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요즘 어느 젊은 정치인의 학적이 이슈가 되고 있다.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졸업을 않했다고 하고 본인은 했다고 한다. 어쨌든 미국의 명문 하버드 대학교의 명성만큼이나 그의 학적이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하버드 대학교는 아이비리그에 속한 최상위 대학인 것은 맞다. 하지만 미국의 대학 순위를 매기는 Best US. news 대학 순위를 매기는 조사기관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 10년간 하버드 대학교가 미국 대학교의 1위 자리를 차지한 것은 한 번도 없다. 2023년의 대학 순위도 1위 프린스턴 대학교, 2위는 MIT, 3위가 하버드 대학교이다. 한국 사람은 유별나게 명문대학교도 하버드를 선호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는 최고의 교수진과 수재들이 몰려오고, 다양한 대학원 프로그램이 있어서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미국의 한인 二 세들도 동경하는 대학교이다. 하지만 대학교는 저마다의 특색이 있고, 특성화 교육이 있는가 하면, 어느 대학교에 노벨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이공계로는 MIT가 최고라면, 프린스턴 대학교는 인문, 사회과학, 기초과학이 세계 최고이다. 그러므로 명문대학교라고 할 때 어느 한 분야만 볼 것이 아니고, 각각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세계적으로 우수한 대학교들이 널려 있다. 조사기관과 기준에 따라서 순위도 왔다 갔다 한다.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대표로는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학력이 최고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 학사, 하버드 대학교 석사,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Ph. D) 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들의 면모를 살펴봐도 이승만 박사 같은 스펙을 가진 대통령은 없다. 한국은 물론 세계 모든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 중에도 이승만 박사와 맞먹을 학문과 지식을 가진 자는 없었다. 이승만은 국운이 쇠하고 나라가 박살 날쯤에 조선의 개혁을 시도하다가 사형수에서 종신 죄수로 살다가 5년 7개월 만에 자유를 얻었다.
그러나 한성 감옥은 이승만에게 새로운 민주주의의 꿈을 향한 준비 기간이었다. 어찌보면 한성 감옥의 6년 가까운 세월이 그에게는 명문대학이 된 셈이다. 거기서 그는 영어에 통달했다. 그는 선교사의 도움으로 신진 문물을 알리는 책들을 탐독했고, 성경을 읽고 신앙의 사람, 확신의 사람으로 거듭났다. 감옥에서 읽고, 쓰고, 기도하고, 명상하고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즉 <독립정신> <일민주의> 등을 저술하고 독립신문에 기고를 했다. 이승만은 사상가요, 독서광이요, 저널리스트이자, 언어학자요, 연설가요, 설교가였다. 그는 한성 감옥이 절망의 장소가 아니라, 영성이 깨어나고 지성이 쌓여가는 신학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승만은 한성 감옥에서 출감하자 평양의 남궁혁씨 댁에서 얼마간 보양을 했다. 남궁혁의 조부는 평양감사를 지냈기에 집도 넓고 풍족했다. 바로 남궁혁은 후일 미국 유학을 하고 평양신학교 최초의 한국인 교수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이승만을 그리로 인도했다.
이승만은 선교사들의 추천장을 많이 받아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그는 뛰어난 어학 실력과 천재적 머리로 그 대학을 단숨에 마쳤다. 그가 배재학당에서 공부했으니, 배재학당은 영어로 PeJe College였으므로 상당수의 학점을 인정받았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 다닐 때, 이승만은 워싱턴 시내에 있는 언약도 교회(Chur-ch of Covenant)에 출석했다. 그리고 그 교회 담임 목사인 햄린(Lewis Hemlin)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이승만이 배재학당을 졸업했고, 감리교 지도자로 살아온 것은 맞다. 그러나 이승만은 스코틀랜드 정통 장로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사실 평양신학교를 세운 마포 삼열(Samuel A. Moffet)도 정통 장로교인 언약도의 후손이다.
어쨌거나 이승만에게 신앙지도를 하고 세례를 주신 헴린 목사는 지금부터 120년 전 미국 동부의 정신적 지주요, 대 지도자였다. 그래서 그는 당시 하버드 대학교 이사장겸,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이사였다. 그는 청년 이승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잘 인도 했고,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버드 대학교를 마친 후 그는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 대학교로 왔다. 그런데 이승만은 처음부터 정치학을 공부한 것이 아니고, 1년간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프린스턴 신학교는 당대 최고 학자인 비.비 월필드(B. B. War-field) 박사가 인도하고 있었다. 거기서 이승만은 변증학과 바울신학, 그리고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를 공부했다. 그리고 당시 학교의 분위기였던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의 <영역주권 사상>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승만의 가슴 속에는 ‘만약 조선이 독립 국가가 된다면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모든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 입국>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선포되던 날, “이윤영 의원 앞으로 나와서 기도 인도해 주십시오. 여기 의원들께서는 믿는 이도 있고, 안 믿는 이도 있겠지만 다 하나님께 감사합시다”라고 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기독입국이 되던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번 주가 <대학 수능시험> 주간이다. 학부형들도, 학생들도, 높은 점수를 받아서 <명문대학>에 가는 것이 꿈일 것이다. 그래서 이를 위해 교회는 특새도 하고 안수기도도 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명문대학을 나온다고 모두가 인생을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맨토를 만나서, 얼마나 큰 열정으로 진실하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때문에 지성보다 중요한 것은 인성(人性)이고, 인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덕성(德性)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성(靈性)이다.
명문대학이 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내가 명문대학을 만들면 된다.
[정성구 칼럼] 유토피아는 없다!
