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경쟁주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인식하진 못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진짜 자유를 누리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무언가의 노예로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사회적 성공, 어떤 사람은 타인의 시선. 이 외에도 게임, 수집품, 술, 음란물, 쾌락, 마약 등의 노예로도 살아간다. 인간은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이런 것들이 자신을 움직이게 하며 끌고 가고 있는 것이라 본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 진짜 원인이 자신이 믿고 있는 어떤 ‘말’들 때문이라면 믿겠는가.
‘성공해야 대접받지.’
‘난 이거 없으면 못 살아.’
‘여자는 무조건 예쁘고 봐야지.’
‘행복하려면 돈이 좀 있어야 돼.’
‘이번 시험 망치면 내 인생 끝나.’
잘 생각해보면 내가 열심히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등의 무언가를 하게 되는 동기가 이런 말들을 믿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알다시피 저 위의 말들은 어느 상황에서든지 항상 옳은 말이 될 수 없는 그런 말들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어찌 보면 거짓말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저런 말들을 굳게 믿고 그 믿음에 따라서 살아간다. 즉, ‘메시지’가 자신을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 주인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누군가는 ‘그럼 뭐 어떻게 하라는 거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책은 진리의 말씀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위와 같은 말들이 더 이상 자신을 끌고 다니지 못하게 된다. 위에서 얘기했던 그런 메시지들이나 세상의 것들에 더 이상 매여 살지 않는 진짜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럴듯하게 여겨지지만 진리가 될 수 없는 그런 메시지들은 거짓의 영, 즉 사탄 마귀들이 세상에 뿌려놓은 거짓말들이다. 만약 그렇게 마귀가 세상에 뿌려놓은 거짓말들을 믿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곧, 마귀가 자신을 움직이는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마귀의 목표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매달리게 만들어서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돈, 물질, 명예, 외모, 음란물, 미디어, 쾌락 등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그거 없으면 안 될 것처럼 마귀가 거짓말로 속이는 것이다. 이런 마귀의 ‘말’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다 보면 양심도 점차 무뎌지고, 벗어나고 싶어 애를 써 봐도 오히려 그런 세상 것들에 매여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즉 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남들 다 하는데 이게 뭐가 나빠?’,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모든 것은 다 쟤 때문이야. 난 잘못 없어.’
등의 말들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자신의 잘못들을 돌이키지 않는 사람 있지 않을까. 세상의 법정에서도 죄를 눈감아줘선 안 되듯이 하나님은 공정한 재판관으로서 우리가 지었던 죄들을 그냥 넘기실 수 없기 때문에 살면서 지었던 죄들을 사후에 심판하실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악 가운데 있는 우릴 사랑하셔서 내버려둘 수만은 없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살 길을 만들어 두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께선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부활하셨다. 우리가 죄인으로서 마땅히 받았어야할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자신의 피 값을 지불하셔서 노예였던 우리를 사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희생하신 이 사건을 믿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구원자이자 주인으로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이것을 믿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희생이 실제가 되어 용서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예의 삶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즉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마귀는 계속해서 “넌 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어.”, “그게 바꿀 수 없는 너의 삶이야.” 라는 식의 생각들을 우리 머릿속에 집어넣으려고 하지만 그런 말들은 결코 사실이 아니고 전부 거짓말들이다. 자신을 돌아봤을 때 진리가 아닌 세상의 말들이 자신의 주인이 되어있다면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의 주인이 되실 때 세상의 거짓말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능히 가능하게 하실 수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신다는 것은 곧, 성경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뿐이다.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뿐이다. 진리의 ‘말’이 기록된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말씀을 가까이 해보자. 하나님께 돌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맞아해 주시고 진정한 자유함을 주실 것이다. 기독교인이 해야할 일은 하루하루 충실히 잘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으며 기도하며 회개하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복음 8장 32절)
신앙생활에서 경계해야 할 경쟁주의
긍휼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예수님이 행하셨으나 막상 우리가 하려고 하면 잘 안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안에 있는 경쟁심과 이기심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긍휼의 마음을 갖기를 원하지만 잘 안되는 이유가 우리안에 있는 이기적 경쟁심 때문입니다. 우리안에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만 아는 자아가 있는데 그것은 경쟁적 자아요 이기적 자아입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습니다. 긍휼의 사람이 되려면 자기를 버리고 자기 욕심도 버리고 자기 야망도 버려야 하는 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은 성공하는 것, 남보다 앞서는 것, 첫째가 되는 것, 남과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속에는 긍휼의 마음이 들어오기 어렵습니다.
