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그니칼럼】사노라면
아주 오래전 얘기지만, 1953년 미국 예일대는 졸업생들에게 장차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하라고 했다. 그런데 3%만이 인생의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써서 제출했다고 한다. 97%는 그저 생각에 머물러 있었거나, 아예 생각조차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했더니, 놀랍게도 3%의 졸업생이 나머지 97%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자아실현을 누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주어진 삶에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삶과, 그러한 지향점이 없는 삶은,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실제로 심리학에 ‘자아실현적 예언 효과’가 있다. 이를테면 "나는 장차 이렇게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게 되면, 삶의 주파가 마치 네비게이처럼, 거기에 맞춰 자신의 태도를 변경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말은 씨가 된다"고 하고, "세살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도 한다. 그리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 때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성경은 '겨자씨만한 믿음'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자신이 품은 "청운의 꿈이나 방향을 세웠으면,이를 말로써 계속 자신에게 속삭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지향점이라는 말의 씨앗이, 어느 순간 목표에 다다르게 된단다. 옛말에, "한 날의 계획은 아침에 있고, 일 년의 계획은 그해의 첫 날에 있고, 평생의 계획은 어릴 때에 있다."고 했다. '꿈이 녹아 있지 않는 삶!'은 바로 '정함이 없는 삶'이다. 조선 말 철종 때의 김병연(金炳淵) 일명 김삿갓으로 유명한 방랑시인이 있었는데, 그가 남긴 시(詩) 중에,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입에 들어가는 대로,"라는 시가 있다. 이처럼 그의 시에는 '희망과 꿈'은 없고, '풍자과 냉소'만 있다.
이와같이 '지향점이 없는 삶'은, '공허한 삶'이어서, 인생의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주어진 생명이나 인생에 대해, 고인 물처럼 생각이 그자리에 머물러 있어 썩거나, 엇나가게 되는 것이다. 살아 있는 자는 현재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에서 미래로 오늘에서 내일로 움직인다. 그러기에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이요 오늘이다. 실로 오늘은, 소털처럼 많은 날들 중의 한 날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 온 수많은 날들 중 마지막 날이요. 앞으로 남은 여생 중 첫 날이다.
옷 단추도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듯이, 언제나 처음, 첫날이 중요하다. 세월이라는 운명에 자신을 맡기지 말고, 세월아! 운명아! '비켜라!'하고, 환경과 상황을 뛰어 넘어 운명을 바꾸는, 환골탈태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 질때의 희열! 얼마나 가슴 벅차겠는가!
2023년 1월 1일 계묘년이 밝았다.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아니한 처녀림 같은 새해를 맞이하면서, 당신은 새해에 대한 분명한 목표를 세우셨는가? 그런데 많은 경우, 그 목표가 작심 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절실하고 급박한 목표가 아니었거나, 그것에 올인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년엔 담배와 술을 끊어야지."하고 결심을 했으면, 이를 가장 시급히 결단해야 할 최선의 과제로 삼고,결행의 자리로 끄집어 내어야 한다. 목적이 없는 삶, 그것은 마치 표류하는 배와 같다. 옛말에 사돈이 갓쓰고 장에가니, 용수쓰고 따라가는 의존적 삶보다, 나의 삶속에, 꿈과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삶이어야, 보람과 희열이 넘치는 삶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주관이 없는 삶, 남의 삶을 모방하는 삶은, 자아를 잃어버린, 자기 스토리가 없는 삶일 것이다. 남이 세운 인생의 목표가 나의 목표가 될수는 없다. 흔히 우리는, 오랜 세월이 지나고서야 후회할 때가 많다. "아! 나도 그때 그렇게 할 껄!"하는 탄식 자체가 모방적 삶인 것이다.
예수의 모친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가 이르기를, "성령의 능력이 네게 임하사 네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마리아가 놀라 "나는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거늘 어찌 이런일이 있겠나이까?" "하나님의 능력이 네게 임하시리라." 마리아가 가로되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마리아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기꺼히 자기 몸을 아기 예수를 담을 그릇으로 내려 놓았다. 불가능한 일이 없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내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 바로 이것이 믿음이다.
내 육신의 소욕을 따라 작심하는 섣부른 판단보다 는, 곰곰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되새기면서, 지금의 나의 판단이 혹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가를 기도로, 혹은 말씀의 거울로 비추어 보아야할 것이다. 새해 우리의 목표는 과연 어떤가? 자기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주님과 함께 할 것인가를 조용히 묵상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나홀로의 목표보다, 마리아의 기도처럼 "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하는 기도가 바로 그 것이다.
옛날 한 젊은 왕자가 있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는 임종을 맞이하고 있었다. 왕이 곧 운명할 것이라고 짐작한 왕자는, 아버지의 왕관을 머리에 써 보았다. 이를 본 부왕이 "얘야 나의 죽음이 코 앞에 왔으니 잠시만 기다리거라." 우리는 때로 어떠한 일을 이루었을 때, "내가 바로 주인공이다." 라고 속단한다. 그러나 이를 알라! 나의 공로는 여기에 1%로도 없다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의 꿈을 조율하고 변주해 가는 과정, 그러면서 때로 기뻐하고 때로 절망하는 과정이 성장일 것이다.