내가 사는 분당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천당 밑에 분당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새로 개발되는 신도시들도 모두 엇비슷해서, 살기 좋은 이상적인 도시가 되었다. 인간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상적인 도시, 이상적인 사회를 늘 갈구하고 있다.
그런데 1556년 토마스 모어(Thomas More)가 유토피아(Utopia)란 책을 썼다. 토마스 모어는 법관으로서, 국회의장으로 재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옥스퍼드대학에서 평생 인본주의에 매력을 느껴, 고전과 헬라어도 공부해서 신학문에 일가견을 가졌다. 그는 에라스무스와도 친교가 두터웠다. 모어는 국왕 헨리의 부도덕을 고발하므로 재상직에서 퇴출당하였고, 런던탑에 갇혀 검찰 측의 위증으로 처형을 당했다. 그는 일생 청빈과 양심으로 살았고, 가톨릭교회는 성자로 추앙하기도 했다.
유토피아는 사방 2백 리 마을의 섬나라이다. 유토피아는 왕국이지만 왕은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선출된다. 어떤 이는 모어의 유토피아는 무신론적 공산주의로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모어는 정의와 양심을 미덕으로 아는 법률가였다. 그는 당시 영국의 귀족이나 영주들의 권력과 돈과 사치에 놀아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정의와 법과 양심이 통하는 이상적 국가를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누구나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이세상 아무 데도 유토피아는 없다. 나는 오래전에 유럽에 갔을 때, 그곳은 내 눈에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고색 찬란한 건물이며, 잘 정돈된 집이며, 아름다운 정원에서 거니는 사람들을 보고 ‘여기야말로 유토피아구나’라고 생각했다. 지금부터 50여 년 전이니 나 같은 호롱불 세대에게는 ‘이곳이야말로 지상 낙원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양뿐이었다. 암스테르담 구도심은 범죄와 타락의 도시였고, 외곽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는 수리남에서 건너온 흑인들의 횡포로 금방 슬럼(slum)화가 되어갔다. 지금 런던에는 이슬람이 활개 치고 있고, 남유럽과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유색인종들이 밤을 점령했다. 과거 영국은 세계선교의 중심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선교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40년 전부터 일 년에 한 번 정도 미국을 출입했다. 40년 전에는 교회나 지인의 초청장을 받고 변호사의 서명이 있어야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처음에 미국을 가서 서부에서 동부로 이동하는데 그 광활한 자연과 풍요로운 삶, 사통팔달로 뻗어난 프리웨이, 숲 속의 아름다운 그림 같은 집, 과연 미국은 말 그대로 지상낙원이었다.
그러나 미국도 이 세상에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요즘도 인종갈등이 오히려 심해지고, 중국 공산당들의 돈에 맛을 들인 정치가와 언론들은 퓨리턴들이 그토록 지켜왔던 ‘언덕 위의 도시’(City on the Hill)를 잊어버리고, 세속화되고 타락하여 불법선거의 온상이 되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세계의 최 극빈 국가에서 세계 10위권 안에 든 국력을 가진 것이 최근의 일이다. 이는 이승만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박정희 대통령의 ‘부국강병’,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와 눈물과 땀을 흘린 온 국민 특히 산업전사들이 오늘의 영광을 이루었다.
미국에 살다가 수십 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동포들이 이구동성은 한국에 거미줄처럼 뻗어있는 시원한 고속도로, 잘 정리된 신도시의 아파트와 아름다운 공원들을 보고 그 놀라움과 찬사는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3만 불 시대가 되면. 모두가 자동으로 행복하게 잘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정부는 공산주의적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우리를 끌어가고 있다. 정부는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중국 공산당식 방법으로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마스크를 안 쓴 목사는 10만 원의 벌금을 내게 되었고, 코로나 시책에 맞지 않으면 교회를 폐쇄한다는 법까지 만들었다.
지난 25일 밤 자정에 사랑 제일교회에 철거반 용역 7백 명과 경찰 6백여 명이 급습했다. 그것은 사실 방역지침 법의 위반이다. 나 같은 사람은 그곳의 개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지만, 어째서 한밤중인 자정에서 새벽 4시까지 철거 전쟁을 벌였는지 알 길이 없다. 목자 없는 어리고 여린 성도들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겁박을 하고, 교회당을 부수기 위해 모든 공권력이 동원되었다.
2019년 중국 우한에서 중국공산당이 당국의 지침이라면서 48개의 교회당에 불을 지르고, 굴착기로 십자가 탑을 부수는 것을 유튜브로 본 일이 있는데, 그저께 사랑제일교회에 일어난 일은 중국 공산당의 판박이지 싶다. 중국 우한에서 공산당의 교회파괴 때문에 코로나 19가 온 듯하다. 우리 정부는 무엇이 그리 겁나서 모든 사람이 깊이 잠든 한밤중에 철거 작전을 폈는지 모르겠다. 아마 중국공산당처럼 교회 죽이기 본보기로 사랑제일교회를 잡은 듯하다.
소득이 3만 불 시대가 되어도 유토피아는 없다. 왜냐하면, 돈과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죄악이 있는 한 유토피아는 없다. 한국의 기독교회는 대단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목회자가 영적인 것보다 육적이고, 정치적이고, 세속적이 되었다. 결국, 교회 살리는 것도 강단을 회복하는 길이요, 나라 살리는 길도 교회가 교회처럼 될 때 가능하다.
나는 위대한 공학자이며, 기독 철학자인 헨드릭 반리센(Hendrick Van Riessen)박사의 말이 기억난다. 그는 자기 주저인 <미래의 사회, Toecomst Van Maatschaapij>에서 “이 땅에 참된 유토피아가 있다면, 그것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를 통과한 후에나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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