어느 수도원에서 그랬다고 합니다. 수도사들이 싸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 한번은 싸워보기로 하고 벽돌 하나를 사이에 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자, 우리도 세상 사람들처럼 한번 싸워보세”
그러자 다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싸우는가?”
첫 번째 사람이 말했습니다.
“자네와 나 사이에 벽돌을 하나 놓고 내가 ”이건 내거야“하면 자 ”아니야, 그건 내거야“라고 우기게. 그러면 싸우게 될거야”.
그래서 벽돌을 놓고,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이건 내거야”. 그러자 두 번째 사람이 “아니야, 내거야”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말했습니다. “맞아, 자네거야. 어서 가져가게”.
그래서 결국 두 사람은 싸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싸움, 모든 갈등, 모든 다툼이 이기적 욕망, 경쟁심에서 오는데, 그것만 없어지면 다툴 일도 없어지고사람에 대한 긍휼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성령님께서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늘 우리의 자아를 죽이는 일을 합니다.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성령님은 우리안에 있는 거짓 자아, 경쟁적 자아, 이기적 자아를 죽입니다. 그래서 긍휼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긍휼을 영어로 compassion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같이 고통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안에서 우리와 함께 고통받습니다. 그는 어머니같은 분입니다. 그는 우리의 고통을 두고 멀리 가지 않고 세상끝까지 함께 계십니다. 함께 고통당하시는 성령님이 우리안에 계시면 우리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긍휼이 밖으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고립주의를 경계할 뿐 아니라 경쟁주의도 경계해야 합니다.
교회들이 서로 이기려고 하니까 과다경쟁으로 시끄럽습니다. 지역 사회안에서 교회끼리 경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큰 교회도 없고 작은 교회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교회만 있습니다. 교단끼리 경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장자교단도 없고 막내 교단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있습니다. 한 교회가 아프면 다른 교회도 아파야 합니다. 한 목사님이 실수하면 한국교회 모든 목회자는 침묵하고 금식해야 합니다. 교회 하나가 잘못되면 모든 교회가 아픈 것이지 다른 교회가 이익보는 것 아닙니다. 한 교회가 잘못되어 다른 교회가 이익보았다면 그 교회는 그 교회 신자를 즉각 돌려주고 회개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고통을 당하십니다. 그래서 긍휼은 성령님의 속성이요 성품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면, 우리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 언제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긍휼의 마음이 사라질 때 성령님을 통해 우리안에 있는 긍휼을 회복시키시는 예수님께 돌아갑시다. 예수님께 돌아가면 다시 긍휼을 회복합니다. 예수님안에 긍휼이 있습니다. 평생 예수님의 긍휼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돌아가신 미국의 유명한 영성가 한 분이 있는데 이름은 헨리 나우엔입니다. 이 사람은 본래 하바드 대학교수였는 데 어느날 교수직을 버리고 홀홀 단신 들어간 곳이 있었습니다. 캐나다에 있는 Daybreak라는 는 정신장애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였는데 그는 거기서 죽을 때 까지 25살 먹은 아담이라는 정신지체아 한 명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그가 쓴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우면 사람에게도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우면 사람에게도 가깝습니다.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긍휼도 받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위하여 은혜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와 세상과의 관계를 위해 긍휼이 필요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여러분은 예배하면서 은혜받습니까? 그 은혜는 은혜 자체를 위한 은혜가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기 위한 하나님의 긍휼의 선물임을 믿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깝듯이 사람에게도 가깝습니까? 여러분에게 은혜가 필요하듯이 세상도 여러분에게 긍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래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긍휼을 통하여 세상의 평강이 됩니다. 그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 © 리폼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