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 처음처럼(初心).

내가 2015년쯤에 터키를 순례한적이 있다. 에게(Aegae)해를 사이에 두고 소아시아에서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과 그리이스를 눈 끝으로만 바라 볼수 있었다. 그런데 현지 터키인들이 아주 용케도 한국인들을 쪽집게처럼 알아 보았다. 그들은 한국인 여행객들을 보면 으례 첫 인사가 '빨리빨리'였다.  심지어 길 위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터키인도 우리에게 건네는 첫 인사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빨리빨리' 였다. 당시 한국인들의 근면성에 대한 외국인들의 단적인 표현이었다.  아직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은 어떨까? 옛날 스파르타 시민들은 실질 강건하고 아주 근면성실 했다. 분명 그들은 스파르타 제국의 지배계급이었음에도 이러한 특권을 내려놓고, 모든 피지배자들에게 근면 성실의 표본이 되었다. 이것은 로마제국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실질강건할 때는 세계의 모든 문물이 로마로 흘러들어와서 생동하는 로마의 숨결을 머금고 다시 모든 열국으로 흘러 나왔다. 이처럼 근면하고 성실하던 로마가 어느 한 경점에서 이를 잃어버린 순간 수천년 동안 세계의 중심에 있던 로마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역사의 연구'라는 총 14권의 대저를 저술한 토인비(Toinbee Arnold joseph)는 "인류의 역사는 인간사회의 자유로운 의사 활동에 의하여 형성된다." 고 갈파하였다.

1960년대의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라는 '새마을 운동'이 국민들의 정서에 점화되자, 이 운동은 삽시간에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 그 지긋 지긋한 가난을 몰아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한민국 모든 산야에 산림녹화가 이루어 진것도 이 때였다. 지난 세기 인도의 시성(詩聖)이라 일컷는 ‘타골’ (Tagore Rabindranath. 1861- 1941)이 조선(朝鮮)을 두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朝鮮)이자 동방의 등불”이라 극찬했었다.  그런가 하면 1938년 노벨 문학 수상작인 소설 ‘대지’ (The Good Earth)의 저자 펄 벅’여사는, 어느 시골 길에서 소달구지에 마을 사람들이 가득 타고 가는 것을 보고, '한국 사람들은 인정이 넘치는 서정적인 국민들'이라고 극찬했다. 우리나라 옛 속담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분수를 지키라는 말이다.  그때 우리는 우직하리만큼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 공동체에 아주 근면 성실했었다. 이처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마땅히 하여야할 본분이 있다. 그것이 바로 '근면 성실'이다.  그런데 문명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오늘의 한국인의 자화상은 어떨까?  일보다 여가(餘暇)에 방점을 둔다. '여가의 선용'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인간의 덕목인 근면보다 여가에 방점을 두다 보니, 사람들의 삶의 본질에 있어 주객이 전(主客 顚倒)되어, 어느 때 부턴가 일보다 부어라! 마시자! 며 천금같은 세월을 소모하는 데에 더 방점을 두고 있어,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있다. 

그결과 지금 우리의 모습은 한국인 본연의 자화상을 잃어 버렸다.  이로 보아 문명의 척도와 인성(人性)은 아마 반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왜냐하면 오로지 인간의 편의성만을 쫓는 문명과 인성은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의 사회상과  오늘의 사회상 그리고 사람들의 인생관 가치관 내지 세계관이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무질서와 이기심 무례와 폭력, 존비속 살인,  사기, 강간 성폭력등, 인간이기를 포기한 각종 사회악들이  길 바닥에 흘러 넘쳐, '3류 사회'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 특히 전철내에서의 무질서 등은 물론이고, 산과 들 바다와 강변 할 것없이 '무단으로 버린 쓰레기' 천지다. 이것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사회를 쓰레기처럼 취급해 버리면 우리가 설곳은 어디인가?  '국민 개조론'이 들고 일어날 만큼 사회의 흐름이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엄청 빠르게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어, 마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극치를 보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음악책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주 그냥 '싸가지(仁義禮智)'가 없다.  얼마전 어느 장관 후보자의 국회 청문회의 모습에서 보듯 자기 유익이나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인격모멸 따위는 개념치 않는 저질 사회로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인격이나 공익은 찾아 볼수 없고 오로지 자신의 이기에만 이골이 나 있다. 

