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되는 육체 지켜 하늘의 쓰임받을 수 있게 해야
아테네의 소크라테스가 군인 출신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에서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은 그의 철학 강의가 아니라 바로 전투에서 세운 무용담 때문이었다. 소크라테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네 번이나 참가했고 여러 번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그의 제자였던 플라톤은 어땠을까? 플라톤은 레슬링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플라톤의 원래 이름은 ‘아리스토클레스’였다고 한다. 레슬링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플라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플라톤은 그리스어로 ‘넓다’, ‘평평하다’는 뜻이다. 어깨가 널찍하고 우람하여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그런 플라톤도 상에는 인연이 없었던 모양이다. 선수로서 방황하던 시절에 소크라테스를 만나 비로소 철학자의 삶을 걷기 시작했다.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말을 얻은 플라톤의 지적 사유가 ‘체력’에서 나왔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레슬링 선수로 올림픽에 참가할 만큼 강인한 체력을 지녔기에 더욱 열정적으로 철학에 몰입할 수 있었음은 충분히 유추할 수있다. 철인들의 시대에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육체에서’라는 말이 생겨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철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길에서 체력은 디폴트 값이다. 매사에 체력은 기본이지만 학문의 길에서 체력은 특별히 중요하다. 학문은 장기 레이스이기 때문이다. 열정을 오래 유지할 체력이 없으면, 소기의 성과를 낼 수 없다.
맹자 왈, 무언가를 행하는 것은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우물을 아홉 길을 파도 샘에 이르지 않으면, 그것은 쓸모없는 우물이 된다. 계속 파는 수밖에 없으며 이것도 결국 체력 싸움이다.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온다는 삼손과 키가 3m가 넘었다는 골리앗, 제우스의 DNA를 물려받은 헤라클레스. 이들의 공통점은 ‘힘’이다. 인간은 이처럼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힘의 아이콘들을 만들어냈다. 인간계에도 산봉우리를 통째로 뽑아버릴 정도의 기개를 자랑했던 천하장사가 실존했다.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좌절했던 항우이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이 더해진 말이겠지만 항우의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이 세상을 덮을 만했다고 알려져 있다. 항우와 같이 힘이 센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항우장사’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그러고 보면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여자로구나”라고 했던 햄릿의 독백은 잘못된 것이다.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인간이다. 주어진 힘의 무게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던 인간의 오만함은 늘 경계의 대상이다. 남들의 타고난 체력을 부러워하기보다는 나만의 체력을 키워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울퉁불퉁 근육질과 체력
강인한 체력은 전쟁터 같은 거친 삶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갑옷과 같다. 체력은 크게 보아 근력과 근지구력에 의해 좌우된다. 그렇다면 체력의 원천은 울퉁불퉁함을 자랑하는 근육일까? 근력과 울퉁불퉁한 근육질은 정비례하지 않는다. 근육 양에 따라 근력이 증가하는 것은 맞지만 근력은 근육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좀 더 거칠게 표현하면 근육파열이다. 실제로 근육을 무리하게 키우다가 근육이 버티지 못해 파열되거나 늘어지는 부작용을 겪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근육이 체력에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근육의 힘, 즉 근력은 체력의 기초여서 나이 불문하고 꼭 필요하지만 노년층에는 더 중요하다. 근력은 30세까지 증가하다가 점차 떨어져 50세 때까지 약 10% 감소하고 80세가 되면 50%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근력이 감소한다는 것은 단순히 힘이 줄어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근력의 감소는 기초 대사량의 감소로 이어져 비만을 유발하기도 한다. 혈액을 몸 곳곳으로 보내는 근육의 펌프작용이 약해지면서 혈액순환에도 장애가 생긴다. 나이 들면 근육의 양이 줄어든다고 괜히 의기소침해질 필요는 없다.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한다면 근육 양을 약 30% 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고 하니 희망을 가져볼 일이다.
생활 속에서 지인들 혹은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때가 있을 것이다. 정당한 이유가 있겠지만 알고보면 체력 저하로 인해 일상 생활이 힘드니 마음의 여유 또한 없는 경우가 더 많다. 전문가에 따르면 남을 위한 배려, 따뜻한 말 한마디, 따스한 미소, 친절한 행동 등, 이와 반대로 공연한 투정, 쓸데없는 시비, 짜증, 불편한 감정 등은 모두 마음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체력에서 나온다고 한다. 몸 상태가 엉망이면 세상만사가 귀찮아지게 마련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자신은 물론 남을 배려하고 챙길 마음의 여유도 기운도 없게 된다.
체력이 좋아야 인심도 생기듯 친절함과 다정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체력이다. 하나님의 품성인 온유와 사랑, 용서, 감사 또한 든든한 체력의 밑받침 속에서 피어나는 부차적 산물이지 않을까. 가족, 직장, 교회를 위해서라도 운동을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소식과 건강식, 수면, 좋은 생각 또한 필수요소다. “돈을 잃으면 조금을 잃는 것이고, 사람을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보다 급격히 발생하는 위기 상황도, 어지러운 사회 상황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강한 면역과 강한 체력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려면 먼저 체력이다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긴 만화 <미생>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네가 후반에 종종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귀가 더딘 이유, 모두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혹자는 이런 말도 했다. “친절한 미소와 다정한 제스처, 우아한 인내심은 모두 체력에서 나온다.” 몸이 처지면 마음도 처지고 상대방에게 신경 쓸 여력조차 없어진다. 하물며 하나님께 집중할 여력조차 없어진다면 그야말로 광야에 하염없이 방황하는 어린 양 같을 것이다. 믿음을 끈기있게 이어나갈려면 지구력과 집중력되는 체력이 근간에 받쳐줘야 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비실비실한 사람보다 강한 사람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면역력, 강력한 체력이 영적전쟁에서 살아남는 최상의 무기일 것이다. 체력은 곧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고 그 마음을 보시지만 이 땅에 잠깐 빌려주신 우리의 육체를 소홀히 보지 않으신다. 나를 위해 지으신 이 몸을 잘 관리해서 하나님이 쓰시도록 만드는 것이 예배요 성경적인 이유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듯이 마음을 바로 하려면 몸부터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체력은 국력이란 말은 체력이 곧 나를 지키는 힘이고 노후를 잘 지켜나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야 우리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굳건히 하늘의 쓰임 받아 선을 행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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