종그니가
【종그니칼럼】사노라면
젊은 날 우리 내외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 전체를 온전히 드리는 '나실인'으로 살겠다고 맹세하고 하나가 되었었다. 거친 세파를 격으며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지금 우리 내외는 자식이 없다. 그래서 내게 아버지란 칭호도, 또 할아버지란 칭호도, 아주 생경하다. 어쩌다가 일년에 한번 아님 수년에 한번, 집안의 손주 뻘들을 만날 때에나 할아버지란 호칭을 듣는다.때론 자식이 없어 받는 맘 고생을 격기도 한다. 더구나 내가 요양원에 있다 보니, 어린아이들을 보기가 더 어렵다. 요양원에 입소한 어르신 가족들이, 어쩌다 어린 손자 손녀들을 대동하고 찾아 올 때, 잠시 어린이들을 볼 기회가 있긴 하다.
나는 평생을 살면서 모진 세월을 너무 많이 격어선지 아님 타고난 성격때문인지, 아무리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반가움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른다. 그래선지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그저 담담 할 뿐이다. 그래서 '내 안 사람'에게서 무심하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타고 난 성정이 아니라, 오랜 세파에 부대끼며 만들어진 외로움의 상채기가 아닐까 싶다.
"늙으면 애된다."는 말이 있다. 젊은 날 하나님을 만나 어머님을 모시고 목회를 시작할 당시의 1970년대 후반은, 우리나라의 노인문제에 대한 복지정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었다.
그후 일반 목회를 접고, 내가 어르신들을 섬겨 온지, 어언 25년이 되었다. 노인분들을 섬기기 위한 준비기간까지 합한다면 무려 30년이 될 것이다. 그땐 아직 중년의 나이 였는데, 이젠 어느덧 팔십 늙은이가 되었다. 이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참 우여곡절이 많은 그야말로 회한에 찬 세월이었다. 특히 내가 오갈데 없는 노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고자 했을 때는, 오로지 자녀들을 위해 일생을 희생한 노인들에 대한 배려가, 나라에서도 전무한 때였다.
농자 천히지대본(農者 天下之 大本)이란 미명으로, 오로지 천수답에 모든 걸 의지하며 살다가, 나라 경제가 발전하면서 온 나라 젊은이 들이, 대도시로 인구 대 이동의 격변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온 사회의 기존질서가 뿌리채 와해되고, 가족 개념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집안의 부모나 어른도 동기간도 멀어지고, 돈이 최고의 세상이 되었다.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가
짐덩이가 된 경제동물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우리의 옛것이 앙상레짐 (구제도(舊制道)으로 격하되면서, 모든 것이 돈 중심, 경제중심의 사고, '이커노믹 애니멀'사회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렇게해서 지금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부모로부터 유산 받은 것을, 아주 젊은 날 사기로 다 잃고, 그 후유증으로 몹쓸 병을 얻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살아나 주의 종이 되어, 자식들에게 다시는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며, 온 몸을 던져 자식들 뒷바라지 하다가, 노년을 위한 아무런 준비없이 늙어버린, 오갈데 없는 노인들을 위해 살겠다고, 빈손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다함 없는 은혜로, 밤을 낮 삼아 뛴 수년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널 따란 대지위에, 240평의 건물을 완공했을 때의 그 기쁨은,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그것도 IMF직후에, 크고 작은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할 때,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말하면 내 몸하나 의지할 곳 없어, 월세로 집을 얻어 시작해서, 오갈 곳 없는 노인분들을 위한, 240평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니, 그때의 그 기쁨은 형언할수 없었지만, 나의 운영 미숙으로, 2006년에 경매처분되고 말았다. 실의에 빠져 가슴을 쓸어 내리고 있을때, 고향 후배인 '김진의'가 무의탁 노인 시설을 무조건 인수 받아, 그의 배려로, 2009년까지 노인분들을 섬기다가, 2008년에 이르서야, 요양원 제도가 비로소 이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자, 나는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노인들을 섬길수 있는 장소를, 청평에서 춘천으로 2009,9월에 옮길수 있게 되었다.
춘천에 세운 요양원을 통하여, 노인들을 다시 섬길수 있게 되었으니, 그동안의 고생이 이를 위한 마중 물 역할을 했다 싶어, 황무지 같은 빈들에서서 몸부림쳤던 처절했던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에 진실로 감사하다. 우리 인생이 가는 저 산 너머에는 반드시 기름진 목초지가 있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려면 가파른 저 산 언덕을 넘어야 한다. 이처럼 인생이 가는 길엔 언제나 환란풍파가 있게 마련이다.
종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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