한해에 한국에서 무고 죄로 고발되는 건 수가 이웃나라 일본에 비해, 일본과의 인구수를 감안하고도 무려 500배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는 1960년대 이후 빈곤 퇴치를 국시의 제 일의로 삼아왔다.  그러나 선진국가로 가는 제 일의는 빈곤퇴치 못지않게 사회 공동체로서의 이웃과 공익을 추구하는 넉넉한 아량국가 이어야 함에도, 우리는 보수와 진보가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마치 철천지 원수처럼 마치 지난 세기 당파싸움처럼 죽기 살기로 이념 싸움에  사활을 건다. 사회주의 자유주의 그게 눈을 부라리며 다툴 일인가? 이 모든 발단이 남북분단이 가져온 후유증이다. 유행가 가사에 이런 가사가 있다.  칠십년 세월 그게 무슨 대수요 우리 함께한 세월은 오천년인데~~."  우리 헌법엔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가 있다.  남북간에 아직 해결되지 못한 휴전선은 그대로 있지만, 이념과 체제로서의 경쟁은 이미 판가름 난지 오래다. 북한 체제에 대해 북한에서 넘어온 간첩말고, 북한에 대한 호기심은 있을지언정 북한 체제를 동경하는 칠푼이는 없다고 나는 단언한다. 북한에 거주 이전의 자유, 통신의 자유,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신앙의 자유, 재산권의 자유 등 단 하나라도  있는가?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자유를 누리다 보니, 마치 식탐 많은 어린아이가 더더 하듯 지금 우리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지켜야 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금기선'까지 모두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처럼 온갖 사회악들이 무너진 우리 양심의 망을 뚫고 네 활개를 치고 있다.   보이스 피싱 피해도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이게 어찌 조용한 아침의 나라이고, 서정적인 나라라 할수 있을까?  진정 자유 민주주의를 구가 할 품격과 국민들의 의식구조가 선진화 되어 있다 말할수 있는가?  소위 세계 경제 대국 10위권이라느니, BTS, K-pop, K-음식, 문화 등을 말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이고, 엉덩이에 뿔난 망아지처럼 교만과 자기도취에 빠져 되려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는가?   이 나라 국민의 주권의식은 어떤가? 언젠가 미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차라리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 꽃을 찾아라!"  작금 대한민국의 민도가 가히 밑바닥  '쓰레기 수준' 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폄하일까?  세계에서 ‘욕’이 가장 발달된 나라가 한국이란다.  돈 벌기 위해 한국에 오는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욕이란다.  이 땅에 갖 태어난 아이가 부모로부터 가장 먼저 배우는 말도 '욕'이란다.  그래서 전철, 버스, 길거리를 활보하는 중, 고생들의 대화에는 욕이 안 들어가면 말이 안된다고 한다.  MZ세대, Z세대, 밀레니엄 세대, AI세대들의 부모들이 자식들의 인성교육을 아예 포기한 것인가?  아니 인성교육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닌가?  장관이나 국회 청문을 받는 고위 공직자 자녀들의 품행이 사회적 이슈가 되어 회자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가? 

