 초헌법적 대통령이 되고 보니 마치 천하가 내 것인양 착각에 빠지는 것인가? 권력에 취해버리는 것인가! 어리석은 자여! 권력이 무엇이냐! 권력은 잠간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니라! 이제 겨우 백일지난 어린아이의 눈 망울을 보라! 얼마나 영롱하게 보이는가! 이땅에 바보처럼 십자가 제물로 오신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어린 아이와 같은 진순무구한 마음을 가지라."고!
세상욕심으로 찌든 마음을 비우고 보면 아니 내려놓고 보면 나 남없이 모든 마음들이 다 보인다. 세상권세를 쥐고 있는 오늘의 권세자들이여! 권력지향으로 달리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내면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내면을 들여다 보시라! 그리고 말씀의 보습으로 묵은 심령을 갈아 엎으시라!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양승국변호사가 날마다 쓴 글 가운데 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노자(老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그 뜻은 "모든 인위적 기교는 타락한 인간의 졸렬함에서 나오는 것이니 태어날 때의 조물주에게서 받은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본다. 세상 욕심의 짐을 내려놓고 우리 온 인류에게 '참 생명'을 주시고자 오신 주님을 바라보고 그를 닮아가는것 그것이 조물주가 인간에게 준 '근본 마음'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 있어야 할 국가와 나, 그리고 있어야 할 법과 질서와 참 자유가 보이게 될 것이다.
【종그니 칼럼】 오순도순 살다가자!
2019년 5월에 우리내외는 태어나서 처음, 8박10일 간의 유럽을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나폴리에 있는, 2000여년 동안 엄청난 양의 화산재에 묻혀있었던, 전설속의 고대도시 폼페이시에 첫발을 디뎠다.
폼페이는 원래 5만여명이 거주하는, 당시 로마인들에게 각광받는 로마제일의 휴양도시였다. 이렇듯 휴양도시로 유명한 폼페이시가, 하룻밤사이에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여,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을, 지난 세기 한 고고학자에 의해, 수십미터가 쌓인 잿더미를 파내면서, 그 일부가 2000년이 지난 지금에야 처절하고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극히 일부나마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온 하늘을 뒤덮을 만큼 이글거리는 거대한 불덩이가, 하늘에서 일순간에 쏟아져내려, 전 시가지를 완전히 덮어버린 대재앙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마지막 최후행위의 순간들이, 카메라에 포착되 듯, 2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마치 오늘 그 찰라의 순간들이, 적나라하게 아니 생생하게 그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당시 폼페이 시가지에서, 육안으로 아스라하게 보이는, 비세비우스 산의 대 폭발이 있기전, 화산 재가 조금씩 뿜어져 나오는 며칠 동안, 이고 지고 들고 갈 것도 없는, 노예와 가난한 서민들은, 서둘러 피난 길을 떠났단다. 결국 화산재에 파묻힌 2,000여명은, 대부분 귀족들과 돈 많은 상인들 이었다. "수수만년동안 멀정했는데 설마 큰일이야 나겠어?" 노아의 홍수때에도, 아라랏산 중턱에서 일백 이십년을 하루같이, 방주를 만들고 있던 노아 할아범을 모든 사람들은 '미쳤다'고 얼마나 놀려댔었겠는가?
그 홍수때도 사람들은, "며칠 퍼붓다가 그치겠지," 그랬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엄청난 장대비가 날마다 쏟아지니, 사람들은 일단 지붕위로 올라가고, 또 며칠후엔 앞산으로 올라가고, 그러다가 노아의 가족외엔,모두 다 대홍수에 수장되고 말았단다. 폼페이 도시도 마찬가지로, 설마 설마했다가 그 설마가 현실이 되어, 폼페이 온 시가지가, 마치 뜨거운 용광로처럼, 화산재에 의해 일순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목욕하던 사람이, 길을가던 사람이, 세상쾌락에 빠져 있던 사람이, 그대로 미이라 처럼 석고가 되어 버렸다. 돈과 권력 명예에 눈이 먼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끝까지 붙잡으려다가, 결국 생명을 잃기 직전까지의 부끄러운 민낮들을,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끄러운 수치를 몽땅 다 드러 내는, 석고미이라가 되고 말았다.
태풍에 뿌리가 뽑히는 것은 큰 나무이지 잡초가 아니다. 자신이 일등이라고, 최고라고, 차각 속에 빠진 사람들은, 먼저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늘의 대 재앙앞엔, 어떤 능력이나 소유의 많고 적음이나, 신분의 빈부귀천 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지구 별에 잠시 머물러 온, 순례객들 이라는 사실을! 내가 지금 잠시 유럽여행을 와 있듯, 우리네 인생들은 조물주가 주관한 인생 여정이 끝나는 날, 왔던 자리로 되 돌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마시라!
여행이 즐거우려면, 세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첫째, 짐이 가벼워야 하고, 둘째, 동행자가 좋아야 하고, 셋째, 돌아갈 집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여기 사는 날 동안, 잠시 빌려 쓰는 것뿐이지, 내 몸둥이를 포함해서 내 소유란 아무 것도 없다. 마치 여행지 호텔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사용하는 치약과 수건처럼 말이다. 우리는 반드시 죽을수 밖에 없는, 그래서 죽음너머의 세계로 떠나가야 하는, 유한한 인생임을 알아야, 비로소 올바른 삶의 방향을 알수 있다.
죽음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3가지가 있다.
첫째, 사람은 분명히 죽는다. 들째, 나 혼자서 죽는다. 셋째, 아무 것도 가지고 갈수 없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것 3가지가 있다.
첫째, 언제 죽을지 모른다. 둘째,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셋째,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내 자의로 사는 것 같아도 하루의 일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땅에 머물러 살다가는 것이, 실은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아닌 것이 아침에 먹은 음식이, 내 몸안에서 어떻게 처리 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우리가, 어찌 내 몸, 내 인생의 주인이 바로 '나'라고 말 할수 있겠는가? 혹여 당신도 로마의 '씨저'처럼 한번도 준비하지 못했던 죽음이, 창졸간에 임할지 모르지 않는가! 그러므로 때가 오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태어나는 모습은 거의 비슷하지만, 허나 죽는 방법은 천차 만별이다! 그래서 인간의 평가는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것으로 결정된다. 내가 어렸을때 아버지의 훈계가, 마냥 잔소리로만 들렸더니, 칠십이 넘은 지금에야, 엄하나 깊은 사랑의 훈계가 절실하게 그립다.
역사를 보라! 창조자의 손길을 떠날때는 모든 것이 마냥 좋았었다. 그러나 인간의 손에 다시 들어 온후, 모든 것이 망가져 가고 있잖은가! 이처럼 덧없는 인생이 하나님을 통하여, 영원한 삶을 깨닫게해 주셨으니, 그러므로 이제라도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서, 언제나 사랑하고 배려하며, 주어진 삶을 다할 때까지, 위로 나를 이땅에 보내신 이를 바라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들과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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