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조엘 비키, 마크 존스, 김귀탁 역, 부흥과개혁사, 2015년.
Joel R. Beeke & Mark Jones, A Puritan Theology: Doctrine for Life, Reformation Heritage Books; 1St Edition (October 12, 2012).
“청교도라는 말은 1560년대에 생겨난 일조의 멸시어로 잉글랜드 교회 개혁의 촉진을 원했던 사람들에게 붙여졌다”(번역본, 14쪽). 이 말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사용에 우려가 있지만, 개혁파나 칼빈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계속 사용하는 것을 옹호하고 있다(14쪽). 조엘 비키와 마크 존스는 청교도 신학을 개괄적으로(1,000페이지) 구성하려고 시도하였다. 청교도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14쪽).
존 코피와 폴 림은 “청교도 사상은 유럽 대륙의 루터 교회가 아니라 칼빈주의 교회들에 동조적인 개혁파 개신교 사상의 변종이었다”으로 정리하였다(15쪽). “청교도 사상은 잉글랜드 교회 안에서 영원하고, 독특한 환경과 긴장의 산물인 근대 초기 개혁파 개신교 사상의 특징을 가진 강력한 변종이었다. 엘리자베스 1세 통치 아래에서 잉글랜드 교회는 대체로 개혁파 교회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었다”(15쪽). 그러나 비키와 존스는 “청교도는 오로지 개혁파”라고 주장하지 않는다고 천명하였다(15쪽). 개혁파는 세 일치 문서이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와 세 일치 문서는 신학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리처드 백스터(1615-1691)는 청교도가 분명하지만, 윌리엄 퍼킨스(1558-1602), 토머스 굿윈(1600-1680), 존 오웬(1616-1683)과 같은 개혁파가 아니다(15쪽). 백스터와 오웬이 치열한 신학 논쟁을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백스터는 도르트 신조를 인정했지만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백스터는 새로운 문서 작성을 원했고, 오웬, 굿윈, 토마스 맨턴은 판단한 능력이 없다고 평가하였다(15쪽). 백스터와 함께 논란이 되는 위인들은 알미니안 존 굿윈(1594-1985), 율법폐기론자 존 이튼(1575-1631), 침례교도 존 번연(1628-1688), 아리우스자로 보이는 존 밀턴(1608-1674) 등도 청교도로 분류한다(15쪽). 크롬웰 시대에 청교도에는 장로파, 회중교회, 침례교회가 있었다. ※ 비키와 존스는 “회중교회”라고 표현하였지만 “독립파(獨立派, Independents)”로 제시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회중파, 조합파로 부르기도 하지만, 회중파는 식민지로 이주한 분리파 청교도(separating congregationalists)들이 체계화시킨 종파로 구분하기 위함이다.
비키와 존스는 웨스트민스터총회의 목적을 “종교의 통일”로 단순 제시하였다(16쪽).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이 제언하여 형성한 엄숙한 동맹과 언약(Solemn League and Covenant, 1643년)에서는 “교황주의와 주교주의를 거부한 한 믿음(the One Faith)으로 왕국의 종교를 이루는 것”이다. 청교도들은 루터교회 예배가 지나치게 종교개혁 이전의 비성경적인 관습들을 보존하고 있다고 믿었다(16쪽). 잉글랜드에서 왕(kingdom)을 죽이고 공화제(republic)를 시도한 인류 첫 경우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청교도는 “언덕 위의 도시(city on the hill)”를 꿈꿨다.
1662년 찰스 2세가 공포한 통일령(Act of Uniformity)과 공동기도서(Book of Common Prayer) 복원에서, 트루먼은 청교도 시대의 마감으로 평가하였다(17쪽). 1689년 평화와 공존이 시작되었다고 정리하였다(17쪽). 비키와 존스는 1646년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작성 과정과 스코틀랜드 언약도가 겪은 Killing Times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리고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로 진행하였다. 에드워즈는 청교도 시대 밖의 위인이지만, 마지막 청교도주의자로 평가된다. 비키와 존스는 에드워즈 신학과 메로우파, 스코틀랜드 분리파, 구 프린스턴, 토마스 찰머스(1780-1847), 스펄전(1834-1892), 존 라일(1816-1900), 로이드 존즈(1899-1981), 패커(1926-2020)을 한 클러스터로 묶었다.
청교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톰 웹스터의 세 가지 특징을 제시한다(18쪽) “첫째 청교도는 하나님과 역동적인 관계를 가짐으로써 자기들의 지성을 형성시키고, 자기들의 감정에 영향을 받고, 자기들의 영혼을 통찰한 사람들이다. 청교도는 자기들 외부의 어떤 것 또는 어떤 존재 곧 성경의 삼위 하나님께 근거를 두었다. 둘째, 청교도는 성경에 기반을 둔 신앙 체계를 공유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체계를 개혁파 정통주의로 지칭한다. 셋째, 믿음에 있어서 자기들의 공통적 경험과 통일성을 기초로, 청교도는 신자들 및 목사들 간에 유기적인 관계를 확립했다. 이 협력적 형제애 관계는 16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에 잉글랜드에서 태동했고, 17세기에 잉글랜드와 뉴잉글랜드에서 발전했다. 청교도 사상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된 삶을 추구하는 데 있었다. 청교도는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에서 발견한 것들을 조직화하고 분석하며, 그것들을 삶의 전 분야에 적용시키는데 데 주력했다. 청교도는 개인, 가정, 교회, 국가 생활 속에서 회심 및 하나님과의 교제를 고백적, 신학적, 삼위일체적 접근법을 갖고 있었다”(18쪽).
비키와 존슨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의 청교도 운동은 일종의 “활력적인 칼빈주의 운동”으로 정의하였다. 그들이 정의한 청교도 운동은 “따스하고 전염성이 강한 성격, 공격적이며 부드러운 복음 전도, 믿음과 에배와 질서로 교회의 머리되심을 실천함, 국가관은 하나님 앞에서 적극적이고 균형적이며 양심적인 행동” 등으로 정리하였다(18쪽). 패커는 “청교도 사상은 교회와 국가와 가정에서 교육과 복음 전도와 경제 분야에서, 개인적인 제자도와 헌신 영역에서, 목회 사역과 능력에서, 국가적이고 개인적으로 영적 갱신에 대한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쓰는 복음적인 성결 운동”으로 제시하였다(18쪽).
톰 웹스터의 정리나 제임스 패커 등에서 청교도의 정의를 보면 “삶”을 강조하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칼빈은 이신칭의를 경첩(the main hinge on which religion)으로 평가하였는데,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은 강도상(講道床, pulpit)에서 선포된 복음을 경첩(hinge)으로 생각한 것으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비키와 존슨의 서두의 글에서 보면 스코틀랜드 언약도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대한 제시는 약하고, 스코틀랜드 매로우파, 분리파 등에 대해서는 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청교도는 주의 백성이 거룩한 삶으로 적용되고 확장되는 복음을 추구하였다면, 루터와 칼빈은 주의 백성이 강도상(pulpit)으로 나와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추구하였다”(고경태)
※ ‘강대상(講臺床)’에서 ‘강도상(講道床)’으로 사용하길 기대한다. ‘강단(講壇)’, ‘설교단(說敎壇)’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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