고위 공직자가 자녀에대해 엄격하지 못하고 되려 학교 선생을 욕보이고, 법 지킴이가 되어야 할 고위 공직자들이 법 집행을 아전인수격으로, 법 줄타기를 자행자지하니, 이것은 인간사회가 아니라 어느 때 부턴가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의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가정과 직장은 사회의 가장 작은 '스몰 공동체'로 여기서 부터 인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임에도,  자기 자식 귀한 줄만 알았지 그 자녀들이 밖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지,이 나라를 이끌어 갈 재원으로 키워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음에도, 사회에서  어떤 평가 받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면, 부모된 자로서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는가?
이처럼 자녀를 향한 사랑과 훈육의 구분도 못하는 부모들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요즘 군대도 유치원이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선진국이란 돈이 많고 적음으로 평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명품으로 몸을 감고 좋은 차를 굴려도 인간으로서의 의식과 인간됨이 엇나가 있으면 저질인생인 것이다.  동남아 골프장에서 한국 사람들의 평가는 섹스광, 돈 자랑, 옷 자랑, 힘 자랑 이나 하는 '양아치들' 이라고 폄하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한국 사람들을 평가할 때 ‘추악한 한국인(Ugly Korean)’이라고 한단다.  심지어 현지 교민들도 한국 사람들이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말한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질서나 예의, 상대에 대한 배려는 사라진지 오래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 보라.  전철을 타자마자 빈 자리를 찾는 사람들의 눈 빛에는 먹이를 찾는 날 짐승처럼 눈에 살기마저 느껴진다. 전철에는 칸마다 임산부를 위한 핑크 빛 자리가 마련 돼 있다.  임산부들의 소리없는 고통과 피곤함을 덜어주기 위해 마련한 '배려석'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임신부와 는 전혀 관계없는 이들이 안면몰수하고 앉는다.  아예 그 자리는 처음부터 무주공산인 게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정장을 한 신사도 중후한 중년 여사도 아무 개념없이 앉는다.   옷만 번드르하게 입었을 뿐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은 아예 없는 것이다.  이게 우리가 사는 사회상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는 출 퇴근 시간의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에서도, 임산부 좌석 그 자리만은 늘 비어 둔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선진사회의 진면목이다.  생각해 보라.  지금이 단군이래 가장 똑똑하다는 세대가 아닌가?  그들에게 순간의 순발력은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활동속에는 시대를 바라 보는 눈, 선진 대한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 안타 깝다.  이태원의 할로원 사건 역시,  2014년도에 세월호 해상 교통사고로 500여명의 아이들을 죽게하고도 또 이런 사고가 일어났다.  바로 이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풍향계다 진실로 처절하게 반성하고, 국민 모두가 각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오늘의 순간은 있을지 몰라도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풍토가 확 바뀌어야 한다.  왜냐하면 정치가 사회를 재는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치 행태로는 국가의 미래는 가늠할수가 없다.  내 눈에 비친 저들은  모든 허물을 상대에게만  돌리며 정작 본인에 대해서는 반성은 커녕 온갖 궤변으로 국민들을 우롱하는 정치똘만이들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아시는가?  대한민국은 지금 IMF때 보다 더 혹독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백척간두에 선 지금 진실로 구태의연한 옛 자아를 버리고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결단코 내일은 없다는 것을!  지금 이 나라가 부르고 있는 사람은 사회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 즉 듣는 귀가 순한 사람이다.

[종그니칼럼] 처음처럼(初心).

20세기 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강철회사로 재벌이 된, 찰스 슈어브(Charles Schwab)와 밀 농사로 돈방석에 앉게 된 커튼(Archar Cutten ), 두 사람은 `처음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결국 전 재산을 다 잃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흔히 인간은 환경이나 여건이 바뀌게 되면 `初心` 을 잃을 때가 많다. 조강지처(粗糠之妻)란 말도 초심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이 初心을 세웠으면 혹 성공을 하거나, 혹 실패로 끝났을지라도, 처음 다짐했던 초심을 결코 잃어서는 안 된다. 나를 유혹하고 내 마음을 흔드는 것이 그 무엇이든, 이와 단호히 맛서 싸워 초심을 잃지 않을 때, 바로 여기에 삶의 진수와 보람과 희열이 있는 것이다.

중국 주(周)나라 시대로 기억된다. 周를 건국한 문왕과 무왕 그리고 태공망도 죽은 어느 날, 周의 다음 왕이 민정차 민가 성 밖 마을들을 살피다가, 날이 어두워져 어느 농부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집 주인인 농부가, 周王인줄 전혀 모른 채, 나그네에게 대하는 자세와 겸손이 진솔하게 몸에 배어 있었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아주 먼 `마하나임`에 까지 이르렀을 때, 그곳 촌장 `바르실래`가 아들의 난을 피해 신발조차 신을 틈도 없이, 맨몸으로 궁궐을 빠져나와 풍잔 노숙하던 다윗 왕을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촌부 바르실래가 있었다. 그는 전혀 사심이 없이 성실하게 나그네를 예와 겸손으로 편안히 대하는 모습은 자신의 신하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따뜻한 모습이었다. 삼십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젊은 농부의 겸양한 모습에 마음이 끌린 임금은 궁궐로 돌아오자, 그 농부를 불러 나라의 관리로 등용하였다.

관리로 등용된 젊은 농부는 청빈한 생활과 성실한 농부로 살아온 진솔함이 마음속까지 배어 있어서, 初心을 잃지 않고 농부의 마음으로 국사를 살폈다. 이에 왕은 마침내 그를 재상의 자리에 앉혔다. 왕은 그동안 그를 주목하여 보고 내린 결단이었다. 무릇 재상이란 능력도 중요하지만, 청빈한 마음마저 겸비하였으므로, 왕은 그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재상으로 임명한 것이다. 재상이 된 농부는 나랏일에 최선을 다하여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공명정대하게 국사를 처리 했다. 그러자 다른 신하들이 그를 시기하기 시작했다. 일개 농사꾼이 나라의 관리가 된 것도 모자라, 재상까지 올랐으면, 적당히 뇌물도 받고 융통성도 좀 있으면 좋으련만, 대소사 모든 일을 공명정대하게 처리하니, 자신들의 입지가 아주 난감해졌다. 이에 신하들은 재상이 된 농부를 쫓아내기 위해 온갖 중상과 모략을 일삼았다.

그러던 중 재상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기가 살던 시골집에 다녀오는 것이 중신들의 눈에 띄게 되었다. 이를 수상히 여겨 몰래 따라가 보니, 광에 커다란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서 항아리 뚜껑을 열고, 한참 동안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신하들은 임금께 그 사실을 알렸다. 재상이 청렴한 척은 혼자 다하면서, 항아리 속에 아무도 몰래 받은 금은보화를 가득 채웠다고 고자질했다.

왕은 그를 누구보다도 신임했던 터라, 의아스러워 직접 진위를 알고자, 고자질한 신하들을 앞세워 재상의 집을 찾았다. 재상의 시골집에 다다른 신하들 앞에서, 왕은 항아리를 뚜껑을 열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항아리 속에 들어 있던 것은 금은보화가 아니라, 재상이 농부 시절에 입었던 낡은 옷 한 벌과 낫과 괭이뿐이었다. 농부출신 재상은 주위의 유혹을 경계하고자, 농부 시절 옛날을 기억하여, 그때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 달에 하반씩 시골집을 찾았다.

내게 부족한 좋은 점을 상대에게서 보았으면, 이를 귀히 여기고 본받아야 하는데, 중상모략으로 고자질했던 모리배들은 혼비백산했을 것이고, 그 재상은 더욱 신임을 얻게 되었을 것은 不問可知다.

고대 그리스의 대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가장 작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이가 가장 부유한 사람이다."하였다. 그의 제자 디오게네스는 통나무를 절구통처럼 파서 그것을 집으로 삼고 살았다. 그리고 낮에도 등불을 켜고 아테네거리를 다니며, "정직한 사람을 찾는다"고 외쳤다. 아테네는 의인 열 명이 없어 멸망했던 소돔 성처럼, 마케도니아 왕 필립 2세에게 멸망(주전 338년)하고 말았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초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그러기에 초심은, 자신을 지키는 지킴이다. 어려우면 初心을 돌아보고, 성공하면 마지막을 살펴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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